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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 ‘서커스 캬라반’ @문화비축기지

최전방의 시도 : 우회하기

채민
188호 2020.10.08
공사장이 아닌 곳에서 크레인을 본 것은 오랜만이었다. 크레인은 가설무대를 하늘 높이 들어 올리고 있었다.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들었다. 반가움과 우울함. 공연의 큐에 맞춰 움직이는 크레인은 코로나19 이전의 거리예술 풍경을 상기시켰고, 동시에 올해 수도 없이 공연이 취소되었을 대형작들을 떠올리게 했다
공사장이 아닌 곳에서 크레인을 본 것은 오랜만이었다. 크레인은 가설무대를 하늘 높이 들어 올리고 있었다.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들었다. 반가움과 우울함. 공연의 큐에 맞춰 움직이는 크레인은 코로나19 이전의 거리예술 풍경을 상기시켰고, 동시에 올해 수도 없이 공연이 취소되었을 대형작들을 떠올리게 했다. 객석을 대체한 자동차들이 무대를 향해 일정한 간격으로 주차되어 있었다. 예술가는 시동이 꺼진 자동차 앞에서 공연했다. 코로나 19시대 최전방의 시도는 기존 거리예술축제 운영방식의 종말을 암시했다. 몸짓과 표정을 통해 관객의 참여를 이끌어내던 광대는 부쩍 말을 많이 하고 있었다. 그곳에 있느냐고, 나를 보고 있느냐고 여러 번 불렀다. 자동차 시트에 앉은 관객들은 경적을 울려 화답했다. 여기에 있다고.
‘서커스 캬라반’ 현장모습
지난 9월 7일 ‘거리예술 캬라반’을 준비하던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는 사업 변경 안내문을 게시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됨에 따라 작품을 영상으로 송출하기로 한 것이다. 그로부터 이틀 후 창작센터의 페이스북에 ‘드라이브 인 서커스’로 즐기는 ‘서커스 캬라반’의 사전예약 공지가 떴다. 100% 사전예약으로 진행되는 이 공연은 1인당 1대만 예약이 가능하며 차량 당 최대 3인(2주 차부터 4인으로 변경)까지 탑승이 가능했다. 야외 집객 인원을 100인 미만으로 운영해야 하는 상황에서 최대한 많은 ‘가족’들에게 관람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이후에 올라온 게시물과 댓글을 보며 빠른 속도로 예매가 마감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서커스 캬라반’이 진행된 문화비축기지 마당의 주요 진입로는 막혀있었다. 지자체가 마련하는 플랫폼 안의 거리예술은 이제 오가는 길에 우연히 만나게 되는 예술이 아니었다. 좌석이 줄어든 판데믹 시대의 여타 공연들처럼 관람의 기회를 잡기 위해 핸드폰 알람을 맞춰두어야 하는 희소한 것이 되었다. 거리예술을 평가하던 기준이었던 다수의 관객은 더 이상 거리예술의 미덕이 아니게 되었던 셈이다. 거리예술의 다양한 가치를 포기하게 만들었던 정량적 기준에 제동이 걸리게 된 것은 반가운 일이다. (초토화가 되어야만 찾아오는 변화라니...) 한 뉴스의 인터뷰에서 관객들은 ‘서커스 캬라반’이 자동차에 앉아 가족끼리 편하게 함께 보는 라이브 공연, 이색적인 경험이었다고 대답했다.
<블랙크라운> 공연모습
제4의 벽을 상정한 공연들은(예술가 각자는 어색했을 수 있지만) 이전과 큰 차이 없이 진행되었다. 변화된 공연 환경에서 눈에 띄는 것은 광대들의 시도였다. <블랙크라운>은 공연 중에 관객과 공놀이를 시도한다. 마임으로 크게 불어낸 공을 들어 차량번호를 호명하여 던진다. 관객(운전자)은 경적을 울려 공을 받아친다. 엇박자와 어중간한 길이의 경적으로 공은 퍼포머 김찬수를 지나 멀리 날아가기도 한다. <나홀로 서커스>의 ‘마린보이’는 성인 남성 한 명이 가까스로 들어갈 수 있는 작은 차를 타고 등장한다. 그는 관객과 함께했어야 하는 장면들을 들어내지 않고, 드러내기를 선택한다. 작은 자전거를 꺼내며 ‘원래 어린이 관객들과 작은 자전거를 함께 타기도 하는데…’ 하는 식으로. 결국 마지막에는 현장의 스태프를 무대 위로 불러내 채찍 묘기의 장면을 완성했다.

‘마린보이’로 활동하는 이성형은 공연이 끝난 뒤 광대가 아닌 코로나19 시대를 사는 예술가로서 관객들에게 말한다. 대면으로 관객을 만나는 자리가 정말 오랜만이다. 너무 기쁘다. 다음번에는 마스크를 벗고 만나자고. 관객들은 차창 밖으로 손을 내밀어 환호했다. 관객에게 그 말이 어떤 무게로 들렸을까. 직접 만나서 좋다는 그의 말은 관객을 통해 예술가로서 존재 이유를 다시금 확인했다는 말과 다름없었을 것이다. 그 말은 객석에 건네는 감사의 말이자 그만두지 않고 계속하겠다는 다짐이었다. 판데믹 이후 예술가가 관객에게 직접 지금을 사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자리는 없었던 것 같다. 자신의 작품을 보여주고, 지금 우리에게 예술이 필요한 이유, 본인이 예술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말하는 행위는 작지만 확실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나홀로 서커스> 공연모습
판데믹으로 인해 연습실이 닫혔을 때 많은 서커스 예술가들이 갈 곳을 잃었다. 서커스는 높은 천장과 기예 도구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연습 공간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여러 예술가가 연습을 중단하고 무너지는 몸 때문에 통증을 호소하기도 했었다. 연습실을 바로 곁에 두고 다양한 창작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서울거리예술센터는 예술가와 밀접한 관계 때문에 이들의 사정을 더욱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이런 맥락에서 ‘서커스 캬라반’은 관계자들의 의지 발현으로 보인다. 비슷한 시기인 9월에 예정되어 있던 ‘서울거리예술축제’가 취소되었을 때, 이에 영향 받은 지역의 축제들도 줄줄이 취소되었다. 수도권의 행보가 지자체들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 보았을 때 ‘서커스 캬라반’은 판데믹으로 얼어붙은 거리예술 플랫폼들에 자극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서커스 캬라반’은 축제적 이미지를 우회하고, 관객의 향수와 이국적인 환상을 떠올리게 하는 영리한 이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달라진 시대의 축제성을 찾고 관객과 함께 학습하기 전까지, 우려의 대상이 되어버린 ‘축제’라는 이름을 지양해야 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기도 하다. 이를테면 ‘축제’ 앞에 ‘온라인’이라는 말을 붙인다든지(축제 형식의 전환), 아예 ‘축제’라는 단어를 빼기도 한다. 실무자들은 마음껏 홍보하지도, 가만히 있지도 못하는 교착 상태에 빠졌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서커스 캬라반’ 현장모습
‘서커스 캬라반’의 전신인 ‘거리예술 시즌제’는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서울 도심 속 광장, 공원 등에서 관객들을 만나왔다. 판데믹으로 인하여 공공장소에서 밀려나고 보니, 지난날 거리예술과 축제가 공연을 찾은 시민들에게 이곳의 의미를 어떻게 상기시켜 왔는지 떠올려보게 된다. 뒤늦은 반성이지만 거리예술의 주요 무대가 되는 공적 공간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자리도 부족했던 것 같다. 차 안에서 내 가족들과 안정감을 느끼며 관람하는 이색적인 경험으로서의 거리예술은 어떤 의미와 한계를 가지게 될까. 이런 예술과 문화는 어떤 미래를 맞이하게 될까. 그리고 우리는 언제쯤 거리두기를 하면 유효하지 않은 예술이 존재한다고 공공에서 말할 수 있을까.

[사진 제공: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

서커스 캬라반
일자
2020.09.18 ~ 10.04 매주 금, 토, 일
장소
문화비축기지
주최/주관
서울시, 서울문화재단,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
관련정보
https://bit.ly/3hf9e7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