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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배우다컴퍼니 <첨부파일_서식01_이력서>

비로소 시간으로, 경험으로, 삶으로

손 옥 주 (공연학자)
204호 2021.07.15
올해로 4회째를 맞은 ‘페미니즘 연극제’의 프로그램 홍보물을 살피던 중, 문득 <첨부파일_서식01_이력서>라는 작품의 소개 문구에 시선이 멈췄다.

우리의 생존 가치는 이력이 될 수 있을까

올해로 4회째를 맞은 ‘페미니즘 연극제’의 프로그램 홍보물을 살피던 중, 문득 <첨부파일_서식01_이력서>라는 작품의 소개 문구에 시선이 멈췄다.
“안 그래도 먹고 살기 힘든 연극판에서 지방, 게다가 여성, 게다가 청년, 게다가 인지도 없음이라니, 우리의 생존 가치는 이력이 될 수 있을까”
세간의 기준으로 볼 때 과연 이력이 될 수 있을지 없을지, 생존 가치로서 인정을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알기 힘든 기준들(연극판, 지방, 여성, 청년, 인지도 없음)의 나열 속에서 불현듯 어쩌면 이 공연은 그동안 많은 대화를 나눠온 공연계의 동료들을 비롯해 필자 자신이 경험한 시간과도 상당 부분 닮아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절될만한 경력조차 제대로 쌓지 못한 채 30대 중후반의 나이에 임신과 출산을 경험했던, 아이가 돌이 지난 무렵부터는 중간에 단절이 되어도 좋으니 일단 경력이 될 만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보자라는 심정으로 열과 성을 다해 예술계 이곳저곳의 지원공고를 찾았던, 아이가 깨어있는 동안에는 아이를 돌보고 아이가 자는 틈을 타 이력서를 썼던, 쓰고 또 쓰고 떨어지고 또 떨어지던 바람 같은 시간들이 마음속에 불어왔다. <첨부파일_서식01_이력서>의 작품 소개 문구를 마주하며 한때의 과거인지 아니면 지금은 잠시 휴지기이나 머지않아 다시금 도래할 미래일지 알 수 없는 ‘이력서 쓰는 자화상’을 떠올렸고, 수십 번 마주했던 이력서의 규격화된 양식과 그 양식에 맞춰 재단되던 특정 시기의 경험들을 떠올렸다. 생존에의 의지 앞에서는 그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던 시간. 바로 그 시간 앞에서 저마다 쉽게 잃곤 하던 생의 가치를 되찾아주려는 듯한 <첨부파일_서식01_이력서>의 소개 문구를 접하며, 어쩌면 이 작품이야말로 규격화된 양식 안에 포섭될 수 없는 공동의 감각을 회복시키기 위한 진심의 발로가 아닐까 싶었다. 무대에 선 그들이 바로 그 진심을 분명 전해줄 것이라는, 근원을 알 수 없는 굳은 믿음을 안고 혜화동 1번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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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지만 낯설지 않은

극단 ‘배우다컴퍼니’의 신작 <첨부파일_서식01_이력서>는 앞서 언급한 ‘제 4회 페미니즘 연극제’의 프린지 프로그램 공식 초청작으로 7월 6일과 7일 양일간 혜화동 1번지에서 공연되었다. “동시대 공연예술이 지역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으로 출발한 공연예술단체”(출처: 제4회 페미니즘 연극제 공식 프로그램)라는 단체 소개에서도 드러나듯이 ‘배우다컴퍼니’는 그동안 전라북도 전주를 기반으로 한 여성 창작자들이 주축이 되어 활동을 이어왔다. 이들의 첫 서울공연이기도 한 이번 공연은 “당장 다음 달 상환할 대출금도 마련하지 못한 프리랜서 원, 두 딸을 양육하는 동안 학부모라는 명함에 가려져 예술가의 호칭이 낯설어진 미향, 매일 퇴사를 결심하지만 월급이라는 달콤한 유혹에서 외줄타기 중인 서희, 대학 졸업과 동시에 코로나를 경험하며 생계도 서울상경의 꿈도 막막해진 혜진”(출처: 페미니즘 연극제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의 실제 생활 속 에피소드를 기반으로 한 공동창작극이다. 80여분 간 이어지는 공연의 상당 부분은 놀랍게도 즉흥으로 진행되었는데, 출연배우 4인의 상호성 안에서 동작과 대사의 결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때야 비로소 가능할 법한 즉흥의 정도를 체감하며 오랜 시간 이어온 배우 간의 호흡과 신뢰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었다.
공연 내용은 끝없는 대출금과 불안정한 위치로 상징되는 현실을 타개해보고자 월급과 4대 보험이 보장되는 전주시립예술단(극단, 합창단) 지원을 목표로 삼은 배우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공연 전부터 객석에는 이들의 실제 이력이 담긴 이력서 파일이 놓여있는데, 파일에 기재된 학력과 경력, 자격증 사항에서부터 출발하는 배우들의 이야기는 점차 이력서의 편집 가능성을 넘어서서 각 란에 기재된 사항들이 함의하는 바로까지 나아간다. 여전히 극복하지 못한 학력 콤플렉스와 불안정한 프리랜서 예술가 생활에 대한 원의 고백, 명문대 졸업 후 결혼, 임신, 출산의 과정을 거치며 경단녀 무명배우가 되어버린 미향의 자조, 4년 전 성악 활동을 접고 비정규직 사무직으로 전환한 까닭에 합창단 지원을 위해서는 성악 활동 공백기를 알리지 않길 원하는 서희의 고민, 각각 4줄로 된 이력서의 빈 항목들을 채울 수조차 없어 차라리 이력서 쓰기를 포기하려는 23살 혜진의 담담함. 이 모든 것은 개인의 삶이기에 새롭게 다가오지만, 비단 개인의 삶만은 아니기에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때로는 유쾌하게 웃으며, 때로는 눈시울을 붉히며 이어가는 배우들의 독백과 대화는 ‘꼭 합격해야 해’라는 다짐과 ‘어차피 안 될 거야’라는 체념 사이를 오간다. 그처럼 양극단을 오가는 ‘사이의 상태’로 제시된 이력서 작성 과정이야말로 오늘날의 2030 여성들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의 보편성을 대변해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력서를 제출하느냐 마느냐의 문제 이전에, 이력서를 쓰느냐 마느냐, 만약 쓴다면 어떻게 쓰느냐, 어떻게 이전에 무엇을 쓰느냐, 무엇이라도 쓸만한 게 있느냐로 이어지는 질문의 연쇄 속에서 삶은 기재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으로 나뉜다. 복지관에서 라인댄스를 가르치며, 정신없이 아이들을 돌보며,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이사님의 전화를 받으며, 커피숍에서 부지런히 알바를 하며 일상 속 치열한 시간을 보낸다 해도, ‘삶을 얼마나 지속적으로 치열하게 살아 왔는가’하는 문제는 대개 기재 가능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들이 살아온 치열한 삶의 이력이 시립예술단으로 대표되는 소위 ‘예술 전문 기관’의 서식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대체 어디에서야 이들의 이력은 ‘이력’ 그 자체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일까. 이들이 열심히 지내온 시간은 과연 어떤 서식에 담겨 어떤 사람들을 향해 발신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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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을 향한 이력서

어쩌면 이번 <첨부파일_서식01_이력서>는 그 자체로 공연장을 찾은 관객을 수신자로 삼은 배우들의 이력서일지도 모른다. 선호하는 톤에 맞춰 단원을 선발하는 지휘자의 시선과도, 연기력을 능가할 정도의 개인기가 더해지지 않으면 관심을 보이지 않는 연출가의 취향과도 같을 수 없는 익명의 관객에게 배우들은 작성 과정이 은폐되어있는 이력서 최종본이 아닌, 울퉁불퉁한 틈들로 직조된 이력서 작성 과정 그 자체를 발신한다. 그와 같은 발신의 순간에 비로소 드러나는 이들의 이력이란, 말 그대로 이들 각자가 밟고(履) 지나온(歷) 시간에 다름 아니다. 부정 가능한 것도 없고 배제 가능한 것도 없는, 그저 그렇게 삶의 길목마다에 놓여온 시간과 경험으로서의 이력. 그와 같은 이력의 끝에서 배우들은 문득 ‘페미니즘 연극제’에 공식 초청된 자신들의 현재를 떠올린다. 그리고 연극제 참여 결과 오히려 금전적 마이너스 상황을 겪을지도 모를 위험부담을 기꺼이 떠안기로 결심하고, 그 와중에 리스크를 조금이나마 줄이기 위해 보다 큰 기관이 주관하는 보다 큰 규모의 창작 사업 지원신청에 도전한다. 그리고 그들의 도전은 (실제 선정되었는지의 여부와는 별개로) 성공적인 결실을 맺는다. 극단 창단 이래 처음으로 관객과의 대화에 임한다던 배우들의 진심 어린 시선과 표정이야말로 바로 그 결실을 되비추는 징표인 듯했다.
공연 말미에 배우들은 한 사람씩 녹색 플라스틱 우유박스 위로 올라가 그동안 열심히 고민하며 작성한 이력서를 힘껏 찢는다. 공연 소품으로 챙겨왔으니 이것을 가지고 무엇이든 해야 한다며 앞에 두고 막연하게 읊조리던 우유 상자는 기꺼이 그들의 선언을 위한 연단이 되어주었다. 차례로 연단에 선 배우들을 향해 모처럼 손바닥이 아픈 줄도 모르고 박수를 쳤다. 한참이나 이어진 객석의 박수 소리를 따라 그간 아무것도 아닌 듯 하던 시간이, 경험이, 삶이 비로소 시간으로, 경험으로, 삶으로 자리 잡는 듯했다. 이번 <첨부파일_서식01_이력서> 공연이 그 길잡이가 되어주었음은 물론이다. 인상 깊은 첫 서울공연을 마친 극단 ‘배우다컴퍼니’의 이번 작품은 올 12월 전주에서의 재공연을 앞두고 있다. 극단이 걸어갈 앞으로의 행보에 어떤 시간과 경험이 이력으로 첨부되어갈지 사뭇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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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 극단 배우다컴퍼니 Ⓒ혜영작가]

극단 배우다컴퍼니 <첨부파일_서식01_이력서>
일자
2021.07.06.(화)~2021.07.07.(수)

장소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

공동창작
서서희 송원 안혜진 최미향
무대감독
이신실
음악감독
방예진
포스터디자인
써니
제작
배우다컴퍼니
관련정보
https://tickets.interpark.com/goods/210049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