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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짝 프로젝트 <남산예술센터 대부흥성회>

사랑하니까 반대한다는 B목사님께

오수경
187호 2020.09.24
목사님, 안녕하세요. 그간 잘 지내셨는지요.  오랜만에 목사님께 편지를 띄웁니다. 목사님이 2014년 신촌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에 다녀온 저를 정죄하신 날, 교회를 떠났으니 6년 만입니다. 그때 목사님은 말씀하셨죠. “나도 동성애자들을 사랑한다. 그러나 동성애는 죄다. 그들을 사랑하기에 반대하는 것이다.” 음란의 영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며 제 손을 붙잡고 기도도 하셨습니다. 목사님의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는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목사님, 안녕하세요. 그간 잘 지내셨는지요.

오랜만에 목사님께 편지를 띄웁니다. 목사님이 2014년 신촌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에 다녀온 저를 정죄하신 날, 교회를 떠났으니 6년 만입니다. 그때 목사님은 말씀하셨죠. “나도 동성애자들을 사랑한다. 그러나 동성애는 죄다. 그들을 사랑하기에 반대하는 것이다.” 음란의 영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며 제 손을 붙잡고 기도도 하셨습니다. 목사님의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는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갑자기 목사님이 떠오른 이유는 최근 오랜만에 ‘부흥회’를 다녀왔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로 대면 예배도 금지된 마당에 무슨 부흥회냐고요? 요즘에는 부흥회도 온라인으로 하더라고요. 책상에 앉아 온라인으로 하는 게 무슨 부흥회냐고 걱정은 않으셔도 됩니다. ‘여는 찬양’부터 은혜가 충만했으니까요. 오랜만에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부흥 있으리라 이 땅에’, ‘부흥’ 등의 찬양을 함께 부르니 교회 열심히 다니던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준비 찬양이 끝나고 설교할 목사님이 등장하는 순간 웃음이 터져버렸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목사’의 형상을 가진 사람이 있는 걸까요? 아니면 제가 모르는 어딘가에 ‘목사 공장’이라도 있는 걸까요? 외모와 말투 등 모든 것이 목사님과 너무 비슷해서 놀랐습니다. 외모뿐 아니라 설교 내용도 목사님과 많이 닮았습니다. 그 목사님은 “믿음만 있으면 우리는 배부르고 행복합니다”라고 말씀하시며 ‘하나님의 사람이자 십일조의 아들’ 록펠러를 언급하셨습니다. 우리나라에 ‘록펠러 교’라는 신흥 종교가 있나 싶을 정도로 목사님들이 사랑하는 이름인 것 같습니다.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던 설교는 어느새 ‘타락한 세상’을 언급하며 ‘남자 며느리’ 즉, 동성애에 관한 내용으로 흘러갔습니다. 동성애를 혐오하는 말을 쏟아내면서도 “차별하자는 게 아니다. 죄인을 사랑한다고 그가 지은 죄까지 사랑할 수는 없다. 죄는 죄라고 말해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이쯤 되면 “내 설교인가?” 싶은 생각이 들지 않으신지요?

한창 그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중이었습니다. 동성애를 향한 혐오의 말을 쏟아놓는 목사님을 향해 누군가 총을 겨누었고, 총소리와 함께 목사님이 사망합니다. 놀라지 마시길 바랍니다. 실제 상황은 아니니까요.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제가 다녀온 곳은 실제 ‘부흥회’가 아니라, 부흥회 형식을 차용한 연극이었습니다. 사실, 오랜만에 목사님께 편지를 쓰는 이유는 <남산예술센터 대부흥성회>라는 특별한 예배이자 연극을 소개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남산예술센터 대부흥성회>는 2018년에 공연된 <삼일로창고극장 봉헌예배>를 토대로 재창작되었다고 합니다. 연출을 맡은 이가 개신교 신자라고 합니다. ‘부흥회’라는 콘셉트에 맞게 여는 찬양으로 시작하여 설교, 참회의 기도, 성극, 성찬식과 세족식 등 12개의 순서로 구성이 되었습니다. 시, 노래, 연극 등 다양한 장르가 섞였다는 면에서 중·고등부 시절 경험한 종합예술 프로그램 ‘문학의 밤’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록펠러를 찬양하고, 동성애자를 혐오하던 목사님의 죽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든, 거짓 신앙의 죽음을 상징합니다. 그 거짓 신앙의 죽음은 다른 존재들의 출현을 비로소 가능하게 합니다. 연극 순서 중 하나인 성극 ‘성서 비극 - 퀴어 예수’는 본래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선과 악, 맞고 틀림, 나와 너로 나누고 쪼개는 죄를 짓는 인간 사이의 경계를 없애기 위해 ‘성육신’하신 예수님을 무대로 부활시킵니다. 연극에서는 이를 ‘몸을 통한 말씀의 커밍아웃’이라고 하더군요. 짐작하셨겠지만, 연극이 재현한 예수님은 ‘퀴어 예수’입니다. 근본 없는 것 같으나 자유롭고, 서로를 구분 짓는 인간의 율법에 속박되기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지키고, 아무도 판단하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의 인간을 사랑하신 예수님!

목사님은 당연히 ‘퀴어 예수’를 반성경적이라 여기며 ‘신성모독’이라 하시겠죠? 성경·반성경을 판단하고 가르는 기준은 누가 정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입니까, 인간입니까? 목사님도 아시겠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지키기 위해 당시 사회의 규범과 인간이 만든 율법에 저항하는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어떻습니까? 마땅히 사랑해야 할 이웃을 외모와 성적 지향·성별 정체성으로 구분하여 차별하고 혐오하는 사회의 규범과 그릇된 율법에 순응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퀴어 예수’는 말합니다. “사랑하라. 어떤 이유에서든 내 이름 걸고 사람 차별하지 말라!” ‘퀴어 예수’가 살아있을 때 만난 대부분은 가난한 자, 배고픈 자, 소외된 자, 오염되었다고 배제된 자, 멸시받던 세리와 창녀였습니다. 목사님은 살면서 누구를 가장 많이 만나고, 누구의 벗이 되었습니까? 예수님이 주로 만난 ‘이웃’의 곁이 되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목사님과 목사님이 그토록 반대하는 ‘퀴어 예수’ 중 과연 누가 ‘하나님의 뜻’을 지키고 사랑을 실천한 것일까요?
화제를 돌려보겠습니다. 이 연극 제목이 수상하지 않나요? 부흥회 제목이 왜 하필 ‘남산예술센터 대부흥성회’일까요? 남산예술센터와 한국 개신교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요? 연극은 남산예술센터와 한국 개신교의 역사를 속도감 있게 정리합니다. 조선 시대 말, 한국에 들어와 박해를 받은 천주교와 개신교는 서구의 선교사들이 몰려와 1907년 ‘평양대부흥’을 이끌며 한국 사회에 정착합니다. 그러나 평등의 가치를 구현하고, 의료와 교육 체계를 만드는 등 사회적 기여를 한 것이 무색하게 일본강점기에는 ‘신사참배’를 결의하고, 해방 후에는 친미와 반공을 외치며 정권을 옹호하고, 군사 정권을 찬양하며 권력과 재산을 ‘부흥’시키며 성장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개신교는 “빨갱이 사냥, 노동자 사냥, 종북 사냥, 동성애 사냥에 용감히 앞장섰으니, 그 공중권세로 사탄의 앞잡이가 되어 오늘까지 영롱히 빛나는” 형상입니다.

남산예술센터도 한국 개신교가 걸어온 길과 다르지 않습니다. 남산예술센터 초대 관장인 극작가 유치진도 친일과 반공에 앞장섰고, ‘록펠러 재단’의 지원을 받아 유학길에 올랐다가 돌아와 ‘공공성’을 앞세워 독재 정권을 설득하여 국유지를 받아 남산예술센터를 지었지만, 결국 사유화했습니다. 즉, 한국 개신교와 남산예술센터 모두 본질을 상실한 채, 불의한 권력에 기대어 탐욕적으로 사유화를 했다는 면에서 닮았고, 그것을 ‘타락’했다고 본 것입니다.

이 뼈아픈 통찰은 목사님이 종종 한국 교회의 영광을 기억하는 한편, 세속화되고 타락했다고 한탄하신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지만, 결정적으로 다릅니다. 목사님은 세속화와 타락의 주범으로 종북, 좌파, 동성애자들을 지목하셨지만, 연극은 ‘신앙적으로’ 인간과 사회를 구분 짓고, 차별하고, 혐오하는 것을 서슴지 않는 예술과 종교를 주범이라 고발하며 본질을 회복하라 호소합니다. 목사님, 예술과 종교의 본질을 훼손하고 있는 ‘주범’은 과연 무엇입니까?
마지막으로 목사님께 한 사람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육우당이라는 사람입니다. 2003년 4월, 동성애 인권 향상을 요구하며 스스로 생을 마감한 시조 시인, 동성애자, 인권운동가입니다. 이 연극은 육우당이 ‘공동 창작자’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연극 곳곳에 언급된 아름다운 문장들은 육우당이 생전에 남긴 시조들이기 때문입니다. 육우당의 죽음은 연극 초반에 등장한 목사님의 죽음과 대비됩니다. 목사님의 죽음은 ‘거짓된 신앙’의 죽음이지만, 육우당의 죽음은 ‘거짓된 신앙에 의한’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육우당은 ‘차별과 혐오로 죽어간 많은 이들’의 이름이며, 아름다운 시와 연극으로 부활하여 차별과 혐오에 물든 세상을 꾸짖습니다.

목사님, 저는 아직도 2014년 신촌에서 목격한 장면을 잊지 못합니다. 서로를 애틋하게 바라보다 뜨겁게 포옹하는 동성 커플을 어느 그리스도인이 기도하며 우드락 피켓으로 때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때 누군가 절박하게 외쳤습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며!” 제 신앙은 그 외침을 듣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 말은 세상을 향한 ‘퀴어 예수’의 비명이었고, 저는 그날, 무수한 ‘퀴어 예수’를 만났으니까요. 목사님은 사랑하니까 반대한다고 하셨지만, 저는 예수님이 그러하셨듯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하는 게 하나님의 뜻이라 믿습니다.

긴 편지를 마무리하며 목사님께 육우당의 시조 ‘낙원가’를 선물로 드립니다.
어서오라 어서오라 / 평화로운 세상이여
어두컴컴 암흑세계 / 잡아먹고 어서오라
은하수가 흐르듯이 / 꽃잎타고 흘러오라
평등 평화 아름다운 / 세상이여 어서오라
동성애자 보호받고 / 장애인도 존중받고
흑인또한 사람대접 / 받는세상 낙원이여
그런날이 온다면은 / 모든이가 밤낮없이
덩실덩실 춤을 추며 / 기뻐할 것이다.

- 육우당 ‘낙원가’

목사님이 저에게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와 육우당이 상상한 ‘낙원가’는 다른 세상일까요? 저는 같은 세상이라 믿습니다. 부디, 본질을 잃어버린 사랑에 속지 말고, 모든 존재를 자유하게 하는 참된 진리를 만나 힘껏 사랑하며 사시길 기도하겠습니다.
2020년 9월.
차별과 혐오가 사라진 교회로 돌아갈 날을 소망하는 그리스도인 S 드림.

[사진 제공: 남산예술센터ⓒ이강물]

남산예술센터 대부흥성회
일자
2020.09.02 ~ 2020.09.13.(코로나19의 확산으로 전회차 공연이 취소되었으나, 9월 13일 오후 3시 온라인스트리밍을 통해 공연 송출)
장소
남산예술센터
출연
한혜진, 썸머, 저기, 백소정, 양대은, 임윤미, 신효진, 김제형, 정은재
코러스
최연우, 으네, 손서정, 고은지, 올리, 정지영, 이산, 지효, 호식이, 유은강, 김훈, 박은호, 나도이, 김예린
대본/구성
신효진, 임성현
무대디자인
정승준
조명디자인
고귀경
영상/사운드
목소
의상디자인
임누리
음악감독
김제형
무대감독
박진아
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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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나희경
공연 접근성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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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향/영상 오퍼레이터
한정연
조명 오퍼레이터
정채림
연출부
이서연
연출
임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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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해설 작가
강내영
음성해설 나레이션
조연희, 박하늘
수어통역
수어통역협동조합(장진석, 이소현, 남진영, 김보석)
홍보사진
이강물
홍보물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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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 남산예술센터, 쿵짝 프로젝트
관련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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