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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 제작, 박본 작/연출 <사랑Ⅱ LIEBEⅡ>

포기에 대하여

노소영
205호 2021.07.29
무언가를 포기하는 데에는 사실 아주 많은 기술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우리는 그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지만 여전히 힘든 일이며, 사실은 아무도 ‘포기하는 법’에 대해 낱낱이 가르쳐주지 않는다. ‘조금 늦어도 괜찮아’ 같은 자기계발서식 위로가 간간히 등장하곤 하나 이것 또한 알고 보면 언젠가는, 결국에는 해내야 한다는 식의 은근한 부추김이다.
무언가를 포기하는 데에는 사실 아주 많은 기술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우리는 그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지만 여전히 힘든 일이며, 사실은 아무도 ‘포기하는 법’에 대해 낱낱이 가르쳐주지 않는다. ‘조금 늦어도 괜찮아’ 같은 자기계발서식 위로가 간간히 등장하곤 하나 이것 또한 알고 보면 언젠가는, 결국에는 해내야 한다는 식의 은근한 부추김이다.
“독일에서 태어나 한국인 얼굴에, 한국인 부모님이 있고, 또 한국인의 핏줄이 흐르고 있는 것 같”다고 스스로를 밝히는 작가 박본은 한국에서의 공연을 위해 펜을 잡으며 “한국인들이 가진 완벽주의, 어떠한 결점도 갖지 않고자 하는 갈망”에 집중했음을 강조한다. 다시 말해, <사랑 II>는 포기하지 못하는 어떤 마음에 대한 이야기가 되는 셈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이 연극은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있다.

“사랑 다음에, 사랑 II”

극은 이보다 더 케이팝스러울 수 없는 노래로 시작한다. 그 후렴구는 “사랑 다음에, 사랑 II”. ‘사랑 II’는 말 그대로 사랑의 후속편을 지칭한다. 박본은 독일문화원과의 인터뷰에서 “마치 스타워즈 시리즈처럼” 사랑 다음에 오는 더 좋은 것을 가리키는 단어로 ‘사랑 II’를 표현했음을 말한다. 정말로, 후속편 혹은 다음의 것이라고 하면 왠지 더 좋을 것만 같은 기분을 떨치기 어렵다. 단순히 더 좋은 것이 아니라 이전 버전의 좋은 것들은 그대로 간직하면서도 나쁜 것들은 배제시킨 그런 것 말이다. ‘사랑 II’ 역시 “사랑이지만 더 좋은 것, 고통 없는, 결점 없는, 맑은 행복”을 주는,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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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극은 이렇듯 “파괴보다 후속편이 낫다”는 생각을 가진 세 인물(현무, 청룡, 주작)이 ‘사랑 II’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이들의 꿈을 투영한 한 인물(이무기짱)을 완벽한 존재로 만들어내기 위한 과정을 그려낸다. ‘세 인물, 그러니까 삼신(三神)은 지구에서 (그리고 높은 확률로 한국에서) 아이돌이 되고 싶었지만 실패한 후 스스로 의무감에 목숨을 끊었고, “끝난 줄 알았던 삶이 지구의 핵에서 이어지고 있다.” 태곳적부터 유토피아의 장소로 여겨지곤 하는 정원처럼 “풀과 꽃이 있고 물이 흐르는 이곳에서” 이들은 여전히 꿈을 포기하지 못한 채 아예 완벽에 가까운 멤버를 길러내는 방식으로 그들만의 후속편을 써 내려간다.
이들이 이무기를 ‘트레이닝’하는 방식은 정말로 아이돌 연습생의 그것과 비슷하다. 완벽에 가까운 다재다능한 인재를 만들어내기 위해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능력(노래, 춤, 외국어, 심지어는 취미까지)을 조각 조각내어 교육하는 케이팝 종주국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처럼, <사랑 II>의 개별 장면들은 ‘이무기짱’을 “가슴 울릴 서비스”에 최적화된 인물로 트레이닝하는 구조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예를 들어, ‘로맨틱 코미디/복수’로 이름 붙여진 장면에서 ‘이무기짱’은 달콤한 사랑의 이끌림을 경험하다가도 뒤돌아서 눈에 불을 켜고 복수를 할 줄 알아야 하는 법을 배운다. 아마 이야말로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꼭 필요한 극단의 감정을 다루는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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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의 포기

극단을 경험하는 것은 관객 또한 마찬가지다. 극의 장면 구성, 아니 장면의 제목만 따라가 보더라도 관객들은 저절로 극단적인 전개를 ‘관람’하게 된다. 실제로 스크린을 통해 전달되는 장면 제목들은 ‘반전’, ‘클라이맥스’, ’끝’과 같은 식이다. 그러나 <사랑 II>는 절대 이런 매끄러운 기승전결에 관객들이 끌려가도록 두지 않는다. 본 공연의 음악감독인 뢰슬러 벤은 “완벽과 광기, 코미디와 재앙, 아름다움과 공포 사이의 모호한 경계를 탐험하면서 반대되는 것들의 충돌을 기꺼이 허용하는 양식적인 풍자”가 박본의 세계관에 있음을 이야기하는데, 이렇듯 너무나도 극단을 오가는 <사랑 II>의 순간들 속에서 오히려 관객들은 그 흐름을 따라가기를 포기하게 된다. 그래서일까, 작정하고 뜬금없이 등장하는 이들 ‘전무후무한 연옥의 아이돌 그룹, 슈퍼 한’의 음악과 춤에 관객은 순간순간 매도된다. 완벽과 철저함, 결점 없음을 이야기하는 와중에 관객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어떤 의미의 포기를 경험한다.
그래서 이 극은 친절하지만 친절하지 않다. 극 전체는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제목을 (무려 스크린을 동원해서까지) 명확히 알려주지만, 으레 기대하는 기승전결을 찾기는 어렵다. ‘요즘 연극’이 그러하듯 이 장면들은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지도 않고, 느슨한 연결고리 속에서 개별적으로 존재할 뿐이다. 뿐만 아니라 이 극에서는 인물들의 이름에서부터 짐작할 수 있듯 한국의 신화, 사랑이라는 일반적인 감정, 케이팝이라는 특수한 영역이 뒤섞여 있어 수많은 층위의 이야기들이 오간다. 이 구성은 어쩌면 가장 사랑과도 닮아있을지도 모르겠다. 알겠지만 언제나 모르겠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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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는 있다

‘...고도는 결국 왔을까? 그래서 고도는 누구일까? 고도가 존재하긴 할까?’ 「고도를 기다리며」는 결말을 짓지 않고 세기의 여운을 남겼고, 관람석에 있는 내내 고도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디디’와 ‘고고’처럼 한없이 ‘사랑 II’를 기다리는 이 극은 결말에 망설임이 없다. 해석의 여지를 남기며 어떤 의미든 가능하게 만드는 엔딩, 그런 건 없다며 부정하며 비극으로 마무리 짓는 엔딩을 거부하는 것은 물론 희망에 찬 인물들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며 낙관적인 미래를 보여주는 완결된 엔딩마저 포기한 채, 스크린에는 다음의 엔딩 문구가 덩그러니 뜬다.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찬 엔딩”.

[사진제공 : 국립극단]

<사랑Ⅱ LIEBEⅡ>
일자
2021.06.23. ~ 2021.07.18.

장소
백성희장민호극장

작·연출
박본 Park Bonn
출연
강현우 김예림 박소연 이유진
번역·드라마투르기
이단비
미술
누스바우머 율리아 Nussbaumer Julia
음악
뢰슬러 벤 Roessler Ben
안무
이경진
음향
김병수
조연출
조예은
조명보
손민영
의상보
신은혜
분장보
남혜연
음악보
이건희
관련정보
http://www.ntck.or.kr/ko/performance/info/256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