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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극장 프로젝트팀 <극에 달하다>

발아하도록, 발화하도록

권혜린
197호 2021.03.25
날 좋은 휴일, 연극을 하는 장소라고 하기에는 생소한 을지로를 향해 가면서 문득 생각했다. 연극을 왜 이렇게 꾸준히, 열심히 보러 가는 걸까? 연극 <극에 달하다>는 시작점에서 그 질문을 되돌려준다. 막다른 지경(極)에 이른 연극(劇)에 대한 고민으로서 관객에게 왜 넷플릭스가 아닌 연극을 보러 왔는지 질문하고, 보러 와 준 것에 대해 감사 인사를 하는 것이다. ‘극장을 뛰쳐나온 공연’, ‘탈극장 프로젝트’라는 수식어처럼 무대는 극장이라고 하기에는 지나
날 좋은 휴일, 연극을 하는 장소라고 하기에는 생소한 을지로를 향해 가면서 문득 생각했다. 연극을 왜 이렇게 꾸준히, 열심히 보러 가는 걸까? 연극 <극에 달하다>는 시작점에서 그 질문을 되돌려준다. 막다른 지경(極)에 이른 연극(劇)에 대한 고민으로서 관객에게 왜 넷플릭스가 아닌 연극을 보러 왔는지 질문하고, 보러 와 준 것에 대해 감사 인사를 하는 것이다. ‘극장을 뛰쳐나온 공연’, ‘탈극장 프로젝트’라는 수식어처럼 무대는 극장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가깝고, 포스터 속에서 무대를 침범하는 파도처럼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찾기 힘들다.
좌석에 앉으면 서로 등을 돌리고 있는 의자 두 개가 눈앞에 보인다. 이는 두 명의 배우, 두 명의 인물, 두 개의 이야기를 의미한다. 연기에 열정이 넘치는 연극배우인 남자와, 가라앉는 섬에서 동화를 읽으며 자랐던 여자가 각각 자신의 삶/장소에서 탈출하여 공항에서 우연히 만난다. 무장소에 가까운 공항은 이들이 자신의 삶을 번갈아 풀어놓음으로써 평생 만나기 어려울 것 같은 이질적인 삶을 교차하는 공간이 된다. 이러한 이질성은 무대를 분할하는 붉은 천과 푸른 천처럼 불과 물에 대한 이미지와 연결되어 강렬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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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냥 소년의 눈동자 속 불에 대하여

<극에 달하다>를 이루는 하나의 큰 축은 ‘불’에 대한 것이다. 연극배우인 신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친한 형이 만든 극단에서 활동하며 극장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빚쟁이들의 횡포를 견디기도 한다. ‘연극이나 영화의 순간적인 광경’인 신(scene)을 연상하게 하는 이름처럼 연극에 삶을 내던지는 그는 지인과 만나면서 내적 갈등을 겪게 된다. 유명 프로덕션을 운영하는 아버지 밑에서 여유롭게 생활하며 상대적으로 연기의 바탕을 수월하게 쌓은 지인은 신에게도 편한 삶, 편한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그 편함의 이면에는 자본이 있으므로 이는 연기라는 큰 범주 내에서의 계층 분할을 드러낸다.
‘연극-가난-배우/뮤지컬-부-스타’의 도식은 극 속에 자주 등장하는 성냥을 통해서도 잘 나타난다. 자신의 라이터를 숨긴 채 신에게 성냥을 빌리려는 지인에게 신은 성냥을 켤 때마다 하고 싶은 질문을 하나씩 하게 한다. 안데르센의 동화 <성냥팔이 소녀>에서 성냥을 켤 때마다 소망하던 것이 나타나듯이 성냥을 매개로 신은 사랑을 얻는다. 그러나 성냥팔이 소녀의 성냥이 꺼지면 그만큼 차디찬 현실이 상기되는 것처럼, 이들의 사랑은 연극에 대한 신의 가치관과 충돌한다. 함께 연극을 하는 이들에게 위화감을 줄 수 있어 지인이 사 주는 비싼 셔츠를 입을 수 없고, 연기가 아닌 관리된 외모를 중시하는 프로덕션의 오디션 시스템에 회의적이며, 급기야 친한 형의 비참한 최후 앞에서 그를 모른 척해야 했던 자신이 위선자 같아 깊은 자괴감을 가지게 될 때, 둘 사이를 이어 주던 성냥도 꺼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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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한 의자 뺏기 놀이에서 약했기에 탈락했음을 씁쓸하게 인지하는 신은 마지막에는 탈락하기를 선택한다. 자신이 의자에 앉음으로 인해 누군가가 죽었기 때문에, 이게 사람 사는 것인지 의문을 지니게 된 것이다. 결국 연극에서마저 떨어져 나와 이민을 선택한 신은 스스로를 기만하며 현실에 안주하기에는 불타는 눈동자를 지닌 인물이다. 안 늙을 것 같은 눈동자, 빛나는 눈동자를 가지고 있다고 지인이 말한 것처럼 신이 그 눈동자의 빛마저 상실했을지는 극 속에서는 나와 있지 않지만 그러지 않기를 저절로 바라게 된다. 극에 달해서 도망쳤다고 했지만, 신은 스타가 아닌 배우로서만 남을 수 있는 인물일 것이므로.

바다 소녀의 동화 속 물에 대하여

그런가 하면 다른 한 축에는 소박하고 아름다운 섬에서 삶을 일구었던 띠엔 모라가 있다. 그 섬은 ‘물’로 상징된다. 포스터 이미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바다처럼 띠엔의 삶은 바다 그 자체이다. 띠엔은 어부인 아버지와 동화 작가인 어머니 사이에서 엄마와 함께 쓴 <두 번째 선물>이라는 동화를 읽는다. 들꽃이라는 이름처럼 꽃 같은 엄마에게, 그러나 마르고 시드는 아픈 엄마에게 물을 주어야 한다고 말하던 띠엔은 풍어와 바다에서 희생된 이의 명복을 비는 뱃고사를 지내며 여전한 삶을 이어 간다. 그러나 잔잔한 바다처럼 일정할 것 같았던 그 삶에도 격랑과 같은 큰 변화가 일어난다. 기후 위기로 섬이 물에 잠길 위기에 처한 것이다.
바다를 연구하기 위해 섬으로 온 연구소 직원은 띠엔에게 섬을 떠나라고 계속 경고하지만 띠엔에게는 현실감이 없을뿐더러, 문명을 마음껏 누리는 섬 밖에서 원인을 제공했는데 그 결과이자 피해로서 자신이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납득하지 못한다. 이유를 없애야 한다는 띠엔의 말에 연구소 직원은 이미 늦었다고 이야기한다. 같은 바다를 두고도 과학적인 설명을 하는 연구소 직원과 동화적인 이야기를 하는 띠엔의 간극처럼 둘의 사이는 좁혀지지 않는다.
동화 속에서는 인간이 푸른 요정에게서 선물로 받은 영리함을 이용해 바다를 괴롭히고, 심장까지 요구하는 등 끝없는 욕심을 부린다. 이처럼 자연의 선물을 하찮게 여긴 결과 띠엔은 삶의 터전을 잃고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된다. 고향을 잃은 띠엔은, 신이 한때 욕망하기도 했던 (자본에 기인한) 편리한 삶과 겹쳐지면서 연결된다. 섬 내부에서만 살았기에 섬 바깥을 볼 일이 없었던 띠엔은 섬을 탈출해 헬기를 탔을 때 비로소 낯선 바다를 마주한다. 자신의 섬이 한 겹 한 겹 쓸려 나가는 것을, 섬의 죽음을 그저 지켜봐야 하는 것이다. 신이 친한 형의 죽음에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그저 지켜보기만 해야 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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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히 발아하고, 발화하기

극을 마지막까지 보고 나니, 처음에 보았던 등을 돌리고 있는 의자가 데칼코마니처럼 보였다. 전혀 다른 삶을 살았던 것처럼 보이는 신과 띠엔은 닮았다. 신의 연극은 띠엔의 바다이다. 그리고 둘 다 연극과 바다를 잃었다. 이는 자기 자신을 잃은 것과도 같다. 그렇기에 이제까지와 같은 삶을 살 수는 없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가장 큰 태양’이라고 불리는 성냥이 남아 있다. 그 성냥은 그대로 씨앗이기도 하다. 발아/발화 가능성을 품고 있는 것이다. 신이 속했던 극단 겨자씨에서 관객 한 명 한 명이 씨앗이라고 했던 것처럼, 그 씨앗을 닮은 성냥의 머리에 불을 붙여 발화하면 또 다른 가능성이 발아할지도 모른다. 마지막에 신은 지인에게 자신이 사람을 사랑해도 될지 묻는다. 상품보다는 진정한 관객을 원하면서 연극을 사랑했던 신의 마음, 자신의 목숨과도 같았던 섬을 사랑했던 띠엔의 마음은 오롯해 보였다.
<극에 달하다>는 무척이나 부지런한 작품이다. 신과 지인의 로맨스가 있고, 신이 연극을 홍보하기 위해 추는 춤과 마지막에 두 사람이 생동하는 듯한 춤을 추는 퍼포먼스도 있고, 극장과 섬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시공간의 이동도 있고, 두 배우가 1인 다역을 하고, 신의 이야기에서 자본주의를 이야기하고, 띠엔의 이야기에서 기후 위기를 말한다. 개인의 자아뿐만 아니라 환경, 경제 등 세계의 이야기까지 해 보겠다고 야심차게 말한 것처럼 극은 숨 가쁘게 흘러간다. 전환이 빠르다 보니 어수선하거나 어지러울 때도 있었지만, 역설적으로 연극이기에 여백을 느끼기도 했다. 많은 것을 말하되 모든 것을 말하지는 않기에 여러 장소와 인물과 감정을 상상하는 동안 몰입할 수 있었다. 이처럼 소규모의 공간에서 두 시간 동안 친밀감을 나누며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는 생생한 기분이 계속 연극을 보게 만드는 힘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부지런히 연극을 만들고 누군가는 부지런히 보러 가는 사이에서 어렴풋이 발아하고, 발화하는 힘 말이다.

[사진출처 : 프로젝트팀 극에 달하다]

극장을 뛰쳐나온 공연 <극에 달하다>
일자
2021. 3. 4(목) ~ 2021. 3. 7(일)

장소
디지털비디오시티

출연
장재희 강준민
기획
김예빈 정옥다예
연출
김예빈
작
정옥다예
조연출
박지원
음악
이주호
미술
김건희
안무
현종은
홍보마케팅
유하영
촬영
이인규
주최
디지털비디오시티
주관
김예빈 정옥다예
관련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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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