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리 『꽃은 향기로워도 – 김만리로 산다는 것』
실컷 뱉어내는 삶, 그것이 무대 밖이어도
변재원_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국장
187호
2020.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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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꽃은 향기로워도』(글_김만리, 번역_정미영)는 재일동포이자 중증장애여성인 김만리의 삶을 다루고 있다. 저자 김만리는 일본의 급진적인 장애인운동단체였던 ‘푸른잔디회'의 핵심멤버로 활발한 활동을 했으며, 신체장애인 단원으로 구성된 극단을 창단하기도 하는 등 종횡무진의 모습을 보여왔다.그가 처음부터 활동적인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니
책 『꽃은 향기로워도』(글_김만리, 번역_정미영)는 재일동포이자 중증장애여성인 김만리의 삶을 다루고 있다. 저자 김만리는 일본의 급진적인 장애인운동단체였던 ‘푸른잔디회'의 핵심멤버로 활발한 활동을 했으며, 신체장애인 단원으로 구성된 극단을 창단하기도 하는 등 종횡무진의 모습을 보여왔다.그가 처음부터 활동적인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니다. 어릴 적 소아마비의 후유증으로 목 아래의 신경이 손상되어 신체 기관을 부분적으로 겨우 사용하거나, 기대는 게 전부인 몸에 갇힌 채 오랜 시간을 지내왔다. 고등학교를 입학하기 전까지는 장애인시설에 버려진 채 유년기를 지냈고 시설 안에서 또래 장애아동 친구들의 죽음을 보는 게 일상이었던 무기력한 장애여성이었다.
장애인의 권리는 무시된 채 오직 규율과 위계만 존재하는 장애인시설에서 고등학교 진학과 탈시설의 꿈을 키웠지만, 대부분의 학교에서 장애를 이유로 입학을 거부당했다. 겨우 한 원격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시설 밖으로 나온다. 또, 우연한 계기로 ‘자립생활'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배워가며 자신을 가둬온 시혜와 동정의 굴레를 천천히 벗어던진다. 독립해 집을 나가겠다는 선언을 하자, ‘일본으로부터 독립하는 조선의 운동과 같은 의미이니, 네 뜻대로 하거라’는 어머니의 알 수 없는 인사를 끝으로 가족과 연결된 질긴 탯줄을 자른다. 이윽고 몸을 가누기 어려운 이 중증장애여성은 허름한 목조주택에서 자립생활을 시작하여 급진적 장애인운동 활동가이자, 장애인극단을 창단한 주체적인 연극인으로서 살아가게 된다.
김만리의 책 『꽃은 향기로워도』는 단지 한 소아마비 장애인이 어떠한 배경에서 살아왔는지 그 생애를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닮지 않은 듯 닮은 꽃들이 피고 지는 무한함과 허무함, 심연의 어두움과 그 안에서 선명한 빛을 보이는 장애인의 분노와 인간적 욕망 등을 김만리만의 투명한 언어로 뱉어내고 있다. 예컨대, 자신의 중증 장애와 주변 장애인의 죽음을 차갑게 서술하는 동시에, 급진적인 장애인단체 푸른 잔디회의 강령(장애인인 우리들은 스스로가 뇌성마비라는 것을 자각한다, 우리들은 강렬한 자기주장을 실천한다, 우리들은 비장애인 문명을 부정한다, 우리들은 사랑과 정의를 부정한다, 우리들은 문제해결의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을 있는 그대로 옮겨 적으며, 사회적 발언권을 잃은 채 살아온 조선인 장애여성이 온갖 낙인의 사슬을 절단하고 완전한 주체로 서고자 하는 ‘언어의 온도'를 보여준다.
탈시설 장애여성, 급진적 장애인운동 활동가, 장애연극인 등 종횡무진의 삶을 살아온 김만리의 끝없는 방황이 나에게는 너무도 익숙하게 느껴졌다. 중증장애인으로서 정체성을 공유하는 나는 김만리가 매 순간 달라지는 자기 삶의 신분과 규칙 안에서 ‘드러나고 뱉어내는 존재'라는 일관된 삶을 관통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알게 모르게 스스로에 대한 위로도 받을 수 있었다. 쉽게 인정받을 수 없는 나의 장애, 어느 곳에서나 낙인찍히고 마는 중증장애의 존재를 애써 부정하며, 숨은 채로 조용한 삶을 살려던 내 소박한 꿈이 그저 ‘비장애인이 설계한 꿈의 기준'에 불과할 뿐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꽃은 향기로워도』는 “누군가가 아무리 막으려 해도 사회의 ‘이물'로서 배제당하는 존재는 끊임없이 세상에 태어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배제당하는 이들은 어떻게도 지워낼 수 없으며, 어느 시대나 끊임없이 자신의 울음을 뱉어내야 하는 이들이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알려준다. 장애인인 내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당장 눈앞의 사회적 신분과 직업이 아니라, ‘뱉어내는 삶'을 계속 살 것인가, ‘삼켜내고 말 것인가'를 판단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책을 읽는 내내 했다.
장애인의 권리는 무시된 채 오직 규율과 위계만 존재하는 장애인시설에서 고등학교 진학과 탈시설의 꿈을 키웠지만, 대부분의 학교에서 장애를 이유로 입학을 거부당했다. 겨우 한 원격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시설 밖으로 나온다. 또, 우연한 계기로 ‘자립생활'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배워가며 자신을 가둬온 시혜와 동정의 굴레를 천천히 벗어던진다. 독립해 집을 나가겠다는 선언을 하자, ‘일본으로부터 독립하는 조선의 운동과 같은 의미이니, 네 뜻대로 하거라’는 어머니의 알 수 없는 인사를 끝으로 가족과 연결된 질긴 탯줄을 자른다. 이윽고 몸을 가누기 어려운 이 중증장애여성은 허름한 목조주택에서 자립생활을 시작하여 급진적 장애인운동 활동가이자, 장애인극단을 창단한 주체적인 연극인으로서 살아가게 된다.
김만리의 책 『꽃은 향기로워도』는 단지 한 소아마비 장애인이 어떠한 배경에서 살아왔는지 그 생애를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닮지 않은 듯 닮은 꽃들이 피고 지는 무한함과 허무함, 심연의 어두움과 그 안에서 선명한 빛을 보이는 장애인의 분노와 인간적 욕망 등을 김만리만의 투명한 언어로 뱉어내고 있다. 예컨대, 자신의 중증 장애와 주변 장애인의 죽음을 차갑게 서술하는 동시에, 급진적인 장애인단체 푸른 잔디회의 강령(장애인인 우리들은 스스로가 뇌성마비라는 것을 자각한다, 우리들은 강렬한 자기주장을 실천한다, 우리들은 비장애인 문명을 부정한다, 우리들은 사랑과 정의를 부정한다, 우리들은 문제해결의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을 있는 그대로 옮겨 적으며, 사회적 발언권을 잃은 채 살아온 조선인 장애여성이 온갖 낙인의 사슬을 절단하고 완전한 주체로 서고자 하는 ‘언어의 온도'를 보여준다.
탈시설 장애여성, 급진적 장애인운동 활동가, 장애연극인 등 종횡무진의 삶을 살아온 김만리의 끝없는 방황이 나에게는 너무도 익숙하게 느껴졌다. 중증장애인으로서 정체성을 공유하는 나는 김만리가 매 순간 달라지는 자기 삶의 신분과 규칙 안에서 ‘드러나고 뱉어내는 존재'라는 일관된 삶을 관통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알게 모르게 스스로에 대한 위로도 받을 수 있었다. 쉽게 인정받을 수 없는 나의 장애, 어느 곳에서나 낙인찍히고 마는 중증장애의 존재를 애써 부정하며, 숨은 채로 조용한 삶을 살려던 내 소박한 꿈이 그저 ‘비장애인이 설계한 꿈의 기준'에 불과할 뿐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꽃은 향기로워도』는 “누군가가 아무리 막으려 해도 사회의 ‘이물'로서 배제당하는 존재는 끊임없이 세상에 태어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배제당하는 이들은 어떻게도 지워낼 수 없으며, 어느 시대나 끊임없이 자신의 울음을 뱉어내야 하는 이들이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알려준다. 장애인인 내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당장 눈앞의 사회적 신분과 직업이 아니라, ‘뱉어내는 삶'을 계속 살 것인가, ‘삼켜내고 말 것인가'를 판단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책을 읽는 내내 했다.

<꽃은 향기로워도> 책 표지
“실컷 뱉어내는 게 네 운명이라면, 차라리 그 끝을 봐라.” 대학 시절 이 말을 들었던 적이 있다. 책을 읽으며 8년 전 기억이 떠올랐다. 한예종 연극원 3학년에 다닐 때 가까운 지인이 술자리에서 내게 충고했던 말이었다. 당시 공부해야 할 연극은 뒷전에 두고, 오직 교내 밖에서 벌어지는 장애인 차별에 대해 끝없는 분노의 글을 쓰고 대응하며 쏘다닐 때, 연극 동료에게서 들었던 제 나름의 응원의 말이어서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비록 연극이 아닐지언정 나는 실컷 뱉어내야 할 운명임을 어렴풋이 직감했을 즈음이었다.
2012년, 나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 입학했다. 나는 연극원 소속 첫 장애학생이었다. 내 입학을 계기로 연극원의 엘리베이터가 상시 전층을 운행하기 시작했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난데없이 받았던 때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나는 비록 연기 실기 전공은 아니었지만, 연극원 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기초 전공 수업으로나마 연극원 지하 상자무대와 연습실을 밤늦게 뒹굴었던 최초의 장애학생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연극원이 내 공간 같지는 않았다. 늘 낯설었다. 중증장애인인 나는 늘 연극원 안에서 이방인이었고, 예외적인 존재였다. 학창 시절 내내 나에게는 늘 갈증이 있었다. 예컨대, 나를 제외한 대다수가 아름다운 육체의 선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 왼발이건 오른발이건 훌훌 가볍게 털어내는 듯한 깃털 같은 동작을 할 수 있고, 캄캄한 암전 속에서도 프로시니엄 무대의 양끝을 오가는데 채10초가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 같은 것은 너무도 스스로를 이질적인 존재로 만들었다. 나는 그들 몸이 빚어내는 무대 위 행위가 부러웠다. 그 무대는 나에게 맞지 않았고, 나는 그곳을 도망쳐 나와 극장 밖 공간에서 실컷 뱉어냈다.
2012년, 나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 입학했다. 나는 연극원 소속 첫 장애학생이었다. 내 입학을 계기로 연극원의 엘리베이터가 상시 전층을 운행하기 시작했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난데없이 받았던 때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나는 비록 연기 실기 전공은 아니었지만, 연극원 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기초 전공 수업으로나마 연극원 지하 상자무대와 연습실을 밤늦게 뒹굴었던 최초의 장애학생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연극원이 내 공간 같지는 않았다. 늘 낯설었다. 중증장애인인 나는 늘 연극원 안에서 이방인이었고, 예외적인 존재였다. 학창 시절 내내 나에게는 늘 갈증이 있었다. 예컨대, 나를 제외한 대다수가 아름다운 육체의 선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 왼발이건 오른발이건 훌훌 가볍게 털어내는 듯한 깃털 같은 동작을 할 수 있고, 캄캄한 암전 속에서도 프로시니엄 무대의 양끝을 오가는데 채10초가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 같은 것은 너무도 스스로를 이질적인 존재로 만들었다. 나는 그들 몸이 빚어내는 무대 위 행위가 부러웠다. 그 무대는 나에게 맞지 않았고, 나는 그곳을 도망쳐 나와 극장 밖 공간에서 실컷 뱉어냈다.
활동가로서의 삶을 사는 지금은 당시 무대 밖에서 했던 행위들을 “차별에 저항하는 삶"이었다고 거창하게 포장할 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에는 ‘차별’이라는 단어의 무게도 모른 채 답답한 공간에서 억눌린 화를 그저 바깥으로 뱉어냈을 뿐이었다. 끊임없이 대자보를 썼다. 왜 대학에 장애학생지원센터가 없냐, 항의하는 대자보를 붙이자 장애학생지원센터가 생겼고, 장애학생지원센터의 행정직원들은 왜 다 비정규직이냐고 항의하는 대자보를 붙이자 무기계약직을 고려해준다는 답변을 들었다. 나는 끊임없이 학교 밖 나의 무대에서 홀로 떠들었다. 노출 콘크리트 디자인이 아름답다고 느꼈던 그 당시 연극원 회색 벽 표면에는 삐뚤빼뚤한 글씨와 덕지덕지 붙은 나의 대자보가 종종 자리하고 있었다. 비록 무대는 아니었지만, 동료의 말마따나 실컷 뱉어내는 게 내 운명 같았고, 나는 그 끝을 보고 싶었다. 졸업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연극 기획을 맡게 될 때면 우연인지 필연인지 알베르 까뮈의 <정의의 사람들>, 다리오 포의 <실수로 죽은 남자> 같은 연극만 도맡았다. 표토르 대제를 죽여야 성에 찼고, 권위로 가득 찬 지배자들을 놀려야지만 겨우 무대 안에 갇혀있다는 사실을 납득할 수 있었다. 나는 끝없이 화가 나 있었고, 어떻게든 계속 뱉어내야만 했다. 어쩌면, 연극원 장애인 학생이 겪은 4년 대학생활의 전부는 우울과 분노로 요약할 수 있었다. 대자보를 붙인다거나, 억압의 세력이 무대 공간에서 조롱당하는 것을 본다거나. 오로지 내가 나의 목소리를 표현하는 그 순간만 나는 나의 장애를 계급적으로 겨우 의식하지 않을 수 있었다.
연극원을 졸업한 지 햇수로 5년. 지금은 반 발자국마저 걸쳐놓은 연극마저 아예 잊은 채 살아가고 있다. 많은 예체능 학생들이 결국은 제 전공을 살리지 못할 테니 너무 실기 연습에 열 올리지 말라는 누군가의 조언은 적어도 내게는 틀리지 않았다. 졸업 직후 나는 전공을 살려 공연기획자로서 절뚝이며 목발을 짚은 채 포스터를 붙이러 다닐 자신이 없었고, 소품을 구입하러 다닐 자신도 없었고, 암전된 공간에서 관객을 안내할 자신도 없었다. 중증 지체 장애인에게 무대 공간이 익숙할 확률은 분명 불길 속에 뛰어 들어간 인간이 아늑하다고 외치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거짓말이라고 지금도 굳게 믿는다.
김만리는 무대 밖을 정주하며 무대 안으로 들어오는 삶을 선택했지만, 나는 그 반대의 삶을 살고 있다. 무대 안을 시작으로 무대 밖으로 벗어나고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그와 같이 본질적으로 ‘뱉어내는 삶’을 살고 있다. 졸업 후에도 무수히 많은 신분의 꼬리표를 바꿔가며, 끊임없이 내뱉고 있다. 비록 연극원을 졸업한 뒤로 “만약 그 애들이 나를 보기만 했어도, 나는 폭탄을 던졌을 겁니다. 그 슬픈 시선을 없애버리기 위해서라도.”라는 장엄한 말을 듣거나, “경찰은 민중의 요술지팡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말을 연습실에서 해본 적은 없지만, 아스팔트 위에서 “차별에 저항하라",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삶"을 끊임없이 주장하고 있다. 2020년의 나는 장애인차별철폐의 구호를 거리에서 실컷 내뱉는 활동가로 살고 있다.
연극원을 졸업한 지 햇수로 5년. 지금은 반 발자국마저 걸쳐놓은 연극마저 아예 잊은 채 살아가고 있다. 많은 예체능 학생들이 결국은 제 전공을 살리지 못할 테니 너무 실기 연습에 열 올리지 말라는 누군가의 조언은 적어도 내게는 틀리지 않았다. 졸업 직후 나는 전공을 살려 공연기획자로서 절뚝이며 목발을 짚은 채 포스터를 붙이러 다닐 자신이 없었고, 소품을 구입하러 다닐 자신도 없었고, 암전된 공간에서 관객을 안내할 자신도 없었다. 중증 지체 장애인에게 무대 공간이 익숙할 확률은 분명 불길 속에 뛰어 들어간 인간이 아늑하다고 외치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거짓말이라고 지금도 굳게 믿는다.
김만리는 무대 밖을 정주하며 무대 안으로 들어오는 삶을 선택했지만, 나는 그 반대의 삶을 살고 있다. 무대 안을 시작으로 무대 밖으로 벗어나고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그와 같이 본질적으로 ‘뱉어내는 삶’을 살고 있다. 졸업 후에도 무수히 많은 신분의 꼬리표를 바꿔가며, 끊임없이 내뱉고 있다. 비록 연극원을 졸업한 뒤로 “만약 그 애들이 나를 보기만 했어도, 나는 폭탄을 던졌을 겁니다. 그 슬픈 시선을 없애버리기 위해서라도.”라는 장엄한 말을 듣거나, “경찰은 민중의 요술지팡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말을 연습실에서 해본 적은 없지만, 아스팔트 위에서 “차별에 저항하라",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삶"을 끊임없이 주장하고 있다. 2020년의 나는 장애인차별철폐의 구호를 거리에서 실컷 내뱉는 활동가로 살고 있다.
<꽃은 향기로워도> 책 본문
김만리가 선택한 삶의 모습들이나 내가 선택한 삶의 모습은 모두 물리적 배경과 시대적 조건의 차이만 있을 뿐, 일관되게 ‘뱉어내는 삶’의 모습이었다. 아마 나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사회적 배제 속에서 자기 목소리를 찾으려는 장애인이 모두 휘청거리면서 극적인 삶을 살고 있기에 자신의 삶 속에서 김만리의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김만리의 방황으로부터 은연중 자신을 발견한 장애인 동지들에게 외치고 싶다. 하나, 우리에게는 손쉬운 사랑과 정의를 믿지 않을 자유가 있다. 하나, 우리에게는 비장애인의 시혜와 동정을 거부할 의무가 있다. 하나, 비장애인이 설계한 사회에 맞부딪힐 책임이 있다. 하나, 무대 안에 있는 장애 예술인이건 무대 밖에 있는 장애 생활인이건 프로시니엄의 경계를 떠나 모든 장애인이 그러한 역할을 떠맡고 있다. 하나, 그래서 나는 끝내 말한다. 김만리와 같이 실컷 뱉어내는 삶, 그러한 극적인 삶을 살자. 설령 그것이 무대 밖이어도.
김만리의 방황으로부터 은연중 자신을 발견한 장애인 동지들에게 외치고 싶다. 하나, 우리에게는 손쉬운 사랑과 정의를 믿지 않을 자유가 있다. 하나, 우리에게는 비장애인의 시혜와 동정을 거부할 의무가 있다. 하나, 비장애인이 설계한 사회에 맞부딪힐 책임이 있다. 하나, 무대 안에 있는 장애 예술인이건 무대 밖에 있는 장애 생활인이건 프로시니엄의 경계를 떠나 모든 장애인이 그러한 역할을 떠맡고 있다. 하나, 그래서 나는 끝내 말한다. 김만리와 같이 실컷 뱉어내는 삶, 그러한 극적인 삶을 살자. 설령 그것이 무대 밖이어도.
독자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