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입체낭독극 <환한 밤>
소녀 시절
김송요
190호
2020.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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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한 밤>은 동명의 청소년 소설을 원작자인 김아정 소설가와 신진호 연출이 의기투합해 낭독극 형식으로 완성한 공연이다. 촘촘한 대화와 독백에 더해지는 지문, 음성의 빈자리를 메우는 음악―현장에서 건반이 연주된다―이 작품을 완성한다. 낭독극이기에 대본이 중심이 되고 무대미술은 간소화되어, 학교 책걸상 몇 개가 장면마다 필요한 공간이자 소품 역할을 한다.
<환한 밤>은 동명의 청소년 소설을 원작자인 김아정 소설가와 신진호 연출이 의기투합해 낭독극 형식으로 완성한 공연이다. 촘촘한 대화와 독백에 더해지는 지문, 음성의 빈자리를 메우는 음악―현장에서 건반이 연주된다―이 작품을 완성한다. 낭독극이기에 대본이 중심이 되고 무대미술은 간소화되어, 학교 책걸상 몇 개가 장면마다 필요한 공간이자 소품 역할을 한다.
이야기는 서울에서 강원도 작은 마을의 고등학교로 전학 온 소녀, 은영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은영은 어려워진 집안 형편으로 인해 낡은 집이 모여있는 시골의 주택가로 이사와 물려받은 교복을 입고, 산나방이 잔뜩 날아다니는 옥수수밭을 따라 걸어야만 도착하는 학교로 전학한다. 핸드폰 착신마저 정지되어, 서울의 단짝 친구와는 컴퓨터로 겨우 연락을 이어간다.
근처 중학교 애들이 거의 그대로 올라오는 여고에서 은영은 낯설고 외딴 존재다. 은영이 서울에서 왔다는 것을 안 아이들은 은영에게 질문을 쏟아낸다. 홍대나 북촌 같은 서울의 번화가. 이 작은 소도시에서는 읍내에 나가도 없는 대형 백화점과 쇼핑센터, 그리고 그런 곳에서 파는 새롭고 좋아 보이는 물건들. 아이들은 표면적으로는 은영에게 질문하는 형식을 취하지만 실상은 서울에 대한 동경과 막연한 상상을 은영을 통해 충족하려 하는 것에 가깝다. 은영 역시 그에 부응해 서울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지만, 실은 은영도 홍대며 북촌 같은 데엔 가본 적이 없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늘어놓은 사소한 거짓말로 인해 은영은 지레 불안하고 조바심이 생긴다. 그렇기에 은영은 마음의 표면을 긁고 거스러미를 벗겨내는 말들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은영을 반응하게 하는 것은 주로 재희다. ‘나를 빤히 보는 것 같은’ 재희는 계속해서 은영을 신경 쓰이게 만든다. 재희는 무람없이 은영이 숨기고 싶거나 말하고 싶지 않은 것들에 대해 캐묻고, 결국 은영이 거짓말한 것을 알고 있다며 은영을 다그친다. 자의가 아니라 어른들에 의해 처하게 된, 지방 소도시에서 매일매일 다를 것 없는 궁핍함으로 얼기설기 꾸려지는 일상에 대한 불만족과 불안감은 은영도 재희도 날 서게 한다. ‘왜 불편한지 알 수 없어서 더 불편했다’는 은영의 말 그대로 두 사람은 영문 모를 감정에 서로의 주위를 맴돈다. 아직 상처를 덮은 딱지 안의 속살이 여물지 않은, 서로를 미워하지도 않으면서 미워하고,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좋아하는 사춘기 소녀들의 모습은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로 설득력을 얻는다. 대본을 모조리 읽는 낭독극의 장르 특성상 무대 위에 완전한 가상세계를 건설하기 어려움에도, 틈입하는 지문과 장 바뀜 안내 사이에서 인물의 얼굴을 구체화하고 선명히 만드는 배우들의 역할이 인상적이다.
근처 중학교 애들이 거의 그대로 올라오는 여고에서 은영은 낯설고 외딴 존재다. 은영이 서울에서 왔다는 것을 안 아이들은 은영에게 질문을 쏟아낸다. 홍대나 북촌 같은 서울의 번화가. 이 작은 소도시에서는 읍내에 나가도 없는 대형 백화점과 쇼핑센터, 그리고 그런 곳에서 파는 새롭고 좋아 보이는 물건들. 아이들은 표면적으로는 은영에게 질문하는 형식을 취하지만 실상은 서울에 대한 동경과 막연한 상상을 은영을 통해 충족하려 하는 것에 가깝다. 은영 역시 그에 부응해 서울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지만, 실은 은영도 홍대며 북촌 같은 데엔 가본 적이 없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늘어놓은 사소한 거짓말로 인해 은영은 지레 불안하고 조바심이 생긴다. 그렇기에 은영은 마음의 표면을 긁고 거스러미를 벗겨내는 말들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은영을 반응하게 하는 것은 주로 재희다. ‘나를 빤히 보는 것 같은’ 재희는 계속해서 은영을 신경 쓰이게 만든다. 재희는 무람없이 은영이 숨기고 싶거나 말하고 싶지 않은 것들에 대해 캐묻고, 결국 은영이 거짓말한 것을 알고 있다며 은영을 다그친다. 자의가 아니라 어른들에 의해 처하게 된, 지방 소도시에서 매일매일 다를 것 없는 궁핍함으로 얼기설기 꾸려지는 일상에 대한 불만족과 불안감은 은영도 재희도 날 서게 한다. ‘왜 불편한지 알 수 없어서 더 불편했다’는 은영의 말 그대로 두 사람은 영문 모를 감정에 서로의 주위를 맴돈다. 아직 상처를 덮은 딱지 안의 속살이 여물지 않은, 서로를 미워하지도 않으면서 미워하고,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좋아하는 사춘기 소녀들의 모습은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로 설득력을 얻는다. 대본을 모조리 읽는 낭독극의 장르 특성상 무대 위에 완전한 가상세계를 건설하기 어려움에도, 틈입하는 지문과 장 바뀜 안내 사이에서 인물의 얼굴을 구체화하고 선명히 만드는 배우들의 역할이 인상적이다.
학교에서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엄마와 갈등을 빚은 은영은 밤의 학교에서 혼자 하룻밤을 보내기로 한다. 여기서부터 다소 비현실적인 장면이 이어진다. 우선 은영은 밤의 학교를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다. 어두운 학교 건물 특유의 공포스러운 느낌은 전혀 재현되지 않는다. 거기다 불쑥, 은영의 앞에 학교에서 자주 밤을 샌다는 ‘영지’라는 아이가 등장해 은영을 안내하길 자처한다. 평소 항상 지어낸 말과 변명으로 자신을 보호하던 은영은 ‘왜 친구 집이나 찜질방이 아닌 학교에 왔냐’는 영지의 말에 불쑥 ‘친구가 없어서 갈 데가 없다’고 본심을 내비쳐버리고, 영지에게 이끌려 학교 곳곳을 비밀의 공간 탐색하듯 돌아다닌다. 영지는 기이할 정도로 학교에 대해 잘 안다. 보건실 자물쇠 비밀번호까지 꿰고 있다. 은영은 ‘영지는 슬리퍼까지 신었는데 어떻게 저렇게 아무 소리도 안 날까, 내 발소리가 너무 큰 것 같아’ 생각한다. 그러니까, 적어도 나라는 관객에게 영지는 너무나… 학교 괴담의 귀신 같다.
영지라는 기묘한 존재는 은영이 여전히 친숙해지지 못한 이 도시, 이 학교에서 유일하게 은영과 교감한다. 은영은 모두가 어둡다고 말하는 밤에서 환함을 감지한다. 주홍색 가로등 불빛이 저녁잠을 깨우는 환한 밤. 산나방들이 바삐 날갯짓하는 환한 밤. 은영은 ‘나비는 꽃을 찾아 날아다니는데 나방은 가로등 불빛을 쫓다가 죽어버린다’고, 그래서 나방이 안타깝고 가엾다고 말한다. 예상 가능하게도, 이는 은영 스스로와 비견된다. 나방을 아무렇지 않게 잡아버리는 재희는 모를(거라고 적어도 은영은 믿는), 무언가에 끌리고 쫓겨서 연약한 생명을 소진하는 나방. 자기연민에 빠진 은영에게 영지는 나방이 밝은 곳에 모여드는 까닭은 길을 찾고 있기 때문이란 걸 알려준다. 극 초반 ‘죽은 거야 산 거야? 죽은 척하는 건가?’ 수군거리던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웅크려 있던 은영의 모습은 재희가 붙잡은 무기력한 나방의 은유를 지나, 똑같이 웅크려 있지만 이번엔 안전한 보건실 침대에서 영지와 키득거리며 환한 밤을 지새우는 은영의 모습으로 발전한다. 은영의 거울이자 은영의 계기가 되어주는 영지는 그리하여 실체를 가진 진짜 친구로서 은영의 곁에 남아주어도 좋고, 은영에게만 보이는 환상 존재여도, 진짜 학교 괴담 속 귀신이어도(!) 무책임하거나 아쉽게 느껴지지 않는 존재가 된다.
영지라는 기묘한 존재는 은영이 여전히 친숙해지지 못한 이 도시, 이 학교에서 유일하게 은영과 교감한다. 은영은 모두가 어둡다고 말하는 밤에서 환함을 감지한다. 주홍색 가로등 불빛이 저녁잠을 깨우는 환한 밤. 산나방들이 바삐 날갯짓하는 환한 밤. 은영은 ‘나비는 꽃을 찾아 날아다니는데 나방은 가로등 불빛을 쫓다가 죽어버린다’고, 그래서 나방이 안타깝고 가엾다고 말한다. 예상 가능하게도, 이는 은영 스스로와 비견된다. 나방을 아무렇지 않게 잡아버리는 재희는 모를(거라고 적어도 은영은 믿는), 무언가에 끌리고 쫓겨서 연약한 생명을 소진하는 나방. 자기연민에 빠진 은영에게 영지는 나방이 밝은 곳에 모여드는 까닭은 길을 찾고 있기 때문이란 걸 알려준다. 극 초반 ‘죽은 거야 산 거야? 죽은 척하는 건가?’ 수군거리던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웅크려 있던 은영의 모습은 재희가 붙잡은 무기력한 나방의 은유를 지나, 똑같이 웅크려 있지만 이번엔 안전한 보건실 침대에서 영지와 키득거리며 환한 밤을 지새우는 은영의 모습으로 발전한다. 은영의 거울이자 은영의 계기가 되어주는 영지는 그리하여 실체를 가진 진짜 친구로서 은영의 곁에 남아주어도 좋고, 은영에게만 보이는 환상 존재여도, 진짜 학교 괴담 속 귀신이어도(!) 무책임하거나 아쉽게 느껴지지 않는 존재가 된다.
작품은 굳이 명쾌한 결말을 제시하거나 강력한 장치를 통해 상황을 극단으로 치닫게 하지 않는다. 끝끝내 은영의 앞에는 해결되지 않은 고민이 산적해 있고, 은영의 처지를 반전해줄 행운 같은 것도 없다. 다만 <환한 밤>은 어떤 의미에선 아주 극적으로 이 지리한 현실을 타개한다. 주어진 상황이 아니라 은영 자신의 내면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은영이 내재한 자기모순 그리고 은영과 주변 사람들의 갈등은 작품 말미에서 은영 자신의 감정적 해방을 통해 해소된다. 재희가 은영의 비밀을 폭로하거나 은영을 친구로 받아들여서, 은영의 집이 갑자기 사업에 성공해 형편이 나아져서 같은 외부적 요인이 아니라 학교에서 밤을 지샌 은영이 언제나 마음을 졸였던 ‘관계’에 대한 나름의 답을 찾으면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얻는 것이다. 연극은 선정적인 파국이나 ‘좋은 게 좋은 것’ 식의 봉합 대신 지극히 차분한, 그러나 독백이라는 그야말로 ‘극적인’ 방식을 통해 은영의 감정이 기승전결의 ‘결’에 도달했음을 납득시킨다. 다만 엄마와의 관계는 보다 직접적인 대화를 통해 나아지는데, 아마도 이 정도가 은영의 의지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결과라는 판단에서일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짚고 싶은 것은 이 작품의 시간적 배경이다. MP3 파일을 넣을 수 있는 핸드폰, 교실에 울려 퍼지는 원더걸스 노래로 유추할 수 있듯이 <환한 밤>의 배경은 완전히 동시대가 아니라 2010년 즈음이다. 즉 이 작품은 일면 ‘그때 거기’로 돌아가는 연극이다. 이 ‘그때’와 ‘거기’가 소구하는 대상이 정확히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 출생의 밀레니얼(특히 여성)이라는 것이 다소 흥미롭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은 신촌극장에서 있었던 <항구의 사랑> 낭독극 이후 처음 관람한 낭독극이었는데, 공교롭게도 두 작품 모두 2000년대에서 2010년대 극 초반을 배경으로 소녀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밀레니얼의 기억이 연극으로 재현되는 것이 점차 잦아지고 자연스러워지는 것이 당연하면서도 달갑다. 인용하자면 ‘대못 같은 말들에 상처를 받지만’, 아주 작은 계기에도 아물 수 있는 이 나약하고도 강인한 시절에게 갖는 가없는 애틋함이 더더욱 이야기되기를.
한 가지 짚고 싶은 것은 이 작품의 시간적 배경이다. MP3 파일을 넣을 수 있는 핸드폰, 교실에 울려 퍼지는 원더걸스 노래로 유추할 수 있듯이 <환한 밤>의 배경은 완전히 동시대가 아니라 2010년 즈음이다. 즉 이 작품은 일면 ‘그때 거기’로 돌아가는 연극이다. 이 ‘그때’와 ‘거기’가 소구하는 대상이 정확히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 출생의 밀레니얼(특히 여성)이라는 것이 다소 흥미롭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은 신촌극장에서 있었던 <항구의 사랑> 낭독극 이후 처음 관람한 낭독극이었는데, 공교롭게도 두 작품 모두 2000년대에서 2010년대 극 초반을 배경으로 소녀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밀레니얼의 기억이 연극으로 재현되는 것이 점차 잦아지고 자연스러워지는 것이 당연하면서도 달갑다. 인용하자면 ‘대못 같은 말들에 상처를 받지만’, 아주 작은 계기에도 아물 수 있는 이 나약하고도 강인한 시절에게 갖는 가없는 애틋함이 더더욱 이야기되기를.
[사진 제공: 극단 비밀기지]
2020 청소년극 입체낭독
환한 밤
- 일자
- 2020.10.23. ~ 2020.10.25
- 장소
- 스튜디오76
- 출연
- 안현정, 오남영, 이은지, 최이레, 김혜령, 정단비
- 작
- 김아정
- 연출
- 신진호
- 음악
- 한혜신
- 조연출
- 정우성, 김성혁
- 무대
- Shine_od
- 기획
- 이은지, 최찬우
- 무대감독
- 김준광, 정지훈
- 드라마터그
- 최호영
- 포스터
- 허선희
- 조명오퍼레이터
- 박준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