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밈 <뉴 노멀 : 적정거리>
적당한 거리에 서서,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지.’
박세련_연출가
188호
2020.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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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예술계는 정부에서 쏟아내는 언택트-온라인 제작지원에 몸살을 앓고 있다. 수백 년을 컨택트하던 공연예술은 하루아침에 변화된 흐름에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하는지 애써 고민을 토하고 있는 실정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진 습관 혹은 관습, 또는 본질(?)같은 것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다.
공연예술계는 정부에서 쏟아내는 언택트-온라인 제작지원에 몸살을 앓고 있다. 수백 년을 컨택트하던 공연예술은 하루아침에 변화된 흐름에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하는지 애써 고민을 토하고 있는 실정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진 습관 혹은 관습, 또는 본질(?)같은 것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다.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마냥 거부하는 것도 아니지만 5G급의 속도 변화를 감당하기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이런 시대에 발맞춰 걷지 못하면 뒤처지는 기분이 들고 반대로 따라 걷자니 마음 한편의 찝찝함을 숨길 수 없다. 예술가의 생명은 본디 동시대적인 것이라 하던데, 참으로 웃픈 코미디가 따로 없다고 본다. 이러한 상황과 환경에서 배회하고 있는 예술가들 또한 코로나19가 만들어낸 코로나 블루에 조금씩 잠식되고 있을 것이다.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마냥 거부하는 것도 아니지만 5G급의 속도 변화를 감당하기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이런 시대에 발맞춰 걷지 못하면 뒤처지는 기분이 들고 반대로 따라 걷자니 마음 한편의 찝찝함을 숨길 수 없다. 예술가의 생명은 본디 동시대적인 것이라 하던데, 참으로 웃픈 코미디가 따로 없다고 본다. 이러한 상황과 환경에서 배회하고 있는 예술가들 또한 코로나19가 만들어낸 코로나 블루에 조금씩 잠식되고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시대에 <뉴 노멀 : 적정거리>는 변해버린 새로운 환경에 놓인 예술가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시간과 공간을 채우며 말을 건넨다. 무대는 황량하고 텅 빈 공간에 놓인 몇 개의 거울, 부분만을 밝히는 빛, 피아노와 비올라 악기, LED전등, 훌라후프뿐이다. 40분가량 진행되는 공연에서 공간을 채우는 모든 오브제는 퍼포머들과의 교감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뿜는다. 이는 마치 각기 격리된 자신만의 공간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는 개개인의 노멀한 일상의 모습처럼 다가온다. 코로나19라는 비극 속에서도 꿋꿋하게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닮아있던 것 같다.
퍼포머들은 ‘가까이’라는 말을 무수히 반복한다. 이 시대에 ‘가까이’라는 말은 금지어가 아니었나? 거리두기를 장려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가까이’라는 말은 사실 왠지 반가우면서도 무섭게 들린다. 실제 공연에서도 ‘가까이’라는 말들이 반복될수록 연기가 자욱하게 깔리며 무거운 공기가 엄습해온다. 뱉어지는 말과 무대의 이미지는 겹쳐지며 그 자체가 지금의 현실처럼 그려진다. 이러한 현실을 드러내면서도 퍼포머들은 다시 또 다른 말을 반복한다.
퍼포머들은 ‘가까이’라는 말을 무수히 반복한다. 이 시대에 ‘가까이’라는 말은 금지어가 아니었나? 거리두기를 장려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가까이’라는 말은 사실 왠지 반가우면서도 무섭게 들린다. 실제 공연에서도 ‘가까이’라는 말들이 반복될수록 연기가 자욱하게 깔리며 무거운 공기가 엄습해온다. 뱉어지는 말과 무대의 이미지는 겹쳐지며 그 자체가 지금의 현실처럼 그려진다. 이러한 현실을 드러내면서도 퍼포머들은 다시 또 다른 말을 반복한다.
‘나 여기에 있어, 너 거기에 있어’
이 작품에 참여한 창작자들은 비단 현실을 마주하는 것으로 현재의 감각을 남겨놓지 않았다. 이들은 서로에게 자신의 위치와 건너에 있는 타인의 위치를 확인한다. 무대 곳곳에 흩어져 있던 퍼포머들의 목소리는 자신을 그리고 타인을 구체화 시킨다. 이것은 아마도 떨어져 있는 하나, 하나의 존재를 상기시켜주는 방법을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이런 상상을 더 직접적으로 그려내고자 했던 시도는 한줄기 레이저 빛을 거울로 반사하며 끊어지지 않는 연결을 만들어냈던 장면이었다. 허공에 맴도는 말들을 넘어 빛이라는 매개로 이 존재들은 만나게 된다. 아주 언택트한 방법을 통해서 말이다. 강한 레이저 빛은 여러 줄기의 빛으로 그들을 강하게 결속시킨다. 도중에 한 명의 퍼포머는 전신거울 앞에 가만히 서서 자신의 모습을 뚫어지게 보고 있다. 관객들은 말들과 빛들을 듣고 보다가, 거울 앞에 선 퍼포머를 발견하게 되면서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될까?
두 명의 퍼포머는 서로 휴대폰 영상통화를 통해 또 다시 ‘나 여기에 있고, 너 거기에 있어’라며 반복한다. 그러면서 무대에 존재하는 퍼포머들 한명, 한명을 호명하듯 휴대폰 화면 속으로 그들을 초대한다. 이들은 환한 미소로 ‘안녕’하며 손을 흔든다. 이 얼마나 반가운 모습들인지 그 장면을 보는 내내 같은 미소를 머금게 된다.
이 작품에 참여한 창작자들은 비단 현실을 마주하는 것으로 현재의 감각을 남겨놓지 않았다. 이들은 서로에게 자신의 위치와 건너에 있는 타인의 위치를 확인한다. 무대 곳곳에 흩어져 있던 퍼포머들의 목소리는 자신을 그리고 타인을 구체화 시킨다. 이것은 아마도 떨어져 있는 하나, 하나의 존재를 상기시켜주는 방법을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이런 상상을 더 직접적으로 그려내고자 했던 시도는 한줄기 레이저 빛을 거울로 반사하며 끊어지지 않는 연결을 만들어냈던 장면이었다. 허공에 맴도는 말들을 넘어 빛이라는 매개로 이 존재들은 만나게 된다. 아주 언택트한 방법을 통해서 말이다. 강한 레이저 빛은 여러 줄기의 빛으로 그들을 강하게 결속시킨다. 도중에 한 명의 퍼포머는 전신거울 앞에 가만히 서서 자신의 모습을 뚫어지게 보고 있다. 관객들은 말들과 빛들을 듣고 보다가, 거울 앞에 선 퍼포머를 발견하게 되면서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될까?
두 명의 퍼포머는 서로 휴대폰 영상통화를 통해 또 다시 ‘나 여기에 있고, 너 거기에 있어’라며 반복한다. 그러면서 무대에 존재하는 퍼포머들 한명, 한명을 호명하듯 휴대폰 화면 속으로 그들을 초대한다. 이들은 환한 미소로 ‘안녕’하며 손을 흔든다. 이 얼마나 반가운 모습들인지 그 장면을 보는 내내 같은 미소를 머금게 된다.
이렇게 공연이 진행되는 과정 중에 무대 벽과 천장에 레이저 빛으로 만들어진 두 마리의 나비가 날갯짓하며 돌아다닌다. 날아다니는 나비를 보고 있자니 어릴 적 할머니가 해주셨던 말씀이 떠오른다. ‘나비가 찾아오면 좋은 소식이 있을 거야.’ 그 나비가 어떤 의미로 공연에 사용되었는지 명확히 읽어낼 수는 없었지만, 그 말 없는 이미지는 지금을 살아가는 나에게 꽤나 긍정적이었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밝힌다.
공연의 끝은 굉장히 현실적인 마무리였다. 퍼포머들은 세로로 긴 창문 앞에 기대어 유리창 경계 너머의 바깥 풍경을 바라본다. 그렇게 긴 침묵 속에서 막을 내린다. 그 긴 침묵은 객석에 앉아 있는 관객들을 창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을 함께 볼 수 있도록 이끌었다. 퍼포머들과 관객은 각자 위치하는 자신의 공간을 상기하며 창문이라는 경계를 두고 각자 나름의 어떤 세계를 상상했을 것이다. 바로 코로나19의 위기 속에서. 그것이 희망이든 절망이든.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자신만의 사유를.
본 작품 <뉴 노멀 : 적정거리> 공연 안내서에는 “코로나 블루의 상황에서, 이 작품에 참여하는 각각의 예술가들은 ‘노멀’ 곧 평범한 일상을 되찾지 못하는 우울을 떨쳐내고 ‘뉴노멀’을 찾고자 한다.”라고 이 공연의 목표를 소개한다. 이와는 반대로 나는 코로나 블루 상황에 놓인 각각의 예술가들의 지극히 평범한 ‘노멀’을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시대의 ‘뉴노멀’을 찾고자 했던 이들이 선택하여 드러낸 것은 결국 ‘노멀’이었다. 꿋꿋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타인을 상기하며, 거리와 공간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가늠해 보는 것 말이다.
공연의 끝은 굉장히 현실적인 마무리였다. 퍼포머들은 세로로 긴 창문 앞에 기대어 유리창 경계 너머의 바깥 풍경을 바라본다. 그렇게 긴 침묵 속에서 막을 내린다. 그 긴 침묵은 객석에 앉아 있는 관객들을 창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을 함께 볼 수 있도록 이끌었다. 퍼포머들과 관객은 각자 위치하는 자신의 공간을 상기하며 창문이라는 경계를 두고 각자 나름의 어떤 세계를 상상했을 것이다. 바로 코로나19의 위기 속에서. 그것이 희망이든 절망이든.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자신만의 사유를.
본 작품 <뉴 노멀 : 적정거리> 공연 안내서에는 “코로나 블루의 상황에서, 이 작품에 참여하는 각각의 예술가들은 ‘노멀’ 곧 평범한 일상을 되찾지 못하는 우울을 떨쳐내고 ‘뉴노멀’을 찾고자 한다.”라고 이 공연의 목표를 소개한다. 이와는 반대로 나는 코로나 블루 상황에 놓인 각각의 예술가들의 지극히 평범한 ‘노멀’을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시대의 ‘뉴노멀’을 찾고자 했던 이들이 선택하여 드러낸 것은 결국 ‘노멀’이었다. 꿋꿋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타인을 상기하며, 거리와 공간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가늠해 보는 것 말이다.
허무맹랑하게 쏟아지는 ‘뉴노멀’ 정책들 사이에서 오히려 정직함이 있는 ‘뉴-노멀’의 등장이 우리들에게 코로나19의 우울을 극복하는 의미 있는 위로와 공감이지 않을까. 그렇게 유리창 너머의 희망을 상상해 본다.
[사진 제공: 프로젝트 밈(MEME) ⓒ박종명]
뉴 노멀 : 적정거리
- 일자
- 2020.09.26.
- 장소
- 서울 성북구 삼선동 4가 37 3층(구명성교회)
- 작/구성
- 구도윤
- 시노그래퍼/레이저디자인
- 이경은
- 음악감독
- 민찬홍
- 움직임
- 정은혜
- 연기
- 임호경
- 비올라
- 박미리
- PD
- 차정훈
- 무대감독
- 박상현
- 음향감독
- 김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