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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손프로젝트의 1인극 프로젝트 <데미안>

극장, 표적을 가진 자와 그 표적을 발견하는 이가 마주하는 공간에서

박다솔
202호 2021.06.10
극단 양손프로젝트는 지난 수년간 ‘단편선’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외 여러 작가들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삼아 무대화 하는 작업들을 지속해 왔다.
극단 양손프로젝트는 지난 수년간 ‘단편선’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외 여러 작가들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삼아 무대화 하는 작업들을 지속해 왔다. <다자이 오사무 단편선 - 개는 맹수다>, <현진건 단편선 - 새빨간 얼굴>, <모파상 단편선 - 낮과 밤의 콩트>, <김동인 단편선 - 마음의 오류> 등이 대표적이다. 이 작업들은 대체로 해당 작가의 여러 단편들을 하나로 묶어 양손프로젝트의 세 배우(양종욱, 손상규, 양조아)가 작품 속 장면/단편에 따라 1인, 2인, 3인이 출연하는 형태로 만들어졌다. 2018년에는 이 작업들 중 배우 양조아가 1인으로 출연했던 단편들만을 모아 <양손프로젝트 1인극展 : 양조아 편>을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헤르만 헤세의 장편소설 <데미안>을 배우 양종욱이 1인극으로 만들었다. 이렇듯, 이들은 소설의 텍스트를 무대화 하는 과정을 지나면서 1인극의 가능성을 점차적으로 실험해 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데미안>은 서술된 문어체를 음성학적으로 실험했다는 점과, 소설에서 이야기 밖에 위치한 서술자와 무대 위에서 이야기 밖에 위치하고 있는 배우가 일치되는 순간을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이전의 ‘소설의 무대화’ 작업들과는 명확한 차이를 갖는다.
소설을 무대에서, 연극적으로 읽어내려는 시도는 이전에도 있어 왔고, 현재에도 일어나고 있다. ‘소설’이라는 글자에 ‘낭독’이나 ‘극장’ 등의 단어를 덧붙이고 이를 무대화한 형태의 공연들은 하나의 장르로 보편화 되었다고 느껴질 정도로, 그 형식은 이제 관객들에게 그다지 낯선 것이 아니다. 그중 양손프로젝트의 ‘단편선’ 작업에서 특히 주목 되었던 점은, 배우들이 소설의 고유한 구성이나 문체를 거의 수정하지 않고 소설 속에서 대화(구어체)로 이루어진 인물간의 대사뿐만 아니라 문어체로 쓰여 있는 서술자 시점의 문장들을 연기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와(혹은, 서술자의 발화를 연기의 영역으로 적극적으로 넓혀 해석하며) 이를 음성과 신체를 사용하여 다양하게 표현하는 것이었다.
이들이 소설의 무대화를 통해 획득한 ‘서술자의 말하기’ 방식은 희곡 대본을 무대화 할 때 적용되기도 했다. 연극 <죽음과 소녀>1)에서 한 인물은 희곡의 지문을 발화함으로 이야기의 안팎을,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역할을 수행하는 자와 이야기를 견인하는 자를 오가며, 독자에게 상상의 영역에 머무르곤 했던 ‘서술자’를 극장 안으로 위치 시켰다.
<데미안>은 양손프로젝트가 지금까지 소설의 무대화에서 실험해왔던 ‘서술자의 말하기’에 더 깊이 천착한다. 이 작업은 양손프로젝트가 처음으로 장편소설을 무대화 한 작품으로, 양종욱은 소설 『데미안』2)의 텍스트를 무려 네 시간 동안 혼자서 낭독한다/말한다/노래한다/연기한다/표현한다. 그는 무대 위에서 이야기의 서술자이자 이야기 속 인물들, 그리고 배우 그 자신으로 존재하며 『데미안』의 텍스트를 성실하게 무대 위에 차례대로 펼쳐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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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로 흰 바닥과 흰 벽체가 가로로 길게, 세로로 좁은 폭을 두고 세워져 있다. 무대의 오른 편에는 긴 테이블이 하나 놓여있고, 왼편에는 여닫이문이 있다. 양종욱은 무대에 등장해 테이블 위에 검정 텀블러를 올려놓고, 얇은 종이 뭉치 하나를 집어 낱장으로 펼쳐 둔다. 그는 영락없이 공연을 앞둔 배우의 모습으로 관객 앞에 선다. 그는 무대 위를 걷거나 물로 입술과 목을 축이고, 작게 푸- 소리를 내며 입술을 풀기도 하고, 목을 이리저리로 기울이며 스트레칭을 한다. 그리고 그가 돌연 “내가 열 살 때 일들로 내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라는 첫 문장을 연달아 두어 번 반복하며 소리를 낼 때, 관객들은 곧바로 이 공연이 우리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들려올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양종욱은 소설 속 서술자 시점의 문장들로 자신만의 악보를 그린다. 말의 고저와 강세, 빠르기, 울림, 진성과 가성, 소리의 크고 작음 등은 문장 안에서 글자의 기표와 기의에 따라 변주되며 발화 된다. 그가 소리 내는 글자들은 관객석을 향해 가까워졌다 멀어지고, 확대 되었다가 축소되며, 음악이 되었다가 건조한 글자로 돌아오길 반복하면서, 우리에게 문장을 입체적으로 감각하고, 상상하게 만든다.
할 수만 있었다면 그가 무대 위에서 소리 내어 연주했던 문장을 그 음조를 살려 글자로 옮겨 적었겠지만,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이것이 글자의 한계다. 반면, 소설에서 활자로 존재하기에 수많은 가능성을 가졌던 문장들은 입 밖으로 소리 내어지는 순간 발화의 의도와 방식에 따라 한정된 가능성을 함의하게 된다. 그것이 어쩌면 소리의 한계일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데미안>의 양종욱은 다양한 (소리 내어) 읽기를 통해 문장의 상상력을 확장해보는 실험을 하고 있는 것이라 해석된다. 다만, 양종욱은 주로 문어체로 쓰여진 ‘서술자의 말하기’를 이처럼 다채롭게 변주하여 발화하되, 구어체로 이루어진 대화들에서는 각 인물을 연기하며 장면의 재연을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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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 공연에서 서술자 시점의 문장은 자기성(自己性)을 상실하기 쉽다. ‘서술자의 말하기’가 단순히 이야기를 ‘설명’하는 역할로 극 안에서 상정되었을 때, 이런 현상은 더욱 빈번하게 일어난다. <데미안>이 더욱 흥미로웠던 점 중 하나는 그가 원작의 서술자인 ‘현재의 싱클레어’라는 존재를 무대 위에 세우고, 서술자를 자신의 몸 위에 입히는 자기화(自己化) 과정을 거친다는 점이다.
공연은 소설 텍스트를 거의 손대지 않은 채, 원작 구성과 동일하게 진행된다. 어린 싱클레어가 자신을 둘러싼 밝고 안전한 세계를 의심하고 어둡고 불안정한 세계를 발견하게 되면서 데미안을 만나게 되는 유년기와, 사회적으로 금기시 된 것들, 이를테면 쾌락과 관련된 것들을 열망하며 불안에 떨다가 베아트리체와 피스토리우스를 만나게 된 청소년기, 마지막으로 데미안과 그의 어머니 에바를 만나 구도자에 이르게 되는 성년기의 순서다.
양종욱은 이 순서에 따라 유년기엔 검정색 반팔과 검정색 바지를, 청소년기에는 검정색 셔츠와 검정 바지를, 그리고 성년기에는 하얀 셔츠에 하얀 바지로 (무대 위에서) 환복하며 그 변화를 전시한다. 이 이야기는 자신이 믿어왔던 세계를 의심하며 그 안락한 세계가 송두리째 뒤흔들리게 된 자(싱클레어)가 그로써 자신의 이마에 표적을 갖게 되고, 데미안을 포함하여 그 표적을 알아보는 자들을 만나며 점차 새로운 세계, 구도자의 세계로 나아가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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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종욱은 서술자의 발화와 인물의 재연 사이에서 자연인으로서의 그 자신을 드러낸다. 특히, 서술자의 발화 사이사이로 문득문득 테이블을 향해 걸어가 물을 마시거나, 펼쳐져 있는 텍스트에 눈길을 두거나, 혹은 호흡을 가다듬기도 하며 서술자와 자기 자신이 연신 교체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은 결국 서술자의 이야기들이, 과거를 회고하는 싱클레어의 목소리가, 자신의 이야기이며 또한 자신의 목소리임을 암시하는 행위로 읽혀진다.

내가 이 연극이 양종욱의 자기 연극 세계에 대한 고백이자, 극장에 대한 이야기임을 인지하기 시작한 것은 열여덟 살이 된 싱클레어가 피스토리우스를 만나는 대목에서부터다. 피스토리우스는 싱클레어와 예술적 경험을 나누고, 이 소년에게 꿈을 유희하라고 조언하는 자다. 하지만 그는 ‘새로운 것은 새롭고도 달라야 하며 새 땅에서 솟아야지 수집되거나 도서관에서 길어 내어져서는 안 된’ 다는 것을 알면서도, 과거의 꿈에 머물러 있는 자로 묘사된다. 양종욱에게 피스토리우스는 새로운 것의 출연을 기대하면서도 여전히 낡은 연극, 구시대의 연극, 과거의 영광을 꿈꾸는 연극을 상징한다. 싱클레어가 그를 떠나며 ‘자기 자신의 길’에 한걸음 더 가까워졌듯, 양종욱은 ‘전통적인 읽기’를 탈피하면서 자신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집중해서 듣지 않으면 잘 들리지 않는 음향, 단조로운 조명, 격정이 드러나지 않는 신체, 단성의 문장들, 이런 것들로 채워진 적막한 극장에서의 네 시간짜리 1인극은 배우에게도 또한 관객에게도 도전의 의미를 갖는다. 낯선 발화의 방식도 이 도전에 제 몫을 한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도 배우는 더 오랜 시간 불안하고, 고독했을 것이다. 낡은 연극, 안전한 세계에 머무르지 않으려 세계의 지붕을 연거푸 쪼아대며 균열을 냈을 것이다. 그 시간이 홀로 뼈저리게 외로웠을 것이다.
싱클레어가 수천, 수만 번 상상해오고 꿈속에서 만나왔던 베아트리체의 얼굴을 데미안의 엄마 에바에게서 발견하고 그녀에게 자신이 이곳에 오기까지 죽을 만큼 어려웠음을 고백하자, 에바는 이렇게 말한다. “그건 늘 어려워요. 태어나는 것은요. 아시죠.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몸부림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길이 그렇게 어렵기만 했나요? 혹시 더 아름답고 더 쉬운 길을 알았던가요?”, 그는 고개를 가로 젓는다. 무대 위, 싱클레어가 운다. 양종욱은 문장을 읊으며 두 뺨에 번진 눈물을 닦아낸다. 관객들은 에바의 얼굴을 하고 그를 바라본다. 이제, 서술자는 양종욱의 몸 위로 덧대어 포개진 채 무대 위에 있다. 알을 깨부수고 나온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아브락사스의 세계는 나 자신을 온전히 바라보고 만날 때에 도착하게 되는 곳이다. 양종욱의 얼굴 위로 조명이 만들어낸 빛과 그림자가 경계 없이 번지며 그의 인상을 변화 시킨다. 그 얼굴 위로, 새로운 세계가 일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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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은 최초에 싱클레어가 가진 ‘표적’을 알아본 사람이다.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려 하는 자는 이마에 표적이 새겨져 있다. 방황하던 시기를 지나 다시 데미안을 만나게 된 싱클레어는, 그에게서 “너, 여전히 표적을 가지고 있구나.”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관객은 표적을 가진 자를 알아보고, 표적을 가진 자들은 정신적 공동체를 이룬다. 이제 극장은 표적을 가진 자와 표적을 발견하는 자가 만나 다름과 새로움을, 미래의 것을 이야기 하는 공간으로 이곳에 존재한다.

그렇다고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차단되어 사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우리는 생각과 대화 가운데
서 자주 그 세계 한가운데에서 살았다. (...) 표적을 가진 우리는 세상의 눈에는 이상한 사람들,
위험한 광인들로 비칠지도 몰랐다.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우리는 깨어난 사람들 혹은 깨어
나는 사람들이었다.
- 『데미안』, 191p

양손프로젝트의 1인극 프로젝트의 첫 번째 작품 <데미안>은 이들이 다시 한 번 안전한 세계를 깨부수고 새로운 곳으로 나아가려 하는 의지를 보여준다. 극장에 모인 사람들의 이마 위에서 표적이 빛나고, 그 표적이 서로의 얼굴을 비춘다. 이곳, 극장은 표적을 가진 자들과 표적을 알아보는 자들이 만나는 아브락사스의 세계다. 그러니 더 자주, 더 환히 빛날 수 있는 곳이라야 한다. 긴 시간, 고독함을 견디고 자신이 가진 표적을 드러내 보여준 배우와, 기꺼이 그 표적을 오래도록 바라봐준 관객들, 그리고 이 세계를 담아낸 극장에 오래도록 시선이 머물었다.

[사진제공 : 더줌아트센터 / 사진 촬영_이강물]

양손프로젝트의 1인극 프로젝트 <데미안>
일자
2021.05.21.(금) ~ 2021.05.30.(일)

장소
더줌아트센터

원작
헤르만 헤세
구성 실연
양종욱
멘토
박지혜
크리에이터
손상규 양조아

시노그라퍼
여신동
사운드
카입
디자인어시스턴트
신정주
조명 수퍼바이저
홍유진
의상 수퍼바이저
오현희
프로젝트 매니저
이상민
영상
김원모
사진
이강물
조명오퍼레이터
이은호
음향오퍼레이터
전서연
기획
김언
관련정보
https://tickets.interpark.com/goods/21003638
  1. <죽음과 소녀>(연출 박지혜, 양손프로젝트),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2012년.
  2. 양손프로젝트의 <데미안>은 공연 팜플렛을 통해, 민음사에서 2000년에 다시 출판된 전영애 번역본을 공연의 텍스트로 삼았음을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