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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벽 없는 온라인 극장 <휴먼 푸가>

‘본다’는 것에 대하여

윤소희
194호 2021.01.21
쉽게 손이 가지 않는 작품들이 있다. 꼭 보아야만 할 것 같은데 다가가지 못하고 그 주위를 계속 서성에게 만드는 그런 작품들. 『소년이 온다』가 그랬고, ‘장벽 없는 온라인 극장 <휴먼 푸가>>’가 그랬다. <휴먼 푸가>의 초연은 남산예술센터에서 하우스 어셔로 일하며 여러 번 보았고, 남산예술센터의 마지막 공연이 된 <휴먼 푸가>의 재연은 객석에서 관객으로 보았다. ‘장벽 없는 온라인 극장 <휴먼 푸가>’는 몇 번을 눌렀다가 다시 끄기를 반복했다. 머릿속에는 이것을 보아야만 한다는 주문이 계속 떨
쉽게 손이 가지 않는 작품들이 있다. 꼭 보아야만 할 것 같은데 다가가지 못하고 그 주위를 계속 서성에게 만드는 그런 작품들. 『소년이 온다』가 그랬고, ‘장벽 없는 온라인 극장 <휴먼 푸가>>’가 그랬다.
<휴먼 푸가>의 초연은 남산예술센터에서 하우스 어셔로 일하며 여러 번 보았고, 남산예술센터의 마지막 공연이 된 <휴먼 푸가>의 재연은 객석에서 관객으로 보았다. ‘장벽 없는 온라인 극장 <휴먼 푸가>’는 몇 번을 눌렀다가 다시 끄기를 반복했다. 머릿속에는 이것을 보아야만 한다는 주문이 계속 떨어졌지만 어떤 내용이 나에게 다가올지 알고 있어서인지 더더욱 망설여졌다.
장벽 없는 온라인 극장 <휴먼 푸가> 첫 화면
장벽 없는 온라인 극장 <휴먼 푸가> 첫 화면
겨우 노트북 화면을 열고 영상을 클릭하자 검은 화면에 ‘휴먼 푸가’라는 글자가 보인다. 초연과 재연에서 여러 차례 들었던, 아픈 바이올린 소리가 흘러나온다. 글자가 사라지자 공허한 검은 화면에 내 얼굴이 비친다. 내 얼굴이 생경하게 느껴진다. 곧 화면이 밝아지며 전남도청의 분수대에서 물줄기가 솟아오르고 내 얼굴도 사라진다. 위에서 내려다본 분수대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가 점점 멀어진다. 그 모습이 마치 눈동자 같다. 분수대의 강렬한 시선이 느껴진다. 나는 먼저 눈길을 피하고 만다. 이제 화면은 바뀌어 광주 망월동의 묘지를 비춘다.
“증언의 릴레이로서 소설이 말하는 것을 이어받아 연극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증언하려고 한다고. 고통의 기억이 각자의 몸에 각인될 수 있도록. 그래서 사회의 온 몸에 그 기억들이 새겨져 그런 일들이 또 일어날 때마다 각자의 몸에서 나는 고통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1)
으레 무대에서 상연되는 것을 전제로 한 공연을 촬영한 영상과 달리 ‘장벽 없는 온라인 극장 <휴먼 푸가>’는 일련의 제작 과정이 담긴 형태였다. 원작 소설 『소년이 온다』와 거의 순서를 같이 하는 <휴먼 푸가> 무대 공연과 달리, 영상에서는 광주의 곳곳에서 연습과 워크숍을 하는 모습, 그리고 남산예술센터의 무대가 교차로 이어졌다. 무대에서 들었던 배우들의 목소리가 내레이션을 읽었다. 그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눈을 감고, 내 몸속에 각인되어 있을 고통의 기억들을 더듬어 보았다.
2018년
학교를 졸업할 즈음 친구와 폴란드로 여행을 떠났다. 우리는 큰 계획 없이 바르샤바에서 며칠을 보냈고, 크라쿠프로 넘어갔다. 크라쿠프에서 지내며 하루를 들여 아우슈비츠에 다녀오기로 했다.
오후에나 도착한 우리는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아우슈비츠의 모든 곳을 둘러볼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수많은 건물이 있었고, 그 안에는 더욱 수많은 공간이 있었다. 쌓여 있는 안경을 보았다. 의족과 가방도 보았다. 아이들의 낙서를 보았다. 생존자가 남긴 그림도 보았다. 노인이 된 생존자의 인터뷰 영상도 보았다. 죽은 이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힌 종이 뭉치도 보았다. 그 뭉치는 꼬박 방 하나를 가득 메웠다. 그리고 사진을 보았다. 아무렇게나 쓰러져 있는 시체와 군인의 모습이 찍힌 사진이었다. 어떤 전시물보다, 그림보다, 증언보다, 거기에 있는 그 무엇보다 실재를 찍은 그 사진이 더 비현실적이었다.
우리는 수용소의 절반도 다 들어가 보지 못하고 벤치에 가만히 앉았다. 속이 울렁거렸다. 머릿속에서 무언가 소리도 울렸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이 모든 건물에 다 들어가, 전시되어 있는 모든 것을 본다고 할지언정, 내가 아우슈비츠를 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과연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말없이 벤치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2019년
폴란드에서 돌아와 시간이 흐른 뒤, 남들보다 조금 늦게 『소년이 온다』를 읽었다. 다음 해에는 남산예술센터에서 <휴먼 푸가>를 올렸다. 어둠뿐인 무대 백스테이지에 홀로 앉아 <휴먼 푸가>의 공연을 ‘들었던’ 때를 떠올린다. 그 피아노 소리가, 바이올린 선율이, 배우들의 목소리가 아팠다.
객석 맨 뒤, 무대 계단에 앉아 초연을 눈으로 ‘보았을’ 때는 사실 『소년이 온다』를 읽었을 때만큼의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공연이 나를 밀어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무대와 객석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배우들의 움직임과 오브제가 끊임없이 이어져서 감정을 만들어낼 틈이 생기지 않는 것일까 생각하기도 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무대 뒤에서 공연을 더 잘 보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 해의 마지막 시즌 프로그램이었던 <휴먼 푸가>의 막이 내리고 남산예술센터도 방학을 맞았다. 종종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점차 공연을 잊어갔다. 남산예술센터에서 만난 수많은 공연 중 한 편이 되리라 생각했다.
02
2020년
교통사고를 당했다. 뼈가 부러지고 창자가 터졌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내 살을 가르고 찌르고 쑤셨다. 내 몸이 마치 나의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왜인지 남산예술센터 로비 한 켠에 꽂혀 있던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가 떠올랐다. 자리에 앉을 수 있게 되면 그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책을 읽을 수 있었던 건 꼬박 삼 개월이 지나고 여름이 되어서였다.
“바닥을 친 사람들, 고르곤을 본 사람들은 돌아오지 못했고, 아니면 벙어리로 돌아왔다. 그들이 바로 ‘가라앉은 자들’, 완전한 증인들이다.”2)
나는 어쩌면 내가 그날 아우슈비츠로부터 도망쳐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폴란드에서 보았던 사진이 떠올랐다. 바닥에 물건처럼 널브러져 있던 그 사람이,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그 사람이 떠올랐다. 그 사람은 뼈가 부러지고 창자가 터지는 고통보다 더한 고통을 겪었겠지. 그리고 감히 그 정도를 헤아려 보려고 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상상할 수도 없는 깊이의 바닥으로 가라앉았을 그 사람은 끝내 구조되지 못했으니까.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3)
5월에 올라가기로 했던 <휴먼 푸가> 재연이 코로나19로 인해 11월로 밀렸고, 그 사이에 퇴원을 한 나는 남산예술센터의 마지막을 객석에서 함께 할 수 있었다. 관객이 모두 입장하고 로비 중앙 문이 쿵, 하는 소리를 내며 닫혔다. 닫힌 중앙 문은 공연이 끝나도 열리지 않는다. 관객들과 나는 꼼짝없이 객석에 갇혀 두 시간 동안 공연을 마주쳤다. 이제는 도망칠 수 없었다.
03
“『소년이 온다』라는 소설은 독자들이 감정을 소비하게 만들지 않는다. 독자들은 몸이 아픈 경험을 한다. 그 통증은 오래도록 몸에 기억되어 있다. <휴먼 푸가>라는 공연 역시 그렇다. 광주라는 역사적 사실을 어떤 이야기로 재현하거나 비극의 역사를 감정에 호소하지 않는다. 학살과 고문의 증언이 남의 이야기로 대상화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경험이 지금 이 순간 독자와 관객의 살갗으로 스며들기를 바란다.” 4)
2021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영상의 마지막, 수많은 창작자의 이름 뒤로 객석에서 퇴장하는 관객의 모습이 비친다. 노트북으로 관객의 모습을 보고 있는 또 다른 관객인 나는 문득 공연을 본다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한다. 극장의 객석에 앉아 무대 위에서 배우가 연기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공연을 보는 것일까. 창작자가 만들어낸 그 모든 것을 놓치지 않고 보아내면 공연을 다 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우슈비츠의 서늘한 공기를 되새겨 본다.
코로나 19로 인해 이곳저곳에서 온라인 극장을 시도하고 있다. 대다수의 온라인 극장은 무대에서 상연되는 것을 전제로 만든 공연을 촬영한 영상을 보여준다. 그 모습 그대로 영상으로 찍어 꺼내어 보는 것도 역시 공연을 보는 것일까. 볼 수 없는 사람은 공연을 어떻게 볼 수 있는 것일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백스테이지에서 배우의 목소리를 들었던 순간을 되짚어 본다. 답을 내릴 수 없는 물음만 꼬리에 꼬리를 문다.
‘장벽 없는 배리어프리 극장 <휴먼 푸가>’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 버전과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 및 자막 버전으로 제작되었고, 나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 버전으로 영상을 보았다. 보았다는 말이 참 무색하게 느껴진다.
언제나 장벽은 있었다. 다만 공연이 그 장벽을 넘으려 하지 않았던 것뿐이다. <휴먼 푸가>의 초연과 재연도 배리어프리로 진행되지는 않았다. 지금의 시대에 우리는 장벽 없는 온라인 극장을 고민한다. 사람은 늘 자신의 상황이 되어야만 생각하게 마련이다. 나도 그러했듯이.
<휴먼 푸가>를 올렸던 남산예술센터는 사라졌다. 관객의 발걸음이 끊긴 여러 극장들이 문을 닫는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공연을 볼 것인가? 공연을 본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사진출처_Ⓒ이승희]


연극 <휴먼푸가>
원작
한강
연출
배요섭
배우
공병준 김도완 김재훈 나경민 박선희 배소현 양종욱 최수진 황혜란
드라마터그
이단비
미술
이주야
조명
강정희
음악
김재훈

장벽 없는 온라인 극장 <휴먼푸가>
04

일자
2020.12.29.(화)~2020.12.30.(수)

장소
서울문화재단 공식 유튜브 채널, 네이버 TV

촬영감독
최용석
편집
최용석, 배요섭
촬영조감독(공연)
황호규
촬영조감독(광주)
공병준
스크립터
도민주
붐/사운드 믹스
곽소민
미술
이주야
음악
김재훈
작곡/편곡
김재훈
피아노
김재훈
바이올린
(INDEED) 배소현
합창
(HUMAN ACTS) 공병준 김도완 나경민 박선희 배소현 최수진 황혜란
현악 4중주
(HUMAN ACTS) 다이브라인
앙상블 사운드
남상봉
현장 녹음
(광주 국군통합병원/文樂 HOM) 황현우 이은호
음악 믹스/마스터링
황현우 (CTR SOUND)
화면 해설스크립트
배요섭 황혜란
수어통역 (공인수어 통,번역)
김홍남 최황순
나레이션
황혜란
화면해설
배요섭
  1. 남산예술센터 2019 시즌 프로그램 기자 간담회에서 배요섭 연출, ‘장벽 없는 온라인 극장 <휴먼 푸가> 中
  2. 프리모 레비,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이소영 옮김, 돌베개, 2014, 98p.
  3. 한강, 『소년이 온다』, 창비, 2014, 134p
  4. ‘장벽 없는 온라인 극장 <휴먼 푸가>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