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금형 <장난감 프로토타입>
진화하는 틈새에 관한 몇 가지 단상들
Ctrl + V, 붙여넣기해서 사용하세요
감추거나 감춰지는 것 없이 형광등의 파리한 불빛으로 가득 찬 사각의 갤러리 공간을 나서며 문득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무엇이 어떻게 왜 움직이는 것일까, 그리고 무엇을 어떻게 왜 움직이려는 것일까.
기계를 작동하고 조종하는 오퍼레이터에서 기계를 직접 제작하고 조작하는 메이커로의 역할 전환 중인 정금형 작가는 최근 전시 <장난감 프로토타입>을 통해 진화의 단계 혹은 상태를 계시하는 듯하다. 부품과 부품은 조립되고, 조립된 관계는 수정되며, 수정된 관계는 보다 예측 가능한 양상을 띠게 된다. 만에 하나 그와 같은 양상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다른 부품과 조립되는 단계로 되돌아가게 되며, 이로써 과정은 전체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리셋된다. 이 같은 만듦과 수정과 조율의 연쇄를 거치며 한낱 부품에 불과했던 로보틱 조각과 전선과 배터리는 점차 머리를 앞뒤로 움직이거나 양팔을 위아래로 움직이는, 다시 말해 점차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진화해가는 작가만의 RC 토이로 거듭난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작가의 로봇이 만들어내는 그와 같은 진화, 그와 같은 자연스러움은 어떠한 틈을 노출시킨다. 이번 전시를 관람하는 내내 바로 그 봉합 불가능한 벌어짐에 대해 사유해보았다.
<장난감 프로토타입>은 국립현대미술관 ‘다원예술 2021: 멀티버스’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지난 8월 20일부터 10월 3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진행되었다. 프로그램북에 기재된 바에 따르면, 이번 전시는 2019년 쿤스트할레 바젤 개인전에서 선보인 <홈메이드 RC 토이> 이후로 작가가 진행 중인 로봇 우화 내러티브를 발전시킨 것이라고 한다. 한 인터뷰에서 작가는 작업의 새로운 갈래를 열어준 시작점 중 하나로 <홈메이드 RC 토이>를 언급했을 정도로 작가의 작품 활동에 있어 이 작업이 차지하는 의의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1)
초기 작업에서는 기성품으로서의 오브제와 그것을 구동시키는 오퍼레이터로서의 퍼포머가 공연 형식 안에서 맺게 되는 관계에 주목했다면, 에르메스 미술상 기념전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던 <개인소장품>(2016)을 계기로 작가는 오브제를 나름의 체계 안에서 분류하여 갤러리 공간 안에 전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시 방식을 이루는 이 같은 기본 체계는 작가의 DIY 로봇이 등장하기 시작한 <홈메이드 RC 토이>를 거쳐 이번 <장난감 프로토타입>에 이르기까지 유지되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면, 이번 전시는 작가가 직접 제작한 프로토타입의 로봇들과 로봇 제작 시에 사용한 설치 공구들, 그리고 제작 과정이 담긴 기록 영상으로 구성되었던 <홈메이드 RC 토이>와 동일한 구성방식을 취한다. 그러나 2년여의 시차를 관통하며 로봇의 체내에는 수적으로 더 많은, 구조적으로 더 복잡한 전선-혈관이 삽입되었고, 연결 도구들의 개입은 더 잦은 횟수로 이루어졌다. 그 결과 인간의 형상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파생되었던 로봇의 몸은 점차 인간의 형상과는 분리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듯하다. 물론 지금으로서는 그 방향이 이르고자 하는 최종 목표지점이 (로봇을 통한 인간의 외형 복원 이전에) 메탈릭 바디가 스스럼없이 구현해내는 자율 행동인지의 여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홈메이드 RC 토이>의 전경을 이루던 마네킹의 팔과 다리가 사라진 곳에 놓여있던 순수한 부품으로서의 장치 도구들을 접하자, 정금형 작가의 작업이 <장난감 프로토타입>에 이르러 비로소 이전의 작업들과는 사뭇 다른, 말 그대로 ‘프로토’의 단계로 진입했음을 예감할 수 있었다.
<장난감 프로토타입>의 전시 공간 구성은 다음과 같다. 우선 전시장 입구 근처에 자리한 2대의 스크린에서는 바퀴 달기를 비롯한 로봇 외형제작의 초반 과정이, 전시장 뒤편에 자리한 또 다른 2대의 스크린에서는 얼굴 모형이 부착된 로봇의 실제 움직임을 구동시켜보고 이를 수정하는 과정이 상영된다. 영상은 작가가 어떤 재료를 가지고 어떤 로봇을 만들고자 하는지 등의 구체적인 정보를 전달하지는 않는다. 소리가 배제된 무성의 영상 속에서 작가는 그저 물질이 나름의 형상과 나름의 움직임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열심히 나사를 조이고, 전선을 꼬고, 헤어드라이어로 부품을 말릴 뿐이다. 이상의 작업 과정 중에 작가가 실제 사용했던 각종 도구 및 부품은 전시장 좌우측에 길게 놓인 전시대 위에 진열된다. 그곳에는 플라스틱 등의 재질로 만들어진 얼굴 모형이 놓여있고, 그 중간중간에는 몸통, 다리, 장기 등의 신체 모형이 놓여있으며, 그 밖에도 조립과 설치에 필요한 각종 배터리와 케이블, 공구들 또한 나란히 놓여있다. 이 모든 것들은 완전체에 대한 상상 이전의 단계를 전시해냄으로써 앞으로 도래할 완전체로서의 미래를 끊임없이 추동한다.
그러나 완전체의 등가물이라 할 수 있는 로봇이 다름 아닌 작가의 DIY용 RC 토이로 등장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로봇의 움직임이 대개 원격으로 조종하거나 이미 프로그래밍된 조종방식을 내부로 이식함으로써 만들어지는 반면, 그리하여 움직임의 제작원리와 움직임 간의 이음새를 상상 불가능한 비가시적인 것으로 환원시키는 반면, 정금형 작가의 DIY 로봇에게 있어 비가시적인 것은 없다. 만드는 전 과정은 노출되고, 그 과정 안에서 파생되는 지속적인 어긋남 또한 노출되며, 그와 같은 어긋남을 발생시키는 작가의 비전문가적 손놀림 또한 노출되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사람으로서’가 아닌, ‘사람처럼’ 만들어지고 있는 작가의 로봇은 ‘그렇지 않으려 하지만 사실상 그러한 상태’, 말하자면 어떠한 봉합 불가능한 틈새를 드러내게 되며, 뻑뻑하게 돌아가는 고개와 예상치 못한 순간에 급작스레 툭 떨어지는 팔의 움직임은 이 같은 틈새의 원천이 된다.
어쩌면 프로그램북에 언급되어있는 것처럼, 이러한 어설픔은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도움을 요청하는 동시에 로봇으로 대표되는 기계 물질의 유약함을 드러내는 결과를 불러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이번 <장난감 프로토타입> 전시는 ‘DIY 로봇을 매개로 작가는 어떤 움직임을 왜 구현시키고자 하는가’라는, 움직임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성찰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매끈히 조립된 채로 피복에 쌓여 있는 사물을 해부하는 방식이 아닌, 낱낱이 분리되어있는 부품을 시행착오 안에서 하나씩 조립해가는 작업 방식을 통해 작가는 노출되는 것들의 궁극적인 틈새를, 즉 노출 불가능성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 그와 같은 말하기는 오로지 매끄러운 몸체와 움직임에 균열을 가하는 방식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정금형 작가의 RC 토이 로봇은 앞으로도 지속적인 제작 과정을 거치며 진화해나갈 것이다. 더 많은 전선-혈관을 장착하게 될 것이고, 더 많은 실험 횟수를 경험하게 될 것이며, 그 결과 점차 더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획득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진화함, 그와 같은 자연스러움이란 각각의 이면을 끊임없이 들추는 역설적인 방식 안에서만 가능해지는 것은 아닐까 싶다. 로봇을 만들고 그 부품을 전시함으로써 앞으로 작가가 만들어나갈 틈새를, 그 역설을 기대해 본다.
[사진제공: ©이강혁]
- 일자
- 2021.8.20 ~ 10.3
- 장소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프로젝트 갤러리
- 구상 연출 로봇제작
- 정금형
- 프로듀서
- 김신우
- 촬영
- 김익현, 남지웅, 정금형
- IFNEWS, 「인천아트플랫폼 입주 예술가: 이은새, 이희준, 정금형」, 『인천문화통신 3.0』 2021.8.17., http://news.ifac.or.kr/archives/244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