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그룹 빠-다밥 <추락 1>
불완전하고 고통스러운 ‘되기’ 너머에서
하은빈
193호
2020.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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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나빠지는 세계 속에서 살아남으려 애쓰는 동안, 임계치에 달한 고통의 총량을 줄이는 일이 공동체의 시급한 과제로 부상한 듯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점차 서로의 고통을 대하는 모종의 태도를 합의하게 된 것 같았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는 조심성이나, 아주 작은 말과 행동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예민함 같은 것이, 말하자면 이미 지나치게 아픈 서로를 실수로라도 더 찌르지 말자는 식의 어떤 '거리두기'가 일종의 예의나 규범으로 자리잡아갔다. 우리는 어쩌면 각자의 방에서 어떤 몸짓들을 허공에 연습했던 것도 같다. 무심코라도 누군가의 상처를 밟지 않도록 움츠리는 순발력을. 함부로 타인의 피부와 닿지 않도록 비껴나가는 유연함을.
매일매일 나빠지는 세계 속에서 살아남으려 애쓰는 동안, 임계치에 달한 고통의 총량을 줄이는 일이 공동체의 시급한 과제로 부상한 듯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점차 서로의 고통을 대하는 모종의 태도를 합의하게 된 것 같았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는 조심성이나, 아주 작은 말과 행동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예민함 같은 것이, 말하자면 이미 지나치게 아픈 서로를 실수로라도 더 찌르지 말자는 식의 어떤 '거리두기'가 일종의 예의나 규범으로 자리잡아갔다. 우리는 어쩌면 각자의 방에서 어떤 몸짓들을 허공에 연습했던 것도 같다. 무심코라도 누군가의 상처를 밟지 않도록 움츠리는 순발력을. 함부로 타인의 피부와 닿지 않도록 비껴나가는 유연함을.
그러나 촉각을 곤두세울수록 밟아선 안 되는 곳들이 더 많이 눈에 띄었으므로 우리는 점점 더 곡예하듯 걷게 되었다. 한편으로, 필사적으로 서로의 상처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그 몸짓들은 오히려 타인의 고통에 절대적으로 무관한 사람이 되려 하는 윤리적 결벽증처럼 보이기도 했다. 우리는 모두 가급적 무결하고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었으나 사람인 이상은 불가능한 바람이었다. 뿐만 아니라 쓸쓸한 일이기도 했다. 통증을 유발하지 않으려다가 누구도 만나지 못한다는 것은. 우리는 서로의 아픔이 서로와 무관하다는 사실만 가까스로 입증하고는 궁색한 얼굴로 헤어졌다. 프로젝트그룹 빠다밥의 <추락 1>을 보면서 그런 순간들에 대해 생각했다. 고통은 그대로 있고, 그저 우리가 서로에게서 그저 분리됨으로써 끝이 나던 순간들을.
그러나 촉각을 곤두세울수록 밟아선 안 되는 곳들이 더 많이 눈에 띄었으므로 우리는 점점 더 곡예하듯 걷게 되었다. 한편으로, 필사적으로 서로의 상처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그 몸짓들은 오히려 타인의 고통에 절대적으로 무관한 사람이 되려 하는 윤리적 결벽증처럼 보이기도 했다. 우리는 모두 가급적 무결하고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었으나 사람인 이상은 불가능한 바람이었다. 뿐만 아니라 쓸쓸한 일이기도 했다. 통증을 유발하지 않으려다가 누구도 만나지 못한다는 것은. 우리는 서로의 아픔이 서로와 무관하다는 사실만 가까스로 입증하고는 궁색한 얼굴로 헤어졌다. 프로젝트그룹 빠다밥의 <추락 1>을 보면서 그런 순간들에 대해 생각했다. 고통은 그대로 있고, 그저 우리가 서로에게서 그저 분리됨으로써 끝이 나던 순간들을.
<추락 1>은 2018년 7월 배우 박화란이 겪었던 상실과, 그 고통이 야기하는 고립에 대해 다루는 1인극이다. 박화란은 학교에서 공연준비를 하던 도중 그날 오후 발생한 마린온 헬기 추락 사고 소식을 접한다. 이륙한 지 1분도 채 되지 않아 추락한 그 헬기에는 화란의 사촌오빠가 타고 있었다. 이 연극은 화란이 사고 소식을 전해 듣던 순간부터, 낯선 도시에서 사촌오빠의 시신을 인계받고 장례를 치르는 과정을, 그리고 그 이후 화란이 홀로 감당한 시간들을 1인칭 독백으로 들려준다. 공연의 내용은 실제 인물 박화란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재구성되었으며, 배우 이세영이 극 중 박화란을 연기했다.
화란의 독백을 따라가는 것은 여러모로 고통스러운 경험이다. 그것은 말하자면 그녀의 몸 밖으로 난 창을 통해 일련의 풍경을 바라다보는 일 같다. 외부를 향한 화란의 감각은 한올한올 날카롭게 일어서 있어서, 단지 대사로만 전해 듣는데도 해상도가 아주 높은 시각 자료가 눈앞에 떠오른다. 50번 넘게 반복 재생한 5초간의 추락 영상, 주인이 사라진 빈방에서 3일 내내 돌았던 에어컨 바람의 냉기, 비상구 등에 그려진 사람처럼 낯설게 오그라든 시신, 다 타고 뼈대만 남았어도 알아볼 수 있었던 오빠의 오른손 등, 이러한 날 선 감각의 파편들은 이 갑작스러운 상실에 의해 산산이 조각난 화란의 세상을 보여주면서 관객의 피부를 따끔따끔 찌른다.
화란의 독백을 따라가는 것은 여러모로 고통스러운 경험이다. 그것은 말하자면 그녀의 몸 밖으로 난 창을 통해 일련의 풍경을 바라다보는 일 같다. 외부를 향한 화란의 감각은 한올한올 날카롭게 일어서 있어서, 단지 대사로만 전해 듣는데도 해상도가 아주 높은 시각 자료가 눈앞에 떠오른다. 50번 넘게 반복 재생한 5초간의 추락 영상, 주인이 사라진 빈방에서 3일 내내 돌았던 에어컨 바람의 냉기, 비상구 등에 그려진 사람처럼 낯설게 오그라든 시신, 다 타고 뼈대만 남았어도 알아볼 수 있었던 오빠의 오른손 등, 이러한 날 선 감각의 파편들은 이 갑작스러운 상실에 의해 산산이 조각난 화란의 세상을 보여주면서 관객의 피부를 따끔따끔 찌른다.
동시에 관객은 화란의 마음이 자신의 고통을 온전하게 감각하지 못하고 그로부터 일정하게 소외되는 것을 본다. 온 가족이 같은 사건으로부터 고통을 경험하고 있음에도, 화란은 직계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내내 애도의 주변부로 밀려나 있다. 화란은 유족을 취재하는 기자들에 대응하기 위해 짬짬이 머리를 빗고 눈썹을 그려야만 하며, 국민 청원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서 "손가락이 달린" 모든 이들에게 자신의 불행을 퍼 날라야만 한다. 장례식이 진행되는 내내 화란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다른 가족들이 각기의 슬픔에 잠겨있는 동안 방치된 조카들을 도맡아 돌본다. 화란의 외부는 화란이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느끼고 돌보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래서 화란은 무언가를 뒤늦게 떠올리는 일을 반복하고, 혼란스럽고 지연된 인지와 판단을 경험하며, 불쑥불쑥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기 위해 홀로 애쓴다.
그러나 화란을 견딜 수 없이 외롭고 아프게 하는 것은 그 모든 것 이후의 시간이다. 그 고통에 아무런 의미가 없어서, 그리고 이 고통을 누구와도 나눌 수 없어서 화란은 고통받는다. 오랜만에 만난 화란의 메마른 얼굴에 남자친구는 급기야 자신이 뭘 어떻게 해야 좋겠느냐고 화를 내고, 화란은 띄엄띄엄 대답한다. "나는… 내가 느끼는 걸 너도 똑같이 느꼈으면 좋겠어. 나는 너네 누나가 헬기 사고로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화란의 목소리가 너무 서슬 퍼렇기 때문에 이는 마치 다음의 말들처럼 들린다. 네가 내가 되지 않는 이상 너의 말은 아무 의미가 없어. 우리는 서로 다른 몸을 가져서, 내게는 이토록 선명한 통증을 너는 볼 수도 느낄 수도 없어. 우리의 마음은 더 이상 서로와 아무런 관계도 없어. 그때 화란은 비로소 자신의 고통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고, 동시에 모든 타인으로부터 가장 먼 곳에 있다.
그러나 화란을 견딜 수 없이 외롭고 아프게 하는 것은 그 모든 것 이후의 시간이다. 그 고통에 아무런 의미가 없어서, 그리고 이 고통을 누구와도 나눌 수 없어서 화란은 고통받는다. 오랜만에 만난 화란의 메마른 얼굴에 남자친구는 급기야 자신이 뭘 어떻게 해야 좋겠느냐고 화를 내고, 화란은 띄엄띄엄 대답한다. "나는… 내가 느끼는 걸 너도 똑같이 느꼈으면 좋겠어. 나는 너네 누나가 헬기 사고로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화란의 목소리가 너무 서슬 퍼렇기 때문에 이는 마치 다음의 말들처럼 들린다. 네가 내가 되지 않는 이상 너의 말은 아무 의미가 없어. 우리는 서로 다른 몸을 가져서, 내게는 이토록 선명한 통증을 너는 볼 수도 느낄 수도 없어. 우리의 마음은 더 이상 서로와 아무런 관계도 없어. 그때 화란은 비로소 자신의 고통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고, 동시에 모든 타인으로부터 가장 먼 곳에 있다.
앞서 이 연극을 1인극이라고 소개했으나, 이 공연에는 사실 한 명의 인물이 더 등장한다. 리타라는 이름의 그 인물은, 극 중간중간 무대 뒷벽에 투사되는 영상으로만 나온다. 리타는 눈 내리는 어느 교외의 풍경 앞에서 쾌활하게 인사를 건네고는 이어 자신이 투병중인 질환에 대해 소개한다. 모겔론스라는 이름의 그 병은 피부밑에서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 같은 기이한 감각을 유발한다고 알려진 희귀질환으로, 환부에서 보라색 반점과 가느다란 섬유 같은 실들이 돋아나는 것이 특징이다. 환자들은 피부에서 떨어진 그 섬유를 질병의 실제적 증거로 제시하면서 가려움과 통증을 호소하지만, 의료계에서는 아직까지 이 병을 공식적인 질병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그녀는 설명한다.
리타는 이따금 무대 위 화란과 대화를 주고받는다. 대개 화란이 질문하고, 리타가 대답한다. 모겔론스 병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의 면면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명확한 진단과 치료방법이 부재하므로 환자들은 증상을 완화하기 위해 저마다의 방식으로 분투한다. 때에 따라 염산으로 팩을 하거나 공업용 레이저로 직접 피부를 지지는 이들도 있다. 리타의 어조는 담담하지만 그녀의 뺨 역시 심각한 손상으로 검붉게 얼룩져있다. 완화되지 않는 통증보다 더 그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외부로부터 고통에 대해 전혀 이해받거나 인정받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래도 남편만은 그의 고통을 이해해주지 않느냐는 화란의 질문에 리타는 말한다. "사실은 남편도 같은 병에 걸렸어요."
리타의 이야기는 언뜻 보기에 화란의 이야기와 이렇다 할 연관이 없어 보인다. 화란은 리타의 이야기를 경청하지만 리타의 고통을 감각하는 것은 아니며, 리타는 화란이 묻는 대로 자신의 질병에 대해 들려주지만 상대가 자신의 고통을 이해해주리라는 기대를 하지 않는다. 공연이 끝나갈 때까지도 그들의 유일한 공통분모는 단지 그들의 고통이 오로지 그들 자신의 것이라는 바로 그 사실밖에 없는 것 같다. 여전히 고통은 각자의 몫으로 가진 채, 무대 위의 화란은 영상 속의 리타에게 말을 건넨다. "나는 당신이 나아질 것이라 믿어요. 당신이 나아지기를 바라요."
그러나 바로 그다음 순간에, 어떤 극적인 조우가 발생한다. 리타를 비추던 카메라가 별안간 줌아웃 되고 그녀가 등지고 서있던 눈 내리는 풍경은 실제가 아니라 연출된 세트장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리타는 이내 얼굴을 가린 방한용품과 선글라스를 벗고 뺨에 그린 상처 분장을 지워 얼굴을 드러낸다. 관객은 잠시 어리둥절하여 낯선 배우의 얼굴을 마주한다. 이윽고 무대 위의 화란을 연기하던 이세영 배우가 영상 속 낯선 얼굴의 배우를 바라보며 한 번 더 힘주어 말한다. "화란아, 나는 네가 나아질 것이라고 믿어. 네가 나아지기를 바라."
이세영 배우의 이 대사를 통해, 영상 속 리타를 연기하던 배우는 실제 인물 박화란일 것이라는 사실이 암시된다. 서로 다른 몸을 가진 화란과 화란이 서로를 마주 보고는 찰나를 발생시키며 <추락 1>은 끝이 난다.
리타는 이따금 무대 위 화란과 대화를 주고받는다. 대개 화란이 질문하고, 리타가 대답한다. 모겔론스 병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의 면면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명확한 진단과 치료방법이 부재하므로 환자들은 증상을 완화하기 위해 저마다의 방식으로 분투한다. 때에 따라 염산으로 팩을 하거나 공업용 레이저로 직접 피부를 지지는 이들도 있다. 리타의 어조는 담담하지만 그녀의 뺨 역시 심각한 손상으로 검붉게 얼룩져있다. 완화되지 않는 통증보다 더 그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외부로부터 고통에 대해 전혀 이해받거나 인정받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래도 남편만은 그의 고통을 이해해주지 않느냐는 화란의 질문에 리타는 말한다. "사실은 남편도 같은 병에 걸렸어요."
리타의 이야기는 언뜻 보기에 화란의 이야기와 이렇다 할 연관이 없어 보인다. 화란은 리타의 이야기를 경청하지만 리타의 고통을 감각하는 것은 아니며, 리타는 화란이 묻는 대로 자신의 질병에 대해 들려주지만 상대가 자신의 고통을 이해해주리라는 기대를 하지 않는다. 공연이 끝나갈 때까지도 그들의 유일한 공통분모는 단지 그들의 고통이 오로지 그들 자신의 것이라는 바로 그 사실밖에 없는 것 같다. 여전히 고통은 각자의 몫으로 가진 채, 무대 위의 화란은 영상 속의 리타에게 말을 건넨다. "나는 당신이 나아질 것이라 믿어요. 당신이 나아지기를 바라요."
그러나 바로 그다음 순간에, 어떤 극적인 조우가 발생한다. 리타를 비추던 카메라가 별안간 줌아웃 되고 그녀가 등지고 서있던 눈 내리는 풍경은 실제가 아니라 연출된 세트장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리타는 이내 얼굴을 가린 방한용품과 선글라스를 벗고 뺨에 그린 상처 분장을 지워 얼굴을 드러낸다. 관객은 잠시 어리둥절하여 낯선 배우의 얼굴을 마주한다. 이윽고 무대 위의 화란을 연기하던 이세영 배우가 영상 속 낯선 얼굴의 배우를 바라보며 한 번 더 힘주어 말한다. "화란아, 나는 네가 나아질 것이라고 믿어. 네가 나아지기를 바라."
이세영 배우의 이 대사를 통해, 영상 속 리타를 연기하던 배우는 실제 인물 박화란일 것이라는 사실이 암시된다. 서로 다른 몸을 가진 화란과 화란이 서로를 마주 보고는 찰나를 발생시키며 <추락 1>은 끝이 난다.
고통이 만들어내는 압도적인 고립 속에서 각자의 날들을 살아가야 한다면, 우리는 도대체 무슨 수로 고통에 삼켜지지 않고 견딜 수 있을까? 또한 내가 네가 되지 못한다면, 우리가 서로의 몸을 비집고 들어가 각자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없다면, 우리는 자신의 남루한 몸과 마음을 가지고 서로를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렇듯 <추락 1>은 타인과 공유가 불가능하다는 고통의 속성을 가지고 내내 씨름하는 연극이다.
그러나 또한 <추락 1>은 다음의 사실을 우리에게 상기하는 것 같기도 하다. 슬픔과 고통을 온전히 나눌 수 없다는 것은 우리의 귀책사유도 결론도 될 수 없으며 그저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일 따름이라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해도 우리는 타인이 될 수 없으니까. 우리는 모조리 다르며 서로에게 영영 불가해한 존재이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서로의 고통을 대하기 위해서 고안해야 하는 새로운 몸짓이란, 우아하고 깔끔한 분리가 아니라 우악스럽고 지지부진한 접촉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추락 1>은 상처를 멸균 상태로 놓아두는 분리의 규범을 넘어서서, 실패할 것이 분명한 불완전하고 고통스러운 '되기'를 내내 시도한다. 세영의 화란-되기를. 화란의 리타-되기를. 그리고 그들은, 그러한 '되기'의 시도 사이에서, 서로 다른 몸과 마음으로부터 생성된 것들로 이 공연을 지었다. 말하자면 이 공연 <추락 1>은, 길고 외로운 고통의 시간 끝에서 고립된 시간의 화란을 끌어안는 방법을 새로이 고안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또한 <추락 1>은 다음의 사실을 우리에게 상기하는 것 같기도 하다. 슬픔과 고통을 온전히 나눌 수 없다는 것은 우리의 귀책사유도 결론도 될 수 없으며 그저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일 따름이라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해도 우리는 타인이 될 수 없으니까. 우리는 모조리 다르며 서로에게 영영 불가해한 존재이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서로의 고통을 대하기 위해서 고안해야 하는 새로운 몸짓이란, 우아하고 깔끔한 분리가 아니라 우악스럽고 지지부진한 접촉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추락 1>은 상처를 멸균 상태로 놓아두는 분리의 규범을 넘어서서, 실패할 것이 분명한 불완전하고 고통스러운 '되기'를 내내 시도한다. 세영의 화란-되기를. 화란의 리타-되기를. 그리고 그들은, 그러한 '되기'의 시도 사이에서, 서로 다른 몸과 마음으로부터 생성된 것들로 이 공연을 지었다. 말하자면 이 공연 <추락 1>은, 길고 외로운 고통의 시간 끝에서 고립된 시간의 화란을 끌어안는 방법을 새로이 고안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사진 제공: 프로젝트그룹 빠-다밥 ⓒ박태양]
추락1
- 일자
- 2020.11.12. ~ 2020.11.22
- 장소
- 연우소극장
- 작
- 박화란/김한내
- 연출
- 김한내
- 출연
- 이세영
- 무대
- 박상봉
- 조명
- 강지혜
- 의상
- 홍문기
- 음악/음향
- 배미령
- 영상
- 목소
- 촬영
- 차승욱
- 사진/그래픽
- 박태양
- 무대감독
- 길현영
- 기획
- 김민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