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선 <탈춤의 목적 – 현대사회 속 탈춤의 형식적•실질적 의미와 지속 가능성에 관한 고찰> (feat. 김미란, 강병성)
여성 탈꾼 박인선과 다큐연극의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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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탈꾼 박인선과 김미란식 다큐연극의 만남
발화의 주체가 어떤 입장과 어떤 정체성으로 발화하는지를 분명히 밝히며, 자기인식을 드러내는 첫 번째 장면. 여성 예술가의 일상과 여성 예술가의 정체성이 연결되는 바로 그곳에서, 강령탈춤에 대한 자기 고민과 재해석이 태동한다. 첫 장면의 자기소개가 이후 ‘말뚝이’가 된 박인선이 랩을 통해 자기반성과 고민을 드러내는 장면으로 확장되는 지점에서, 이 공연이 김미란식 다큐연극 <강진만 연극단 구강구산 결과보고서>(2019)의 업그레이드 버전임을 짐작하게 된다.1) <탈춤의 목적>에서도 연출가 김미란은 다큐연극의 형식에 유머와 일상성, 춤과 노래 그리고 랩이라는 다양한 예술적 형식을 결합하여 이 공연을 의도적으로 ‘쇼’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쇼’의 형식을 결합한 김미란식 다큐연극은, 이것이 타인의 삶을 무대 위에서 ‘재현’하고 있는 ‘공연’임을 철저히 인식하고, 그 거리감으로부터 관객이 스스로 사유할 수 있는 여백을 마련한다. 동시에 유머러스한 은유를 사용하고, 농담하며, 엄숙한 분위기를 의도적으로 덜어내는 연쇄적 선택을 통해, 무대에서 메시지를 먼저 뜨겁게 강요하는 일을 경계한다. 이는 다큐연극에서 연출자나 무대 위 발화자의 메시지가, 관객의 능동적 사유를 쉽게 앞지를 수 있음을 경계하고 고민한 흔적으로 느껴진다. 더 진지하게, 더 많이 말해야 할 것 같은 곳에서 매번 발화가 멈춘다. 다만 오래 고민한 발화자의 언어로 질문만을 툭 남겨둔다. 이것은 연출적인 계산과 설계로 느껴지며, 이때 관객들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타인의 삶에 천천히 접속할 수 있고, 스스로 메시지를 찾아내 타인의 삶의 고민을 공연장 밖의 일상까지 가져가 나눌 수 있게 된다.
장단, 판, 탈. ‘그럼 나는?’

‘연희 석사’ 박인선은, ‘탈춤이란 탈꾼이 탈을 쓰고 춤을 추면서 노래와 극적인 대사를 하는 종합예술극’이라고 설명한다. 이후 탈춤에 없어서는 안 된다고 꼽히는 핵심적 3요소를 찾는다. 그 3요소는 장단, 판, 탈이다. 바로 그다음, 박인선은 하나의 질문을 툭 던진다. ‘그럼 나는?’ 이 질문은 탈을 쓰지 않은 여성 탈꾼이, 관객 앞에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고 스스로에 대해 직접 말하기 시작하겠다는 하나의 선언처럼 느껴진다. ‘사람 나고 탈 났지, 탈 나고 사람 났나.’ 유머러스하고 능청스러운 이 발화 이후, 박인선은 자신이 입으로 내는 장단에 맞춰 상좌춤을 추기 시작한다. 탈꾼이 탈을 쓰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만을 따라 긴 시간 탈춤을 추는 이 장면은 매우 고요한 의식처럼 느껴진다. 조명은 종종 여성 탈꾼의 거대한 그림자를 무대의 벽에 드러나게 한다. 무대 위에서, 아주 아름답고 새로운 것이 태동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음악이 바뀌는 순간마다, 아주 정확한 타이밍에 조명 디자인이 바뀐다. 무대 위에 놓인 평범한 스탠드 조명들은, 어느 순간, 마치 클럽 조명처럼 비트에 맞춰 유머러스하게 깜빡이기도 한다. 무대의 모든 요소가, 여성 탈꾼의 발화와 탈춤의 재해석을 위해 힘을 보태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미얄할미 과장’과 ‘양반 과장’ 의 재해석
다음으로는 갑자기 다윈의 진화론이 등장한다. ‘쓸모없는 기관은 자연선택에 의해 서서히 퇴화하여 흔적만 남게 된다’는 말과 함께, 박인선은 정말 인기가 없어 일 년 중 딱 한 번 정기공연에서만 공연되는 강령탈춤의 ‘양반 과장’에 대한 걱정을 쏟아낸다. 그리고 직접 ‘양반 과장’을 재해석한다. 키보드로 굿거리 장단을 만들어 양반들을 등장시키고, 양반들이 서로의 ‘양반의 근본’에 대해 말하는 노래가 유머러스하게 이어진다. 박인선은 자바라 마이크를 활용해 리듬을 타며 노래하고, DJ처럼 뚝딱뚝딱 비트를 만든다. 동시에 다양한 양반 캐릭터들을 능숙하게 오가며 연기하고 노래하는데, 탈꾼이 탈을 벗고 연기하고 있어 캐릭터마다 달라지는 표정을 속 시원하게 확인할 수 있다. 미얄할미와 영감, 양반들과 말뚝이를 쉬지 않고 오가는 탈꾼의 노래와 연기를 볼 때 탈춤을 자주 접해보지 못했던 관객으로서도 탈춤이란 장르 자체가 ‘종합예술극’이라는 말을 체감하게 된다. ‘양반 과장’을 위해 만들어진 강병성의 음악과 함께 ‘양반 과장’의 비인기 요인 중 하나로 꼽히는 ‘많은 옛날 말’들은 낯선 운율과 의미를 재생성하며, 관객에게 매우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후 박인선은 ‘나는 눈물을 뚝뚝, 나는 말뚝’ 이라며 갑자기 프리스타일 랩을 시작한다. 랩의 가사는 황해도에 가보지 못한 강령탈춤 이수자가 강남에서 탈춤을 연습하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내용이다. 2021년을 살아가는 강남 출신 여성 예술가의 솔직한 자기인식을 기반으로, 자신이 전공하고 계승한 탈춤 속 여성 캐릭터들에 대해 고민했던 진짜 언어들이 일관되게 드러난다. 농담 같은 형식적 외피 아래에 작동하는 연출적 선택들을 세심히 관찰하다 보면, 꾸준히 겹을 쌓아가는 문제의식들을 관객에게 매우 부드럽게 틈입시키려는 노력이 느껴진다.
커튼콜 : 탈춤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관객의 고찰
[사진촬영 : 윤관희]
- 일자
- 2021. 2. 26(금) ~2021. 2. 27(토)
- 장소
- 서강대 메리홀 소극장
- 연출
- 김미란
- 음악
- 강병성
- 출연
- 박인선
- 조명
- 박유진
- 음향
- 박재식
- 무대감독
- 이뮥수
- 영상
- 노효경
- 사진
- 윤관희
- 프로듀서
- 조하나
- 후원
- 서울문화재단
- 연출가 김미란은 차세대열전2018 <강진만 연극단 구강구산 결과보고서>에서, 2017년 고용노동부 주관 일자리 창출 사업의 일환으로 강진군과 한예종이 협력해 만든 ‘강진만 연극단’의 단원들이 무대 위에서 스스로 발화하고 서늘한 유머와 물음을 던지도록 한 바 있다. 이 공연에서도 판소리와 그림 등, 무대 위 발화자들이 가장 편안한 예술적 표현을 더한 다큐연극의 방식을 채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