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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작당모의 <용선>

똑똑 누구십니까? 요의입니다. 잘 다녀가세요.

김은한
191호 2020.11.19
대학 동아리에서 공연을 했다. 시작 전 분위기가 좋지 않아서 화장실에 갈 타이밍을 놓친 채 막이 올랐다. 시작부터 한계였다. 내 등장과 대사가 참 많았다. 춤과 노래도 있었다. 친구 배우는 그날따라 느긋하게 대사를 했다. 무대 뒷문은 소리가 커서 몰래 나갈 수도 없었다. 러닝타임은 두 시간. 죽음의 골짜기를 거닐며 공연이 무사히 끝났다. 커튼콜 이후에 몰려온 소름은 공연의 짜릿함이었을까, 되찾은 삶에 대한 환희였을까?
대학 동아리에서 공연을 했다. 시작 전 분위기가 좋지 않아서 화장실에 갈 타이밍을 놓친 채 막이 올랐다. 시작부터 한계였다. 내 등장과 대사가 참 많았다. 춤과 노래도 있었다. 친구 배우는 그날따라 느긋하게 대사를 했다. 무대 뒷문은 소리가 커서 몰래 나갈 수도 없었다. 러닝타임은 두 시간. 죽음의 골짜기를 거닐며 공연이 무사히 끝났다. 커튼콜 이후에 몰려온 소름은 공연의 짜릿함이었을까, 되찾은 삶에 대한 환희였을까?

‘작당모의’를 알게 된 것은 2019년 서울문화재단 유망예술지원(NEWStage) 심사평을 읽고 나서였다. ‘매우 독특한 텍스트를 독창적으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겠다. 더 엉뚱해져야’라는 말이 끌렸다. 별나고 실험적이라 주장한다면 관객으로서 즐거운 도전정신이 생기기도 하는 법. 그리고 전작 <구멍을 살펴라>와 <무릎을긁었는데겨드랑이가따끔하여>를 보고 사랑에 빠졌다. 작연출을 담당하는 김풍년 연출은 분명 “이야기들을 깁고, 풀어내는 골방의 이빨 빠진 할망구”임을 온 세상에 알렸다. (공식 연출 소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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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NEWStage 작품 <용선>은 남해안 별신굿을 잇고 있는 정영만 선생의 구음 시나위에서 영향을 받았다. 용선 놀이는 별신굿의 한 과장으로, 망자의 혼을 극락으로 보내고, 산자를 위로하는 굿이다. 여기선 ‘요강’을 용선으로 삼아 비워내는 이야기로 창작되었다. 부제는 “우짜든지간에, 마려운 자를 위한 비나리”. 민속학 연구가이자 요괴 소설가인 교고쿠 나츠히코는 “사람들은 예로부터 똥, 방귀 이야기를 좋아한 탓에 고약한 민담이 다수 전해지지만, 오줌은 재미가 없어서인지 많지 않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용선>은 ‘쉬-’하며 아이를 어르듯 알싸하고 우아하게 새로운 이야기를 펼친다.

무대 중앙에는 얼기설기 만들어진 원형을 중심으로 우산살처럼 줄들이 펼쳐져 있다. 이곳은 ‘벙커 타란티노’. 우리를 둘러싼 우주의 다차원이고도 할 수 있으리라. 언뜻 약한 종이 같지만, 질기고 튼튼해서 배우들은 이를 당기고 펼치고 풀고 휘감고 돌리고 초능력을 마구 날리는 데 사용한다. 물고 불고 긁고 퉁기며 제의의 악사가 되기도 하는데 이러한 활용이 인상적이었다. 원형은 어쩌면 갈라파고스 거북이 등딱지, 어쩌면 원형탈모. 팔다리를 자유롭게 넣을 수도 있고 머리를 덮을 수도 있으며 ‘용선’이 되기도 한다.

전작들에 이어서 독특한 이야기 전개. 이번엔 한층 더 혼란스럽다. 소재 덕분인지 연극 전체가 하나의 굿으로 보이니 더욱 그럴 것이다. 기억의 줄을 더듬어가며 공연을 최대한 전하려고 한다. 부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시길.
정월 새해맞이 굿을 하는 나라만신 방영희는 마렵다. 방송국 중계차도 모여있는 화제의 현장. 화장실에는 어째 들어가는 사람이 더 많다. 하는 수 없이 배꼽을 파다 보니 줄이 잡힌다. 그 줄을 따라가니 ‘벙커 타란티노’에 도착한다.
벙커에는 사람들이 있다. 저마다 줄의 재질과 사연이 다르단다. 각자의 줄은 다른 세상과 팽팽히 연결되어있다. 영희는 과연 어디로 줄을 풀고 나갈 수 있을까?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은 ‘왜 이리 마려운지, 구음 때문인지’ 문제의 원인을 찾는 단서가 될 수도 있다. 의미를 찾으려 하면 고달프다. 양동이를 목에 건 호랑이인지 짐승 형상의 무엇이 핀잔을 준다. “한쪽 발로 깁스하고 한쪽 발로 작두를 타던 나라만신 방영희는 어디 갔나. 못 봐주겠어. 굿판에 집중 못 하고, 차라리 쏟아내 버리라고. 요실금이 굿판을 살릴지도 모르잖아.” 하지만 여전히 부끄럽다. 훌라후프에서 단체 문자까지 돌릴 수 있는 모든 걸 돌리면서 내가, 내가 아니라고 노래를 고래고래 불러 봐도 소용이 없다. 영희는 닭, 말, 소, 원숭이 등 다른 동물의 형태로 과거의 기억과 만난다. 태국에도 트랜스 상태에서 호랑이나 원숭이가 되어 사찰에 뛰어드는 의식이 있으니, 이는 영희의 신통력을 드러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한편 ‘지도에도 없는 섬’에서는 활화산을 오줌발로 제압한 ‘수줍은 새색시’가 대대로 섬을 지키고 있다. 오줌을 원 없이 싸라는 의미로 암막새, 잘 막으라고 수막새를 낳는다.
고무줄놀이하던 영희. 배우들은 허공을 땅으로 삼아 발을 놀린다. 정신없이 넘다 보니 알싸한 기운이 올라와 발끝에 고무줄을 걸어준다. 초능력의 시작이다.
‘세계의 경이 초능력 유리겔라 쇼’를 보는 영희와 동생 영수. 유리겔라의 가공할 마술 솜씨가 큰 웃음을 준다. 작당모의 특유의 구수하고 낯선 웃음은 <용선>에서도 여전하다. 한결같이 돌팔이 약장수 같은 정겨움이 있다. 장난과 놀이가 배우의 몸을 입어 극장에서 행해지는 쾌감이 굉장했다. 손가락을 비틀어 끊어내는 소리가 얼마나 실감 나던지. 문득 모든 게 신기하던 옛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다. <용선>에 나타나는 유머의 소재는 유리겔라, 맥가이버, 어린왕자 등, 특정 세대에게 강하게 어필할 법한 소재이지만, 함께 작품을 만들며 꾸준히 언어를 공유한 배우들의 뻔뻔함, 강렬함은 세대 구분 없이 전해졌으리라. 다양한 웃음의 방식을 원하고 찾고 있는 관객에겐 사막의 샘과도 같다. 무대가 비어있을수록, 표현이 간략할수록 관객의 상상력으로 보완해야 하는 부분이 늘어난다. <전원일기>, 나 <검정 고무신>처럼 이제는 낯설어진 풍경을 극 속에서 자연스레 불러일으키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유리겔라와 함께 뛰어나간 영수. 숟가락을 못 구부릴까 봐 펜치로 전부 끊어놓았다가 회초리를 맞는다. 영수의 텔레파시는 장롱에 반사되어 선풍기에 회전하더니 모기장을 통과하고 굴절하여 영희의 아랫배를 관통하여 오줌보를 느슨하게 한다. 온몸을 훑고 지나간 알싸함은 온 방바닥을 적신다. 현재의 영희는 확인하고 싶다. 자신의 구음이 오줌을 부르는 것인가?
또 다른 과거. 영희는 죽음의 골짜기를 경험한다. 무대 한편에 마련된 삼촌의 집은 다섯 명이 들어앉아 눕기에는 너무나 좁다. 화장실에 도무지 갈 틈이 없다. 온갖 물의 이미지가 배우의 음성을 통해 전달된다. 눈물, 목욕물, 요강을 채우는 다양한 박자. 밤새 사막에 샘이 넘쳐흐르듯 차오른 요강에 영희는 누워서 새벽을 맞아 햇빛과 함께 끓어오른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참은 영희의 배는 환태평양 조산대가 된다. 험한 파도를 뚫고 지도에도 없는 섬으로 간다. 그곳에서 수줍은 새색시와 함께 활화산을 잠재우고 위기에 처한 수막새를 구해낸다.
꽉 찬 통을 비워야 한다. 수줍던 영희는 부끄러움을 내버리고 비우는 굿을 올린다. 용선 놀이와 함께 묵은 기운을 털어내고, 새로운 기운을 맞이하며 극은 끝난다. 앞으로 작당모의는 어떤 이야기를 풀어갈 것인가? 팸플릿의 가상 문답에는 “네(네치킨)”하고 대답하는 작가가 있다. 짐짓 수긍하는 척 딴마음을 품고 있는 모습이 유쾌하게 음흉하다. 차츰 엉뚱한 곳으로 가버릴 것만 같다.

줄을 풀고 싶다. 언젠가 일어나야 할 걸 알면서도 가득 채운 채 누워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초능력이 나를 돌보면 좋으련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세상이 새삼 무섭다. 마냥 빌기만 할 수도 없다. 언제나 기원 이후의 태도가 중요할 테니. 각자의 업에서 묵은 것을 털어내야 할 때다. 고단한 세월을 잘 견디며 원 없이 누리기 위해서.

[사진 제공: 작당모의]

용선 – 마려운 자를 위한 비나리
일자
2020.10.29. ~ 2020.11.08
장소
스튜디오SK
작/연출
김풍년
출연
이미숙, 권정훈, 김용희, 박은경
조명
정유석
음악
옴브레
분장
장경숙
의상
이수원
사진
박태준
안무
금배섭
공간
야무실
작당모의
관련정보
http://ticket.interpark.com/Ticket/Goods/GoodsInfo.asp?GroupCode=200082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