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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선 <슬픔의 집>

리셋되는 슬픔: 사라지거나 혹은 망각되거나

손옥주_공연학자
198호 2021.04.15
감히 말하건대, 김지선 작가의 <슬픔의 집>을 통해 국내 공연예술계는 전환의 시기를 맞게 되었다. 단지 게임 형식에 공연의 요소들이 접목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기억과 시간성, 신체 등 예술계 전반의 현재를 구성해내는 주제어들이 매우 독창적인 작가의 관점과 그와 같은 관점을 바탕으로 제시되는 설정 안에서 비로소 소비 가능한 것이 아닌,
감히 말하건대, 김지선 작가의 <슬픔의 집>을 통해 국내 공연예술계는 전환의 시기를 맞게 되었다. 단지 게임 형식에 공연의 요소들이 접목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기억과 시간성, 신체 등 예술계 전반의 현재를 구성해내는 주제어들이 매우 독창적인 작가의 관점과 그와 같은 관점을 바탕으로 제시되는 설정 안에서 비로소 소비 가능한 것이 아닌, 사유 가능한 것으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이 공연은 사유가 전제하는 깊이의 감수성을 평면적 게임 환경에 주입함으로써 신체와 기억/생각이 맺어온 관계의 역사를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한편, 게임과 관객 사이의 매개자로 게임 스트리머를 위치시킴으로써 이 같은 은유의 지점을 물리적 공간(physical space)인 극장으로까지 확장시킨다. 또한 공연을 이루는 모든 요소들에는 이유가 있으며, 그 요소들이 만나는 지점은 매우 예민하리만큼 정합적인 구조를 취한다. 그러나 동시에 흥미롭게도 그와 같은 정합성이 보편성 혹은 보편적 이해를 전제하는 것은 아니며, 그러한 방식의 이해를 도모하는 것이 작품의 궁극적인 목표도 아니다. <슬픔의 집>은 작가 자신이 만들어낸 그와 같은 정합성의 틈새에서 이 작품만이 보이는 궁극적인 의미의 지점들을 생성해낸다.
김지선 작가의 게임 퍼포먼스 <슬픔의 집>은 지난 3월 복합문화예술공간 행화탕에서 진행된 페스티벌 ‘가상정거장’(예술감독 김성희)에 초대되어 3월 5일과 6일 양일간 공연되었다. 이 작업은 2020년 1월에 오프라인 극장(서강대 메리홀)에서 발표된 바 있으며, 같은 해 9월에는 벨기에 쿤스텐 페스티벌에서 오프라인 극장과 마인크래프트로 지어진 온라인 극장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등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국내외의 관객들과 만나왔다. 이번 ‘가상정거장’에서 공연된 <슬픔의 집>의 관객은 ‘행화탕에 모여 스크린으로 실시간 플레이되는 <슬픔의 집> 게임을 관람하는 현장 관객’과 ‘마인크래프트에 접속해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다가 온라인 극장에 모여 <슬픔의 집>을 관람하는 플레이어-관객’, 그리고 ‘<슬픔의 집> 게임 및 온라인 극장의 모습이 라이브 스트리밍되는 장면을 각자 집에서 유튜브 채널을 통해 관람하는 시청자-관객’, 이상 세 부류로 나뉘었다. 작년 메리홀에서 진행되었던 오프라인 극장 버전의 초기 공연을 관람했던 필자는 이번에는 자택에서 유튜브를 통해 스트리밍되는 영상을 시청하게 되었는데, 이 작품의 경우에 관람 환경이 오프라인인지 온라인인지의 여부보다는 몇 번을 관람했는지, 즉 관람의 횟수와 누구를 매개로 관람했는지, 즉 게임을 중계한 스트리머의 특성이 공연 관람에 있어 보다 중요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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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집>의 전체 진행방식은 구성상 사뭇 단출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에 내포된 의미는 꽤나 복잡하다. 우선, <슬픔의 집>은 공연의 제목이자 작가가 실제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는 게임의 제목이기도 하다. 따라서 (공연으로) 관람될 수도 있고 (게임으로) 직접 플레이될 수도 있는데, 공연 안에서는 이 두 방법을 접목해 ‘라이브로 플레이되고 있는 게임을 관람하는 방식’을 취한다. 플레이어로는 현재 활동 중인 실제 게임 스트리머가 섭외되었는데, 그는 게임시작부터 끝까지 직접 플레이를 하며 마주하게 되는 상황들에 대해 즉각적인 멘트나 행동으로 반응한다. 이를 지켜보는 관객은 자신의 역할이 대리되는 메타-플레이의 형식 안에서 자연스럽게 스트리머의 반응을 관찰하기도 하고 그 반응에 몰입하기도 한다. <슬픔의 집>의 공간성이 스트리머의 게임 플레이에 따라 이어지는 동선 안에서 구현된다면, 시간성을 구조화하는 것은 바로 낮고 차분한 여성의 목소리가 만들어가는 또 다른 질감의 동선, 즉 나레이션이다. 나레이션은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영어로 이어지며 그에 대한 우리말 번역 자막이 스크린 상단에 배치되는데, 한국인인 작가의 사유가 (마치 신체성이 결여된 AI처럼 느껴질 정도로 호흡과 발성 등 모든 면에서 완벽한) 화자의 영어 나레이션을 통해 음성화된다/대리된다는 점은 공연 전반에 또 하나의 메타적 층위를 만들어주는 일종의 장치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공연의 내용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우선 이 공연의 계기가 된 ‘민’과의 만남부터 언급해야 할 듯하다. 작가는 여행 중에 아마존에서 ‘민’을 만나게 되는데,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고 있던 그는 교통사고에의 기억을 통증의 근원으로 여기며 이를 치유할 방법을 찾는다. 그러던 중, 자신이 직접 게임을 개발하고 이를 반복해서 플레이하게 된다. 그리고 작가는 그가 만든 게임을 USB로 전달받아 마찬가지로 플레이하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민은 자신이 만든 이 게임을 플레이하며 무엇을 보고자 했을까? 그곳에서 그의 생각은 어떤 변화를 거칠까? 그 변화를 통해 그의 기억은 사고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출처: ‘가상정거장’ 공식 홈페이지)
이와 같은 질문들을 바탕으로 작가는 ‘민’의 게임에 자신의 이야기를 나레이션으로 덧붙여 <슬픔의 집>이라는 제목의 게임이자 공연을 만들어낸다. 이 같은 배경을 바탕으로 구조화된 <슬픔의 집>은 서로 다른 진행 조건을 지닌 다양한 스테이션(장면)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각의 스테이션은 추상적인 도형들이 놓인 3D 공간, 사막, 쓰레기 더미, 동굴, 갤러리, 체스와 보드게임이 연결된 듯한 사각 판 등의 공간적 이미지 안에서 구현된다. 게임의 유일한 플레이어인 스트리머는 순차적으로 배열된 각각의 스테이션을 이동하며 지속적으로 흘러나오는 나레이션에 귀 기울이기도 하고, 게임 안에서 제시된 퀴즈를 맞히기도 하며, 게임의 룰로 제시되는 특정 명령에 복속하기도 한다. <슬픔의 집> 게임이 진행되는 이 같은 전체 과정 전후로는 마인크래프트에 참여 중인 관객들의 캐릭터가 김지선 작가와 마인크래프트 건축 전문팀인 GBF Studio가 함께 제작한 가상의 극장(대극장과 소극장)과 야외 바 등지를 오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둘째 날 공연 후에는 ‘고독한 김지선’이라는 닉네임을 단 작가의 캐릭터와 함께 하는 관객과의 대화가 가상의 소극장에서 진행되기도 했다. 이상이 약 80여 분간 이어진 이번 공연의 대략적인 진행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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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리머의 진행을 따라 마치 유목민처럼 <슬픔의 집> 각 스테이션 내에 거주하듯 움직이며, 부지불식간에 단어 하나를 머릿속에 또렷하게 각인하게 되었다. ‘메모리’. <슬픔의 집> 속 나레이션은 유독 기억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었는데, 그 이야기에는 ‘민’의 통증을 매개하는 것으로서의 기억이 담겨있었고, 남아메리카와 인도, 티벳 지역의 전통적인 기억술에 대한 설명이 담겨있었으며, 저장이 아닌 접촉으로서의 기억에 대한 작가의 사유가 담겨있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시공간의 넘나듦 속에서 비로소 획득되고 발견되는 기억의 의미란 매우 다층적이어서 때로는 문화적 전승이자 인간이 살아온 시간의 축적 혹은 집합으로 상정되기도 하고, 때로는 USB 메모리 스틱처럼 용량 표기가 가능한 외재적 저장공간으로 형상화되기도 한다. 철학자 한병철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전자는 ‘관계(Beziehung, Relation)’로서의 기억으로, 그리고 후자는 ‘연결(Verbindung, Connection)’로서의 기억으로 이해해볼 수도 있겠는데, 어쩌면 작가는 <슬픔의 집>을 통해 기억의 역사를 재조명하는 동시에 (근대화 과정에서 본격적으로 촉발되기 시작한) 소비재로서의 기억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자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또한 스위치처럼 on/off가 가능해진, 원하는 시점에 리셋될 수 있는, 따라서 궁극적으로 자율적인 편집이 가능해져 버린 또 다른 층위의 기억에 대해 형상화하고자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작가가 ‘민’으로부터 전달받은 게임의 저장공간이 컴퓨터 기기에 연결되는 방식으로만 게임을 구현할 수 있는 USB 스틱이라는 점, 그리고 게임 안에서 위로 향하는지 아래로 향하는지 도무지 감각할 수 없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도착한 갤러리에 전시품으로 진열되어있던 잘린 손 무더기와 인도의 사진 등은 그 자체로 작가의 사유를 반영하는 중요한 상징들이라 할 수 있다.
<슬픔의 집>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흥미로운 요소는 바로 김지선 작가가 전작들을 통해 시도한 바 있는 ‘합법적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법적이지도 않은’ 공간 혹은 요소에 대한 전략적 탐색이다. 김지선 작가는 가령, 초기작인 <웰-스틸링>에서는 “접근이 금지된 장소에는 ‘투명인간’이라고 쓰인 후드티를 입고 가고, 스타벅스에서 공짜 핫초콜릿을 먹을 수 있는 방법을 배포해 젊은이들이 그곳을 점령할 수 있게 하며, 대형상점에서의 합법적인 도둑질을 도모”(출처: 예술경영지원센터 편, <다원예술>, p.29)하는 것을 작업 방식으로 채택한 바 있다. 기존 시스템 내부에 비밀리에 잠복 중인 빈 공간을 파고들어 결과적으로 시스템 전체를 교란시키는 이 같은 전략은 이번 작품에서 <슬픔의 집> 게임이 전제하는 특정 조건들을 와해시키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이와 관련해 중요한 지점은 바로 그러한 와해가 게임의 외부가 아닌, 게임 자체의 룰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게임 시스템 내부의 역설적 조건을 전유함으로써 전체 게임 환경을 변화시키는 전략은 가령 치트키의 사용이나 NPC(Non-Player Character)의 등장과 같은 방법을 통해 실행된다. 이 게임에서 치트키는 플레이어로 하여금 현실 시간으로 30일을 보내야만 진행 가능하도록 설정된 스테이션을 단 3분 만에 진행할 수 있도록 만드는데, 이처럼 게임에 적용 가능한 ‘합법적 속임수’로서의 기능을 활용함으로써 게임이 재현해내고자 하는 원리와 구조를 변형 가능한 것으로 재정립시킨다. 또한 숲에서 사슴, 새, 곰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NPC는 게임 상의 캐릭터이되 플레이어가 조종할 수는 없는, 다시 말해 플레이어의 직접 통제로부터 벗어나 있는 조건이라 할 수 있겠는데, 심지어 플레이어가 게임 플레이를 멈추고 부재하는 순간에 NPC가 등장하기 시작함으로써 게임의 수행 주체인 게임 플레이어가 구축하는 구조에 미묘한 공백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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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도 높은 사유의 나레이션과 함께 이어지던 <슬픔의 집>은 게임 말미에 총격을 받아 사라진다. 그런데 그 순간, 총탄이 만들어낸 구멍들 너머로 낯설게도 익숙한 무엇인가가 보이기 시작한다. 바로 게임이 시작되던 첫 스테이션의 모습이다. 문득 작품 소개글에 나온 작가의 질문 하나가 떠오른다. 민은 대체 이 게임을 반복적으로 플레이하며 무엇을 보고자 했던 것일까. 몇 번이고 가능하다는 것, 삭제나 폐기를 전제한 채 집을 설계하고 지어내고 허무는 것의 반복 속에서 그는 고통을 잊거나 잃을 수 있었던 것일까. 그리하여 결국, 그는 되돌아오는 접속의 과정 안에서야 비로소 ‘관계로서의 기억’으로부터 놓여날 수 있었던 것일까.
마지막으로,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갤러리로 들어서며 처음으로 마주했던 문장을 인용하고자 한다.
슬픔의 집을 지은 자, 더 이상 짓지 않게 하리.

[사진제공: Ⓒ김지선, 가상 정거장 제공]

김지선 <슬픔의 집>
일자
2021.3.5.(금) ~ 2021.3.6.(토)
장소
목욕탕 욕탕
컨셉 연출
김지선
조연출
강윤지
게임 개발
권오준 문기강 박두현
일러스트레이션
오채원
기술감독
김지명
영문 번역
강윤진
온라인 공연 진행
홍영택
온라인 공연 중계
서찬석
Minecraft 극장 건설
GBF Studio(김민석, 오정민, 장유현)
Minecraft 시스템 개발
GBF Studio(최주명)
Minecraft 런처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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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
Kojes
공동제작
Kunstenfestivaldesarts
후원
문화체육관광부,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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