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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서울프린지페스티벌 : 온라인페스티벌

상상하지 못한 것들이 주는 즐거움

김송요
187호 2020.09.24
2020년은 끊임없이 예측불허인 것들을 궁금해 하는 해였다. 그중 내내 빠지지 않았던 것이 '축제는 열릴 수 있을까'였다. 여름에는 좀 더 구체적인 궁금증이 찾아왔다. 올해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이하 프린지)과 만날 수 있을까? 홍대 인근에서 서울월드컵경기장으로, 거기서 또 문화비축기지로 장소는 계속 바뀌어왔지만, 프린지가 여름을 벗어난 적은 없었다.
2020년은 끊임없이 예측불허인 것들을 궁금해 하는 해였다. 그중 내내 빠지지 않았던 것이 '축제는 열릴 수 있을까'였다. 여름에는 좀 더 구체적인 궁금증이 찾아왔다. 올해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이하 프린지)과 만날 수 있을까? 홍대 인근에서 서울월드컵경기장으로, 거기서 또 문화비축기지로 장소는 계속 바뀌어왔지만, 프린지가 여름을 벗어난 적은 없었다.
궁금증은 곧 또 다른 궁금증으로 이어졌다. 프린지가 취소나 축소가 아닌 오프라인과 온라인 페스티벌 이원화 개최를 발표한 것이다. 이 시국에-올해 제일 많이 쓴 표현 아닐까-이중으로 품을 들여 두 공간에서 축제를 열다니. 그러면서 막연히, 온라인 페스티벌은 오프라인 페스티벌을 촬영한 영상을 업로드해 주는 것 정도가 아닐까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공개된 온라인 페스티벌은 예상과는 사뭇 다른, 아니 상상을 훌쩍 초월하는 모습이었다. 프린지의 온라인 페스티벌은 단순히 공연 영상을 제공하는 데서 멈추는 대신 그야말로 '페스티벌'을 구현해냈다. 우선 온라인 페스티벌 전용 티켓을 구매한 관객은 모두 페스티벌 기간 전 ‘패키지’를 받는다. 선물 상자 같은 패키지엔 '현실에서는 관객이던 내가 이 세계에서는 주인공?'이라는 태그가 붙어 있다. 상자를 열면 문진표와 티켓, 설명서, 맥주사탕(!)과 함께 병따개 모양의 USB가 눈에 들어온다. 이 USB안에 든 '게임'을 통해 관객은 온라인 페스티벌 현장으로 진입할 수 있게 된다.
USB 속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티켓을 구매할 때 기입한 아이디로 사용자(게임 속에서는 '주인공'으로 불린다)인증을 하면 게임에 접속할 수 있다. 이 게임은 '이세계'의 프린지 그 자체다. 플레이어의 눈앞에는 고전 온라인 RPG게임 스타일로 재현된 축제 장소, 문화비축기지가 펼쳐진다. 이제 플레이어는, 혹은 관객은, 문화비축기지를 탐색하며 축제를 즐기고 공연을 관람하면 된다. 이세계답게 마스크는 필요 없다. 그저 현실 세계에 남아 있는 관객(의 물리적 육신)이 원한다면, 패키지 안에 들어 있던 문진표를 작성하고 손목에 페스티벌 티켓을 착용하면 된다.
문화비축기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곳곳의 npc(non-player character)를 마주하게 된다. '텔레포터'를 만나면 직접 왔다갔다 할 필요 없이 원하는 장소까지 바로 이동할 수 있고, '비비디바비디부'를 만나면 캐릭터를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스태프와 인디스트(자원활동가) 등이 비축기지를 왔다갔다하고 있다. 우선 비비디바비디부에게 말을 걸어 캐릭터부터 꾸민다. 눈동자와 눈썹 색을 고르고 앞머리와 뒷머리를 염색하면, 화면 위로 내가 선택한 옵션이 고스란히 적용된 캐릭터가 등장한다.
온라인 프린지에서, 관객은 게임이라는 포맷의 특성상 일종의 메타시점을 갖게 된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인 나, 정확히는 사이버 공간에 있는 내 아바타까지도 내가 보는 풍경에 포함되어 일종의 관람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집에만 붙어 있는 나와 달리, 멋 부린 내 아바타는 문화비축기지 곳곳을 마스크도 없이 쏘다닌다. 사람들과 마주치면 대화도 하고, 식도락을 즐기러 살롱에도 간다. 실제 문화비축기지는 오프라인 페스티벌 기간 실내공간을 사용할 수 없게 되어 바깥 공간만 활용 가능했는데, 온라인에서는 문화비축기지 내부로 들어가서(!) 작품을 볼 수 있었다. 각 탱크에 진입한 뒤 보고 싶은 작품의 공연팀(이들 역시 각각의 캐릭터로 구현되어 있다) 앞에 서면 대화가 시작되고, 대화 끝에 뜬 선택 창에서 공연 정보와 공연 영상 확인이 가능한 식이다. 공연영상은 공연팀 아바타들이 위치한 바로 그 장소, 비축기지의 해당 공간에서 기록된 것들이다. 
극장을 벗어난 프린지는, 특히 경기장과 문화비축기지라는 특수한 공간으로 이동하면서 원하든 원치 않든 강한 장소특정성을 갖게 됐다. 서울월드컵경기장도 그렇지만 과거 석유탱크였던 문화비축기지 역시 독특한 존재감을 갖는다. 실내공간인 탱크는 탱크별 규모도 공간감도 소리의 울림도 다르고, 야외공간은 완전히 트인 길목이나 잔디밭부터 천장 구조물에 의해 반쯤 막혀있는 곳까지 형태가 다양하다. 영상들은 그 현장을 나름대로 담아냄으로써 더 구체적이고 현실감 있는 '프린지 공연'의 역할을 한다.
흥미로운 작품이 많았지만, 온라인 페스티벌에서 보았기에 더 기억에 남는 참가작이 몇 있다. 우선 T1 파빌리온에서 공연된 YEJI YEON의 <스트레인저, 러버>와 OASISTER의 <Private Garden>이 그랬다. T1 파빌리온은 창밖으로 이끼의 초록이 내다보이는, 유리로 된 천장과 벽면이 흡사 온실 같기도 신전 같기도 한 공간이다. <스트레인저, 러버>는 공간의 밝기를 낮추고, 혼자 노래를 부르는 예지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며 집중도를 끌어올린다. 움직임 없는 카메라의 앵글, 미세한 노이즈, 공간 안을 맴도는 소리의 울림이 매혹적이다. 딥 포커스 화면의 평면감이 몽환적인 노랫소리를 더 비현실적으로 만드는 것만 같았다.
한편 <Private Garden>은 암전에 가까운 공간에서 두 무용수만이 아주 흐릿한 조명을 받으며 시작한다. 두 인물은 손에 마치 진동벨처럼 생긴 발광기를 든 채 춤을 추며 자신의 궤적을 드러낸다. 그러다 두 사람이 움직이는 반경이 넓어지고 동작이 커지면 전체 조명이 켜지고 공간 전체가 드러난다. 그와 동시에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한 듯이, 먹색이었던 공간에 불현듯 초록이 깃들고 인물들의 행동반경이 넓어지는 효과가 살아난다. 실제 공간에서 작품을 감상했다면 조명을 이용한 연출이 영상으로 보는 것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어둠이 눈에 익은 관객들이 조명이 닿지 않는 공간까지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었을 수도 있고, 애초 입장하면서 공간의 크기나 모습, 무용수의 위치를 인지할 수 있기에 극적인 느낌을 받지 못했을 수도 있다. 시각의 자유로움이 스크린 사이즈로 통제되는 환경이 뜻밖의 재미를 준 것이다.
  • <스트레인저, 러버> 공연 장면
  • <Private Garden> 공연 장면
T4에서 볼 수 있던, 언어의 정원 팀의 <혀끝에서 맴도는 단 하나의 문장>도 온라인과 만나 의외의 즐거움을 선사했다. 우선 객석에 있었더라면 간과했을지 모르는 오퍼레이팅과 지휘 장면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그랬다. 무대의 가장자리에 있는 공연자들까지 차분한 시선으로 훑는 카메라로 인해 발견한 장면이 적지 않았다. 높은 곳에서 담은 부감 화면으로는 현장에서조차 알 수 없었을 그림자의 방향마저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에 수많은 소리가 겹쳐졌다. T4는 울림이 가장 심한 탱크로, 현장에서도 메아리가 엄청난 음량으로 웅웅거리는 공간이다. 하지만 공연자의 발성에 의해 얼마든 대사를 알아듣게 전달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공간이 영상에 담기면서, 대사와 메아리가 비슷하게 납작한 소리가 되고 말았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마치 사고 같지만, 예상 밖으로 바로 그 압축된 덩어리 같은 소리가 이 공연과 묘하게 달라붙었다. 독백인지 지시어인지 모를 말을 방향도 없이 속삭이고 소리치는 퍼포머들의 목소리, 무언가를 낭독하는 말씨, 그것들을 반복하는 루프스테이션의 출력음이 뭉치고 얽혀 의미불명의 언어가 되는 과정이 기이한 흥을 자아냈다. 현장에 있었더라면 제목에서 말하는 '단 하나의 문장'이 무엇인지 선연히 알아들을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볼륨도 재생속도도 조절할 수 있고 유튜브 자동생성 자막까지 켤 수 있는(켜보았는데, 독해 불가능한 한글이 나열됐다) 온라인 관람에서 도리어 그 문장을 놓칠 수밖에 없는 이 상황이 오히려 재미났다. 소리와 술래잡기라도 하는 듯이, 계속해서 입 밖으로 무언가를 내뱉으며 뒷걸음질 치고 달려 나가길 반복하는 이들의 모습과 어우러져 더 그랬다.
<혀끝에서 맴도는 단 하나의 문장> 공연 사진
온라인만의 특징이 일종의 장점이 되기도 했다. 관람한 작품이 좋았을 때, 긴 댓글까지는 남기기 어려운데 마음은 표시하고 싶을 때마다 ‘좋아요’를 누를 수 있었다. 볼륨을 키우거나 줄였고, 마음에 드는 장면에서 일시정지를 하기도, 재생 속도를 빠르게 하거나 느리게 하기도 했다. 봤던 작품을 또 보거나 보다가 멈출 수도 있었다. 정말 솔직하게 말하자면, 관람 중 문득 온라인 페스티벌의 장점 중 하나는 보다가 중간에 나가도 상처를 주고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큰 모니터에 연결해 게임과 작품 감상을 즐겼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조금쯤 남았다.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에 HD 와이드 모니터를 탑재한 PC방을 가는 마음이랄지,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아이맥스 상영관의 프리미엄 좌석을 예매하는 마음이 이런 것일까 실없는 상상을 했다.

오프라인 축제 현장에서도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축제는 필연적으로 사람을 동반하는 이벤트다. 축제는 단순히 작품을 관람하는 자리일 뿐만 아니라 작품과 창작자, 기획자, 관객 등등이 모여 이야깃거리를 나누고 이전을 돌아보기도 미래를 도모하기도 하는 광장의 역할을 한다. 그리고 축제는 그 모든 사람이 앞과 뒤에서 바지런하게 손길을 보태야만 열릴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오프라인 프린지에 참가하기 위해 월드컵경기장 지하철역에서 내렸을 때 보도블록에 붙은 '서울프린지페스티벌 가는 길' 스티커가 작년보다 강한 접착력을 뽐내며 동선 내내 붙어 있을 때 그걸 붙인 사람을 생각했던 것처럼, 온라인 프린지의 곳곳에서도 사람들을 생각했다. 게임을 만들고, 아바타를 배치하고, 각 아바타가 하는 한마디를 기록하는 과정은 고스란히 축제를 만드는 과정과 닮아 있어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 스태프와 인디스트의 이름이 명확한 크레딧으로 제시된다는 것은 프린지의 덕목 중 하나다. 실제 그 사람의 이름(정확히는 별명이지만)을 놓고 이 정신적 교감(?)을 할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그렇다.
더불어 축제는 역시, 관객과의 만남으로 온전히 채워진다. 온라인 페스티벌을 누비는 아바타들을 보는 것, 유튜브 채널에서 먼저 관람하고 떠난 관객들의 흔적을 보는 것은 꽤 기분 좋은 일이었다. 만나고 싶어도 만나지 못하는 시기에, 온라인에서의 만남이 주는 이 뭉클함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시야가 닿지 않는 곳에서 여전히 축제를 축제답게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의 노력, 눈앞에 없는 관객을 헤아리며 기록된 무대들, 일 년간 축제를 기다리던 관객들이 사이버 세계에서 전하는 박수 소리. 그 모든 것을 상상하는 일 또한, 온라인 프린지가 가져다준 기대 못 한 아름다움이었다.

몸은 집에 있어도 눈과 귀와 손은 바쁜, 온라인 프린지 기간을 보내며 생각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이벤트를 단순히 줄세우기하는 건 부당하다는 거다. 오프라인을 기반으로 한 행사의 온라인 개최는 원형을 유지할 수 없어 선택한 대안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 결과물인 온라인 행사가 오프라인의 열화 버전에만 머무르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온라인만이 가진 해상도로, 온라인만의 특징을 매력 삼아 확장될 축제와 무대의 영역은 분명 존재한다. 오프라인에 극장 경험을 비롯해 현장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요소가 있는 한편으로, 온라인에도 온라인만이 줄 수 있는 경험이 있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여전히 오프라인에서 사람들을 마주하고 공연을 보는 즐거움이 그립고 소중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코로나 이전의 시대로 돌아가자고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번 프린지는 온라인 축제의 재미와 가능성을 엿보게 만드는 기회였다. 사실 참여 전까지는 궁금해하지 않았던, '온라인 페스티벌의 길'은 프린지를 기점으로 나의 2020년 새로운 질문거리가 됐다.

[사진 제공: 서울프린지네트워크]

2020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온라인)
일자
2020.09.24. ~ 2020.09.31
관련정보
https://www.seoulfringefestival.net:5632/
스트레인저, 러버
장소
문화비축기지 T1 (온라인)
퍼포머
YEJI YEON
Private Garden
장소
문화비축기지 T1 (온라인)
무용/안무
김보경, 김문희
서포터
김세인, 송효영
일러스트레이터
김성남
사운드디자인
전광헌
포토그래퍼
김두호
혀끝에서 맴도는 단 하나의 문장
장소
문화비축기지 T4 (온라인)
음악감독/작곡
강하영
무대감독
정다겸
안무감독
권용진
연출
원예나
퍼포머
강하영, 정다겸, 권용진, 원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