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엽, 김원영 『사이보그가 되다』
아무렇지 않은 공존을 위하여
손옥주_공연학자
195호
2021.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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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도대체 누구냐 휠체어를 탄 ‘모자란(결여된)’ 인간에서 휠체어와 통합된 어떤 존재로 나를 희미하게 인식했을 때 나는 비로소 정체성 물음 앞에 본격적으로 서게 되었다. (p.57) 지난 1월에 출간된 소설가 김초엽과 변호사 김원영의 공저 『사이보그가 되다』에서 저자 김원영은 열다섯 살에 처음 타게 된 휠체어의 경험을 말한다. 거울에 되비친 ‘인간+휠체어’의 결합된 모습으로서의 자신을 마주하며 그가 스스로에게 “너는 도대체 누구냐?”(p.51)라는 질문을 던지던 순간, ‘나
너는 도대체 누구냐
휠체어를 탄 ‘모자란(결여된)’ 인간에서 휠체어와 통합된 어떤 존재로 나를 희미하게 인식했을 때 나는 비로소 정체성 물음 앞에 본격적으로 서게 되었다. (p.57)
지난 1월에 출간된 소설가 김초엽과 변호사 김원영의 공저 『사이보그가 되다』에서 저자 김원영은 열다섯 살에 처음 타게 된 휠체어의 경험을 말한다. 거울에 되비친 ‘인간+휠체어’의 결합된 모습으로서의 자신을 마주하며 그가 스스로에게 “너는 도대체 누구냐?”(p.51)라는 질문을 던지던 순간, ‘나’를 오로지 ‘나’로서만 인식할 때의 안락함과 매끄러움에 균열이 생겨나고 그는 “휠체어가 되었”(p.57)음을 고백한다. 『사이보그가 되다』 속 문장들을 만지듯 읽으며, 신체와 기계의 결합은 단지 한 세계와 그 외부의 기능적 접합이나 ‘불완전한’ 신체의 조형적 회복 또는 기능적 증강만을 뜻하지 않는 것임을, 어쩌면 그것은 지금 여기 안에 뜻밖의, 예측 불가능한 타자로서의 조건들을 만들어내는 것임을, 그리하여 이제 막 발생된 자기인식의 균열지점을 있는 힘껏 벌려 실제로 어떠한 봉합 불가능한 틈을 만들어내는 것임을 느꼈다. 오감을 새로이 작동시키는 것 같은 그런 앎의 느낌, 그런 깨달음의 감각은 이 책이 그 자체로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를 타자로 마주세울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준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마치 김원영 작가에게 있어서 휠체어가, 그리고 김초엽 작가에게 있어서 이 책의 집필 과정 전반이 자기인식의 전도(顚倒)를 가능케 하는 어떠한 (가라타니 고진 식으로 표현하자면) ‘발견’의 모멘텀을 만들어냈던 것처럼, 독자로서 『사이보그가 되다』를 독서한다는 것은 김초엽 작가가 언급한 “다른 세계로 가는 문”(p.359)의 손잡이를 찾아 굳게 잡고 힘껏 돌려 결국 그 문을 여는 행위와도 같았다. 그와 같은 행위 안에서 피아(彼我)는 비로소 이어진다.
다르지 않을 수 있음의 다른 방식들
현재 SF소설가로 활발히 활동 중인 김초엽과 변호사이자 작가로, 그리고 필자를 비롯한 공연 관객들에게는 배우이자 무용수로 더욱 친숙한 김원영의 협업이라는 점에서, 게다가 유기체와 기계의 결합을 뜻하는 ‘사이보그’ 개념을 장애 보조기기와 함께 살아가는 저자들의 일상과 더불어 사유한다는 점에서 『사이보그가 되다』의 출간은 출판계를 넘어선 예술계 전반에 큰 이슈가 되고 있다. 이 책은 김초엽과 김원영의 글이 교차하는 총 10개의 장으로 구성되어있으며, 본문의 장이 모두 끝나고 난 지점에는 녹취, 편집된 두 저자의 대담이 담겨있다. 저자들이 보여 온 그간의 활동을 반추하며 이번 신간이 내용상 문학과 법률 사이 그 어디쯤에 위치하지 않을까, 내심 기대 반, 곤혹스러움 반으로 마음을 무장해두었지만, 정작 책의 중심에는 장애학과 과학기술학의 접점을 이루는 동시대 담론들(가령, “장애인을 위한 기술이 아니라 장애인과 장애 공동체가 직접 만들고 건설하는 기술 정치의 실현을 목표로”하는 “크립 테크노사이언스”(p.187) 등의)에 대한 세밀한 고찰과 “자신을 끊임없이 감추고 숨”기고자 하는 “우리의 현실 세계 속 사이보그들”(p.135)에 대한 이야기들이 놓여있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사이보그가 되다』 속 사이보그의 형상은 누구나 한 번쯤은 상상해봤음직한 “아이언 맨 슈트를 입고 하늘과 바다를 누비는 슈퍼히어로도 아니고, 기계와 인간,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경계와 구분을 없애고 횡단하는 잡종적인 존재의 경이로운 상징”(p.113)도 아닌, 마치 “두 개의 사물을 접합시키는 데 가장 간편하고 효과적인 ‘테크놀로지’”이자, 어느 집이든 하나쯤은 있게 마련인 “청테이프(p107)”처럼 유연하고 일상적인 관계의 패치워크로서 제시되고 있었다.
그리고 저자들의 생각에 흐름을 만들어내던 그 모든 언어의 밑바탕에는, ‘결코 쉽지 않은 비유’와 ‘잔여물 없이 분명한 상념’ 사이의 이음새를 만들어내던 그와 같은 언어의 밑바탕에는, 두 저자의 몸과 마음에 오랜 시간 쌓여온 서로 다르며 같은 경험의 켜가 있었다. 열여섯 살에 신경성 난청 진단을 받은 후부터 보청기를 착용하고 있는 김초엽 작가와 골형성부전증으로 한 살 무렵부터 정형외과 치료를 받아야 했던 김원영 작가가 겪어온 장애는 가시성 여부에서 보이는 차이(비가시적 청각장애와 가시적 지체장애)에서부터 보조기기에 대한 개인의 감각 차이(“보청기는 나의 장애가 투영되는 대상이라기보다는 약간 걸리적거리는 보조기기”(김초엽), “휠체어가 없으면 발가벗은 기분”(김원영)(p.336))에 이르기까지 장애 상태와 그 상태에 놓여있는 몸에 대한 이해의 균질화(homogenizing)를 경계하게끔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 두 저자의 경험 인식은 공통적으로 독자로 하여금 신체장애에 대해 특정 신체 부위의 기능적 결함으로만 여기는 일반적인 인식에 대해 재고하게 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가온다. 김원영 작가의 말처럼 장애는 단순히 신체 기능의 결여라기보다는 오히려 “‘정상이 아닌 몸’이라는 사회적 평가를 획득한 일종의 신분(지위)에 가”까우므로 “고도로 발전한 테크놀로지가 기능의 결여를 보완한다 해도 여전히 장애는 존재할 수 있”(p.155)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초엽 작가가 장애 중심적 공간 설계와 관련해 “장애가 손상에 따르는 필연적인 결과가 아니라, 공간에 따라 재규정될 수 있는 개념”(p.194)임을 언급할 때, 우리 일상 속에서 신체장애를 장애라는 특정 상태로, 즉 결여와 불가능의 상태로 환원시키는 요인들에 대해 자연스럽게 재인식하게 된다. 불가능하거나 불가항력적인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초월적 세계가 아닌,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는 것들의 허락된 잠재력을 지금, 여기에서 탐구해보는 것. 다르지 않을 수 있음의 다른 방식들을 소환해 하나씩 실천해보는 것. 바로 그 지점에서 아래와 같이 김초엽 작가가 그리는 해방적 미래 서사는 환기되어질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저자들의 생각에 흐름을 만들어내던 그 모든 언어의 밑바탕에는, ‘결코 쉽지 않은 비유’와 ‘잔여물 없이 분명한 상념’ 사이의 이음새를 만들어내던 그와 같은 언어의 밑바탕에는, 두 저자의 몸과 마음에 오랜 시간 쌓여온 서로 다르며 같은 경험의 켜가 있었다. 열여섯 살에 신경성 난청 진단을 받은 후부터 보청기를 착용하고 있는 김초엽 작가와 골형성부전증으로 한 살 무렵부터 정형외과 치료를 받아야 했던 김원영 작가가 겪어온 장애는 가시성 여부에서 보이는 차이(비가시적 청각장애와 가시적 지체장애)에서부터 보조기기에 대한 개인의 감각 차이(“보청기는 나의 장애가 투영되는 대상이라기보다는 약간 걸리적거리는 보조기기”(김초엽), “휠체어가 없으면 발가벗은 기분”(김원영)(p.336))에 이르기까지 장애 상태와 그 상태에 놓여있는 몸에 대한 이해의 균질화(homogenizing)를 경계하게끔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 두 저자의 경험 인식은 공통적으로 독자로 하여금 신체장애에 대해 특정 신체 부위의 기능적 결함으로만 여기는 일반적인 인식에 대해 재고하게 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가온다. 김원영 작가의 말처럼 장애는 단순히 신체 기능의 결여라기보다는 오히려 “‘정상이 아닌 몸’이라는 사회적 평가를 획득한 일종의 신분(지위)에 가”까우므로 “고도로 발전한 테크놀로지가 기능의 결여를 보완한다 해도 여전히 장애는 존재할 수 있”(p.155)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초엽 작가가 장애 중심적 공간 설계와 관련해 “장애가 손상에 따르는 필연적인 결과가 아니라, 공간에 따라 재규정될 수 있는 개념”(p.194)임을 언급할 때, 우리 일상 속에서 신체장애를 장애라는 특정 상태로, 즉 결여와 불가능의 상태로 환원시키는 요인들에 대해 자연스럽게 재인식하게 된다. 불가능하거나 불가항력적인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초월적 세계가 아닌,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는 것들의 허락된 잠재력을 지금, 여기에서 탐구해보는 것. 다르지 않을 수 있음의 다른 방식들을 소환해 하나씩 실천해보는 것. 바로 그 지점에서 아래와 같이 김초엽 작가가 그리는 해방적 미래 서사는 환기되어질 수 있지 않을까.
설령 그것이 아주 어려운 상상이라고 해도 나는 모든 사람이 ‘유능한’ 세계보다 취약한 사람들이 편안하게 제 자신으로 존재하는 미래가 더 해방적이라고 믿는다. 어떤 손상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미래보다는 고통받는 몸, 손상된 몸, 무언가를 할 수 없는 몸들을 세계의 구성원으로 환대하는 미래가 더 열려 있다고 믿는다. (p.281-282)
글이 끝난 곳에서 시작되는 또 하나의 서평: 예술계에 남은 질문
『사이보그가 되다』에 대한 리뷰의 끝단락은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후에 비로소 시작된다. 어쩌면 책에 부재하는 열한 번째 장의 논의 지점이 될지도 모를 주제, 즉 예술 현장에 관한 것이다. 국내 최초의 시각예술분야 장애예술인 창작스튜디오를 표방한 서울문화재단 잠실창작스튜디오가 2007년에 개관하고 뒤이어 2015년에 장애인문화예술센터 ‘이음’이 개관하는 등, 2000년대에 들어서며 ‘장애예술’은 해외뿐만 아니라 국내 문화예술계에서도 주요 화두가 되어왔다. 공연계만 하더라도 최근 휠체어의 접근성을 고려한 좌석 배치와 문자 및 수어 통역 등의 관객 서비스가 제공되는 배리어프리 프로덕션이 서울을 중심으로 점차 증가하는 추세이고, 시각장애인들의 관극을 돕는 음성해설이 연극에 도입된 데 이어 작년에는 국내 최초로 무용음성해설 워크숍이 진행되기도 했다. 그러나 장애인 예술가를 다각도로 지원하기 위한 지원책이 강구되는 동시에 장애인 관객에게 보다 친화적인 환경을 제공하고자 하는 노력이 민관을 불문하고 이어지고 있음에도, 현장작업과 교육과 치료가 뒤섞인 듯한 적지 않은 경우들을 종종 마주할 때마다 여전히 마음속에는 질문 하나가 부지불식간에 떠오르곤 한다: ‘누구’를 위한 것인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김원영 작가의 표현을 잠시 빌리자면 어쩌면 전자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동등”함을, 후자는 “똑같”음을 지향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범람하는 작금의 장애예술 관련 논의들 속에서 그가 던지는 아래와 같은 사유의 편린을 읽으며 다시금 질문해본다. 장애예술 담론이 단지 예술의 외연 확장에 국한되지 않기 위해, 혹은 교육이라는 미명 하에 ‘시혜’로 퇴색되지 않기 위해,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서로의 지금을 조건 짓는 ‘같지 않음’의 상태를 감각하고 서로에 대한 이해 안에서 동등해지는 환경을 발아하기 위해, 그리하여 선악의 저편에서 ‘청테이프’처럼 아무렇지 않게, 그러나 분명한 ‘연결’이자 ‘이음새’로 손을 맞잡기 위해, 나와 당신은, 우리는 어떠한 공존의 지형을 그려나가야 할까.
“나는 휠체어만 탔을 뿐(탔음에도 불구하고) 당신과 똑같은 인간”이라고 주장하는 대신, “나는 휠체어를 탔고 그 점에서 당신과 같지 않지만, 우리는 동등하다”라고 말하는 일은 어떻게 가능할까. (p.63)
사이보그가 되다
- 저자
- 김초엽, 김원영
- 출판사
- 사계절
- 출판일
- 2021.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