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준 <어둠 속의 코끼리>
이야기가 이미지가 되고, 이미지가 다시 이야기가 되는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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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가 이뤄진 장소인 을지로OF는 총 네 개의 방(유다미 <Fairy tale workshop>, 장주희 <현전의 고백>, 유태희 <Multibus>, 그리고 정승준의 <검은방>)으로 공간이 구획되어 있다. 이 네 개의 방은 무대미술가의 작업방식, 예술가로서의 여정, 갈등 혹은 고민 등을 주제화 하는 동시에, 작가에 따라 어떻게 각기 다른 결과물이 나올 수 있는지를 실험한다. 이들 모두 같은 방 안에서 같은 코끼리(혹은 실체를 알 수 없는 그 무엇)를 마주하고 있지만, 각자의 방 안에 풀어둔 코끼리는 각기 다른 모양새를 하고 있다.
전시의 제목인 <어둠 속의 코끼리>는 무언가의 실체를 완전히 보지 못한 자들이 자신이 감각한 부분만을 근거로 전부를 속단할 때 쓰는 말인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는 표현을 오히려 긍정적으로 비틀어 사용한다. 만약 그 어느 누구도 정확하고 분명하게 실체를 파악할 수 없는 복잡다단한 대상이 우리의 어둠 속에 놓여있는 코끼리라면, 과연 그 누가 서로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겠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이 전시는,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다만 모든 감각을 활용해 코끼리를 느껴야 하고, 이 코끼리를 자유롭게 상상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그려낼 수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여기, 우리의 코끼리(혹은 그 무엇)가 모두의 해석이 존중받는 유토피아적 세계에, 칠흑 같은 어둠으로 둘러싸인 세계에 놓여있다.
이야기가 이미지가 되고, 이미지가 다시 이야기가 될 때
작가가 제목에서 사용하고 있기도 한 ‘동화 워크숍’은 무대디자이너 얀 스테파노(Jan Stepanek)의 작업을 참고한 것으로, 참가자는 그림형제의 동화들 중 각자 하나의 동화를 선택하고 해당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여러 방식으로 표현해본 뒤 이를 자기화 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쳤다. 유다미는 총 다섯 단계로 워크숍 과정이 진행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1.동화를 선택한 이유와 기억에 남는 장면 표현하기. 2.동화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기. 3.자신이 느낀 감정과 부합하는 다양한 이미지 찾기. 4.자신이 겪은 일들 중 동일한 감정을 유발했던 사건/상황 이야기하기. 5.4번 과정에서 나온 이야기를 자신만의 동화로 창작하기. 명시된 워크숍의 각 단계는 무대미술가가 희곡의 이야기를 이미지화 하고 이를 다시 자신만의 창작물로 만들어내는 일련의 과정을 암시한다. 특히, 같은 동화를 선택한 두 사람(유다미, 송영재)을 인터뷰한 영상은 동일 텍스트가 해석의 태도나 감상에 따라 다른 이미지, 다른 이야기로 도출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한 태도로 보여준다.
유일한 코끼리를 그리는 사람들

유다미의 방이 무대미술가가 텍스트를 기반으로 이를 다시 이미지화하고 자기화하여 창작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펼쳐 보이고 있다면, 다른 세 사람은 현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무대미술가의 작업방식 뿐만 아니라 그들이 무대미술가로 살아온 여정, 현실적인 고민들에 집중한다.
첫 번째 방을 나와 다음 공간으로 들어가면, 방 안에 작은 방이 하나 더 붙어 있는 곳이 나온다. 흰 페인트 벽에 누군가의 목소리들이 활자로 인쇄되어 무작위하게 배치되어 있는 이곳은 유태희의 <Multibus>가 전시된 방이다. 방의 한 구석에는 인터뷰 영상이 재생되고 있다. 이 방을 채운 목소리들은 무대미술가가 되기까지의 삶, 연극 대본을 읽고 이를 디자인으로 발전시키는 방법, 연극에 대한 생각을 주로 말하고 있다. 인터뷰 내용 중 가장 나의 흥미를 끌었던 부분은, 몇몇 무대미술가들이 스스로를 ‘난독증’, ‘ADHD' 등으로 진단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 사람들에게는 텍스트를 손쉽게 읽어내는 능력이 없을지 몰라도, 이들은 이야기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들로 씨줄과 날줄을 엮어 한 세계를 건축해내는 사람들이다. 이 인터뷰 영상을 통해 거듭 강조되는 사실은 모든 무대미술가들은 텍스트를 분석하고 이를 이미지화하는 자신만의 고유한 방법을 가지고 있고, 이 다양성이 결국 유일한 얼굴을 한 코끼리를 그려낸다는 점이다.
어둠 속에서 빛이 되어주는 것들
[사진촬영 : 을지로OF]
- 일자
- 2021. 3. 4(목) ~ 2021. 3. 14(일)
- 장소
- 을지로 오브OF
- 연출
- 정승준
- 영상
- 장주희
- 미술
- 유다미
- 촬영
- 유태희 김미루
- 포스터
- 한만오
- 기획
- 이우경 김서희 김민경
- 주최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주관
- 한국예술창작 아카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