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동양레퍼토리 <원로예술인 지원사업>
지속하기 전에 생각했나요?
김은한
199호
2021.04.29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Ctrl + V, 붙여넣기해서 사용하세요
극장을 찾다 보면 익숙한 창작자 중에서도 마음이 가까운 공연 위주로 보게 된다. 정보도 더 많이 들어오게 되고 앞으로의 활동도 응원하고 싶고, 어느 정도 감수성이 닮은 공연을 안전하게 보고 싶다는 마음. 그러면 영영 놓치는 공연이 생긴다. 대학로에 가득 붙은 홍보물을 보고 있노라면 ‘이 낯선 팀은 어떻게 이렇게 오랫동안 힘내고 있었지?’라는 생각이 든다. 좁게 보면서 좁은 세계라고 느끼고 있었네. 창작자로서 우리는 한때 새로운 등장이었으나 벗들에게만 익숙하고 아무도 모르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미래는 어떻게 될까? 지속하다 보면 알 수 있을까?
극장을 찾다 보면 익숙한 창작자 중에서도 마음이 가까운 공연 위주로 보게 된다. 정보도 더 많이 들어오게 되고 앞으로의 활동도 응원하고 싶고, 어느 정도 감수성이 닮은 공연을 안전하게 보고 싶다는 마음. 그러면 영영 놓치는 공연이 생긴다. 대학로에 가득 붙은 홍보물을 보고 있노라면 ‘이 낯선 팀은 어떻게 이렇게 오랫동안 힘내고 있었지?’라는 생각이 든다. 좁게 보면서 좁은 세계라고 느끼고 있었네. 창작자로서 우리는 한때 새로운 등장이었으나 벗들에게만 익숙하고 아무도 모르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미래는 어떻게 될까? 지속하다 보면 알 수 있을까?
세상이 혼란해지면 연극에 대해, 창작자 자신에 관해 이야기하는 메타 연극이 많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 물론 연극인은 늘 혼란스럽기에 매년 꾸준히 제작되는 장르이다. 우선 창작자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기가 쉽다. 품고 있는 수많은 질문, 나름대로 내린 결론, 연극계의 불만을 감추지 않고 매콤하게 풀어놓을 수도 있다. 코로나 상황으로 쉬이 가질 수 없는 술자리를 그리워하며, 거기서 잘 먹히던 내부자 농담도 국밥에 다대기를 풀듯 공연에 녹여낼 수 있다. (최근 제작환경에서 이것은 중요한 요소일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조금 신선한 느낌도 든다!
"연극 얘기하는 연극은 연극인이나 좋아해"라는 불평도 들려온다. 이 생각에 다 동의하지는 않는다. 소재를 소중히 잘 다룬 연극이 있거나 그렇지 않은 아쉬운 연극이 있을 뿐이라 믿고 싶다. “연극인은 왜 자기들 힘든 얘기만 하나?”라는 핀잔을 듣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의 세계가 극장에 흐르는 동안 거기 남아있기로 한 모든 이는 그 세계를 지켜보기로 공모한 사이이다. 극장에는 공범자만 있으니 지나치게 남의 일은 아니며, 또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공연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낯설고 흥미롭고 궁금할 것이다. 이번 <원로예술인 지원사업>은 원로연극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는 메타 연극이라는 점이 흥미로웠다.
<원로예술인 지원사업>은 제도에 질문을 던진다기보다는 거기 휘말린 원로연극인들이 기획 회의를 하고 어떤 작품을 시작할 것인지를 그리는 연극이다. 관객은 실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20년도 원로예술인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제작한 공연을 마주한다. 배우 대부분은 본인과 한없이 유사한 인물을 연기한다. 무대 위에 펼쳐지는 두 공간, 극단 사무실과 술집은 현실 세계와 많은 것을 공유하지만 집합금지가 없는 매혹적인 공간이다.
원로예술인을 어떻게 규정할지에 관한 고민도 흥미롭다. 예순부터 원로예술인이 된다. 즉 ‘원로’ 안에는 한 세대에 가까운 연령층이 포진되어있는 것이다. 청년예술인은 지원사업을 지나치며 서서히 자신이 청년에서 멀어지는 걸 느끼지만, 이들은 서서히 원로로 진입하면서 묘한 감정과 마주한다. 아무리 성장해도 부모에게 자식은 여전히 아이 같은 법. ‘더’ 원로들은 ‘갓’ 원로들이 한없이 아이처럼 보인다.
작품은 모든 갈등이 익살스럽게 설계되어있다. 사이좋은 작업자들끼리의 지독한 익살과 트집, 누구도 가리키지 않지만 아슬아슬한 농담, 옛 가치관으로 발생하는 반려견 논쟁, 각양각색의 의견 떠넘기기, 관록이 묻어나는 극 중 독백과 노래, 선배 원로 설득하기로 가득하다. 너무나 번거롭고 피곤하기에 평등한 제작 과정이 형성되는 모습도 웃음을 자아낸다. 누군가 딱! 정해주면 좋겠다. 나의 역할과 쓸모를! 자신도 몹시 흡족한 방식으로! 하지만 그런 것은 없다. 무척 시간이 걸리고 구성원의 애매한 만족과 당혹스러운 응어리로 마치곤 하지만 계속 시도해야 하는 것. 잘하기 위해 시간을 들여 의견을 모으는 것이 이 연극의 주 내용이다. ‘청년만 사랑하는 나라에서, 딱 3천 정도 지원받아서 소소히 소극장 공연을 하고, 언더스터디도 잘 챙겨보려는’ 감각은 청년예술인에게 큰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미묘한 동질감과 거리감이 연극을 흥미롭게 만드는 배경이다.
고전, 계몽을 위한 연극, 역사에 휩쓸리는 인간을 다룬 연극을 꾸준히 공연하던 배우에게 ‘우리 얘기하기’는 너무나 내키지 않는 선택지이다. 한국 연극의 프로메테우스인 체홉과 입센을 벗어나기도 영 쉽지 않다. 그래도 언제까지나 관객에게 불구경만 시킬 수는 없는 법이다. 햄릿의 고민을 “김치찌개냐, 된장찌개냐.”를 외치는 전설의 고향으로 만들어 독백하는 장면은 이제는 달지 않지만 계속 우물거리게 되는 껌처럼 재미를 준다. 또한 “체홉, 입센한테 돈 받은 거 있냐!”라는 외침에는 분명 가슴이 떨리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 느꼈다. 연극은 술자리에서 2차를 가지 않고 – 중요한 결정은 비교적 맑은 정신에 이루어져야 하기에 - 소주를 더 주문한 뒤에 작품 제목을 정하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우직한 태도가 매력으로 다가온 연극이다. 여기 선 인물은 의심이 없다. 외부작업과 미디어 출연을 꾸준히 하기도 하고, 다소 곤궁해도 움츠러들지 않는다. ‘계속되어야 한다’는 고민이 이들에겐 지루하다. 출연료가 많지 않아도 빠진다는 선택지는 없다. 그런 선택은 노련한 백전노장이 고려할 사항이 아니다. 큰 자부심을 품고 정해지면 충실히 한다. 가요무대나 오일장 특설무대에 온 듯한 흥겨운 음악도 작품에 자극을 불어넣는다.
새파랗게 젊은 50대 단원이 등장하는 후반도 즐거웠다. 연극상 수상 경험도 있는 인정받는 젊은 작연출가의 과감한 작풍은 원로배우에게는 조금 과하다. “연극상을 두 번 받으면 그 뒤부터는 주름살만 는다.”라는 대사가 인상적이었다. 속편이 계속 만들어지면 어떨까? 얼마나 더 솔직해질 수 있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공연 스태프 중에는 젊은 단원이 많이 있었는데, 막 연극을 시작하는 이들에게는 이 작품이 어떻게 비출지도 궁금했다. 무대 위에서는 언제나 진심이겠지만, 어떤 것이 낭만화되고 어떤 것이 삶을 그대로 드러내는지 짚기 어려운 것이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각자의 이야기를 듣는 건 흥미로우나 언제나 여정의 도중이자 프리퀄이 된다는 점에서는 아쉽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라면, 끝을 더 고민하고 싶다.
지원사업은 9할이 선정되지 못하는 제도이다. 물론 선정되어도 고민은 깊다. 다음은? 지금 주목받아도 그다음은? 큰 조직은 꾸준히 새로운 얼굴을 찾아 헤매고, 창작자의 고민은 더 비범하고 독특해져야만 하는 시기를 지나고 있다. 그래서 예술은 언제나 새롭고, 처우도 언제나 새롭다. 언제나 새롭기를 각오한 사람들의 세계에서 연륜은 나이테처럼 차분히 쌓일 수 있을까? 대단히 성공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다음 작품에는 더 많은 에너지가 들어갈 것이다. 나이가 들고, 운이 좋아 어쩌면 명배우, 명연출 소리를 듣고, 존경받는 선생님이 된다고 해도. 버티며 지속하는 그 너머에는 여전히 새롭게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선 해보자’의 여정을 ‘여전히 하고 있다’로 채우고 있는.
[사진제공 : 극단 동양 레파토리]
극단 동양레퍼토리 <원로예술인 지원사업>
- 일자
- 2021.3.25.(목) ~ 2021.3.28.(일)
- 장소
- 알과핵 소극장
- 작/연출
- 김성노
- 출연
- 이태훈 유정기 김종칠 문경민 김명희 김성모 노석채 장연익
- 기획
- 허성윤
- 프로듀서
- 김병애
- 연기지도
- 이지은
- 무대감독
- 손규홍
- 조명
- 송훈상
- 무대
- 민병구
- 음악
- 서상완
- 의상
- 김정향
- 분장
- 박초록
- 음향감독
- 최윤정
- 조연출
- 윤지영
- 진행
- 신상용
- 마케팅
- 문경량
- 기획보
- 오혜진
- 홍보
- 김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