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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작은신화 ‘우리연극만들기’ <화성은 수원에서 하나도 안 멀다>

연애극과 정치극 사이

남지수(연극평론가)
205호 2021.07.29
프로젝트그룹, 일인 극단 등 점점 더 소규모화, 분자화 되어 가는 동시대 연극 생태계 속에서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묵묵하고 우직하게 작업을 이어온 극단 작은신화(1986~)란 이름이 새삼 큰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프로젝트그룹, 일인 극단 등 점점 더 소규모화, 분자화 되어 가는 동시대 연극 생태계 속에서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묵묵하고 우직하게 작업을 이어온 극단 작은신화(1986~)란 이름이 새삼 큰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작은신화의 역사에서 특별히 주목해야 하는 행보 중 하나가 바로 1993년 시작해 올해까지 지속되어 온 창작극 발굴 프로젝트 ‘우리연극만들기’가 아닌가 싶다. 그간 28명의 작가가 참여해 29편의 창작 초연작을 선보였다는 이 프로젝트는 공적 지원이 충분치 않던 시기 극작가의 얕은 풀과 창작극 부족을 인식하며 그야말로 일개 영세 극단의 뚝심 하나로 이어온 작업이기 때문이다. 올해로 열네 번째를 맞은 우리연극만들기에서는 공진화 작, 김정민 연출의 <화성은 수원에서 하나도 안 멀다>와 김이율 작, 최용훈 연출의 <믿을지 모르겠지만>이 공연되었다.

연애 이야기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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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은 수원에서 하나도 안 멀다>는 표면적으로 뜨거움이 사라진 어느 커플의 소소한 연애담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청년취업, 노동운동, 신자유주의 등 묵직한 정치적 발화들이 자리한다. 12~14학번, 즉 20대 후반으로 가늠되는 A와 B는 대학시절 노동운동을 함께 하며 연애해온 커플로, 공무원 노조 개혁을 위한 노동운동으로 확장하자는 신념을 안고 친구들과 함께 공무원 시험에 도전한다. A(여)는 친구들 중 유일하게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화성시청에 근무 중이고, B(남)는 낙방으로 백수상태다. 둘이 영화를 보기로 한 날 A가 늦어 영화를 못 보게 되자, B는 내일 (노동운동을 함께 했던) 후배 C(여)와 보기로 했다 말하며 첫 장면이 시작한다.
애써 덤덤하게 흘러가는 대화 속에 권태, 답답, 질투, 실망, 짜증, 피로 등 격렬한 감정들이 툭툭 불거져 나올 것만 같은 A와 B의 상황은 여느 커플들 사이에서든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모습이지만, 둘의 관계에서 특기할만한 지점은 노동운동에 대한 언급이 일어나면서 확연히 엿보이는 긴장감과 균열이다. B는 A에게 그와 같은 화성지역에 근무하며 공무원 노조운동 현실화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선배를 찾아가 보았느냐고 묻는다.1) 이것은 스마트폰 게임에만 시선을 둔 채 밋밋하고 맥아리 없는 대화를 이어가던 B가 유일하게 관심을 갖고 A에게 던진 말이다. 그러나 애초 공무원이 되고자 한 그 대담하고 야심찼던 면모와는 달리, 현재 A의 모습에선 그 어떤 정치적 신념도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공무원 노조활동에 부정적인 견해를 비추는 주무관D 앞에서 노동운동을 했던 과거를 숨기는 모습은 A가 과거와 현재,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내적 갈등을 겪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밀레니엄 학번의 노동운동

흔히 ‘노동운동’이라 하면 70~80년대 민주화 운동을 전후로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고자 했던 일련의 운동을, ‘(대)학생 운동’이라 하면 그 당시 사회적 부조리와 모순에 격렬하게 저항했던 많은 학생들과 지식인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90년대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학생(노동)운동의 열기는 점차 사그라들었고, 그 과정에서 대학 내 진보단체들은 후임자를 구하지 못해 와해되는 경우도 많았다. 하여 밀레니엄 학번에게 학생운동이란 지난 세기 학번들이 공유하던 어떤 유물 같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다 2010년 전후 다시금 학생(청년)운동의 존재감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2008년 광우병 파동, 2009년 용산참사, 2012년 한미 FTA 폐기로 이어지는 촛불집회에서 대학 내 진보단체들이 주도적인 행동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A와 B, C와 (극에 등장하지 않는) C의 남자친구는 새롭게 재정비된 밀레니엄 진보 학생운동에 가담했던 인물들이다. 그러나 극중 시간인 2018년, 사회 개혁을 위해 목소리 높여 행진했던 그들의 뜨거웠던 열정은 몇 년 사이 완벽히 증발된 상태다. A에겐 공무원 사회 개혁이라는 거대 담론보다 긴 통근시간을 줄일 수 있는 문제가 더 갈급하고, 한때 총학회장으로서 카리스마를 자랑했던 B는 시험에 연이어 낙방하면서 무기력한 취준생이 되었으며, C 또한 총학활동으로 미뤄둔 졸업만으로도 급급한 상태다. 2012년에서 2018년, 불과 5년여의 시간이 흘렀을 뿐이지만 그들은 현실과 적당히 타협한 또는 현실에 의해 완벽히 제압된 모습이다. 무엇이 이들을 변화시킨 것일까. 연극은 한때 격렬하게 타올랐으나 현재는 소진되어 버린 듯한 인물들의 모습을 그릴 뿐 그 지나간 시간의 흔적들을 보여주진 않는다. 대신 인물들의 발화의 행간 속에 청년을 둘러싼 녹록치 않은 현실의 양태와 학생/노동운동을 향한 변화된 시대적 인식을 감지하기란 결코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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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이란 로컬리티

이 작품에는 지역성(locality)에 대한 흥미로운 참조가 개입한다. 그것은 수원과 화성이 지척에 위치하지만 대중교통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체감거리가 퍽 멀다는 것, 화성은 농업과 어업 모두 가능한 지역이었으나 현재는 간척사업으로 어업공간이 관광지로 변환된 독특한 장소라는 것이다. 이러한 지리적 공간으로서의 화성은 사건을 전개시켜 나가기보다는 인물들의 상황을 은유하는 장치다. 관광사업에만 지원을 집중하고 농업지원은 뒷전인 시청을 향해 불만을 제기하는 농민 앞에 A가 지닌 노동운동의 지식과 경험은 무용한 것이고, 그가 공무원 조직 안에서 하는 일이란 그저 주민들의 호감을 끌기 위한 풍선제작을 고민할 따름이다. 뿐만 아니라 화성은 멀어진 A와 B의 관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화성이란 공간은 그들의 만남에 방해물이기도 한 동시에 이상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고 소외되어가는 A의 상황에 대한 은유이다. 과연 그는 현실을 -연인 관계, 노동운동가로서의 정체성, 조직사회 안에서의 위치, 화성으로의 이주 등- 변화시키기 위해 어떠한 선택을 하게 될까.
연극의 엔딩은 A와 B가 연애를 시작했던 과거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노동운동을 하다 유치장에 수감되기까지 했던 A의 공포로 가득했던 그 날, B는 새벽녘 그의 곁에서 수원행 첫 버스를 함께 기다려준다. 학생운동을 함께 하는 동지애보다 20대 청춘남녀의 풋풋한 설렘으로 가득한 이 마지막 장면은 연애극적 서사를 따르면서도 연애극의 통속적 감상성만큼은 경계하려 애쓴 이 연극에 있어 꽤 대담한 연애극적 마무리로 보이는데, 이는 아마도 정치적 담론으로 연애 이야기를 압도하지 않으려 한 작가의 의도인 듯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작품 전반에 좀 더 과감하게 정치적 색채를 뿌려 놓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말이다.)
요컨대 <화성은 수원에서 하나도 안 멀다>는 밀레니엄 학번의 학생운동, 노동운동이 다소 소외되고 무거울 법한 주제를 가볍고 발랄한 터치의 연애서사로 다룸으로써 밀레니엄 청년세대의 삶과 정치성을 이야기한다. 정치극을 우회하는 연애극, 또는 연애극을 표방한 정치극 사이에 놓인 연극, 이질적인 두 세계를 이어내고자 한 작가의 시선이 퍽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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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 극단 작은신화 Ⓒ윤헌태]

극단 작은신화 우리연극만들기 그 열 네 번째 <화성은 수원에서 하나도 안 멀다>
일자
2021.07.08. ~ 2021.07.11.

장소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작
공진화
연출
김정민
출연
강예은 이지훈 박다혜 장영철 이현주
조명
박유진
음악
이승호
조연출
김남희
오퍼레이터
이보경 박규현 최종헌
무대크루
김병관 윤태규
분장
정슨은 김수정 김유진
진행
조민정
사진
윤헌태
영상
플레이슈터
기획
코르코르디움
관련정보
https://tickets.interpark.com/goods/21005404
  1. 대한민국에서 공무원이 갖는 노동자로서의 위치는 타 노동자들에 비해 그렇게 자유롭지 않았다. 2000년대 이후 전국공무원 노동조합의 뿌리가 마련되었지만 정부의 탄압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2009년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박근혜 정부 시절까지 5차례나 조합 설립신고를 했었지만 계속 반려돼 법외노조로 위치하였다. 그러다 2018년에 이르러서야 공무원 노조는 10년 만에 법적 지위를 갖는 법내 노조로 승격되었다. B의 선배가 화성에서 하고 있는 노조운동이란 아마도 이러한 상황에 대한 반영일 것이며, 굳이 이 연극이 2018년을 배경으로 설정했던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