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희경x목소x박수진x이세영x이연주>
우리가 함께 휴가에 온 것처럼, 공존할 수 있도록
장영
195호
2021.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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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 28일 신촌극장. 오후 2시 30분에 맞춰 극장의 미닫이문을 연다. 작업자들은 자신의 공간에서 각자의 할 일을 하고 있다. 묵묵히, 차분히. 하지만 침묵하는 그들에게서 그들 고유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극장의 사람들은 돌처럼 가만히 파도 소리를 듣고, 누
2021년 1월 28일 신촌극장. 오후 2시 30분에 맞춰 극장의 미닫이문을 연다. 작업자들은 자신의 공간에서 각자의 할 일을 하고 있다. 묵묵히, 차분히. 하지만 침묵하는 그들에게서 그들 고유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극장의 사람들은 돌처럼 가만히 파도 소리를 듣고, 누워있고, 캠핑을 상상하고 있다. 관객은 자신이 예약한 시간마다, 스스로 미닫이문을 열고 1명씩 입장하게 된다. 다음 관객이 들어온 뒤에도 조금 더 머무를 수 있어, 다음 관객과 공간을 공유하는 경험을 할 수도 있다. 이 공간 특유의 내버려 두는 분위기가, 서로의 존재와 선택을 허용하기만 하면 딱히 두려운 일이 일어나지 않음을 가르친다.

Ⓒ이세영
휴식하는 영혼들은, 강요하지 않고
누구도 환영의 말을 건네지는 않지만, 극장에 들어가는 순간 나희경이 발만 내놓고 누워있는 작은 집이 보여 공간을 편안하게 만든다. 작은 집에는 나희경이 트위터에 적은 글들이 빼곡하게 붙어 있다. 몸을 숙여 그 글들을 읽기로 선택한다면, 나희경의 삶과 생각들에 대해 알 수 있다. 스누피의 집이 그려진 나희경의 명함에는 이런 가이드가 있다. ‘물어보거나 짐작하거나 그냥 지나가거나’. 나는 몸을 숙여 최선을 다해 읽는다. 그리고 지나간다.
‘다 읽어봐도 되는데, 원하지 않으면 굳이 안 봐도 돼’라는 느낌이 전반적으로 전해지는 공간이다. 극장 바닥에는 미로처럼, 빨간 선과 하얀 테이프들이 붙어 있다. 무수히 헤맬 수 있는 곳임을 드러내는 것만 같다. 종이들을 자른 흔적들이 남아있다. 기존의 생각들을 부수고, 자신의 기록을 지우려는 행위 같다. 한편 인쇄된 글에 손글씨로 새로운 말을 쓰고, 다른 작업자의 글에 생각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고양이와 우주에 대한 말들이 오간다. 개개인의 몸에 쌓인 고유한 역사가 만들어내는 관점들이 섞인다. 기꺼이 혹은 우연히 영향을 주고받는다. 무엇도 강요하지 않고, 숨기고, 영향을 주지 않으려는 작업자의 태도까지도 관객에게는 큰 영향력이 된다. 관객은 허용된 것은 무엇이든 읽을 수 있고, 박스를 옮길 수 있고, 사진을 찍을 수도 있고, 자기의 방에 있는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도 된다. 이때 관객은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선택의 길에 놓여있다.

Ⓒ이세영
‘선택해야지 어른이니까’
우연히 극장 바깥으로 나가는 문을 여는 바람에, 이세영을 만난다. 캠핑을 나온 사람처럼 윈드 브레이커를 입고 있다. 이전에는 바깥에서 불을 쬐기도 했는데, 오늘은 눈이 와서 실내로 들어오려 한다고 했다. 이세영의 공간인 투명한 텐트 앞에는 박스 하나가 있다. 불을 피우기 위한 땔감, 짧은 글과 풍경 사진들이 박스 안에 있다. 마치 곧 태워야 할 것들처럼. 땔감 속에 있는 ‘선택해야지 어른이니까’라고 적혀있는 이세영의 메모와 마주하는 순간, 지금 이 공간을 헤매는 내게도 필요한 다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선택해야지 어른이니까.
이 극장 공간은, 각자의 선택을 존중하고 내버려 두겠다는 정확하고 분명한 선언을 드러내고 있다. 프로젝터를 통해 벽에 투사된 글은 애초에 이 작업이, 나의 삶과 타인의 삶이 다르다는 전제와 하나의 몸에 교차하는 소수성을 숙고하며 발전되어 왔음을 명시한다. 그렇기에 분열과 충돌을 확인하는 과정을 만나보고자 한다고 적혀 있다. 관객은 있는 그대로 거처하고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허락받는 동시에, 각자의 방에 있는 타자로서의 작업자들 앞에서 끊임없이 망설이고 고민하고 선택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글자들이 맺혀있는 막을 넘으면 박수진과 목소의 공간이 나타나는데, 나는 그 부근에서 또 한참을 망설인다. 이 영역을 침범해도 될지에 대한 망설임과 지연과 선택의 과정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그곳을 굳이 넘지 않더라도 우리가 한 공간에 계속 머무를 수 있음을, 망설임과 지연 속에서 문득 체감한다. 일단 어떻게든 함께 존재할 수는 있구나.
이 극장 공간은, 각자의 선택을 존중하고 내버려 두겠다는 정확하고 분명한 선언을 드러내고 있다. 프로젝터를 통해 벽에 투사된 글은 애초에 이 작업이, 나의 삶과 타인의 삶이 다르다는 전제와 하나의 몸에 교차하는 소수성을 숙고하며 발전되어 왔음을 명시한다. 그렇기에 분열과 충돌을 확인하는 과정을 만나보고자 한다고 적혀 있다. 관객은 있는 그대로 거처하고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허락받는 동시에, 각자의 방에 있는 타자로서의 작업자들 앞에서 끊임없이 망설이고 고민하고 선택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글자들이 맺혀있는 막을 넘으면 박수진과 목소의 공간이 나타나는데, 나는 그 부근에서 또 한참을 망설인다. 이 영역을 침범해도 될지에 대한 망설임과 지연과 선택의 과정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그곳을 굳이 넘지 않더라도 우리가 한 공간에 계속 머무를 수 있음을, 망설임과 지연 속에서 문득 체감한다. 일단 어떻게든 함께 존재할 수는 있구나.
풍경을 상상하게 하는, 명상적 공간
용기를 낸다. 어항과 사과가 그림처럼 놓여있는 박수진의 공간까지 가면, ‘얼마든지 질문하셔도 괜찮습니다’라는 문장과 만난다. ‘원하는 답을 얻기는 어려울 거예요’ 라고도 덧붙여져 있다. 이것은 이 작업자가 내보이는 자신의 다층성에 대한 가이드이고, 여기서 관객은 또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다. 미나리아재비와 토르소에 관한 글 그리고 허수경의 에세이. 이번에도 열심히 읽고, 지나간다. 창으로 빛이 들어오고 있어서 빛을 본다. 이연주는 오퍼석에 있고, 이연주에게 가려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만 만날 수 있는 세계의 감각과 풍경이 궁금하지만, 용기가 없어 차마 올라가지는 못한다. 대신 국수처럼 길게 잘려있는 종이들의 무덤-이연주가 자른 종이들-을 본다. 플라스틱 돋보기가 준비되어 있다. 내가 집어 든 종이에는 차별에 대한 이야기들이 적혀 있다. 남기지 않고 싶은 말들을 잘게 자르고, 다만 읽힐 수 있는 정도로 자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고 싶은 이들을 위해 돋보기를 마련하기까지의 과정. 종이들의 무덤은, 어디까지 말하고 묻고, 어디까지 듣고 써야 할지를 고민하는 모든 과정을 함축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돋보기를 놓아두는 것, 이것은 새로운 출구이자 입구를 찾은 작업자의 결단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박수진
나는 이대로 이들의 집에 방문한 낯가리는 손님이 되어도 좋고, 원한다면 이들과 함께 휴가를 떠나 온 사람이 되어도 좋았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집으로 돌아갈까? 조금 더 머물러도 좋을 것이다. 모든 영역을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방문한 뒤에, 나는 그들과 함께 머물기로 선택한다. 관객에게 마련된 자리도 있기 때문이다. 캠핑 중인 이세영과 음악 소리를 내는 목소 사이에, 관객을 위한 의자가 마련되어 있다. 작업자들이 이 공간 안에 자연의 풍경을 도입하고 있다. 초록의 식물들과 삶의 강렬한 순간들이 담긴 목소의 글에는 이국적인 풍경과 습기가 가득하다. 파도 소리는 지속적으로 들려오고, 극장은 바닷가처럼 느껴진다. 나도 가만히 앉아서 이 리뷰를 위한 메모를 쓰기 시작한다. 사진을 더 찍는 대신, 그들을 묘사하고 기록하면서 계속 이 말 없는 순간들에 집중한다. 언제까지나 아무도 별말이 없고, 파도 소리가 들려오고, 마음에 자연스러운 여백이 생겨 어느새 명상적인 상태가 된다. (이연주의 공간에는 요가영상이 재생되고 있다) 도입된 자연들을 느끼며 이 공간을 명상적으로 감각하기 시작할 때, 현실의 사람들을 마치 연극의 인물처럼 낯설게 살피게 된다는 점이 새롭다.
Ⓒ이연주 / Ⓒ목소
너와 나, 좋은 거리를 찾아서
이 작업이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기 때문에, 작업자들의 고유한 영역으로 걸어 들어가 작업자들이 내놓은 것들을 탐사할 용기를 스스로 북돋으려 노력한다. 무례함과 넘지 말아야 할 선과 관계를 감각하고, 두려워하고 동시에 반가워하면서 43분을 머무른다.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오다가 만났기에, 자신에 대해 말하고 듣는 과정을 거쳐, 서로에게 적정하고 좋은 간격에 대한 선택을 해야만 한다. 내가 이 극장의 문을 스스로 열고 들어온 순간부터 내내 의식한 것이 바로 이 ‘거리’였음을 깨닫는다. 이 작업은 내게 공존을 위한 적정 거리를 찾아내는 일련의 실험이 되어주고, 두려움과 오해가 있더라도, 누군가가 극장과 자신에 대하여 세심하게 쓴 가이드를 읽고 익혀가며, 마침내 좋은 거리를 찾아내는 과정이 되어주기도 했다. 거리를 다시 선택할 수 있는 기회와 가이드를 제공하는 것이, 타자에 대한 최대한의 배려가 될 수 있음을 배운다. 이번에는 돋보기를 들어 올리지 못했던 관객도, 다음 선택의 순간에는 망설임 없이 돋보기를 들어 올릴지 모르니까. 극장을 나오면서, 이 작업자들과 함께 휴가에 온 것처럼, 별 아래 불 앞에 앉아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밤이 오고, 조금 피곤해질 때까지. 참고 있는 말과 지켜야 할 사람들과 믿고 있는 가치에 대해, 원한다면 이렇게 더 전시해주기를 바란다. 마치 우리가 함께 휴가에 온 것처럼, 내일은 또 다른 곳에 가보자고 말하며. 평소라면 선택하지 않을 내일을 선택하고, 계속 바람이 통하는 곳에서 공존할 수 있도록.
[사진제공 : 위에서부터 1,2 이세영 / 3 박수진 / 4(좌) 이연주 / 5(우) 목소]
<나희경x목소x박수진x이세영x이연주>
- 일자
- 2021.01.26(화) - 2021.01-30(토)
- 장소
- 신촌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