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비평] 공연저술가 김슬기의 ‘시선’ 평론집에 대한 리뷰를 중심으로
「도래하는 비평의 프롤로그」에 관한 메타비평: 주관성의 비평
김민관
198호
2021.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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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슬기의 「도래하는 비평의 프롤로그: 연극비평집단 시선 『우리가 선택한 좌석입니다』」는 연극비평집단 시선(이하 ‘시선’)의 『우리가 선택한 좌석입니다』 연극비평집단 시선, 『우리가 선택한 좌석입니다』, 1도씨, 2020. 라는 책에 대한 비평이다. 김슬기는 ‘시선’의 글쓰기를 예시로 들어 새로운 비평의 자리를 제시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메타비평은 작품에 대한 비평이 아니라, ‘작품에 대한 비평’에 대한 비평일 것이며, 결국 비평 자체를 이야기하는 비평일 수밖에 없다면, 김슬기의 비평 역시 메타비평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메타비평의 대상
김슬기의 「도래하는 비평의 프롤로그: 연극비평집단 시선 『우리가 선택한 좌석입니다』」는 연극비평집단 시선(이하 ‘시선’)의 『우리가 선택한 좌석입니다』1)라는 책에 대한 비평이다. 김슬기는 ‘시선’의 글쓰기를 예시로 들어 새로운 비평의 자리를 제시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메타비평은 작품에 대한 비평이 아니라, ‘작품에 대한 비평’에 대한 비평일 것이며, 결국 비평 자체를 이야기하는 비평일 수밖에 없다면, 김슬기의 비평 역시 메타비평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연극에 관한 비평이 연극을 생생하게 감각하는 세부적 묘사, 연극이 위치한 시대적 흐름과 연극사에 비춰보는 조망적 시선, 마지막으로 연극에 대한 예술로서의 평가 혹은 판단으로 이뤄진다고 가정해본다면2), 연극의 현존성을 글로써 담보하기는 쉽지 않을뿐더러, 작품을 보지 않고 나아가 다루지 않고 그에 관한 비평만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이 메타비평으로서 충분한 것인지 하는 회의가 이 글을 선택하기 전에 든 생각이었다.3) 하지만 이런 생각은 충분히 비판될 수 있는데, 연극에 관한 비평 자체가 불완전하다는 전제를 절대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간혹 예외가 있지만4), 비평은 대부분 글이라는 매체를 선택하고 있고, 그 글을 읽고 쓰는 것이 메타비평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그 글이 ‘어떻게’ 작품을 반영하고 있는지 동시에 어느 정도 효과적으로 이를 전달하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 일차적인 과제가 될 것이고, 그리고 그 시선이 적당한지 온당한지를 살피는 것이 그다음의 과제가 될 것이다. 곧 메타비평은 우선적으로 비평을 하나의 작품으로 읽고 비평하는 비평이다.
‘시선’의 세 가지 새로운 시선
이 글은 (‘시선’의) 비평에 대한 비평으로써 결국 비평 자체를 정의하는 김슬기의 글을 비평의 대상으로 한다. 우선 ‘시선’을 통해 김슬기가 상정한 대안적 비평의 세 가지 특질을 살펴보고, ‘시선’의 비평을 다루는 김슬기의 시선이 어떠한지, 그리고 그로써 언급하는 비평의 정의가 합당한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김슬기는 첫머리에서 곧장 비평(“글쓰기”)을 크게 객관성과 주관성의 특질을 가진 대립하는 두 양식으로 분류하며, 전자를 ‘나를 지우는 (구시대적) 글쓰기’로 명명하는데, 그에 따라 후자는 자연히 ‘나를 내세우는 (동시대적) 글쓰기’가 되겠다. 그리고 후자에 해당하는 예시로 ‘시선’의 글쓰기를 들고 있다. 이후 ‘시선’의 글쓰기는 새로운 비평의 예시가 되며, 자연스레 하나의 대안적 비평으로 제시된다. 김슬기가 들고 있는 또 하나의 비평의 긍정적 특질은 “비평의 주체와 대상의 이분법을 극복하고 비평가와 공연, 그리고 창작자 사이에 상호개입(mutual engagement)”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러한 비평은 이후 “비평이란 비평가 개인이 발견한 앎이라기보다 연극계의 실재로부터 추동된 관계적 지식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에 상응한다.
처음, 김슬기의 ‘나를 지우는 글쓰기’에는 아직 무지한 나를 억압하는 대타자로서의 선생님들, 아마도 아카데미 시스템의 목소리가 자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억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주체는 어떻게 가능한가, 그러니까 어떻게 기존 글쓰기와의 작별이 가능한가라는 분석은, 김슬기의 글에서 다뤄지지 않는데, 곧 김슬기의 글은 앞서 ‘나’를 한계 지우던 목소리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나’를 ‘시선’에 투사하는 것에 그친다. 곧 김슬기의 글은 지난 시대의 글쓰기에서 새로운 글쓰기로 전환된 다른 글쓰기에 자신을 온전히 위치시킬 수 없는, 동시에 그곳으로 나아가려는 경계에서 쓰이고 있다. 여기서 주체는 대상과 온전한 거리를 형성하기에는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5)
마지막으로 김슬기가 이야기하는 ‘시선’이 지닌, 비평의 긍정적 특질은 ‘비평이 무엇인가에 관한 답이기보다 무엇이 아닌가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움직임’이다. 이는 비평이 기존의 정답을 갖고 대상을 정의하는 것이 아닌, 작품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그때마다 개별적 정의를 찾아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6)
새로움의 주체? 새로운 시대를 선택한 주체!
이 글은 메타비평이므로, ‘시선’의 시선이 새로운지에 관한 질문보다는 ‘시선’의 시선이 새롭다고 보는 김슬기의 시선이 온당한지에 관한 질문에 대답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그 새로움 이전의 낡은 비평에 대한 비판이 어떻게 비평의 조건을 새롭게 구성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7) “사회적 소수자를 다루는 작품과 그 창작자들”8) (최홉)을 다루려는 ‘시선’의 시선은 작품을 통해 드러나는 창작자의 윤리적 태도를 수면으로 끌어올린다. 여기서 작품은 어떤 주제를 다루느냐가 최우선의 과제가 되며 그것을 어떻게 다루느냐는 다음 과제가 된다. 이러한 편향적이고 배타적인 작품의 선택은 철학자 벤야민이 이야기한 비평의 당파성9)과 그 결을 같이 한다.
『우리가 선택한 좌석입니다』의 전신인 ‘시선’의 첫 번째 평론집인 『이미 선택된 좌석입니다』10)의 또 다른 진의의 제목은 프롤로그에서 밝히듯 “아직 선택되지 않은 좌석입니다”(최하은)이다.11) 그 선택은 관객의 것이기도 하고, 평론가의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번 책에서와 마찬가지로 그 선택은 동시대의 첨예한 정치적 의제를 다룬 작업들에서 드러난다. “우리가 선택한 좌석입니다”의 “우리”는 ‘나’라는 개인성보다는 소수의 ‘나’가 발화하는 정치성이 ‘우리’라고 믿어지던 기존 공통의 토대에 균열을 일으키는 어떤 순간에 구성되는 ‘새로운 우리’ 안의 ‘나’에 가까워 보인다. 여기서 “우리”는 ‘시선’에 관한 은유라기보다 동시대의 정치적 주체에 대한 은유로 보인다. 『이미 선택된 좌석입니다』에서 ‘시선’이 선택되지 않은 연극에 대한 선택으로써 창작자와의 연대와 관객으로의 매개의 윤리를 주창하고자 했던 것은 『우리가 선택한 좌석입니다』로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김슬기의 주관성을 지닌 비평의 특질은 사실 ‘시선’에게는 자신을 드러내는 글쓰기보다는 비평의 당파성으로 이해되는 것이 온당해 보인다. 그러한 비평은 그럼 어떻게 가능한가. 김슬기와 같이 비평의 주체성에 초점을 둔다면, 과거와 절연하는 새로운 주체는 어떻게 등장할 수 있는가. 이는 결론적으로 『이미 선택된 좌석입니다』에서도 이미 나오듯, 미투 이후, 그리고 조금 더 다양한 주체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게 된 시대상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예술은, 무엇보다 현실의 외양을 상당 부분 재현하는 연극은, 시대의 변화를 감지하고 이를 다룰 수밖에 없으며, 이는 기존 연극 자체가 페미니즘적이지 않거나 소수자의 시선을 잘 다루지 않았음을 역시 의미한다. ‘시선’은 『이미 선택된 좌석입니다』라는 출발선상에서부터 그런 조건을 의식하고 있었고, 한편 『우리가 선택한 좌석입니다』에서 그러한 작품과 그러한 작품을 다루는 비평의 언어 역시 불완전하며 또한 더 연구될 여지를 안고 있음을 스스로 자각하고 있다.12)
‘시선’의 새로운 비평의 조건인 새로운 작업에 대한 선택과 그 작업을 다루는 새로운 언어는 새로운 시대의 흐름 안에 있으며13), 이는 ‘시선’ 스스로가 자신들의 비평을 메타비평하듯, 변증법적 자기 성찰과 또 다른 주체의 비평을 수용함으로써 거리를 형성하며 정교해질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는 어떤 시간이 필요하다. 작품과의 뒤섞임은 비평의 종착역이 아니다. 그 과정 이후 작품과의 거리 두기를 통해 비평이 구성될 수 있다. “비평가와 공연, 그리고 창작자 사이에 상호개입(mutual engagement)”에서 “개입”이 “(기존의) 비평”과 어떻게 구분되는지 또는 비평의 속성에 포함되는지는 불명확하지만, 여기에는 무엇보다 비평가의 일방(향)적인 판단에 대한 비판이 자리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실상 창작자는 비평에 관한 이야기보다 자신의 작품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지속할 것이므로 ‘시선’의 비평이 창작자의 또 다른 개입으로 이어졌는지에 대한 여부, 그리하여 상호개입이 두 주체 간에 실제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지의 질문에서 이러한 비평의 테제가 검토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미 선택되지 않은 작품의 좌석을 선택하고, 그 작품을 비평의 대상으로 선택함으로써 비평은 작품을 매개하고 그 작품이 계속해서 설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비평은 그 작품에, 그리고 연극계의 흐름에 개입할 수 있을 것이다. 김슬기의 글은 ‘시선’이 다루는 작품 자체에 세세하게 가닿기보다는 ‘시선’의 시선을 살펴보는 차원에서 이 책이라는 작품을 개략적으로 살펴보는 것에 가깝다. 실제 ‘시선’의 글쓰기는 첫 번째 장인 “삐딱한”에서는 개별 작업을 다루지만, 다른 장에서는 주로 의제나 주제 중심으로 작품을 살피며 작품 그 자체보다는 그 작품이 가리키고 향하는 대상과 시선에 집중하는 듯 보인다.14)후자의 ‘시선’의 글쓰기는 『이미 선택된 좌석입니다』의 주요한 형식으로, 작품 자체의 형식적, 미학적 차원보다는 사회적 의제를 다루는 연극의 대상을 일반적인 사회학적 칼럼의 형태로 다루고 있다는 생각도 들게 한다. 반면, 『우리가 선택한 좌석입니다』는 조금 더 다양한 비평의 주제 설정과 메타비평의 방식 등을 가져오며 훨씬 정교하고 진화된 비평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참고로, 2장의 “의심스런”은 셀프 메타비평이고, 3장의 “나누는”과 “예리한”은 연극 플랫폼, 제도, 사건 등에 관한 비평이다. 15)
변증법적인 ‘나’의 글쓰기
월간 시선에서 입쎈, 셰끼스피어, 최홉, 졸리에르, 장준애라는, 필명을 쓴 ‘시선’의 비평은 조금 더 자유롭게 직설적이며 적나라한 제도 비평, 현장 비평의 언어를 구사한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전통적으로 너무 유명한 연극인의 이름을 유희적으로 패러디하며 전유한 이름은 이름의 진중함과 무게를 가로지른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익명의 성격을 띤다고 봐도 무방했다―곧 그 이름이 중요하지 않은 이름이라는 차원에서. 이를 책으로 다시 종합할 때 필명은 실명의 자리로 흡수되는데, 이는 결국 일종의 유인물의 형태에 가깝던 A4 용지의 월간 시선이 조금 더 격식 있는 매체인 책으로 옮겨 갔을 때 ‘저자성’에 새로운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는 것으로도 보인다.16)
필명이 추구하던 거침없는 비평은, 특히 좌담의 발화들은17), 나를 드러내기보다 지우는 글쓰기의 형식으로 보인다. 이를 주관성과 연결해 본다면, 나를 지움에도 불구하고, 아니 나(실명)를 지움으로써 오히려 다른 ‘나’의 목소리를 강화하는 방식이 필명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 앞서 살펴본 것처럼 “우리가 선택한 좌석”에서의 “우리”가 소수의 ‘나’들에 대한 정치성의 재현이라면, 여기서 ‘나’의 주관성은 예외적 자리에서 기인하는 정치성이다. 이는 어떤 위치에서 보느냐에 따라 드러나지 않던 그 주관성의 가치가 비로소 드러날 수 있음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종래의 객관성의 자리를 위협한다.
끝으로 ‘시선’을 넘어 비평의 주관성과 객관성의 특질을 들어 비평의 새로운 자리를 이야기하려 한 김슬기의 시선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비평은 한편 작품에 대한 착실한 독해의 차원에서 자신을 숨죽이게 하는 시간이 요구된다. 다른 한편, 비평은 작품에 대한 가치 평가의 기준을 이야기하는 차원에서 자신을 부상시켜야 한다. 작품의 고유한 미덕을 파악하기 위한 숨죽임의 시간은, 이후 그 미덕(가치)을 산정하고 위치 짓는 비평가의 시선이 부상하는 시간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나를 지우는 글쓰기가 객관성이고, 나를 드러내는 글쓰기가 주관성이라는 비유를 따른다면, 객관성에서 주관성으로 나아가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비평의 이념이며, 이는 객관성에 철저하게 기대고 있는 비평이다.
무엇보다 작품의 ‘선택’에 의미를 두는 게 ‘시선’이 가진 주체성이자 주관성이다. 따라서 김슬기가 이야기한 (‘시선’의) 주관성의 비평은 다시 말해 이미 선택되지 않은 좌석이자 이미 선택된 좌석인지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을 통해 선택하려는 좌석을 선택하는 과정과 함께 성립되는 비평일 것이다. “우리가 선택한 좌석입니다”, 예컨대 그것은 우리의 위치를 계속해서 되묻고 점검하는 주관성과 객관성의 어느 사이에서 진동하는 자리일 것이다. 그리고 그 객관성은 ‘나(의 비평)’를 끊임없이 비평의 대상으로 두는 어떤 노력에 닿아 있을 것이다.18)
앞서 언급한 것처럼 비평에 대한 개입이 창작자에 의해 이뤄지기 어렵다면, 그리고 사실 메타비평이 비평에 대한 그런 개입의 방식이라면, “비평가와 공연, 그리고 창작자 사이에 상호개입”의 자리로서 비평 역시 창작과 마찬가지로 다시 이야기되고 비평되는 자리, 곧 메타비평을 상상해보는 것은 유의미할 것이다. 여기서 상호개입은 여러 주체의 상호주관성이 성립됨으로써 유의미한 담론의 장과 다양한 작품 읽기의 가능성이 창출되는 자리로 치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좌담의 형식과 셀프-메타비평을 통해 ‘시선’은 주관성을 또 다른 주관성으로 바꾼다. 주관성은 또 다른 주관성에 의해 갱신된다. 또는 비평은 자신과의 시간을 벌려가며 갱신된다. 따라서 김슬기의 세 번째 비평의 테제를 메타비평의 이름으로 전유하며, 약진하는 비평의 상을 역시 ‘시선’의 활동을 빌려 제시하는 것으로 글을 끝맺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김슬기의 새로운 비평의 예시로서 ‘시선’을 긍정하는 한편, 객관성에서 주관성으로 나아가는 비평의 특성을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주체의 것으로 의미화하는 방식에서, 비평의 주관성이라는 개념은 일시적이고 새로운 개념이기보다 근래의 비평 자체의 특성에 가깝게 보인다는 점에서, 다소 시대를 비켜나고 있음을 그리고 ‘시선’ 이외의 동시대의 비평 주체들과의 비교 분석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불충분함을 지적하고자 한다. 하지만 처음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김슬기의 글이 ‘시선’의 외양 아래 결국 올바른 비평의 테제를 전하고자 했던 글임을 상기해본다면, ‘시선’을 정교하기보다 다소 단순하게 전유하지만 그를 통해 새로운 시대의 비평을 모색하고 있다고 하는 게 맞으리라. 그리고 어쩌면 김슬기의 글에 관한 메타비평이 아닌, ‘시선’에 관한 메타비평이 그 둘에 대한 메타비평일 수 있음을 뒤늦게 인지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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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타비평]은 연극계 혹은 예술계의 여러 ‘매체’에 발표된 ‘비평문’에 대한 추가적인 ‘비평’을 의미합니다. 기존의 시각에 대한 비평적 발언이나, 불안정한 의제의 수정 및 새로운 의제 도출, 다양한 관점의 제시 등을 목적으로 합니다. 연극in은 작품에 대해 이어지는 대화와 토론을 적극적으로 장려합니다. 취지에 공감하는 필자들은 webzine@sfac.or.kr 로 ‘비평에 대한 비평’을 보내주세요. [리뷰]코너를 통해 소개하겠습니다.
- 연극in 웹진
- 연극in 웹진
- 연극비평집단 시선, 『우리가 선택한 좌석입니다』, 1도씨, 2020.
- 첫 번째는 연극에 대한 리뷰에 가깝다. 두 번째는 연극사적인 연구의 영역에 부합한다. 세 번째는 동시대적 비평가의 비평 행위에 가깝다. 이 셋은 보통 뒤섞여 있다. 하지만 비평의 본질적인 핵은 비평가의 판단이 동반되는 비평가의 자의식적이고 수행적인 퍼포먼스와 같은 글쓰기의 행위가 자리해야 한다는 게 개인적 생각이다. 그리고 연극의 경우, 비록 리뷰로 폄하될 수 있지만, 연극의 현존성을 포착하는 생생한 묘사의 감각 역시 다른 장르의 비평보다 더 뛰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 하지만 김슬기는 ‘시선’이 어떤 연극들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다루는지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본 책은 여러 저자의 글을 종합하고 있는 가운데, 김슬기는 새로운 비평의 시선을 길어 올리기 위해 ‘시선’이라는 하나의 정체성을 가시화하고 이 움직임 속의 비평적 정의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 영화라는 매체를 활용해 기존 영화를 비평하는 형식으로 창안된 ‘오디오 비주얼 필름 크리틱’이나 시각예술의 비평 방식을 말을 기반으로 프레젠테이션을 활용하거나 해서 선보이는 ‘비평 페스티벌’의 비평은 글이라는 매체에서 벗어난 비평의 사례라 할 수 있다.
- 물론 김슬기는 주체와 대상의 이분법적 사고를 비판하고 있다. 그 비판의 근거는 물론 대상과 뒤섞임 속에 주체가 자리한다는 주장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비평은 대상과의 적당한 거리를 벌리는 일이라는 개인적 주장이 뒤에 나올 것이다.
- “비평은 무엇이 아닌가”라는 물음은 김슬기에게 “비평은 무엇을 하면 안 되는가”라는 질문으로 곧장 수렴되는데, 개인적으로 비평의 자율성과 다양성의 가능성으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 비평 자체의 윤리성으로 옮겨 간다는 점이 의아했다. 부가적으로 이러한 비평의 윤리성은 ‘시선’의 지향점과 연결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곧 『우리가 선택한 좌석입니다』가 페미니즘이나 퀴어와 같은 첨예한 동시대의 사회적 의제를 다루는 연극들을 다루는 동시에, 그 관점을 비평의 축으로 또한 가져오려 한다는 점에서 이해할 수 있는 듯 보인다.
- 김슬기의 글은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비평의 자리를 내세우고 있지만, 거기에는 무엇보다 구시대적 배경에 대한 비판이 자리한다. 그에 대한 거부와 비판 의식은 올바른 비평의 조건을 구성하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와 궤를 같이한다. 이는 어떤 간극 없이 ‘시선’의 자리로 곧장 이어지지만, ‘시선’의 분석과 별개로 그 구시대적 비판에 대한 분석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자리 역시 요청되는 부분이다.
- 최홉,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입니다」, 같은 책, 86쪽.
- “당파를 정하지 못하는 자는 침묵해야 한다.” 발터 벤야민, 「일방통행로」, 『일방통행로 사유이미지』, 도서출판 길, 101쪽.
- 연극비평집단 시선, 『이미 선택된 좌석입니다』, time catcher, 2017.
- 두 번째 평론집의 제목이 “이미 선택된 좌석입니까?”(연극과인간, 2018)라는 건 그와 같은 문장이 의심되고 재질문될 수밖에 없음을 나타낸다.
- “하지만 내가 비평적으로 그런 작업을 잘 해나가고 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페미니즘 연극, 퀴어 연극, 장애 연극 등 이 사회의 퀴어한 존재들의 연극의 관객으로서 그 흐름을 따라가기도 아직 벅찰 뿐이다.” 졸리에르, 「연극비평을 퀴어링!」, 같은 책, 100쪽.
- 이러한 새로움의 언어를 제시하는 새로운 주체는 그 자체로 독창적이고 새롭다기보다는 시대적 전환의 흐름 안에서 등장하는 주체의 전환에 대한 요구와 궤를 같이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 후자의 ‘시선’의 글쓰기는 『이미 선택된 좌석입니다』의 주요한 형식으로, 작품 자체의 형식적, 미학적 차원보다는 사회적 의제를 다루는 연극의 대상을 일반적인 사회학적 칼럼의 형태로 다루고 있다는 생각도 들게 한다. 반면, 『우리가 선택한 좌석입니다』는 조금 더 다양한 비평의 주제 설정과 메타비평의 방식 등을 가져오며 훨씬 정교하고 진화된 비평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참고로, 2장의 “의심스런”은 셀프 메타비평이고, 3장의 “나누는”과 “예리한”은 연극 플랫폼, 제도, 사건 등에 관한 비평이다.
- 자가 비평의 토대를 끊임없이 재구성해가는 과정을 지시한다면, 후자는 작품이 성립하는 또는 작품을 감싸고 있는 현실의 조건을 반추함으로써 작품의 내재적인 분석을 벗어나 연극을 제도적이고 사회학적인 분석 대상으로 위치시킨다고 할 수 있다. 참고로, 2장의 “의심스런”은 셀프 메타비평이고, 3장의 “나누는”과 “예리한”은 연극 플랫폼, 제도, 사건 등에 관한 비평이다.
- 『우리가 선택한 좌석입니다』는 책날개의 저자 소개에서 실명만을 언급하고, 저자는 연극비평집단 시선으로 놓고, 본문은 모두 필명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는 『이미 선택된 좌석입니다』에서 책날개의 저자 소개에서 실명 옆 괄호 안에 필명을 넣은 방식, 곧 필명을 완전히 실명으로 흡수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필명과 실명을 분리하고는 있지만, 그 둘 사이에서 여전히 불완전한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러한 간극이 부정적인 것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것이, ‘시선’은 필명의 글쓰기가 지닌 자유로움과 전투적인 발화의 특성을 전략적으로 가져가는 모습을 스스로 자각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 이러한 좌담의 방식에서 서로의 말들이 교차하고 지지되는 과정은 연극의 흐름과 매우 유사함을 살펴볼 수 있는데, ‘시선’의 이름으로 종합되고 있지만, 실상 『우리가 선택한 좌석입니다』는 이전 자신의 글을 자유롭게 인용하는 하이퍼텍스트성의 특징을 갖는 동시에, 다른 필자의 글과 생각을 가져옴으로써 책 안의 글들 역시 상호텍스트적 작용을 하는데, 이러한 짜임이 이 책을 책이라는 매체를 넘어 생동감 있는 현장의 연극적 목소리로 감각하게 하는 바 있다. 좌담은 일종의 다성부적 코러스의 시간이며, 또한 연극 대본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여러 레이어를 통해 개별 자아들의 주관성이 강조되는 가운데, 상호주관성이 ‘시선’이라는 이름으로 모이는지를 분석하는 것은 흥미로운데, 따라서 김슬기의 글에서 ‘시선’이라는 하나의 주체로 명명될 뿐, 다른 이상한(?) 이름들이 ‘시선’의 이름으로 어떻게 역동적으로 구성되고 있는지, 또 구성될 수 있는지가 분석되지 않는다는 것은 아쉬운 지점이다.
- 결국, 비평도 마찬가지로 어떤 좌표, 어떤 주체의 시선에 포착되는 대상을 그릴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 끊임없이 자기의 위치와 관점을 성찰하는 노력은, ‘시선’의 셀프 메타비평에서 보이듯 매우 중요한 것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