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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서현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특별한 관객들

권혜린
200호 2021.05.13
관객이자 배우이며, 관객 역할을 하는 배우가 바닥에 흰색 야광 테이프로 SOS라는 글자를 붙인다. 그리 크지 않은 무대의 바닥을 거의 다 채울 정도로 큰 글자는 빛난다. 미리 칼집을 낸 듯 테이프를 잘라내는 동작은 깔끔하며, 조각 난 테이프들을 붙이는 동작은 느릿하다. 마치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는 장인처럼 단정하게 테이핑하는 과정을 한동안 조용하게 지켜본다. 극장에 또는 연극에 갇힌 관객이 탈출하고자 구조 신호를 보내는 것인데 절박하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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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편집 : 김지성, 녹음 : 윤비원, 음향 믹싱 : 임나윤)
음성낭독_서해영
음성낭독_이윤진
관객이자 배우이며, 관객 역할을 하는 배우가 바닥에 흰색 야광 테이프로 SOS라는 글자를 붙인다. 그리 크지 않은 무대의 바닥을 거의 다 채울 정도로 큰 글자는 빛난다. 미리 칼집을 낸 듯 테이프를 잘라내는 동작은 깔끔하며, 조각 난 테이프들을 붙이는 동작은 느릿하다. 마치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는 장인처럼 단정하게 테이핑하는 과정을 한동안 조용하게 지켜본다. 극장에 또는 연극에 갇힌 관객이 탈출하고자 구조 신호를 보내는 것인데 절박하기만 하지는 않는다. 어느 정도는 그 순간을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하여 테이핑이 끝난 뒤에는 글자의 내용보다는 글자 자체의 빛이 눈에 더 들어온다. 극 중에서 극장에서는 별이 땅에 뜬다고 말하는 것처럼, 땅에 뜨는 구조 신호는 빛나는 경고이자 경고의 빛이다. 이는 홀연히 나타난 공룡이 연극인이 되지 말라고 경고하는 장면과 맞물린다. 오래전에 멸종한 공룡이라는 존재가 보내는 신호는 뼈 있는 농담이나 가벼운 진담처럼 들린다. 이처럼 오래된 관객이 관계자, 즉 연극인의 경계에 근접할 수도 있음을 상기하면서 힘든 현실을 우려하지만 연극을 본 뒤에 남는 것은 극장을 탈출하지 않는, 탈출하고 싶지 않은 관객의 마음이었다.

전지적 관객 시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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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이라는 단어 앞에 수식어를 붙여 본 적이 없다. 개별성으로 인식하지도 않는다. 간혹 1인 관객을 위한 공연들이 있긴 하지만 그때에도 관객은 어디까지나 관객‘들’로서 무리로 인식된다. <어디서 본 건 있어 가지고>는 여기에 과감하게 ‘직업’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지극히 일상적이면서도 관객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단어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관객만큼 패턴이 일정한 이들도 없다. 어긋나지 않고 실수 없이, 자신의 자리에서 성실하고 의연하게 그 역할을 수행한다. “아무것도 안 하고 객석에 있는 것만으로” 희곡, 배우와 더불어 연극의 3요소가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객석에 앉기까지 관객들은 부지런히 움직인다. 연극을 보는 도중에도 지금 보고 있는 연극에 대한 생각을, 때로는 지금 보고 있지 않은 연극에 대한 생각을 하기도 하며 연극이 끝나고 극장 밖을 나와서도 연극에, 극장에 꼬리가 달린 것처럼 방금 본 연극에 대한 생각들이 이어진다. 그러면서도 이러한 과정을 혼자 또는 일행과만 겪을 뿐이다. 극장에 함께 있던 관객들에게 주의를 기울여 본 적도 거의 없어 얼굴들을 떠올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니 그러한 관객이 연극에 전면적으로 등장했을 때, 관객의 입장을 그려 낸 전지적 관객 시점에서 비로소 자신 역시 연극의 일부였음을 머리가 아닌 온몸으로 겪게 되는 것이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속담이 있다. 연극 관객 삼 년이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십 년 차가 되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직장으로 따지면 한창 실무를 갈고닦을 베테랑 직업인에 해당하는 전문 관객들이 모이니 관객이 주인공인 연극이 나왔다. ‘어디서 본 건 있어 가지고’, 연극을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관객으로서의 체험들이 생생하게 반영되다 보니 직업 관객의 모습도 세세하게 그려 낸다. 직업 관객 n년 차에 연봉은 마이너스이다. 파트타임이었다가 평일 야근과 주말 출근도 불사하는 주 7일 근무까지 하게 되는 강도 높은 직업 관객은 오로지 스스로의 선택으로 인해 입사-휴직-퇴사를 하게 된다. 누군가의 강제도 없고 실적의 압박도 없다. 오로지 스스로가 자신의 원동력이 되기에 오히려 그만두기 힘든 직업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애정이라는 기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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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은 연습도, 리허설도 없이 곧바로 실전으로 돌입한다. 극장에 들어갈 때마다 약간의 긴장감과 설렘을 동반하게 되는데 이는 무대를 직접 본다는 현장감뿐만 아니라 그 장소 안에서 함께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런 경험이 쌓일수록 느는 것은 기술이 아닌 기분, 애정이다. 노련해지는 애정은 관객이라는 존재에 대한 기대를 배반하기도 하는 것이다. 열정을 불태운 나머지 열혈 관객으로 살다 보니 티켓 부스에서 얼굴만 보고 티켓을 주는 관계자에 가까워지는 입장은 “네 얼굴을 알리지 말라”라는 관객법을 위반하기도 한다. 그 외에도 관객들은 후기를 쓰면서 연극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연극을 본 자신을 쓰기도 하는데, 애정이 커지다 보면 솔직한 감상보다는 그저 좋다는 이야기들을 더 많이 하게 된다. “거짓으로 좋다고 말하지 말라.”, “후기를 쓰되 비평하지 말라.”라는 관객법을 지키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반한 관객-배우는 극장에 갇히게 된다. 관객법을 단 하나라도 어기지 않은 관객들은 드물 것이므로 이 극을 보고 있는 관객들도 관객법을 위반하여 함께 갇힌 셈이다. 현실에서도 직업이란 고달프고 소진되고 불안한 기분들을 동반하기 마련이니, 직업 관객으로 살면서 애정의 위기가 오는 순간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결국에는 ‘보고 싶은 것과 보고 있는 것이 일치하는’ 연극, ‘무대 위의 이야기가 나를 부르는 것 같은’ 연극을 보기 위해 직업 관객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는 작품 속 관객-배우만의 상황에 해당하지 않고 <어디서 본 건 있어 가지고>를 보는 동시에 겪고 있는 관객들에게도 해당하는 것이다. 함께 있음을 넘어선 함께 갇힘의 강렬한 순간들 속에서, 관객으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는 것을 넘어 관객으로서의 자신이 틈입하게 되는 것이다. 직업 관객의 이력서로 등장하는 티켓북에서 비슷한 티켓을 발견했을 때의 동질감이 일차적인 감각이라면, 연극 자체에 대한 동질감은 보다 확장된다. 마지막에 관객-배우가 돌아와 객석에 앉아 같은 곳을 바라보았을 때, 빈 무대에 있는 건 관객들이 보내는 애정 어린 시선 그 자체였다.

또 다른 특별한 만남을 위하여

이 작품에서 특별한 것은 극이 끝난 뒤 관객‘과’의 대화가 아니라 관객 ‘간’의 대화를 한다는 것이다. 보통의 관객‘과’의 대화가 ‘과’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우리’라는 것을 강조하는 듯하지만 실상은 거리와 입장의 차이를 유지하면서 진행되는 반면, 관객 ‘간’의 대화에서는 함부로 우리라는 말을 쓰며 동일시하거나 관객 공동체로 엮으려고 하지 않는다. 질문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관객인 입장에서 담소하거나 수다를 떨듯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눈다. 그만큼 질문들도 여러 가지가 나왔다. 재공연에 대한 질문이 나온 것처럼 또 다른 특별한 만남을 기원하고 싶다. 극장 안에 있었지만 연극에 전적으로 속하기 힘들고 언제나 부분이었으며, 무대 밖에서만 중요성이 인지되고 발화되었던 관객이 무대로 온전히 들어온 연극을 드디어 만났다. 이는 <어디서 본 건 있어 가지고>의 포스터에서처럼 자기 책임의 결과를 알면서도 실행했기 때문일 것이다. 포스터에는 대파로 자신의 눈을 찔러 눈물을 흘리는 관객-배우의 얼굴이 나온다. 오이디푸스를 패러디한 듯한 사진은 스스로의 눈을 찌르는 선택으로서 직업 관객으로서의 자신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힘들지만 기꺼이 선택한 직업 관객의 길을 앞으로도 계속 걸어가기를, 그리고 그 여정을 시리즈로 보여 주기를 바란다. 관객들 역시 땅에 피어 있는 별로서 지지 않고 계속 떠 있을 것이므로.

[사진제공 : 김은빈]

배서현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일자
2020.2.4(목) ~ 2021.2.6(토)

장소
신촌극장

작/연출
김은빈 박예지 배서현 한예지
출연
김은빈 배서현
조명디자인
이영은
음향디자인
나웅서
사진
김은빈
오퍼레이팅
나웅서 박예지 한예지
관련정보
https://www.facebook.com/theatresinchon/posts/422553698414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