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선재 퍼포먼스 <패스, 킥, 폴 앤 런>
펼치고 놓고 울리고 기억되는
손옥주_공연학자
189호
2020.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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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부터 그의 춤에는, 구조가 있다. 자기-지시적이지 않은 구성 방법으로서의 동작이 있고, 언어와 불일치하는 현상으로서의 무대가 있으며, 의미로부터 탈맥락화된 상태의 기교(virtuosity)가 있다. 의미나 표상, 재현이 지향하는 영구적인 시간성, 그 부드러운 겹을 끝끝내 거부한 채 생겨나는 즉시 소멸해버리고 마는 리얼 타임으로서의 춤.
태초부터 그의 춤에는, 구조가 있다. 자기-지시적이지 않은 구성 방법으로서의 동작이 있고, 언어와 불일치하는 현상으로서의 무대가 있으며, 의미로부터 탈맥락화된 상태의 기교(virtuosity)가 있다. 의미나 표상, 재현이 지향하는 영구적인 시간성, 그 부드러운 겹을 끝끝내 거부한 채 생겨나는 즉시 소멸해버리고 마는 리얼 타임으로서의 춤.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닌 춤. 포스트모던 댄스의 대가 머스 커닝햄은 그런 점에서 안무가 마텐 스팽베르크가 언급했듯이 “의식 상태에서 빠져나와 주체나 존재가 오롯이 춤에만 몰두하게 해주는 춤을 추구”하며 “모든 것에 열려있는 구조들, 전략의 교착 상태를 떨쳐버리는 구조들을 제시”한다. (인용 출처: https://www.notion.so/10-12-549bc87e939f468cb894385320edb3e8)
커닝햄이 1965년에 발표한 작품 제목이 바로 How to Pass, Kick, Fall and Run이다. 제목에 등장하는 4개의 동사를 읊조리고 있노라면 서로 다른 움직임의 방향과 속도와 다이내믹이 평행한 듯 교차하고 비뚤어진 듯 균형을 잡으며 일순간 서로 접촉했다가 다음 순간 흩어져 또 다른 예기치 못한 구조를 만들어내는 것 같은 감각에 사로잡힌다. 그와 같은 읊조림의 순간 속에서, 위 4개의 동사에 대해/동사에 반해/동사를 경유하며/동사를 질료삼아 작업한 4명의 작가 노경애, 박민희, 이윤정, 정금형의 공연을 아트선재센터에서 만났다. 코로나 상황 속에서 예년과는 달리 침착한 가을바람이 불던 추석 연휴의 어느 날이었다.
커닝햄이 1965년에 발표한 작품 제목이 바로 How to Pass, Kick, Fall and Run이다. 제목에 등장하는 4개의 동사를 읊조리고 있노라면 서로 다른 움직임의 방향과 속도와 다이내믹이 평행한 듯 교차하고 비뚤어진 듯 균형을 잡으며 일순간 서로 접촉했다가 다음 순간 흩어져 또 다른 예기치 못한 구조를 만들어내는 것 같은 감각에 사로잡힌다. 그와 같은 읊조림의 순간 속에서, 위 4개의 동사에 대해/동사에 반해/동사를 경유하며/동사를 질료삼아 작업한 4명의 작가 노경애, 박민희, 이윤정, 정금형의 공연을 아트선재센터에서 만났다. 코로나 상황 속에서 예년과는 달리 침착한 가을바람이 불던 추석 연휴의 어느 날이었다.
“결국에는 묻혀있는 모든 것들이 걸러지고 떨어져 나가는 상태가 ‘런’이 될 것이다.”
_이윤정, <동시다발>
_이윤정, <동시다발>
이번 공연에서 작가들은 커닝햄의 원작에서 오로지 제목만을 차용하여 각각의 동사에 대한 해석을 시도한다. 작가 이윤정의 경우, 이번 공연의 트리거가 된 동사는 ‘런’이다. 주어진 동사들 가운데 가장 넓은 공간의 직경과 가장 빠른 속도를 상상케 하는 이 정지 불가능한 단어 앞에 홀로 선 그녀의 춤은 의외로 부동적이다. 3층의 너른 전시 공간을 온전히 포화시킨 고요함 속에서 약 15분간 그녀는 정면을 응시한 채 가만히 서 있기도 하고, 한 지점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마치 시계 초침이 돌아가듯 어깨 각도만을 틀어 상체를 움직이기도 하고, 외부에서 가해진 미지의 힘이 몸 어딘가를 잡아당기듯 움직이기도 한다. 무엇이 ‘런’이고, 무엇이 ‘춤’인 걸까. 바닥에 앉아 자문하며 생각의 끈이 부지불식간에 끊어질까 염려하는 사이, 어느새 시선은 홀로 우뚝 선 그녀가 마른 침을 삼킬 때 드러나는 목선 표면의 동시간적 굴곡으로, 그리고 그녀의 얼굴에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표정의 패턴들로 향한다. 움직임을 포착하고자 하는 눈의 의지에 정작 포착되는 것들은 ‘런’에 대한 예상을 한없이 비켜가는 보이지 않는 것들, 혹은 보인다 하더라도 마치 일반적인 용례에서 벗어나 해석이 불가능해져 버린 어휘처럼 의미나 의도를 읽어낼 수 없는 것들이 대다수이다. 얼굴 표정은 더 이상 무엇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되기를 멈춘 채 특정 근육들 간의 접촉을 통해 생성된 물리적 결과로 현상될 뿐이다. 의미로의 환원이 아닌, 온몸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작동 중인 ‘그저 그러함의 상태’가 모여 움직임을 만든다. 그리고 그런 움직임을 감각하는 순간들은 춤을 닮아있다. 이후 고요하던 전시 공간에 바로크 음악이 울려 퍼지며 공연의 마지막 5분을 이끌어간다. 절제된 음악의 선율이나 리듬과는 무관하게 다이내믹하게 이어지는 이윤정의 춤은 그녀의 춤 속에서 움직임의 (물리적 의미에서의) 동적 특성을 길어내고자 하는 관습화된 시선이 쉽게 포착할 수 없는, 그러나 춤을 추는 자신에게는 너무나 명확한 감각의 더미를 펼쳐 보이듯 이어진다. ‘여러 가지 것들을 펼쳐 보인다’는 뜻을 지닌 ‘전시(展示)’의 공간 안에서 분열하는 세포와, 지속되는 박동과, 순환하는 혈의 시간이 펼쳐진다.
“‘먼저 서야 하는구나. 서는 것에서부터 ‘폴링’이 작용하는 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_노경애, <떨어지다> (퍼포머: 김명신, 송명규, 천영재)
_노경애, <떨어지다> (퍼포머: 김명신, 송명규, 천영재)
이번 공연에서 작가 노경애의 작업 기반이 된 동사는 바로 ‘폴’이다. 움직임의 물리적 특성(<MARS>), 서로 다른 매체/요소들의 결합과 배치(<더하기 놓기+,>) 등에 대한 리서치를 오랜 기간 이어온 그녀는 ‘떨어짐’을 주제로 하는 이번 공연에서 주제로 제시된 동사 자체를 균질하지 않은 상태의 다양한 조건들로 환원시킨 후에 각각을 재맥락화한다. 예를 들어, ‘폴’이라는 동사의 의미를 “떨어지다, 떨어뜨리다, 떨구다”(인용 출처: <패스, 킥, 폴 앤 런> 프로그램북) 등으로 확장한 후에 각 단어의 형식, 뉘앙스, 의미 사이에서 발생되는 그 닮은 듯 다른 차이들을 그러모아 리서치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다. 어떻게 떨어지고 누구를 떨어뜨리며 무엇을 떨구는가. 더 나아가 그렇게 떨어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서 있어야 하며, 그렇게 서 있기 위해서는 어떠한 몸의/관계의/환경의 상태가 전제되어야 하는가. 작가 노경애에게 있어 과정의 결과로서 현상되는 ‘지금, 여기’는 곧 과정의 역추적을 가능케 하는 시작지점이라는 점에서 무엇의 결과이기 이전에 무엇을 가능하게 만드는 계기에 가깝다. 이처럼 역류하는 과정의 재발견 안에서 이번 공연에 참여한 3명의 퍼포머는 떨어지고 넘어지고 쓰러지지만, 마냥 ‘폴’하는 것만은 아닌, 움직임의 역설을 시도한다. 3층 전시 공간 한가운데에서 어느 정도의 간격을 두고 각자 선 퍼포머들이 각자 힘을 다해 전신을 회전시키다가 몸을 가까스로 잡아주던 구심력에서 탁, 놓여버릴 때, 이들의 몸은 저 멀리 날아가거나 얼마간 옆으로 가 넘어지거나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위태롭지만, 천천히 속도를 줄이는 저벅저벅한 발걸음으로 일순간 전환된다. 한순간 위태롭던 움직임은 다음 순간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이어진다. 던지면 날아가고, 놓으면 떨어지는 움직임의 당위가 적용되지 않는 공간으로서의 무대. 어쩌면 작가 노경애는 던짐으로써 멈출 수 있고, 놓음으로써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 그 자체에 대해 춤으로 사유할 수 있음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음악도 오브제도 배제된 상태의, 오로지 퍼포머의 몸과 그들의 움직임만이 남아있는 떨어짐의 시공간 속에서.
“음악의 권위를 제거하고 음악적 어휘들만 남겨서 패스될 수 있게 만드는 중이다.”
_박민희, <패스, 퍼레이드, 대취타> (퍼포머: 권수현, 김여진, 박민희, 박채영, 박해진, 이고운, 이서진, 조수빈, 조윤영, 최혜원)
_박민희, <패스, 퍼레이드, 대취타> (퍼포머: 권수현, 김여진, 박민희, 박채영, 박해진, 이고운, 이서진, 조수빈, 조윤영, 최혜원)
그동안의 창작 작업을 통해 전통음악에 담긴 사고방식과 태도를 재해석해 온 작가 박민희는 전시장 3층에서 출발하여 2층으로 이어지는 퍼레이드 동선 안에서 ‘패스’의 대상, 그리고 ‘패스’라는 움직임의 감각을 실험한다. 왕의 행차 시에 연행되었던 전통 대취타를 창작 레퍼런스로 삼은 이번 실험에서 작가는 대취타에 사용된 전통악기들과 입으로 불거나(취) 손으로 두드리는(타) 연주법, 그리고 ‘행진’이라는 연행 형식만을 남겨둔 채 연행의 목적과 환경을 전복시킨다. 왕의 권위로 수렴되는 군례 행사가 아닌, 관객들과의 퍼레이드를 매개하는 미디엄으로서의 대취타. 정렬된 대형 안에서 울려 퍼지던 과거의 소리로부터 정치적·군사적·종교적 메시지를 탈락시키는 순간에 바로 그 소리의 자리에서 비로소 현현되는 낯선 시간의 궤적이 있다. 그 소리가 지나온 무수한 동시대들이 꿰어져 만들어낸 이 같은 시간의 궤적은, 동시대와 또 다른 동시대의 접합으로 상상될 수 있는 그 소리의 궤적은, 이번 공연에서 2층과 3층의 전시 공간을 오가며 공간적인 확장을 시도한다. 보다 멀리서, 혹은 보다 가까이에서, 혹은 전시장 2층과 3층,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는 취악과 타악에 귀를 여는 순간, 관객은 소리의 출처를 되묻는 대신 소리의 이동 궤적을 감각하게 된다. 그리고는 10여 명의 퍼포머들을 따라 다음 공연이 펼쳐질 2층 전시장으로 이동한다. 악기 소리가 공간을 가로질러 패스되고 바로 그 소리가 남긴 여음을 따라 몸의 맥이 울릴 때, 그때서야 비로소 한 사람의 관객으로 스스로에게 되묻게 된다: 왜 퍼레이드여야만 하는 걸까. 커닝햄의 동료이자 또 한 명의 포스트모던 댄스 대가인 안나 할프린은 1965년에 발표한 작품 Parades and Changes의 마지막을 무용수와 관객이 뒤섞인 채 내달리며 서로를 지나치는(패스) 장면으로 구성한다. 강한 타악 박자에 맞춰 서로 다른 속도로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달리던 사람들은 점차 속도와 보폭을 맞춰간다. 그리고 사람들의 얼굴에는 맞춰감의 과정 안에서 비로소 획득되는 어떠한 공통감의 표정이 자리한다. ‘집단’이라는 단어 안에서 상쇄되기 어려운, 지극히 개별적이면서도 동시에 공통의 경험과 감각이 공유된 상태로서의 표정. 아마도 작가 박민희는 이번 공연에서 전통에 함의된 시간성의 실제에 대해 되묻는 동시에, 서로 다른 톤과 울림을 지닌 소리의 퍼레이드를 통해 이 같은 공통감의 표정을 소생시키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
“원래의 맥락을 지우고 동작 자체만을 보는 것”
_정금형, <파인드, 셀렉트, 카피 앤 페이스트>
_정금형, <파인드, 셀렉트, 카피 앤 페이스트>
작가 정금형은 2층 전시장에서 진행된 이번 공연에서 특정 동사를 선택하기보다는 커닝햄 작품의 원제목에 나타난 ‘how to’에 주목하여 4개의 동사 모두를 퍼포먼스의 재료로 삼는다. 제목이 예시하는 것처럼, 지금까지 발표해온 퍼포먼스 작업들 가운데에서 패스, 킥, 폴, 런에 각각 해당하는 장면들을 선택해 그 안에서 수행되었던 작가의 신체 움직임만을 남겨 이를 곧바로 공연으로 치환시키는 것이다. 말하자면, “‘사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움직임’에서 ‘움직임’만 떼어내오는 방식”(출처: <패스, 킥, 폴 앤 런> 프로그램북)을 취하는 셈인데, 그런 점에서 공연에 등장한 오브제들을 신체 움직임과 분리한 채 전시장에 재배치했던 개인전 <개인소장품>(2016)의 전도된 형식으로도 볼 수 있다. 그동안의 작업에서 인간과 기계, 살과 플라스틱, 욕망과 기능/역학 간의 관계를 설정하고 이를 장면화함으로써 주체와 객체, 능동과 수동에 관한 문제를 상기시켜온 작가는 약 30분간 이어지는 이번 공연에서 이 같은 관계의 한 축을 소거하는 동시에 그 자리에 자기 자신의, 그리고 관객들의 ‘기억’을 불러온다. 공연의 처음부터 끝까지 나체로 전시장 바닥 위에서 심폐소생술을 시도하고, 섹스를 시도하고, 기계작동을 시도하는 그녀의 움직임이 유기적인 의미망 안에서 포착될 수 있다면 이는 아마도 이전 작업에 대한 관객의 관람 경험과 무관하지 않을 텐데, 실제 관객들로 하여금 그때의 기억을 환기하도록 하는 것이 작가의 바람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내 작업을 오랫동안 보셨던 분들이 ‘아, 저거 뭔지 알아’하는 반응이 있길 바라는 마음도 있다.” 출처: <패스, 킥, 폴 앤 런> 프로그램북) 지난날의 무대에 출현했던 사물의 모습이, 그것이 내는 소리가, 그것이 작동하는 속도와 양상이 오늘의 무대 위에 유령처럼 출몰한다. 또한 그 사물들이 지난 작업에의 기억뿐만 아니라 오늘의 공연장소를 이루는 환경적인 요소들로 대체되기도 한다(딱딱한 전시장 바닥의 질감, 몸을 둘러싸고 있는 초가을의 서늘한 공기, 표정이 삭제된 채 시선만 남아있는 작가의 얼굴, 이 모든 것은 그 자체로 오브제가 된다). 그런 점에서, 삭제되어있는 사물과 관계의 형상이 트레이싱지와도 같은 관객의 기억을 수면 삼아 떠오르는 정금형의 이번 공연은 같지만 다르고, 기억되지만 낯설다.
* 소제목으로 차용된 네 작가들의 말은 <패스, 킥, 폴 앤 런>의 프로그램북에 실린 대화 <어떻게 패스하고 발로차고 떨어지고 달릴까?>에서 발췌하였다.
* 소제목으로 차용된 네 작가들의 말은 <패스, 킥, 폴 앤 런>의 프로그램북에 실린 대화 <어떻게 패스하고 발로차고 떨어지고 달릴까?>에서 발췌하였다.
[사진 제공: 아트선재센터 ⓒ박해욱]
패스, 킥, 폴 앤 런
- 일자
- 2020.10.01. ~ 2020.10.03
- 장소
- 아트선재센터 2, 3층
- 참여작가
- 노경애, 박민희, 이윤정, 정금형
- 기획
- 김해주, 이윤정
- 주최
- 아트선재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