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성북동 비둘기 <다있다스 안들어오니쿠스>
안드로이드 비둘기는 20세기 아방가르드의 꿈을 꾸는가?
이낙원
198호
2021.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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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황한다. 분당선 서울숲역에서 하차, 아파트 단지를 지나 아무리 가도 공연 장소가 보이질 않는다. 주택가 뒷골목을 걷고 또 걷지만 소용없다. 그러다 퍼뜩 머릿속에 스쳐가는 생각. 혹시? 건물을 끼고 빙 둘러 보니 간판과 입구와 입간판이 나타난다. 뚝섬플레이스(took some PLAYS)를 찾아가는 길은 이런 식이다. 공간에서는 지난 세기 아방가르드 극단들에 대한 향수가 짙게 묻어난다. 버려진 창고나 공장을 개조해 극장 겸 아지트로 삼곤 했던 20세기 전위 연극인들이 연상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이전 공연의 사진과 리플렛 등 극단 성북동 비둘기의 지난 흔적들 또한 도처에서 보인다.
당황한다. 분당선 서울숲역에서 하차, 아파트 단지를 지나 아무리 가도 공연 장소가 보이질 않는다. 주택가 뒷골목을 걷고 또 걷지만 소용없다. 그러다 퍼뜩 머릿속에 스쳐가는 생각. 혹시? 건물을 끼고 빙 둘러 보니 간판과 입구와 입간판이 나타난다. 뚝섬플레이스(took some PLAYS)를 찾아가는 길은 이런 식이다. 공간에서는 지난 세기 아방가르드 극단들에 대한 향수가 짙게 묻어난다. 버려진 창고나 공장을 개조해 극장 겸 아지트로 삼곤 했던 20세기 전위 연극인들이 연상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이전 공연의 사진과 리플렛 등 극단 성북동 비둘기의 지난 흔적들 또한 도처에서 보인다.
관객 입장은 공연 5분 전에 시작된다. 입장하는 관객을 배우들이 박수로 반갑게 맞는다. 예상치 못한 환대에 관객들은 우왕좌왕하다 자리에 앉게 된다. 머쓱하다. 앉아도 여전히 시선 둘 곳이 없는 것은 좌석 배치 탓이다. 관객 한 명당 배우 한 명이 서로 마주보고 나란히 일렬로 앉다시피 했기 때문에. 그렇게 어리둥절한 채로 공연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린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공연은 끝까지 그러한 배치 그대로 이어진다.
자기 표절
이 공연은 극단원들이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타이터스 앤드러니커스>를 놓고 화상 회의를 연 모습을 재현한다. 연습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확진자 수가 점점 늘어난 터라 이런 방식으로 대면 연습을 대체하게 된 것이다. 장면들은 자유분방하게 뻗어나간다. 상상과 연상을 통해, 때로는 말놀이를 통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전개되기도 한다. 배우들이 한 명씩 중심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끌고 가는데 그 한가운데에는 <타이터스 앤드러니커스>의 키워드인 ‘복수’가 자리하고 있다(고 이 공연은 주장하는 듯하다).
첫 장면에서는 고등학교 급식실 계단에서 실수로 선배를 밀친 후 괴롭힘을 당한 일화가 나온다. 이야기를 마친 배우는 다음 배우에게 그가 생각하는 복수를 묻는다. 이번에는 갑자기 설교 장면이 시작된다. 잘 들어보면 창세기, 노아의 방주, 바벨탑 등 성경에 나오는 내용들을 복수라는 맥락에서 연결한 듯하다. 한바탕 찬송가를 부르고 난 후에는 느닷없이 정치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마치 파도타기 게임처럼 배우들이 한 글자씩 소리쳐서 발화하는 대목들도 있다. 정치적 보복이란 내용이 언급되는가 싶더니 곧장 ‘해님’이라는 인물이 등장해 설법 강연을 펼친다. 나머지 배우들은 텍스트가 적힌 골판지를 들어 보여 인물의 언행불일치를 풍자한다. 곧이어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내 머릿속의 지우개> 등의 장면들이 재현되고, 병역 기피 연예인이 나와 억울함을 주장하다 말고 춤추고 노래하기를 반복한다. 나중에는 ‘설쌤’이라는 인물에 이어 ‘그레타 툰베리’까지 등장한다. 마지막에 나온 이혜리 배우는 이름 때문에 반에서 이‘hell’이라 놀림 받았단 이야기를 하는데, 이 장면은 학교에서의 괴롭힘이란 점에서 첫 번째 에피소드와 묘하게 겹친다.
이렇듯 얼토당토않고 능청스럽게 비약하는 장면 구성은 극단의 기존 작업에서 여러 차례 시도된 바 있다. 그런 점에서 <다있다스 안들어오니쿠스>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거리두기’ 효과 극대화를 위한 연출기법과 연기술 연구>를 자주 연상시킨다. 그 작업에서는 자가격리 중 유투브에서 일본 전통극 노를 알게 되었다는 일화가 드라마 <천국의 계단>으로 연결되고 마무리는 ‘상록수’를 합창하는 식의 구성을 보여줬다. <야생 다큐멘터리: 연극>에서 <델마와 루이스>, <미녀와 야수>, <록키>를 재현했던 것 또한 이번 공연과 연관성이 있어보였다.
다만 이러한 ‘면역리허설’ 3부작의 작업들은 비교적 뚜렷한 문제의식을 드러냈단 점에서 이번 공연과 퍽 차이가 있다. 기존 작업에서 극단 성북동 비둘기의 고전 비틀기는 두 가지 튼튼한 축을 가졌다. 한 쪽 끝에는 고전 원작이 있고 다른 쪽 끝에는 재창작의 선명한 의도가 있었다. 한쪽이 손을 놓아버렸을 때 비틀기는 효과를 잃는다. 납작해진 패러디는 연극적 밀도와 긴장감을 잃어버리고 비틀거릴 따름이다. 비틀수록 헛돌 뿐이다. <다있다스 안들어오니쿠스>는 어쩌면 양손을 모두 놓아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주제의식이 자리해야 할 곳에는 옆길로 새 한없이 구불구불 이어지는 만연체 문장과 같은 장황한 이야기 방식만 남았다.
자기 부정
최근 작업이었던 ‘면역리허설’ 삼부작은 극단 성북동 비둘기의 또 다른 분기점이 될 수 있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그 자체를 연극적 형식으로 도입한 시도는 유례없는 전염병 상황에 대한 적극적이고 즉각적인 응전으로 읽혔고, 극단에 어떤 변화의 가능성이 움트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어쩌면 극단은 그 작업들을 통해 지난 세기 전위 연극의 향수에서 벗어나 자기 갱신의 여정에 다시금 나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다있다스 안들어오니쿠스>은 그러한 시도들 끝에 나온 후속작이라는 점에서 묘한 늬앙스를 가진다.
극단은 ‘면역리허설’ 삼부작에서 무대와 객석 사이 투명막(<베르톨트 브레히트의 ‘거리두기’ 효과 극대화를 위한 연출기법과 연기술 연구>)을 설치하거나, 관객을 등진 나레이터(<야생 다큐멘터리: 연극>)를 통해 비말 감염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공연 형식을 실험한 바 있다. 물론 <다있다스 안들어오니쿠스> 또한 얼핏 보기엔 팬데믹 상황에 대한 또 다른 반응으로 여겨진다. 배우들이 일렬로 객석을 정면을 바라보고 있고 한 사람이 말하는 동안 다른 이들은 들어주는 등 공연 형식 전반이 줌 화상 회의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다있다스 안들어오니쿠스>의 형식은 ‘면역리허설’ 삼부작과 명백히 대척점에 위치하며, 도리어 이전 작업들을 무화시키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전작에서도 유사한 좌석 배치를 했지만 이번 공연에는 투명막도, 나레이터도 없다. 배우들은 러닝타임 내내 마스크 없이 관객들을 정면으로 마주 보고 말한다. 이 때문에 질문하게 되는 것이다. 자기 부정으로 보이는 이러한 회기 현상에 타당한 연출적 근거가 있는가. 동시대적인 상황을 자신들만의 어법으로 풀어낸 지난 작업들의 시도는 일회적인 것으로 그치는 걸까. ‘면역리허설’ 삼부작은 과연 진정으로 팬데믹 상황에 대한 절박한 대안 모색이었나, 아니면 그저 동시대성을 쫓은 하나의 기획이었던 건가.
물론 극단 성북동 비둘기는 비타협적이고 불친절한 태도를 이제까지 분명 일관성 있게 고수해온 몇 안 되는 전위 연극 집단이다. 드라마 안 한다. 무대세트 안 만든다. 조명쇼 같은 거 없다. 완성도, 완결성에 얽매이지 않겠다. 내용 전달, 기승전결, 윤리적 판단은 관객의 몫이다. 보는 이들을 불편하게 때로는 기꺼이 불쾌하게 만든다. 이러한 고집은 시간이 지나도 퇴색되지 않고 도리어 갈수록 짙어지고 있는 듯하다. 아방가르드의 필연적인 비주류성은 오만과 독선으로 흐르기 쉽다. 지난 세기 연극에 대한 향수와 데카당한 포즈로 전위성의 표층만을 답습하게 된다면 그건 시대착오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기꺼이 앞장선 극단 성북동 비둘기의 분투가 곧 한국 아방가르드 연극의 앞날이다.
[사진제공: 극단 성북동 비둘기]
극단 성북동 비둘기 <다있다스 안들어오니쿠스>
- 일자
- 2021.3.3.(수) ~ 2021.3.28.(일)
- 장소
- 뚝섬플레이스
- 원작
- 윌리엄 셰익스피어
- 창안 연출 art-work
- 김현탁
- 출연
- 성석주 김미옥 박보현 최하늘 박현준 이유근 박소현 이혜리 정서현 곽영현
- 기술감독
- 서지원
- 기획제작
- 지대현
- 드라마터그
- 황동우
- 무대디자인
- 한수정
- 조연출
- 정보영
- 제작
- 극단 성북동비둘기
- 후원
- 서울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