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현, 두산아트센터 공동기획 <양갈래 머리와 아이엠에프>
그 시절 ‘엄마’를 돌아보다!
차미경
201호
2021.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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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하면 사람들은 무엇을 가장 많이 떠올릴까? 실직한 아버지,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 직장에서도 내몰리고 가정 안에서도 소외된 힘없는 아버지, 축 늘어진 어깨의 무력한 아버지... 어쩌면 이런 ‘아버지’의 이미지를 제일 먼저 떠올릴지 모르겠다.
IMF 하면 사람들은 무엇을 가장 많이 떠올릴까? 실직한 아버지,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 직장에서도 내몰리고 가정 안에서도 소외된 힘없는 아버지, 축 늘어진 어깨의 무력한 아버지... 어쩌면 이런 ‘아버지’의 이미지를 제일 먼저 떠올릴지 모르겠다. 그 무렵 한스밴드의 ‘오락실’이라는 노래가 꽤 인기를 얻었다. 실직당한 아버지가 가족에게마저 그 사실을 숨기고 매일 출근하는 척 오락실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어느 날 오락실에 온 딸과 우연히 마주치는 내용의 노래다. 아마 그 시절 ‘아버지’의 모습이 오롯이 담긴 대표적인 노래일 것이다. 그러나 실패와 좌절과 무력감에 괴로워하는 아버지가 조명되는 동안 어머니는 어디에 있었을까.
IMF라는 직격탄에 쓰러지고 흔들리는 가장들을 온 나라가 안타까워하며 걱정하는 동안 엄마들은 그런 관심과 조명에서 빗겨나 있었다. 직장을 잃은 가장을 대신해 생계 전선에 뛰어들었을, 실패한 가장의 곁에서 함께 좌절했을, 힘겨운 가장과 아이들을 돌보느라 자신은 미처 돌보지 못하고 안간힘을 썼을 그런 그 시절의 어머니들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 시절의 ‘엄마’를 돌아볼 수 있게 해 주었다는 점이 이 연극이 가지는 가장 큰 의미가 아닐까 한다.
아파트 경비원 김씨는 IMF로 실직한 이후 수없이 다양한 자영업을 시도해 보지만 늘 실패만 반복하고 있다. 망한 가게들에서 미처 처분하지 못한 도구와 물품들만 전리품처럼 남아 비좁은 집을 더 비좁게 할 뿐이다. 현재는 아파트 경비 일을 하고 있지만 그마저도 궁지에 몰려 있는 상태다. 주민들의 이런저런 갑질로 시달리다 집에 오면 집안 역시 어수선하고 심란하긴 마찬가지. 설상가상으로 그의 아내는 치매와 같은 상태로 몸져누워 있다. 남편의 실직 후 콜라텍 주방에서 일하며 함께 생계를 책임져온 아내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정신을 놓고 양갈래로 머리를 땋더니 과거 학창 시절 어디쯤을 헤매고 있는 듯하다. 그의 아들과 딸도 각자의 삶을 가까스로 버티며 애쓰고 살지만 무력한 실패들만 이어질 뿐이다.
그럼에도 연극은 무겁고 슬프게 그려지지 않았다. 심지어 웃음이 터질 만큼 코믹하기도 하고 뮤지컬이 아님에도 노래로 이야기하는 부분도 있어 색다른 느낌이 들기도 한다. 또 IMF는 과거의 이야기 같지만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 시대와 연결되어 있는 느낌이다. 딱히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언제 끝날지 알 수도 없고 결코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가난한 을들의 절망은 그래서 낯설지 않다.
연극은 마치 경비원 김씨의 이야기인 것처럼 펼쳐졌지만, 결국 양갈래 머리 아내의 절망과 맞닥뜨리게 되고 만다. 아내는, 엄마는 왜 어느 날 갑자기 양갈래 머리를 땋기 시작했을까.
실직한 남편이 수없는 사업 실패와 좌절을 겪는 동안 아내는 구멍 난 삶을 메우느라 자신을 미처 돌볼 겨를이 없었다. 화려한 조명 아래 사람들이 춤추고 노는 동안 아내는 콜라텍 주방에서 과일을 깎으며 20여 년을 종종거리며 살아내야 했다. 세상이 축 늘어진 아버지의 힘 없는 어깨를 걱정하고 응원하는 동안 그 힘없는 어깨를 지탱하느라 애쓴 사람은 엄마였는데 누구도 휘청이는 엄마를 걱정해 주지 않았다.
“나라는 삶이 부서져야 끝날 것 같아서...” 이것이 엄마가 양갈래 머리를 시작한 이유였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 신나게 노는 사람들을 지켜보며, 자신의 삶을 이어가야 하는 하루하루를 버티고 버티다 엄마는 결국 힘겨운 자신을 놓아주었다. 더 이상 부서지지 않기 위하여... 단지 목숨을 연명하기 위한 전력질주가 아니라 삶을 위한 ‘숨 고르기’를 선택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 가족들에게는 양갈래 머리를 하고 마치 치매에 걸린 사람처럼 굴며 상처 나고 아프고 미운 것들은 애써 지워 버리고 양갈래 머리 학창 시절 행복했던 기억 속에 숨어 지냈다. 잠깐의 쉼을 위해 가족에게 양해조차 차마 구할 수 없었던 엄마의 자리.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을 구하고 싶었던 절박함이었다.
연극 속 양갈래 머리 엄마를 보면서 불현듯 나의 엄마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가난한 형편에 생활비를 보태기 위해 엄마는 봉제공장에 다녔다. 아침 일찍 일터에 나간 엄마는 잦은 야간 잔업으로 아빠보다 늦는 날도 많았고 늦게 집에 와서도 식구들이 자는 동안 밀린 살림을 해 놓아야만 비로소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그렇게 짧은 눈을 붙이고는 다음 날 일찍 또 일터에 나가고 살림은 매일 새롭게 밀리고... 그런 고단한 생활의 반복이었다.
공장에서 엄마의 회식이 있던 다음 날 저녁이면 밥상 위에 늘 고기반찬이 올라오곤 했다. 웬 고기반찬이냐고 물으면 엄마는 무슨 죄라도 실토하는 사람처럼 ‘어제 회식으로 갈비를 먹었는데 식구들 놔두고 혼자서만 갈비를 먹은 게 미안해서’라고 했다. 그깟 갈비가 뭐라고 혼자 먹은 게 뭐 그리 미안하고 미안해서 그렇게라도 죄스러움을 덜어내야 했는지... 그때 당연한 듯 아무렇지 않게 고기를 씹어 넘겼던 나의 무심함이 이제 와 보니 나야말로 새삼 죄스러워지는 것이다.
IMF, 그 힘겨웠던 ‘을’들의 전쟁에서 총을 맞고 쓰러지는 부상은 아버지들만 입은 것이 아니다. 그 부상병을 일으켜 부축하며 함께 적진을 헤쳐 온 어머니들도 부상에 힘겨웠던 것은 마찬가지. 그런 엄마를 돌아보는 시선은 이 연극을 집필하고 연출한 작가 윤미현이 자신 역시 여성으로서 여성의 시선으로 돌아보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윤미현은 2012년 데뷔한 이후 지금까지 노령화 사회의 노인이나 가난한 서민, 이민자 등을 조명해 온 작가로서 2019년 두산연강예술상을 수상하며 한국연극의 주요 극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그녀의 시선이 우리 사회 어둡고 그늘진 곳에 가 닿아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그녀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게 될지 기대해 보게 한다.
“감자박스 안에 감자 하나가 썩었다고, 그 박스를 다 버릴 수는 없잖아요.”
연극 속 아버지, 경비원 김씨의 대사 중 하나였다. 썩어도 차마 버릴 수 없는, 썩은 것은 골라내고서라도 나머지를 지키고 싶은 것이 우리네 삶이렷다! 그러기 위해 가장 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곳부터 살펴야겠지! 우리의 시선을 낮고 어두운 곳으로 이끄는 조명으로서 예술이 필요한 이유다.
[사진제공 : 무브온 ⓒ최지훈]
<양갈래 머리와 아이엠에프>
- 일자
- 2021.04.10.~2021.04.25.
- 장소
- 두산아트센터 Space111
- 작/연출
- 윤미현
- 출연
- 이호성 이영석 홍윤희 황미영 이호철 신장환 박하늘 천상혁(연주) 이자원(연주)
- 작곡‧음악감독
- 나실인
- 드라마투르그
- 정명주
- 무대디자인
- 신승렬
- 조명디자인
- 유보민
- 의상디자인
- 김경희
- 무대감독
- 신승훈
- 조연출
- 신장환
- 프로듀서
- 나수경
- 기획
- 두산아트센터 윤미현
- 제작
- 무브온 윤미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