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봄 작가 겨울 무대 <미국연극/서울합창>
모두의 목소리로 하나의 이야기를 불러보면
박다솔
193호
2020.12.17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Ctrl + V, 붙여넣기해서 사용하세요
<미국연극/서울합창>은 극작가 이홍도의 신작으로, 극단 907의 설유진이 연출을 맡아 ‘봄 작가, 겨울 무대’의 무대에 올랐다. 이홍도는 202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서 <컬럼비아대 기숙사 베란다에서 뛰어내린 동양인 임산부와 현장에서 도주한 동양인 남성에 대한 뉴욕타임즈의 지나치게 짧은 보도기사>라는 긴 제목의 작품으로 등단을 한 작가다.
<미국연극/서울합창>은 극작가 이홍도의 신작으로, 극단 907의 설유진이 연출을 맡아 ‘봄 작가, 겨울 무대’의 무대에 올랐다. 이홍도는 202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서 <컬럼비아대 기숙사 베란다에서 뛰어내린 동양인 임산부와 현장에서 도주한 동양인 남성에 대한 뉴욕타임즈의 지나치게 짧은 보도기사>라는 긴 제목의 작품으로 등단을 한 작가다. 그는 <미국연극/서울합창> 희곡의 서두에서 이 작품과 그의 등단작이 서로에게 스핀오프 격인 작품이라고 말하며, 두 작품이 하나의 공통된 세계관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을 밝힌다. 두 작품은 모두 작가인 ‘나’가 분열된 자아와 함께 무대에 등장해, 연극을 둘러싼 세계와 창작 및 창작과정에 대한 자기 비판적 태도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메타연극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미국연극/서울합창>은 ‘2020년의 나’가 미국 미시시피에서 교환학생을 마치고 뉴욕 맨해튼으로 건너가 “무슨 짓을 해서라도 뉴욕에서 살아남겠다.”,“한국으론 절대 돌아가지 않겠다.”며 몸부림치던 ‘2015년의 나’가 겪은 일들을 회상하는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내 멋대로 이 작품의 제목을 풀어 써 보자면, <미국연극/서울합창>은 미국에서 연극을 하려던 ‘2015년의 나’를 ‘2020년의 나’가 서울에서 합창하듯 들려주는 연극이다.
‘2015년의 나’는 뉴욕에 도착해 한인민박집에 머물며 베트남 식당에 불법 취업을 하지만, 급여가 밀리며 빈털터리로 거리에 나앉게 된다. 당장 먹고 잘 곳과 돈이 필요하게 된 ‘2015년의 나’는 공원 노숙인의 말을 따라 유명 재즈클럽 뒷문에 위치한 시크릿 아시안 페티쉬 클럽 ‘더 오리엔탈’을 찾아가게 되고, 그곳에서 일을 시작하며 예기치 못한 사건들에 휘말리게 된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작가의 전작 <컬럼비아대 기숙사 베란다에서 뛰어내린->에서 등장인물인 ‘나’가 2015년에 쓰고 있었던 작품에 대해 설명할 때 언급되는 내용이다. 따라서 <미국연극/서울합창>에서 이어지는 이후의 이야기는 작가가 전작에서 미완에 그쳤던, 혹은 발표하지 못했던 이야기의 완성/출품이자 새로운 작품의 시작과도 같다. 이처럼 <미국연극/서울합창>의 관객들은 작가 이홍도가 2019년에 쓴 작품 속에 등장하는 ‘나’가 2015년에 썼노라 주장하는 작품을 2020년에 극장에서 보게 되면서 작가가 설계한 시간 안으로 자연스레 편입하게 된다.
‘2015년의 나’는 뉴욕에 도착해 한인민박집에 머물며 베트남 식당에 불법 취업을 하지만, 급여가 밀리며 빈털터리로 거리에 나앉게 된다. 당장 먹고 잘 곳과 돈이 필요하게 된 ‘2015년의 나’는 공원 노숙인의 말을 따라 유명 재즈클럽 뒷문에 위치한 시크릿 아시안 페티쉬 클럽 ‘더 오리엔탈’을 찾아가게 되고, 그곳에서 일을 시작하며 예기치 못한 사건들에 휘말리게 된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작가의 전작 <컬럼비아대 기숙사 베란다에서 뛰어내린->에서 등장인물인 ‘나’가 2015년에 쓰고 있었던 작품에 대해 설명할 때 언급되는 내용이다. 따라서 <미국연극/서울합창>에서 이어지는 이후의 이야기는 작가가 전작에서 미완에 그쳤던, 혹은 발표하지 못했던 이야기의 완성/출품이자 새로운 작품의 시작과도 같다. 이처럼 <미국연극/서울합창>의 관객들은 작가 이홍도가 2019년에 쓴 작품 속에 등장하는 ‘나’가 2015년에 썼노라 주장하는 작품을 2020년에 극장에서 보게 되면서 작가가 설계한 시간 안으로 자연스레 편입하게 된다.
두 작품의 다른 점이라면, 전작에서는 작품 속의 ‘나’가 현실의 연극 세계를 이루고 있는 권력과 (제대로 된) 작품을 쓰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비판적이고 회의적으로 바라봄과 동시에 그럼에도 그것들을 열망하는 이질적이고 절박한 마음을 그려내고 있다면, <미국연극/서울합창>에서는 연극을 하려 했을 뿐인데 연극보다 더 연극 같은 현실들이 거듭 자신을 덮쳐왔던 지극히 사적인 ‘2015년의 나’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는 것이다.
<미국연극/서울합창>의 뒷이야기는 이렇다. ‘2015년의 나’는 밤에는 ‘더 오리엔탈’에서 일을 하고 낮에는 뉴욕주립대의 연극제작 워크숍에서 스태프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하지만 그는 풀타임 비자가 없는 동양인 학생이라는 이유로, 퀴어라는 이유로 차별을 겪으며 연달아 심리적, 물리적으로 폭력적인 사건들에 노출된다. 이 폭력들이 벌어지는 관계의 층위도 다양하다. 고용주가 고용인을, 백인이 동양인을, 퀴어가 퀴어를, 한국인이 한국인을, 이성애자가 동성애자를 차별하고 혐오한다. 화려한 조명 아래 빛나는 무대, 별들의 무대인 뉴욕에서 연극을 하리라 기대했던 ‘2015년의 나’는 이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자신이 쫓았던 화려한 별들이 실상을 알지 못해 품었던 허상에 불과한 것이었음을 받아들이고 한국 귀국을 결심하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20년 겨울, ‘2020년의 나’는 ‘2015년에 미국에서 연극을 하려 했던 나’의 이야기를 관객들 앞에 펼쳐 놓는다.
<미국연극/서울합창>의 뒷이야기는 이렇다. ‘2015년의 나’는 밤에는 ‘더 오리엔탈’에서 일을 하고 낮에는 뉴욕주립대의 연극제작 워크숍에서 스태프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하지만 그는 풀타임 비자가 없는 동양인 학생이라는 이유로, 퀴어라는 이유로 차별을 겪으며 연달아 심리적, 물리적으로 폭력적인 사건들에 노출된다. 이 폭력들이 벌어지는 관계의 층위도 다양하다. 고용주가 고용인을, 백인이 동양인을, 퀴어가 퀴어를, 한국인이 한국인을, 이성애자가 동성애자를 차별하고 혐오한다. 화려한 조명 아래 빛나는 무대, 별들의 무대인 뉴욕에서 연극을 하리라 기대했던 ‘2015년의 나’는 이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자신이 쫓았던 화려한 별들이 실상을 알지 못해 품었던 허상에 불과한 것이었음을 받아들이고 한국 귀국을 결심하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20년 겨울, ‘2020년의 나’는 ‘2015년에 미국에서 연극을 하려 했던 나’의 이야기를 관객들 앞에 펼쳐 놓는다.
무대 위에는 폭이 넓고 길이가 긴 4단으로 된 계단 무대가 낮게 쌓여있다. 곧이어 형형색색의 의상을 입은 여섯 명의 배우가 무대 위로 등장한다. 이들이 입은 옷은 놀이동산의 퍼레이드 의상 그 이상으로 과장되어 있고, 어느 것 하나 평범한 것이 없어 오히려 무어라 규정할 수 없는 중구난방인 모습에 가깝다. 그러나 이 ‘과한’ 의상은 도리어 무대 위에 서 있는 인물들의 성(性), 나이, 신체적 특징들을 감추고 교란하며, 이 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외피에 대한 편협한 상상을 억누른다.
작품의 화자인 ‘2015년의 나’는 이 작품에서 자신을 ‘퀴어’라고 밝힌다. 그리고 친구를 만들고, 약을 하고, 손님에게 성희롱과 인종차별을 겪고, 이간질과 폭행, 감금을 당하게 되는 복합적인 장소, ‘더 오리엔탈’에는 그처럼 다양한 성 정체성과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일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무대화를 거치며 희곡 속에 묘사되어 있는 등장인물들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지워내고 그들의 성 정체성을 가늠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인물과 상황을 연출하여, 이들의 소수자성을 바라보게 하기보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앞세운다. 이는 배우들이 대사를 발화하는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무대 위 배우들은 지문을 포함해 희곡에 적힌 거의 모든 글자를 소리 내어 발화한다. 그리고 이 활자들은 때때로 저마다의 방식으로 분절되어 배우들의 다양한 목소리로, 리듬으로, 박자로 ‘연주’된다. 배우들은 때론 특정한 인물을 맡아 연기하지만, 그 외에는 여러 인물의 대사를 나누어 말하기 때문에 등장인물의 특정한 물리적, 심리적 성질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특히, 이야기의 중심인 ‘2015년의 나’를 연기하는 황순미의 목소리와 어조는 무채색이라 부르고 싶은 어떤 것이었는데, 그의 목소리는 관객들이 ‘2015년의 나’가 겪는 일들에 동요되지 않고 거리를 두며 이야기를 따라가도록 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한다.
작품의 화자인 ‘2015년의 나’는 이 작품에서 자신을 ‘퀴어’라고 밝힌다. 그리고 친구를 만들고, 약을 하고, 손님에게 성희롱과 인종차별을 겪고, 이간질과 폭행, 감금을 당하게 되는 복합적인 장소, ‘더 오리엔탈’에는 그처럼 다양한 성 정체성과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일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무대화를 거치며 희곡 속에 묘사되어 있는 등장인물들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지워내고 그들의 성 정체성을 가늠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인물과 상황을 연출하여, 이들의 소수자성을 바라보게 하기보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앞세운다. 이는 배우들이 대사를 발화하는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무대 위 배우들은 지문을 포함해 희곡에 적힌 거의 모든 글자를 소리 내어 발화한다. 그리고 이 활자들은 때때로 저마다의 방식으로 분절되어 배우들의 다양한 목소리로, 리듬으로, 박자로 ‘연주’된다. 배우들은 때론 특정한 인물을 맡아 연기하지만, 그 외에는 여러 인물의 대사를 나누어 말하기 때문에 등장인물의 특정한 물리적, 심리적 성질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특히, 이야기의 중심인 ‘2015년의 나’를 연기하는 황순미의 목소리와 어조는 무채색이라 부르고 싶은 어떤 것이었는데, 그의 목소리는 관객들이 ‘2015년의 나’가 겪는 일들에 동요되지 않고 거리를 두며 이야기를 따라가도록 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한다.
연출은 이 작품을 통해 느낄 수 있을법한 일말의 감정적 호소나 연민의 가능성을 걷어내고, 무대가 만들어낼 수 있는 이미지들마저도 때론 활자화함으로써 장면 연출을 관객의 상상력에 기댄다. 예를 들어, 음악이 고조되며 배우들이 ‘출연진 전원 한 명씩 제멋대로 춤을 춘다.’라는 행동 지문을 읽을 때, 이들은 춤추지 않는다. 배우들은 제 자리에 서 있고, 관객들은 ‘춤을 춘다.’라고 말하는 배우들의 행동 지문을 들으며 그 몸 위로 춤추는 몸을 덧대어 상상한다.
이 극에서 폭력을 다루는 방식도 이와 유사하다. ‘2015년의 나’가 길거리에서 성희롱을 당했던 기억을 쏟아내는 독백은 육성으로 발화되지 않고 극장 벽면에 텍스트로 스크리닝하여 시각화된다. ‘2015년의 나’에게 상처를 줬던 사람들과의 대화는 마이크를 통해 활자를 출력하면서 그 텍스트들의 크기를 확대하는 식이다.
연출 설유진은 이 작품에서 폭력을 재현하거나 전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폭력 사건들을 건조한 시선으로 다루면서 관객과 거리두기를 하고 이를 비판적 시선으로, 실상을 마주하기를 은근하게 권유한다. 거짓된 이미지, 꾸며진 현상, 헛된 표현들은 ‘2015년의 나’가 미국에서 봤던 화려하고 공허한 별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공연의 마지막 장면은 결국 작가가 된 ‘2020년의 나’가 지난 시간들의 축적이 현재를 이루고 있음을, 그 길었던 여름의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오늘을 이뤄낸 것임을 읊조리며 끝이 난다. 이 마지막 장면은 아쉬움이 남는다. 공연의 시작부터 사건들과 인물들을 관객들로부터 멀리 떼어놓으며 거리를 유지하던 작품이, 앞선 태도와는 다르게 다소 감상적인 마무리를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작품 전체적으로 봤을 때, ‘2020년의 나’가 ‘2015년의 나’와 맺는 관계가 다른 ‘코러스’ 역할과 크게 다를 바 없이 해설자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한 점은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다.
이 극에서 폭력을 다루는 방식도 이와 유사하다. ‘2015년의 나’가 길거리에서 성희롱을 당했던 기억을 쏟아내는 독백은 육성으로 발화되지 않고 극장 벽면에 텍스트로 스크리닝하여 시각화된다. ‘2015년의 나’에게 상처를 줬던 사람들과의 대화는 마이크를 통해 활자를 출력하면서 그 텍스트들의 크기를 확대하는 식이다.
연출 설유진은 이 작품에서 폭력을 재현하거나 전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폭력 사건들을 건조한 시선으로 다루면서 관객과 거리두기를 하고 이를 비판적 시선으로, 실상을 마주하기를 은근하게 권유한다. 거짓된 이미지, 꾸며진 현상, 헛된 표현들은 ‘2015년의 나’가 미국에서 봤던 화려하고 공허한 별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공연의 마지막 장면은 결국 작가가 된 ‘2020년의 나’가 지난 시간들의 축적이 현재를 이루고 있음을, 그 길었던 여름의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오늘을 이뤄낸 것임을 읊조리며 끝이 난다. 이 마지막 장면은 아쉬움이 남는다. 공연의 시작부터 사건들과 인물들을 관객들로부터 멀리 떼어놓으며 거리를 유지하던 작품이, 앞선 태도와는 다르게 다소 감상적인 마무리를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작품 전체적으로 봤을 때, ‘2020년의 나’가 ‘2015년의 나’와 맺는 관계가 다른 ‘코러스’ 역할과 크게 다를 바 없이 해설자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한 점은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다.
이 리뷰 글을 중간쯤 썼을 때, 작가로부터 희곡 대본을 받아보게 되었다. 많은 기호와 약속, 형식 실험의 시도들이 눈에 가득 들어왔다. 한편으로는, 공연을 위해 덜어내고 다시 엮어낸 부분들도 자주 눈에 띄었다. 결국, 희곡이라는 것은 무대화 과정을 통해 관객들을 만나 완성된다. ‘2015년의 나’를 잘 버텨내준 ‘2020년의 나’에게, 그 시간 동안 자신을 잘 벼리어 이 작품을 완성하고 무대에 올리게 된 작가에게 축하의 말을 전하고 싶다. 이 다음, 어디에서 어떤 이야기로 만나게 될지 궁금하다.
[사진 제공: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0 봄 작가, 겨울 무대
미국연극/서울합창
- 일자
- 2020.11.20. ~ 2020.11.22
- 장소
-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 작
- 이홍도
- 연출
- 설유진
- 출연
- 류경인, 박지아, 백혜경, 신윤지, 황선화, 황순미
- 무대
- 신승렬
- 조명
- 신동선
- 음향/영상
- 목소
- 의상
- 강기정
- 분장
- 장경숙
- 안무
- 하영미
- 무대감독
- 원소미
- 극단 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