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린고비프로젝트 <자존감 도둑>
그저 그런 삶도 그저 그렇게
권혜린
203호
2021.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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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극에서 ‘청소년’이라는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청소년이 등장하는 연극,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연극, 청소년을 이야기하는 연극 등등.
청소년극에서 ‘청소년’이라는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청소년이 등장하는 연극,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연극, 청소년을 이야기하는 연극 등등. <자존감 도둑>은 그 모두에 해당하면서도 그 모두에만 해당하지는 않은 작품이다. 희곡집 ⌈우리는 적당히 가까워⌋에 실린 동명의 희곡에서 청소년들만 등장하는 것과 달리, 이 작품은 시작부터 성인이 된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마치 취업을 위한 것처럼 자기소개하고, 면접이나 인터뷰처럼 질문에 답한다. 경찰공무원으로 근무하는 정지원, 출판사에서 일하며 소설을 쓰는 임옥, 족발집 사장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강유리는 나란히 서서 진지하게 이야기한다. 앞으로의 목표에 관한 질문에 정지원은 소수자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차별하지 않는 안전을, 임옥은 소설을 쓰는 것을, 강유리는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이야기한다.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넘어갈 때 사실상 졸업이나 주민등록증 발급 등 외부에서 부과되는 조건 외에 내면의 조건은 비가시화 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어른의 삶을 질문하는 것은 청소년에서부터 이어진 생각과 고민을 묻는 것과도 같다.
이렇게 연극 <자존감 도둑>에서는 성인이 된 인물들을 ‘미리 보기’하게 함으로써, 즉 인물들의 미래를 미리 보여 줌으로써 선형적인 변화와 발전 가능성, 또는 성장 가능성을 작품 내부에서 기대하는 것을 차단한다. 마지막에도 다시 성인이 된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액자식 구성을 보여 주는데 이와 같은 ‘기대없이 보여주기’는 오히려 역설적으로 삶이 계획대로, 뜻대로 되지 않음을 드러내면서 현실적인 성장의 의미를 고민해 보게 한다. 이들의 미래는 각자 다른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며 다양한 삶을 산다는 것을 드러내는 일종의 증거이다. 그리고 이들의 자존감이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는 안심을 주면서 과거를 통해 원인을 파고들고자 한다. 이들의 자존감을 누구에게 빼앗겼는지, 어떤 부분을 빼앗겼는지를 이들의 삶이 잠시 중첩되었던 과거의 어느 하루를 통해 보여 주는 것이다.
진실의 액자
그 하루는 그들이 ‘자존감 도둑’의 존재를 서로 확인했던 하루이기도 하다. 데면데면한 학원 친구였던 임옥에게 가출한 정지원이 갑작스럽게 연락하고, 임옥과 절친인 강유리도 따라오면서 세 명은 일탈과도 같은 하루를 보낸다. 전학을 갔기에 그 존재마저 잊히기 쉬운 정지원이 연락하고, 친화력이 좋은 강유리가 함께 어울리면서 의도와 우연이 겹친 접점이 생기는 것이다. 그들은 함께 맥도날드와 노래방과 오락실에 가고, 슈퍼에서 몰래 가져온 술을 아지트에서 마시기도 하면서 밤을 새운다. 우연한 공모자들의 생동감 있는 모험은 청소년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없는 밤과 새벽 시간이라는 것과 맞물려 즐거움과 해방감을 준다.
그러나 이들이 온전한 자유를 만끽하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나 집, 또는 은연중에 친구라는 관계 속에서 도망가고 있었으므로 일상에서 벗어난 시간을 겪는 동안 진실이 드러나면서 서로의 자존감이 깎이는 원인이 밝혀진다. 정지원은 경찰이 되기를 강요하는 아버지에게 반발하다 집을 뛰쳐나온다. 족발집을 이어받으라는 집안의 요구와 달리 연예인을 꿈꾸는 강유리는 살을 빼야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 외모 강박을 지닌다. 작가를 꿈꾸는 임옥은 글에 대한 자신감이 없고, 강유리의 부정적인 말에도 수긍하기만 한다. 곪았던 것은 결국 폭발해 임옥은 강유리에게 친구인 척하는 것을 그만하자고 한다. 이에 강유리가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하는 임옥의 엄마와 사장인 자신의 엄마의 관계를 운운하며 경제적인 차이를 말하면서 갈등이 심화된다. 두 사람을 보며 정지원은 이래서 자신은 친구를 안 만든다고 말한다.
이렇게 관계는 파탄 난 것처럼 보이지만 다음 날 해는 다시 떠오르고, 이들의 관계도 다시 이어진다. 정지원도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한다. 재혼하려는 엄마를 원망했지만 이제 이해한다고 하면서 한 번 사는 거 좋아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고, 그 이유는 자신이 행복하고 싶어서라고 말한다. 이는 다시 뜨는 해 속에서 일상에 복귀하는 것과 더불어 스스로를 원망하는 것에서 벗어나 이해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시도하겠다는 것처럼 보인다.
강유리가 임옥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놀리거나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안 될 꿈은 꾸지도 말”라면서 무시하고, 아버지가 정지원에게 꿈을 강요하고, 강유리가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여 남과 비교하고 살에 강박을 가지는 것에서 자존감을 빼앗은 도둑은 가족이거나, 친구이거나, 주변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인물들은 자존감을 빼앗은 이를 원망하지 않는다. 달리 말하면 ‘자존감을 빼앗겼다’는 생각 자체가 자존감 도둑인 것이다. 도둑은 스스로의 내부에 자리하고 있었다. 자기 자신이 도둑이 되는 상황에서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솔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온전한 자유를 만끽하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나 집, 또는 은연중에 친구라는 관계 속에서 도망가고 있었으므로 일상에서 벗어난 시간을 겪는 동안 진실이 드러나면서 서로의 자존감이 깎이는 원인이 밝혀진다. 정지원은 경찰이 되기를 강요하는 아버지에게 반발하다 집을 뛰쳐나온다. 족발집을 이어받으라는 집안의 요구와 달리 연예인을 꿈꾸는 강유리는 살을 빼야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 외모 강박을 지닌다. 작가를 꿈꾸는 임옥은 글에 대한 자신감이 없고, 강유리의 부정적인 말에도 수긍하기만 한다. 곪았던 것은 결국 폭발해 임옥은 강유리에게 친구인 척하는 것을 그만하자고 한다. 이에 강유리가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하는 임옥의 엄마와 사장인 자신의 엄마의 관계를 운운하며 경제적인 차이를 말하면서 갈등이 심화된다. 두 사람을 보며 정지원은 이래서 자신은 친구를 안 만든다고 말한다.
이렇게 관계는 파탄 난 것처럼 보이지만 다음 날 해는 다시 떠오르고, 이들의 관계도 다시 이어진다. 정지원도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한다. 재혼하려는 엄마를 원망했지만 이제 이해한다고 하면서 한 번 사는 거 좋아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고, 그 이유는 자신이 행복하고 싶어서라고 말한다. 이는 다시 뜨는 해 속에서 일상에 복귀하는 것과 더불어 스스로를 원망하는 것에서 벗어나 이해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시도하겠다는 것처럼 보인다.
강유리가 임옥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놀리거나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안 될 꿈은 꾸지도 말”라면서 무시하고, 아버지가 정지원에게 꿈을 강요하고, 강유리가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여 남과 비교하고 살에 강박을 가지는 것에서 자존감을 빼앗은 도둑은 가족이거나, 친구이거나, 주변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인물들은 자존감을 빼앗은 이를 원망하지 않는다. 달리 말하면 ‘자존감을 빼앗겼다’는 생각 자체가 자존감 도둑인 것이다. 도둑은 스스로의 내부에 자리하고 있었다. 자기 자신이 도둑이 되는 상황에서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솔직하지 못했던 것이다.
한 줌의 빛
이들이 자존감을 뺏긴 이유가 개인의 문제만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현실적으로도 자존감을 지키면서 사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강유리는 언니들의 삶을 통해 대학을 갔다고 해서 인생이 정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언론정보학을 전공했지만 결혼을 택하고, 영문과에 갔지만 전공을 바꾸고 싶어 하는 등 성인이 되어도 자신의 인생을 선택하는 것은 어렵다. 임옥도 인생에 원래 픽스가 없으며,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말한다. 정지원도 ‘난 내가 되고 싶다’라고 하면서 ‘나’답게 살고자 하지만 그것이 어떤 것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선택의 어려움과 불확실한 미래를 말하는 인물들의 대사에서는 언뜻 자조적인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그래도 그들은 계속 살아낸다. 집에 가기 싫지만 가야 하는 것처럼 마음에 안 드는 인생, 마음에 안 드는 자신일지라도 살아내는 것. 그저 그런 삶도 그저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 좋지도 나쁘지도 않을 수도 있지만 괜찮다는 것. 그렇게 삶은 현재 진행형으로 이어지며 그들은 무사히 어른이 된다. 정지원은 아버지가 강요했던 경찰공무원이 되었지만 자신만의 소신으로 ‘다른’ 경찰을 꿈꾼다. 강유리도 연예인이 아니라 집안의 뜻대로 족발집을 이어받았지만 양육까지 해내며 자신만의 행복을 꾸려 간다. 임옥은 소설 쓰기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이미 작가로서의 모습을 살고 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의 모양을 조금씩 닮아 가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그들은 계속 살아낸다. 집에 가기 싫지만 가야 하는 것처럼 마음에 안 드는 인생, 마음에 안 드는 자신일지라도 살아내는 것. 그저 그런 삶도 그저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 좋지도 나쁘지도 않을 수도 있지만 괜찮다는 것. 그렇게 삶은 현재 진행형으로 이어지며 그들은 무사히 어른이 된다. 정지원은 아버지가 강요했던 경찰공무원이 되었지만 자신만의 소신으로 ‘다른’ 경찰을 꿈꾼다. 강유리도 연예인이 아니라 집안의 뜻대로 족발집을 이어받았지만 양육까지 해내며 자신만의 행복을 꾸려 간다. 임옥은 소설 쓰기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이미 작가로서의 모습을 살고 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의 모양을 조금씩 닮아 가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에는 어른이 된 이들이 영상에서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남긴다. 세상은 천천히 변하고 있으므로 스스로를 탓하지 말고 당당하게 살기, 하고 싶은 것 해 보기, 예상되는 삶이지만 선택한 인생을 잘 살 것이며 스스로를 굳건하게 믿기를 이야기한다. 자신에게 자존감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는 아직도 자신을 누르는 것이면서도 자신을 믿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지는 것,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을 이야기한다. 이렇게 말하는 이들은 빛나 보였다. 다시 액자 속으로 들어가면, 이들에게는 이미 각자 다른 빛이 있었다. 자신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르겠다는 정지원의 말에 임옥은 다양성을 이야기한다. 임옥과 강유리가 아슬아슬하게 이어 온 관계의 균열을 섬세한 정지원은 눈치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 같은 허무한 상황 속에서도 가장 먼저 씩씩하게 양말에 숨겨 둔 돈을 꺼내 맥모닝을 사 주겠다고 하는 강유리는 긍정적이다. 셋이 함께 놀 때도 각각 잘하는 분야가 달라서 임옥은 펌프를, 강유리는 노래를, 정지원은 인형 뽑기를 잘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 한 줌의 빛으로도 인물들은 충분히 빛났다. 이처럼 <자존감 도둑>을 보며 자존감을 빼앗긴 것 같은 인물들에게서 각자 빛나는 부분을 찾게 되었으니, 결과적으로는 자존감 도둑의 도둑이 된 것이 관객의 역할일지도 모른다.
[사진제공 : 자린고비 프로젝트]
자린고비프로젝트 <자존감 도둑>
- 일자
- 2021.5.28.(금) ~ 2021.5.30.(일)
- 장소
- 삼일로창고극장
- 작
- 김슬기
- 연출
- 장명식
- 출연
- 우유진 이은석 현채아
- 무대감독
- 이어소
- 그래픽디자이너
- 홍동규
- 조명디자이너
- 유혜연
- 조명오퍼레이터
- 김수려
- 음향오퍼레이터
- 김다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