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일번출구연극제 X 극단 산 <어느 날 갑자기...!>
희미한 연결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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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어느 날 갑자기’ 일상에서 비일상으로 넘어가는 사건을 다룬다. 대학로 공연을 준비하던 한 극단의 단원이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고 그와 밀접접촉자로 분류된 같은 극단의 단원인 성진 역시 감염된다. 빠르게 진행되는 과정에서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은 없다. 검사를 받은 뒤 코로나19에 감염되었다는 사실을 통보받으면 즉시 일상은 중단되고, 빠른 속도로 생활치료센터로 이동하여 격리 치료를 받게 되는 것이다. 제목에 있는 줄임표와 느낌표는 ‘나는 아니겠지’라고 생각했던 안일한 마음이 배반당한 당혹감과 놀람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게다가 한 명이라도 양성 판정을 받으면 모든 공연이 취소된다는 점에서 주변과 공동체에 대한 부채감까지도 떠안게 되므로, 격리 치료는 물리적인 거리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거리까지도 포함한다. 그러니 이 작품은 마음의 거리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감염-감정의 스펙트럼
극은 집에 머무르던 성진이 양성 판정을 받고 격리 시설로 이동하기까지의 과정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그뿐만 아니라 문 앞에 배식하고, 의료 폐기물을 분리하고, 소독하고, 밀봉된 쓰레기를 정해진 시간에 내놓는 등 실제 경험이 반영된 생활치료센터에서의 생활들도 자세히 보여 준다. 관객들도 방호복을 입은 이의 안내에 따라 입장해 격리 시설에서의 수칙 등을 안내받기에 이를 ‘남의 일’처럼 치부할 수 없다. 평소와 같아야 할 아침의 평화를 깨는 소식에 부모는 당황하고, 성진은 한집에 사는 가족들과도 거리두기를 하게 된다. 형은 우스꽝스러운 동작으로 ‘핸드메이드 방역’이라고 하면서 양주로 소독하며 자신의 아내와 아이들을 먼저 걱정한다. 이처럼 감염자에 대한 염려보다 감염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 앞서는 상황은 감염자가 소외되게 하는데, 이에 대한 서러움과 불안은 성진이 부모를 애써 안심시키는 모습에서도 묻어 나온다. 분노의 감정도 솟아난다. 지방에 다녀온 한 시민이 이동 경로를 전화로 조사하는 조사관에게 역정을 내는 모습에서 억울함과 함께 분노가 드러나는 것이다.
이렇게 이 작품은 감염 상황에 결부되는 감정들의 스펙트럼을 잘 드러낸다. 그러나 블랙 코미디인 만큼 우울한 분위기로만 일관하지는 않는다. 과장되게 소독하는 형에서 시작하여 꾸며낸 듯한 목소리로 상담하는 콜센터 직원, 음압 침대가 작아서 건장한 청년을 구겨 넣는 의료진들, 우연히 재회하게 된 전직 건달과 형사, 광기 어린 교인, 총장 직위에 집착하는 교수 등 우스꽝스러운 요소들과 인물들을 배치해 웃음을 준다. 이는 지극히 현실적인 소재를 끌고 오면서도 부정적인 상황에 대한 거부감을 감소시키기 위한 전략일 수 있다. 다만 극사실주의에 가까운 코로나19의 재현들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에서, 현실과 완벽하게 분리하기 어려워 몰입하면서 웃기에는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웃음과 진지함의 정도를 균형 있게 조절하는 것이 어려운 소재인 만큼 웃음 부분에서는 관객마다 수용하는 범위가 다를 듯하다.
얽히는 관계들
성진이 겪는 더 큰 문제는 격리 시설 역시 사람 사는 곳이라는 것에 있다. 몸과 마음의 고통을 이중으로 겪는 성진은 이송되는 과정에서 동승한 학생이 큰 소리로 통화하자 방해된다고 말하고, 이는 반말을 이유로 나이 갈등으로까지 이어진다. 생활치료센터에서는 다양한 입소자들의 관계들이 펼쳐진다. 전직 건달-형사로서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원수’로 마주쳤다가 선후배 관계라는 것을 알게 된 뒤 후배가 된 형사는 쩔쩔맨다. 우연이 중첩된 관계의 전복은 ‘격리’되기 위해 간 곳이 얽히고설키는 관계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역설적이다. 부모에게 옮겼을까 봐 걱정하는 학생 앞에서는 독실한 신도가 광기 어린 신앙 활동을 펼쳐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한다. 성진도 룸메이트인 학생이 소리를 크게 켜고 게임을 해 소음 공해를 겪고, 극도에 달한 분노가 살의로까지 점화된다. 그 뒤에는 화해하면서 먼저 퇴소하는 학생에게 다정한 작별 인사를 해주지만, 갈등은 성별이나 연령에 상관없이 포진된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때 질병보다 인간관계가 가장 큰 공포이자 고통이 된다. 또한 자신의 증상이 얼마나 더 심한지, 증상을 얼마나 더 먼저 겪었는지를 기준으로 두면서 증상의 정도에 차등을 둔다. 상대방에게 침을 뱉는 등의 행위가 위협이 된다는 점에서 감염은 일시적으로 위계를 형성하는 척도가 된다. 감염이라는 같은 증상으로 왔다고 생각하지만 그 안에 있는 구성원들도 동일한 것이 아니며, 병보다 서로를 괴로워하게 되는 것이다. 음압 병동에서는 중증 환자와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그 존재를 기피하게 되고, 증상이 경미하다는 것이 우월감의 근거가 된다. 이를 통해 숫자와 동선으로만 표면화되는 감염자들의 양상이 다양하다는 것을 드러낸다. 숫자가 아니라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생동감 있는 부딪침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분리와 연결의 접점에서
성진은 증상이 심해져 음압 병동에 가게 되는데, 이곳에서는 중증 환자를 중심으로 분리되고 연결되는 관계를 보여준다. 담당 의사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의사의 얼굴을 보기 힘든 상황에서 직접 마주치는 간호사에게 분노를 쏟아 내는 안하무인 격의 인물이 있는 반면, 성진처럼 중증 환자를 배려하는 인물도 있다. 스트레스로 일을 그만둔 간호사가 있을 정도로 아픈 이들은 이기적이다. 다른 인물들은 중증 환자의 기침을 폭탄처럼 여기면서 피하거나, 돌아눕거나, 말 시키지 말라고 하거나, 탈출을 위한 전화를 걸거나, 도움을 청하는 중증 환자의 요청을 외면한다. 그러나 성진은 중증 환자가 먹기 편하도록 밥을 죽으로 바꾸자는 생각을 하고, 자신이 퇴소하는 날에도 중증 환자에게 아프면 CCTV를 보면서 손을 흔들라고 말한다. 이는 어느 날 갑자기 들어왔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나가는 일시적인 관계일지라도, 같은 환자 사이에서 연민의 태도를 잃지 않는 일이 가능하며 이것이 귀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지막 장에서는 세상으로 복귀하는 성진의 모습을 자세히 보여준다. 성진은 해방감을 느끼면서도 그동안의 일을 회상하면서 서러움이 복받쳐 길모퉁이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한다. 넘어진 김에 쉬어 가겠다고 하면서 덤덤하고자 했으나 복합적인 감정들을 끝내 외면하지 못했던 것이다. 단원들에 대한 미안함과 병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 성진에게 연락해 걱정하는 말 한마디 없이 자신의 동선을 숨겨 달라고 부탁하는 지인에 대한 분노, 자신을 걱정하는 이들에 대한 고마움, 위로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슬픔과 고독이 한데 고여 있다가 폭발한다.
그래도 마지막에 남는 것은 고독을 부분적으로 달래주는 한 줌의 위로이다. ‘밥은 먹었어?’, ‘몸은 괜찮아?’, ‘너무 걱정 마’, ‘잘될 거야’와 같은 말들이 건네는 힘으로, 그 희미한 연결 덕분에 성진은 다시 길을 간다. 원치 않게 겪었던 마음의 거리 두기까지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그 발걸음이 무거우면서도 가벼워 보였다. ‘확진부터 퇴원까지 혼자가 아닌데도 혼자라고 느꼈다’라고 한 것처럼 북적거리는 소란 속에 있었지만 내내 고독해 보였던 성진의 모습에서 아직 끝나지 않은 팬데믹 상황을 엿보게 되었다. 감염도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이고, 치료 역시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이기에 고독한 것만 같은 질병 앞에서도 결국 ‘우리’의 존재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작품을 보며 재난 상황에서 그 느낌이 일시적으로나마 일상을 구원할 수 있음을, 구원하기를 저절로 바라게 되었다.
[사진 제공: 극단 산]
- 일자
- 2021.9.15 ~ 9.19
- 장소
- 드림아트센터 3관
- 작·연출
- 윤정환
- 출연
- 최재섭, 정수한, 최정화, 김경환, 채송화, 이정근, 문수아, 이선주, 이진우, 서원진, 정금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