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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두줄 <구멍이 보인다>, <손이 온다>

우리 몸을 ‘구원’하는 일

김태희_연극평론가
191호 2020.11.19
‘프로젝트 두줄’을 처음 만난 건 지난 여름, <두 줄 생존사死史- 침해의 현재>라는 작품에서였다. 해석의 거칢을 무릅쓰고 정리하자면, 앞선 작품은 가정 폭력에 시달리다 못해 남편을 죽인 아내를 중심으로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역사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작품에서 지적하는 다종다양한 폭력들은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더 심각하게 다가왔는데, 개인적으로는 이상하게 그 심각함과는 전혀 동떨어진 장면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더랬
‘프로젝트 두줄’을 처음 만난 건 지난 여름, <두 줄 생존사死史- 침해의 현재>라는 작품에서였다. 해석의 거칢을 무릅쓰고 정리하자면, 앞선 작품은 가정 폭력에 시달리다 못해 남편을 죽인 아내를 중심으로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역사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작품에서 지적하는 다종다양한 폭력들은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더 심각하게 다가왔는데, 개인적으로는 이상하게 그 심각함과는 전혀 동떨어진 장면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더랬다. 그것은 등장인물들이 가해자들의 언어가 되어주는 헌법 책을 한 페이지씩 찢어 던지며 웃는 장면이었는데 묘하게 통쾌하기도 했고 조금은 위로를 받는 기분이기도 했다. 이번에 다시 만난 프로젝트 두줄의 단막극들 역시 전작처럼 묵직했고 발랄했으며 따뜻했다.
조각나는 몸들 <구멍이 보인다>
<구멍이 보인다>는 무대 위의 작은 ‘구멍’으로부터 출발한다. 사실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구멍이 그토록 강력한 메타포가 될 줄은, 일련의 사건이 생기기 전까지는 알 수 없었다. 무대 위에 작은 구멍이 등장하고 배우가 휴지를 구멍에 욱여넣는 행동을 보여줄 때 그제야 구멍이 예전과는 다른 의미가 되었다는 것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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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스탠딩 코미디 쇼를 표방하여 진행되는데, 무대 위에 등장한 ‘배우’의 화두는 자신이 만난, ‘구멍에서 걸어 나온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5월의 광주를 알려준 교수님, 세월호 1주기 시위에 참여했다가 경찰서 철창에 갇힌 친구, 강남역 빌딩 화장실에서 살해당한 여성, 그리고 마지막은 배우 자신이었는데, 모두 폭력의 피해자라는 면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멀게만 느껴졌던 폭력의 실체를 무력감으로 학습하고 실제 삶에서 마주하게 되기까지 배우에게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것은 그야말로 어느 날 문득, 남자친구와 자취방에서 관계를 맺다가 창문이 열려있음을 깨달았을 때, 소라넷 사이트에 내가 올라가 있어도 무섭지 않다는 남자친구의 대답을 들었을 때, 그런 사소한 순간들에 찾아왔다.
배우의 이야기를 듣던 ‘관객’(실제 관객이 아니라 관객 역할을 하는 또 다른 배우)이 화를 참지 못하고 객석에서 무대 위로 올라갔을 때 이제 작품은 ‘구멍’ 너머에 있는 시선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간다. 구멍을 통해 누군가를 훔쳐보는 시선들은 사적인 공간의 안전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우리 신체를 함부로 왜곡한다는 면에서 폭력적이다. 요컨대 이런 식이다. 배우는 무대 위에서 포르노의 한 장면을 재현하는데, 그 장면에는 이야기의 맥락도 없이 교복을 입은 다리만 보이는 게 전부다. 그뿐만 아니다. 무릎, 팔꿈치, 손가락, 엉덩이, 배변 기관. 구멍이 비추는 여성의 신체는 하나같이 절단되어 있고 앞뒤 맥락도 없이 그저 ‘야한 것’으로 소비된다. 무엇보다 절망적인 것은 어떻게 해야 자신의 몸을 절단하고 관음적으로 소비하는 시선들을 떼어낼 수 있는지 여성들은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그냥 있었을 뿐, 그들의 몸을 그렇게 만든 건 구멍 속 시선들이기 때문이다.
배우와 관객의 대화에 따르면 성폭력 처벌법에서, ‘카메라등 이용 촬영죄’는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타인의 신체를 의사에 반해 촬영”한 것이라고 정의 내려진다. ‘성적 욕망’과 ‘수치심’이라니. 도대체 내 조각난 몸 어디에서 성적 욕망이 야기되며, 또 수치심을 느낄 것이라는 해석은 어떻게 나올 수 있는 걸까. 피해자를 보호하는 법안의 언어들도 결국에는 이토록 가해자를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었다.
규정되는 몸들 <손이 온다>
<구멍이 보인다>처럼 <손이 온다> 역시 타인에 의해 규정되는 몸의 문제를 다루는데, 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전혀 다른 성향의 두 인물, 진희와 지은을 등장시킨다. 성인용품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스스럼없이 자위에 대해 이야기하는 진희에 비해 지은은 자신의 몸의 쾌락에 대해 소극적이다. 지은에게는 자위를 하는 것이 어쩐지 남자친구에게 “죄짓는 것 같은 느낌”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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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자위에 대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성장 배경과도 관계가 있다. 어린 시절 놀이를 하다 처음으로 성적 자극을 느꼈을 때, 그것이 미처 무엇인지 자각도 하기 전에 엄마는 등짝부터 때리고 수치심을 주었다. 첫 경험에서부터 지은에게 성적 감각을 추구하는 것은 금기시되는 것, 수치스러운 것으로 각인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자라난 지은은 남자친구와의 관계에서도 자신의 몸이 느끼는 감각보다는 상대방의 즐거움에 만족감을 느끼고, 그것이 사랑이라고 믿게 되었다. 하지만 극이 진행되면서 지은은 진희가 건넨 도구의 도움을 받아 처음으로 성적 즐거움을 느끼게 되고 그것이 수치스럽거나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배워나간다.
사실 지은과 진희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는,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작품의 관극이 시종일관 즐거웠던 것은 지은과 진희 역을 맡은 배우들이 연기하는 ‘클리’와 ‘토리’ 때문이었다. 클리와 토리는 지은과 진희의 이야기 도중 등장해서 자신들에게 다가오지 않는 ‘손(hand)’을 기다리는 지루함을 토로하거나 ‘손’을 만났을 때의 즐거움을 천연덕스럽게 표현한다.
지루함을 토로하던 클리와 토리가 첫 장면에서 자신들의 정체를 드러냈을 때,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공개적인 장에서 다루기 어려웠던 성과 관련된 이야기를, 그것도 여성의 성생활과 관련된 이야기를 이토록 직접적으로 풀어내다니. 처음에는 민망함으로 시작된 웃음이었지만 클리와 토리가 내뿜는 발랄한 에너지 덕분에 민망함도 어색함도 서서히 옅어진다. 마지막 클리와 토리가 춤을 추는 장면이 아름답고 따뜻한 기억으로 남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지은이 비로소 자신의 몸을 마주 보고 즐거움을 느낄 때, 클리와 토리가 춤을 추며 환호할 때 객석에 앉아있는 관객들도 함께 해방된 감각을 느낀다. 그 어느 때보다 즐거운 공모(共謀)에 가담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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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맥락에서 <구멍이 보인다> 뒤에 <손이 온다>가 배치된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배우’는 어떤 과거는 사라지지 않고 현재가 된다고 했다. 그것은 마모되지 않는 기억 덕분이라는 말과 함께. 분노의 기억 위에 우리가 극장에서 함께 웃고 떠들었던 기억을 쌓아 올린다. 우리 몸은 함부로 절단되거나 규정될 수 없음을 생생한 기억으로 남긴다. 그러면 마침내 그 기억들은 우리의 몸에 잃어버렸던 자유를 되찾아줄 것이다.

[사진 제공: 프로젝트 두줄]

제1회 일편단심 페스티벌
일자
2020.10.04. ~ 2020.12.31
장소
대학로단막극장
관련정보
https://www.playticket.co.kr/nav/detail.html?idx=1171
프로젝트 두줄
일자
2020.11.04. ~ 2020.11.11
장소
대학로단막극장
<구멍이 보인다> 작/연출/출연 박재승
<손이 온다> 작/연출
김은미
출연
김진희, 안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