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이와삼 <싯팅 인 어 룸>
‘너’로서 꾸는 꿈
장영
199호
2021.04.29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Ctrl + V, 붙여넣기해서 사용하세요
극장에 입장하는 순간, 높이를 부여한 매끄러운 흰 무대가 보인다. 이곳이 관객과 분리된 ‘무대’임을 선명히 강조하고 있는 매끄러운 무대와 마주하는 경험은 관객으로서 매우 신선했다. 흰 무대는 옆으로 넓게 뻗은 형태이며, 폭이 좁다. 배우들이 연기하고 있는 흰 무대를 제외하면, 나머지 세트는 모두 검은색이다. 연극이 시작되면, 흰 무대는 ‘지니의 방’이자 쌍둥이인 ‘지니/제니’ 그리고 ‘리언’이 움직이는 좁은 세계, 그리고 죽은 ‘제니’를 재현하는
높이를 부여한 무대와 자아동일성(Ego identity)1)의 공간
극장에 입장하는 순간, 높이를 부여한 매끄러운 흰 무대가 보인다. 이곳이 관객과 분리된 ‘무대’임을 선명히 강조하고 있는 매끄러운 무대와 마주하는 경험은 관객으로서 매우 신선했다. 흰 무대는 옆으로 넓게 뻗은 형태이며, 폭이 좁다. 배우들이 연기하고 있는 흰 무대를 제외하면, 나머지 세트는 모두 검은색이다. 연극이 시작되면, 흰 무대는 ‘지니의 방’이자 쌍둥이인 ‘지니/제니’ 그리고 ‘리언’이 움직이는 좁은 세계, 그리고 죽은 ‘제니’를 재현하는 디지털 재현 (DRP)시스템이 구현되는 딥 스페이스로 변모하게 된다. 연극이 진행되는 동안, 좁고 높고 흰 그 무대가, 관객이 올려다봐야 하는 좁은 자아동일성의 세계 같은 느낌으로 점점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공연 중 객석등이 켜지는 순간, 관객은 40%에 육박하는 치사율을 기록하게 한 RGO 13 바이러스가 만들어 낸 3차 팬데믹 이후의 세계에 포섭된다. 즉 쿠키2) 스윙 스틱스3) 등을 사용하는 ‘제니/지니’, ‘리언’과 동시대를 살고 있는 인물들로서 연극의 근미래 세계에 포함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극에서 강조되고 있는 ‘무대’는, 배우들이 연기하는 인물들의 삶이 딥 스페이스 안에서 재현되는 가상이며, 동시에 에고의 공간임을 체감하게 한다.
팬데믹 시대와 ‘위대한 사랑’
연극은 지니가 혼자 지친 듯 앉아있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과거, 3차 팬데믹에 대한 뉴스가 이어진다. 분리의 고통 그리고 ‘소멸’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2021년 팬데믹의 시대에, 관객은 먼저 격리된 남편에게 접촉해 ‘동반감염’을 선택하고 10년 전 죽은 ‘지니/제니’ 엄마의 영상과 마주하게 된다. 닥쳐오는 죽음의 공포 앞에, 철저히 홀로 남겨진다는 것, 분리된다는 것, 홀로 선다는 것은 인간의 취약한 실존을 매 순간 위협한다. 극 중에서 ‘동반감염’은 사실상 ‘연쇄 자살’로 이어진다. 사랑하는 이를 잃고 홀로 남겨지는 사건에 대한 공포 앞에, 절박해진 인간은 얼마나 비범한 용기를 발휘하게 되는가? 다만 사랑하는 이와 소멸을 함께하려는 엄마의 ‘선택’은, 사람들에 의해 단숨에 ‘위대함’의 상징이 되어버린다. 무대 영상에서, 슬픈 눈의 엄마는 나비가 되어 속절없이 흩어진다. 장자의 호접지몽에 대한 해석들 중, 나비가 되는 꿈을 꾼 이후의 장주는 나비꿈 이전과는 다른 장주라는 해석이 있다. 이는 자아동일성이 단단히 고정되어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러한 ‘동반감염’의 선택 이후, 죽음과 함께 ‘나비’로 흩어져 자신의 자아를 해체하게 된 엄마의 슬픈 눈을 마주할 때, 관객은 사랑하는 이와 ‘하나’가 되기 위해 자신을 해치고 무화하게 된 사랑이 ‘위대한 사랑’이라고 불리는 현상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강렬한 첫 장면 이후, 관객은 남겨진 쌍둥이들의 삶과 마주하게 된다.
지니와 제니, 존재의 불가능성 앞에서
엄마의 죽음 이후 10년, ‘지니’는 지친 모습으로 무대 위에 있고, 무대 위에는 ‘제니’의 목소리만이 들려온다. ‘제니’는 매우 활달하고 들뜬 목소리로, 회사에서 주는 스타상을 받았으며, 인터뷰를 앞두고 있다고 말한다. 팬데믹의 상황과, 몸과 몸의 만남이 불필요해진 근미래의 시대적 상황을 짐작하게 하는 낯선 용어들은, 디스토피아적인 감각을 관객에게 생생히 전해준다. 너무 바쁜 ‘제니’는 자신의 애인 ‘리언’과 만나러 갈 수 없으니, ‘리언’에게 대신 연락해줄 것을 쌍둥이 동생 ‘지니’에게 부탁하고 있다. 블랑쇼에서, 어떤 육체적·사회적 고통―가령 ‘나의 죽음으로의 접근, 타인의 죽음의 체험, 병의 체험, 사회로부터 배제와 추방이 가져오는 고통―은 존재(세계에서 존재함)의 불가능성을 자각하게 만든다.4)
엄마의 죽음 체험 이후, 존재의 불가능성이 만들어내는 고통으로부터 가까스로 생존한 쌍둥이, ‘제니’는 ‘지니’에게 “다 극복할 거야. 우리. 5)라고 말한다. 이미 존재의 불가능성을 체험한 ‘제니’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흔적’을 남기기 위해, 성취의 목록들에 절박하게 매달리고 있다. 한편 ‘명상’을 통해 자기 자신과 만나고 있다는 ‘지니’는, 쌍둥이 언니 ‘제니’를 염려하나 정작 자신도 사람을 만나지는 않는다. 쌍둥이는 생존을 위해 누구보다 절박하게 각자의 투쟁을 하나, 정작 사람을 만나지는 않는 것이다. 한 명의 배우가 ‘지니’와 ‘제니’를 연기하고 있기 때문에, 극 중에서 쌍둥이 자매인 ‘지니’와 ‘제니’조차 몸과 몸으로 직접 만날 수는 없다. 연극만이 가질 수 있는 이 특별한 한계가, ‘만날 수 없음’과 ‘분리’에 대한 감각을 선명하게 더한다.
그로부터 5년 후, ‘지니’는 온라인 명상 강사가 되어 있다. 쌍둥이 언니 ‘제니’가 5년 전에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언니의 애인이었던 ‘리언’에게서, ‘제니’를 딥 스페이스에서 부활시켰다는 연락이 온다. 다만 리언이 가진 ‘제니’에 대한 기억들의 디폴트 값이 고통이었기에, 딥 스페이스 안의 ‘제니’ 역시 고통에 갇혀 있다. ‘제니’의 고통을 알지만, 자신으로서는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없는 ‘리언’. ‘리언’은 ‘지니’의 기억을 업로드 해, ‘제니’에게 힘든 이유를 부여하고, 해결할 순 없지만 함께 할 수 있는 사랑을 작동시키고 싶다고 말한다. ‘지니’는 비로소 딥 스페이스 안에서, 딥 러닝을 통해 ‘가정 모드’로 재현된 ‘제니’와 대화한다. ‘지니’는 자신을 향한 언니 ‘제니’의 보살핌이, 사람들이 말하는 ‘위대한 사랑’과는 다르다고 말한다. ‘언니는 위대해서 날 사랑한 게 아냐. 그냥 날 사랑한 거야’6)
엄마의 죽음 체험 이후, 존재의 불가능성이 만들어내는 고통으로부터 가까스로 생존한 쌍둥이, ‘제니’는 ‘지니’에게 “다 극복할 거야. 우리. 5)라고 말한다. 이미 존재의 불가능성을 체험한 ‘제니’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흔적’을 남기기 위해, 성취의 목록들에 절박하게 매달리고 있다. 한편 ‘명상’을 통해 자기 자신과 만나고 있다는 ‘지니’는, 쌍둥이 언니 ‘제니’를 염려하나 정작 자신도 사람을 만나지는 않는다. 쌍둥이는 생존을 위해 누구보다 절박하게 각자의 투쟁을 하나, 정작 사람을 만나지는 않는 것이다. 한 명의 배우가 ‘지니’와 ‘제니’를 연기하고 있기 때문에, 극 중에서 쌍둥이 자매인 ‘지니’와 ‘제니’조차 몸과 몸으로 직접 만날 수는 없다. 연극만이 가질 수 있는 이 특별한 한계가, ‘만날 수 없음’과 ‘분리’에 대한 감각을 선명하게 더한다.
그로부터 5년 후, ‘지니’는 온라인 명상 강사가 되어 있다. 쌍둥이 언니 ‘제니’가 5년 전에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언니의 애인이었던 ‘리언’에게서, ‘제니’를 딥 스페이스에서 부활시켰다는 연락이 온다. 다만 리언이 가진 ‘제니’에 대한 기억들의 디폴트 값이 고통이었기에, 딥 스페이스 안의 ‘제니’ 역시 고통에 갇혀 있다. ‘제니’의 고통을 알지만, 자신으로서는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없는 ‘리언’. ‘리언’은 ‘지니’의 기억을 업로드 해, ‘제니’에게 힘든 이유를 부여하고, 해결할 순 없지만 함께 할 수 있는 사랑을 작동시키고 싶다고 말한다. ‘지니’는 비로소 딥 스페이스 안에서, 딥 러닝을 통해 ‘가정 모드’로 재현된 ‘제니’와 대화한다. ‘지니’는 자신을 향한 언니 ‘제니’의 보살핌이, 사람들이 말하는 ‘위대한 사랑’과는 다르다고 말한다. ‘언니는 위대해서 날 사랑한 게 아냐. 그냥 날 사랑한 거야’6)
‘너’로서 꾸는 꿈, ‘너’로서 해석하는 세계
이후 ‘지니’가 벌떡 일어나며 숨을 몰아쉬고 방안을 둘러본다. ‘지니’는 한 번의 꿈에서 막 깨어났다. 한번 들었던 대화들이 무대 위에서 다시 반복되는 순간, ‘제니’가 이전의 꿈에서 했던 말은 ‘지니’의 입을 통해 발화된다. ‘지니는 꿈을 피해 가려 한다’7)는 지문, 그리고 ‘지니’는 반복 안에서 차이를 생성하기 위해 다른 대화를 시도한다. 한 번의 꿈에서 깨어난 ‘지니’는, 어느새 ‘제니’가 했던 말을 자신의 말처럼 발화한다. 마침내 호접지몽처럼 내가 ‘너’로서 꾸는 꿈은, ‘지니’가 ‘제니’로 변신하는 순간은, ‘나’가 자기 바깥으로 나올 수 있는 하나의 기회처럼 느껴진다. ‘지니는 제니가 되어 다시 들어온다’’8)는 희곡의 지문이 큰 울림을 남긴다. 다만 그 변화들에도 불구하고 ‘제니’의 ‘죽음’이라는 끝은 변하지 않는다.‘제니’처럼 말하고 있는 ‘지니’에게, ‘리언’은 ‘지니’가 디지털로 재현된 언니와 만나, 언니의 고통을 살고 있음을 알린다. ‘리언’ 이 거듭 사과하며 울고 있다. 극의 마지막, 딥 스페이스 안에서, ‘지니’와 재현된 ‘제니’의 마지막 대화가 이루어진다. ‘지니’는 ‘함께 힘들어하면서 함께 소멸하는 사랑’을 원하는 ‘리언’의 뜻을 존중하며 자신의 기억을 업로드한다. 그리고 디지털 장례 서비스를 통해, 언니 ‘제니’를 비롯해 생존 중인 자신의 디지털 자료들을 깨끗이 삭제한다.
마침내 ‘지니’는 엄마의 ‘선택’을, ‘사랑’으로 해석하고 오랜 분노에서 빠져나온다. 배우가 매일 같은 연극을 하면서, 매일 새로운 해석을 찾아내듯이. 꿈을 통해 ‘제니’로 사는 경험을 한 이후에 그러한 해석을 ‘선택’한 것이다. 반복을 통해 진화한 ‘지니’는 운명으로서 정해진 끝 즉 죽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동시에, 자아동일성을 구성하는 과거의 흔적들을 깨끗이 지움으로써 자아동일성 바깥으로 나오려는 지극한 노력을 보여준다. 한 명의 배우. 하나의 몸, 매일의 연극처럼 반복되는 대사 속에서 전혀 다른 해석을 만들어내는 삶. “우린 위대하지는 않지만, 교류했습니다.” 명상 수업을 그만두며, 자기의 방에서 ‘지니’가 말한다. 가장 가까웠지만 불가해했던 타자를 이해하고자 하는 지극한 노력이, 교류하고자 했던 그 절실한 사랑이, 장면의 반복 안에서 에고 바깥으로 나아가는 변화를 생성해냈다. 이 광활한 우주에서 ‘너’를 만나 사랑하게 된 사건, 좁은 곳에 퇴적된 채 굳어있던 ‘나’를 바깥으로 끌어내는 이 기적의 이벤트를 끌어안고서. ‘지니’가 비로소 웃고 있다. 그렇게 홀가분하게, 비로소 위대한 그 무언가를 진짜로 본 사람처럼.
마침내 ‘지니’는 엄마의 ‘선택’을, ‘사랑’으로 해석하고 오랜 분노에서 빠져나온다. 배우가 매일 같은 연극을 하면서, 매일 새로운 해석을 찾아내듯이. 꿈을 통해 ‘제니’로 사는 경험을 한 이후에 그러한 해석을 ‘선택’한 것이다. 반복을 통해 진화한 ‘지니’는 운명으로서 정해진 끝 즉 죽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동시에, 자아동일성을 구성하는 과거의 흔적들을 깨끗이 지움으로써 자아동일성 바깥으로 나오려는 지극한 노력을 보여준다. 한 명의 배우. 하나의 몸, 매일의 연극처럼 반복되는 대사 속에서 전혀 다른 해석을 만들어내는 삶. “우린 위대하지는 않지만, 교류했습니다.” 명상 수업을 그만두며, 자기의 방에서 ‘지니’가 말한다. 가장 가까웠지만 불가해했던 타자를 이해하고자 하는 지극한 노력이, 교류하고자 했던 그 절실한 사랑이, 장면의 반복 안에서 에고 바깥으로 나아가는 변화를 생성해냈다. 이 광활한 우주에서 ‘너’를 만나 사랑하게 된 사건, 좁은 곳에 퇴적된 채 굳어있던 ‘나’를 바깥으로 끌어내는 이 기적의 이벤트를 끌어안고서. ‘지니’가 비로소 웃고 있다. 그렇게 홀가분하게, 비로소 위대한 그 무언가를 진짜로 본 사람처럼.
[사진제공 : 극단 이와삼]
극단 이와삼 <싯팅 인 어 룸>
- 일자
- 2021.4.2(금) ~ 4.11(일)
- 장소
-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 작/연출
- 장우재
- 출연
- 조연희, 김동규, 신정연, 안준호
- 드라마투르그
- 조만수
- 무대
- 박상봉
- 조명
- 손정은
- 조명오퍼레이터
- 양믿음
- 의상
- 김지연
- 사운드
- 김인기
- 사운드슈퍼바이저
- 박성석
- 음향오퍼레이터
- 조형락
- 영상
- 윤민철
- 영상출연
- 강애심
- 영상오퍼레이터
- 조우경
- 애니메이션
- 김강수
- 그래픽
- 민경
- 무대감독/조연출
- 이성재
- 기획
- 최윤희 김시내
- 홍보
- 라소영 황윤지
- 심리학과 정신의학에서는 인격의 연속성, 즉 때와 장소에 따르지 않고 자신은 자신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연속된 자아상태는, 자아동일성(ego identity)이라고 불린다. 야스퍼스는 자신이 한다라고 하는 능동성, 자신은 혼자다라고 하는 단일성, 자신은 시간이 흘러도 자신이다라고 하는 동일성, 타인에 대한 자아의 의식(자타의 구별)이라는 자아의 4가지 특징을 주장하고 있다 (온라인 위키백과 <동일성> 항목)
- 극중에서 ‘쿠키’는 국가에 의한 개인별 데이터 이용 제한 시스템 장치의 일부로 정의된다.
- 극중에서 ‘스윙 스틱스’는 데스크용 모빌을 의미한다.
- 박준상, 『바깥에서-모리스 블랑쇼와 ‘그 누구’인가의 목소리』, (주)그린비출판사, 2014, 32쪽.
- 장우재, 『싯팅 인 어 룸』, 책공장 이안재, 2020, 16쪽.
- 장우재, 『싯팅 인 어 룸』, 책공장 이안재, 2020, 46쪽.
- 장우재, 『싯팅 인 어 룸』, 책공장 이안재, 2020, 52쪽.
- 장우재, 『싯팅 인 어 룸』, 책공장 이안재, 2020, 5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