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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북새통 <래러미 프로젝트: 십 년 후>

사건 이후에 찾아오는 세계, 퇴행과 결별하려는 지금의 용기

나영정_퀴어활동가
192호 2020.12.03
연극 <래러미 프로젝트>, <래러미 프로젝트: 십 년 후>는 어떤 사고가 발생한 이후, 그것이 사건이 되고, 그로 인해서 사람과 장소가 변화하는(하지만 일방향적이거나 선형적이지 않은) 사건화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작품이다.
연극 <래러미 프로젝트>, <래러미 프로젝트: 십 년 후>는 어떤 사고가 발생한 이후, 그것이 사건이 되고, 그로 인해서 사람과 장소가 변화하는(하지만 일방향적이거나 선형적이지 않은) 사건화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작품이다. 와이오밍주 래러미라는 지역에서 게이남성을 표적으로 발생한 살해라는 증오범죄는 미국 전역을 흔들었고, 세계적으로도 영향을 주었다. 사건 발생 11년 후 오바마 대통령은 연방 증오범죄 대상 항목에 성적지향 등을 포함하고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에 사인했다.
예술은 무엇을 했을까. 텍토닉 씨어터 프로젝트의 단원 9명은 사건이 발생하고 얼마 후, 그리고 십 년 후에 다시 래러미에 모여서 주민들과 만나 인터뷰를 하고 조사를 해서 함께 극본을 완성해나갔다. 사건이 발생한 지 4주 만에 현장으로 찾아가 긴급하게 움직이고, 또한 10년 후에 다시 찾아가서 변화를 추적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연극을 대하는 나의 자세를 다르게 만들었다. 이 연극이 그렇게 만들어졌다는 것은 배우들이 관객들을 평소처럼 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고, 이 연극을 찾아가서 본다는 것은 보통의 관객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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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마정화가 옮기고 열화당에서 출판된 책 덕분에 이 연극의 방법론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고 숙고할 기회를 가졌다. 모이세스 코프먼은 머리말에서 “어떤 사건으로 인해 그 사회와 문화에 만연한 다양한 이데올로기나 믿음에 날카롭게 집중해야만 하는 역사적인 순간이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사건은 사회의 철학과 믿음의 정수를 끌어당겨 증류하는 피뢰침 같은 것이 되어 버린다. 그때 사람들이 하는 말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면, 그 만연한 생각들이 단지 개인의 삶뿐만이 아니라 넓게는 사회 문화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들을 수 있게 된다.” 그는 브레히트의 ‘서사극’에서 래러미 프로젝트를 실현시켜나갈 방법을 찾았다고 했다. 이 방법은 완벽한 모방과 재현을 통해서 실연하는 것이 연극의 목적이 아니라 사건에 대해 비판적 판단을 이끄는데 실질적인 사회적인 의미가 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방법론으로 만들어지고 공연된 덕에 인권활동가로서의 나는 이 모든 과정에 상당한 일체감을 가지게 되었다. 어떤 사고가 일어나면 무엇을 해야 하지? 사고를 사건으로 파악하고, 그 사건이 불행이나 추문이 아니라 역사적 구조에 위치하도록 조직하는 일, 사람들을 만나고 기록하고 인식의 차이를 발견하고, 토론하고 논쟁하며 나아갈 방향을 가늠하는 일, 그 과정에서 좀 더 책임이 있는 사람과 권력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규명하고 요구하는 일, 다시는 이러한 죽음이 발생하지 않도록 가능한 모든 것을 바꾸는 일... 하지만 대도시에서 대정부를 상대로 벌어지는 많은 대응 활동 과정에서 구체적인 지역적 장소를 기반으로 소위 피해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는 많지 않다. 소위 ‘공중전’이라고 하는 언론 등에서 양측의 대립하는 대표선수들이 나와서 여론을 대표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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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후를 살아가기
<래러미 프로젝트: 십 년 후>는, 증오범죄라는 사건이 래러미 지역의 사람들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에 대한 질문을 품고 다시 찾아가서 사람들을 만난다. 문화학자 엄기호는 사고와 사건을 구분한다. 세월호를 사건화하고 싶지 않았던 세력은 사고로 치부하고, 수학여행 사고 또는 교통사고에 비유했다. 엄기호는 무언가를 사건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사건이 일어나기 이전과 후가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낯설고 혼란스러운 상황을 기꺼이 맞이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전과 다르다는 것을 설명하려면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지만 혼란과 고통을 겪어내야만 새로운 언어를 길어 올릴 수 있기 때문에 보통의 사람들은 익숙한 과거로 돌아가려고 하지만 그것은 퇴행일 뿐이며, 이후를 살아가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나는 이행의 과정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한다.

사건 발생 후 래러미에서는 와이오밍 주립대학을 중심으로 증오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사회정의를 확대하려는 의지와 매튜 셰퍼드의 사건을 연결하는 이행의 움직임이 지속되고 있었다. 동시에 한편에서는 증오범죄라는 의미를 지우고 단순 강도 사건으로, '가해자들이 마약에 취해 벌어진 사고'로 사건을 규정하고, 매튜 셰퍼드를 어린 소년의 성을 착취하는 습성을 가졌다는 의혹을 가진 사람으로 만드는 퇴행이 진행되고 있었다. 여기에 주류 상업 언론이 가담하면서 이제 래러미 주민들에게 이 사건은 왜곡되고 분열되고 경합하는 진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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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기억의 조작과 의미의 이동은 래러미에서 석탄 매립지가 발견되고 새로운 호황이 시작되었던 것과 관련이 있다는 뉘앙스를 발견할 수 있었다. 주민들은 이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반복해서 말했다. “래러미는 변했고, 사람들은 지쳤고, 일상으로 돌아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와이오밍 대학교에서는 매년 매튜의 기일에 즈음하여 사회정의 심포지움이 열렸고 결국엔 대학에서 동성 파트너쉽을 인정하는 학칙이 통과되었는데 곧 또다시 찾아온 불황은 예산이 허락할 때만 발동한다는 단서조항을 정당화했다. 연극은 와이오밍주 결혼보호법에 대한 반대결의안이 통과되고(공화당 의원들의 개심으로) 오바마가 증오범죄 방지법에 사인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이 지극한 이행과 퇴행의 반복과 투쟁을 확인하는 것 자체는 새로운 일이 아니다. 2020년 한국사회에서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래러미 프로젝트: 십 년 후>를 통해서 나는 강력한 이행을 위한 자원을 확인했다. 사건 이전을 낭만화하는 것을 단호히 거절하고, 사건으로 달라진 나와 타인, 환경을 이해하며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고 의미 있게 살아가려는 분투들을 구체적으로 확인한 것이다. 또 하나는 퇴행을 만드는 것이 바로 경제적인 이윤을 독점하려는 시도와 강력하게 연관된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퇴행은 쉽게 오해하듯 낡고, 쓸모없고, 나이 들고, 병든 것이 아니다. 퇴행은 세월호 사건을 사고로 축소하려고 했던 것처럼 사건 발생의 원인이 되는 불평등의 원천을 옹호하기 위해서 동원되는 논리이며, 대중들에게 옛날에 대한 향수를 가지게 함으로써 지금의 고통을 의미 없이 견디게 만든다. 불평등과 혐오의 원천은 경제성장의 과실을 소수가 독점하기 위해서 대다수 사람의 삶을 짓밟고 서로를 혐오하고 차별하게 만드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장을 위해서 침묵을 견디면 과거의 영광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거짓 희망이 퇴행을 계속해서 가능하게 한다. 돈을 돌게 해준다는 석탄을 캐내느라 뚫어댄 래러미의 구멍은 이제 환경파괴로 인한 재앙으로 돌아왔다. 2020년 세계는 지금 코로나19를 통과하고 있다. 이 혼란과 고통의 시간이 이후의 삶에서 의미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사진 제공: 최지훈ⓒ플랜Qx극단 북새통]

래러미 프로젝트 : 십년후
일자
2020.11.05. ~ 2020.11.15
장소
연희예술극장
작
모이세스 코프먼+텍토닉 씨어터 프로젝트(2009)
번역/드라마터그
마정화
연출
남인우
출연
김소리, 남수현, 박선희, 박세정, 백동현, 윤동원, 주혜원, 최다은
조연출
송정희
시노그래퍼
여신동
사운드디자인
서희숙
그래픽디자인
플락플락
제작
고주영, 김진희
관련정보
https://www.playticket.co.kr/nav/detail.html?idx=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