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검색

검색영역

창작집단 여기에 있다 <안PARK ; 다시 만난 세계>

방 안에서 끝날 줄 알았던 공연이 실제의 공원에서 끝날 것임을 알았을 때

김기일_연출가
192호 2020.12.03
숨이 가득 찼던 마스크를 벗는다 강북구 오현로25길 나길 34 금강빌라 203호, 공연장이라기엔 낯선 주소를 찾아간다. 오르막길을 한참 오르고, 격자 모양으로 촘촘히 펼쳐진 골목길을 돌아다니다 보면 비슷비슷한 작은 빌라들 속 오늘의 목적지가 보인다. 11시, 14시, 17시 하루 세 차례 이뤄지는 공연에서 나를 위해 준비된 공연은 오전 11시, 관객은 나 혼자다.
숨이 가득 찼던 마스크를 벗는다
강북구 오현로25길 나길 34 금강빌라 203호,
공연장이라기엔 낯선 주소를 찾아간다. 오르막길을 한참 오르고, 격자 모양으로 촘촘히 펼쳐진 골목길을 돌아다니다 보면 비슷비슷한 작은 빌라들 속 오늘의 목적지가 보인다. 11시, 14시, 17시 하루 세 차례 이뤄지는 공연에서 나를 위해 준비된 공연은 오전 11시, 관객은 나 혼자다.

예지동 시계골목에서 벌어졌던 공연팀의 이전 공연 <intermission>을 떠올리며, 입장을 기다린다. 수화기 너머 배우와 대화하며 시계골목을 돌아다니는 관객 1인의 이동형 공연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출발지가 방 안이다. 그것도 누군가 ‘실제로’ 살고 있는 가정집 안. 공연 10분 전, 문자로 받은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조심스레 집 안으로 들어간다.

작은 빌라의 거실, 탁자엔 문진표와 손 세정제가 놓여있다. 사람은 없고, 나 혼자다. 적힌 안내대로 손을 닦고, 문진표를 작성한다. 공연 시작을 기다리다 누군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화장실을 사용한다. 타인의 공간을 침해하는 듯한 약간의 어색함과 조금의 불편함. 이 사적인 공간의 주인에 대한 상상력이 발동되고 이내 지우길 반복한다.

혼자 있는 공간이니 마스크를 벗어도 된다는 안내가 보인다. 오르막길을 올라오며 숨이 가득 찼던 마스크를 벗는다. 아마 오늘 볼 이 공연이 내가 올해, 처음으로 마스크를 벗고 관람하는 공연일 것이다.
대안의 공원에서 대안의 산책을 해보려고 합니다
오전 11시, 스스로 문을 열고 거실에서 방으로 들어간다. 모니터가 붙어있는 런닝머신이 놓여 있다. 방의 바닥과 주변에는 인조잔디와 수목들이 놓여있고 러닝머신 위 내 발을 볼 수 있는 태블릿 PC가 한 켠에 있다. 창문엔 벽지가 덧대어져 있고, 몇 개의 LED 전구가 빛을 대신한다.
“기일 씨, 안녕하세요. 연극 <안PARK 다시 만난 세계>를 보러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 우리는 대안의 공원에서 대안의 산책을 해보려고 합니다. 그 전에 저희가 준비한 런닝화를 착용해 주세요.”
안내 음성이 흘러나온다. 인조잔디 위엔 내 발 치수에 맞춰 준비한 새하얀 런닝화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런닝화를 신고 러닝머신에 올라간다. 실제 공원에서 준비운동을 하는 출연자들의 녹화된 영상이 흘러나온다. 배우들의 동작을 따라 한다. 러닝머신의 안전장치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쉬고 싶을 때엔, 언제든지 멈춤 버튼을 누르고 쉬셔도 좋습니다.’는 안내가 마음에 남는다.
#현실 속 상상의 공간을 거닌다는 것
준비운동을 하던 출연자들이 공원을 떠나, 영상 속에서 각기 어딘가를 향해 걷기 시작한다. 각각 대진, 지우, 진경, 병재다. 카메라는 각각의 뒤를 따르고, 내레이션은 각자의 걸음 속도를 숫자로 알려준다. 안내에 따라 러닝머신의 속도를 조절해 영상 속 사람의 발걸음에 내 걸음을 맞춰본다. 우측 태블릿의 내 걸음과 걷는 모양을 비교해 보기도 하고, 생각보다 차이가 많은 각자의 걸음걸이와 속도에 놀라기도 해본다. 그리고 다시 자유롭게 내 걸음을 찾아보라는 안내가 나온다. 분명 내 걸음인데, 내 걸음을 찾기가 쉽지 않다. ‘나는 어떻게 걷고 있었지?’

출연자들은 지금 내가 있는 대안의 공원, 금강빌라 203호로 각자 도착한다. 지금은 인조잔디가 깔린 대안의 공원이지만, 그 이전에는 누군가의 방이었던 공간에 대한 설명이 음성으로 흘러나온다. 연출자 박세련의 방‘이었을’ 적에는, 아버지가 사 주었지만 칠 줄은 모르는 피아노가 ‘있었고’ 올해 생일선물로 친구들이 사준 침대가 ‘있었던’ 방이다. 그리고 영상 속에서 현재 내가 걷고 있는 대안의 공원이자 전 박세련의 방은, 출연자들에 의해 각기 다른 공간으로 사용된다. 대진은 삽과 화분, 포대 등의 물건들을 늘어놓고 화분의 분갈이를 하고, 지우는 가져온 집기들을 배치하고 정리하며 자신의 방처럼 꾸민다. 진경은 암실로 꾸며 사진을 인화하고, 병재는 상대 배역이 있다고 상상하며 빈 공간에서 연습을 한다. 한동안 그렇게 하나의 공간에서 흘러간 여럿의 시간이 중첩된다. 그리고 나는 중첩된 시공간, 대안의 공원을 계속 걷고 있다.

각자가 방에서 보낸 시간이 각각, 그러다 동시에 영상으로 흐르고 중간중간 각자의 내레이션이 흘러나온다. 극장은 무한한 상상의 공간이라는, 상대 배역을 상상하며 대사를 연습하는 병재의 말. 남는 것은 사진이라며 사진이 잊고 싶지 않은 순간을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진경의 말. 자의든 타의든 새로운 화분으로 분갈이를 해야 할 시기를 맞이했다는 대진의 말. 그 전 사람의 흔적을 지워내며 또 이 공간에 찾아올 다른 사람이 자신의 흔적을 지우는 모습을 상상한다는 지우의 말. 중첩되는 시공간 속의 말들은 지금, 판데믹 시절이기에 가능한 대안의 공원 속 대안의 산책길을 걷고 있는 관객인 나로 향한다. 러닝머신 위를 걷고 있는 내 안에 그렇게, 같은 시대 속 다른 시간의 산책자들이 만나는 상상의 공원이 만들어진다.

병재의 내레이션이 흐른다. “현실 속 상상의 공간을 거닌다는 것. 상상을 초월해 나를 다른 시공간으로 인도한다”
#우편함에 공원으로 가는 지도를 넣어뒀어요
영상에는 이내 공원의 밤 산책길이 1인칭 시점으로 펼쳐진다. 대안의 공원의 조명도 밤처럼 어두워진다. 한동안 흐르는 음악과 함께 영상을 좇아 관객 홀로 대안의 밤 공원을 걷는다. 영상 속 출연자들이 방의 창문을 통해 창문 밖을 바라보다 이내 사라지고, 화면도 어두워진다. 이렇게 대안의 공원 속 산책이 끝이 난다. 그리고…
‘금강빌라 1층 203호 우편함에 공원으로 가는 지도를 넣어뒀어요. 지금 우리 북서울 꿈의 숲 공원에서 만나요. 런닝화를 신고 밖으로 나가 주세요.’
지도를 따라 공원으로 향하는 길. 골목골목마다 영상에서 보였던 출연자들이 나를 기다렸다가 손을 흔들고, 하나둘씩 모여 함께 공원을 향해 산책한다. 러닝머신 위에서 맞춰봤던 걸음걸이와 속도를 눈으로 보며 맞춰본다. 다시 마스크를 쓰고, 서로의 적절한 거리를 유지한 채, 함께 실제의 공원 ‘북서울 꿈의 숲’으로 향한다.
도착한 공원에는 영상에서 보았던 넓은 공원의 풍경이 그대로 펼쳐져 있다. 판데믹이지만 마스크를 쓴 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실제의 많은 산책자들이 여전히 공원을 거닐고 있다. 실제의 출연자들이 저 멀리 공원 속 무대로 뛰어나간다. 손을 흔들며 커튼콜 인사를 하고, 나는 박수를 보낸다. 연출자가 조용히 다가와 말을 건넨다. ‘안녕하세요, 기일씨! 오늘 우리의 공연은 끝이 났습니다. 남은 시간, 기일씨만의 산책을 시작해주세요. 조심히 가세요.’
방 안에서 끝날 줄 알았던 공연이 실제의 공원에서 끝날 것임을 알았을 때
나는 실제의 공원을 한참 걷다가, 한참 앉아 있는다. 금강빌라 201호, 대안의 공원에서 시작된 대안의 산책은 대안의 공원에서 만난 산책자들과 내 안의 상상의 공원을 거쳐 실제의 공원을 산책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판데믹 시대. 많은 공연들이 취소되거나 스트리밍 등의 대안을 찾고 있는 중 ‘창작집단 여기에 있다’의 창작진은 우리를 상상의 공간에서 서로 만나게 한다. 대안의 공원이라고 이름 붙인 특정 공간에 각자의 시간을 중첩 시키고, 극장이라는 장소의 대안을 우리 안 상상의 영역으로 옮겨온다. 오늘 혼자서 러닝머신 위를 걸었던 이 공연이 모니터 너머 극장에서 스트리밍되는 다른 공연들보다, 더 누군가와 함께하는 느낌을 준 공연이었다고 말한다면 과장일까?

방 안에서 끝날 줄 알았던 공연이 실제의 공원에서 끝날 것임을 알았을 때, 거리에서 나를 기다리는 출연자가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들 때 내 안의 반가움을 숨기기 어려웠다. 대안의 극장을 지나, 현실의 극장에서 곧 다시 만날 수 있길, 바란다.

[사진 제공: 창작집단 여기에 있다]

안PARK [안:팍] 다시 만난 세계
일자
2020.11.11. ~ 2020.11.15
장소
서울 강북구 번동 금강빌라 203호
구성/연출
박세련
작/출연
김지우, 문병재, 이진경, 정대진
시노그래퍼
김지우
음악
채군
홍보디자인
Muer
후원
강북문화재단
창작집단 여기에 있다
관련정보
https://www.playticket.co.kr/nav/detail.html?idx=1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