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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판야무 연작솔로ㅤ< 오 >

환대받지 못하는 자들은 어디로 가나

윤단우
208호 2021.10.28
솔로작품 다섯 편이 한 무대에 연이어 올라가는, 무려 330분 길이의 공연이 지난 10월 8일과 10일 이틀간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무대에서 펼쳐졌다. 이 무모한 도전의 주인공은 춤판야무의 금배섭. 그는 춤판야무에서 발표했던 솔로작품들인 , <니가 사람이니?>, <미친놈 널뛰기>, <섬>, <포옹> 다섯 편을 묶어 <오>라는 제목의 연작솔로 형식으로 무대를 꾸몄다. 길이가 가장 짧은 작품은 40분, 긴 작품은 한 시간이 소요되어 인터미션을 제외한 순수 러닝타임만 4시간 30분에 달했으니 15분에서 20분 남짓한 공연을 서너 편씩 엮어 하루에 올리는 것이 무용 현장의 경향성으로 굳어진 지 오래임을 상기한다면 공연의 시도 자체가 시류를 역행하는 엄청난 모험이었다. 오후 4시에 시작된 공연이 밤 9시 반이 넘어서야 종료되어 관객들에게도 상당한 지구력을 요구한 이 공연이 출연자에게 어떤 강도의 부담이었을지는 상상하기 어렵다. 공연의 출연자는 단 두 명, 금배섭은 김석주가 출연한 <니가 사람이냐?>를 제외한 네 작품을

솔로작품 다섯 편이 한 무대에 연이어 올라가는, 무려 330분 길이의 공연이 지난 10월 8일과 10일 이틀간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무대에서 펼쳐졌다. 이 무모한 도전의 주인공은 춤판야무의 금배섭. 그는 춤판야무에서 발표했던 솔로작품들인 <?>, <니가 사람이니?>, <미친놈 널뛰기>, <섬>, <포옹> 다섯 편을 묶어 <오>라는 제목의 연작솔로 형식으로 무대를 꾸몄다. 길이가 가장 짧은 작품은 40분, 긴 작품은 한 시간이 소요되어 인터미션을 제외한 순수 러닝타임만 4시간 30분에 달했으니 15분에서 20분 남짓한 공연을 서너 편씩 엮어 하루에 올리는 것이 무용 현장의 경향성으로 굳어진 지 오래임을 상기한다면 공연의 시도 자체가 시류를 역행하는 엄청난 모험이었다. 오후 4시에 시작된 공연이 밤 9시 반이 넘어서야 종료되어 관객들에게도 상당한 지구력을 요구한 이 공연이 출연자에게 어떤 강도의 부담이었을지는 상상하기 어렵다. 공연의 출연자는 단 두 명, 금배섭은 김석주가 출연한 <니가 사람이냐?>를 제외한 네 작품을 홀로 소화하는 기염을 토했다.
2009년 안무가 금배섭과 작가 김풍년이 의기투합해 첫걸음을 뗀 춤판야무는 인간관계의 관계성에 주목한 작업들을 꾸준히 선보여 왔는데, 연작솔로 <오> 무대에서 공연된 다섯 편의 작품은 ‘한국사회에서 비빌 언덕 없이 홀로 버티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대주제를 공유하고 있다. 이주민 여성, 탈북자, 범죄자, 1인 시위자 등 금배섭은 무용 무대에서 쉽게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어 홀로,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의 의미를 되묻는다.
다섯 편의 작품 중 첫 번째로 올려진 <?>는 이주민 여성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공연이 시작되면 무대 뒤편 상단에 매달린 프린터에서 종이가 한 장씩 출력되어 떨어지고, 이윽고 금배섭이 등장해 종이를 들고 몸의 정면과 측면이 보이도록 서서 사진을 찍는다. 입국 심사장을 통과하는 것처럼 보이는 장면이지만 금배섭의 모습은 몽타주 사진 앞의 범죄자를 연상시키는데, 관객들은 공연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기도 전에 이미 그가 환대받지 못하는 존재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 ‘환대받지 못함’은 <?>를 비롯해 이후에 공연될 작품들 전반을 지배하는 중요한 감각으로, 각각의 작품에서 서로 다른 자리에 서 있는 인물들이 홀로 버텨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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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중심 무대는 무대 한가운데 놓인 테이블, 그 테이블 위의 작은 아크릴 박스다. 사람 한 명이 들어가 채 다리를 뻗을 수도 없이 좁고 사방이 다 비쳐 프라이버시라는 건 아예 없는 듯한 이 공간은 이주민 여성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장소다. 박스 안에 몸을 구겨 넣은 채 아크릴 판에 그림을 그리는 그의 모습은 살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듯하다. 그가 그린 대상이 새라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시간이 지나 그는 머무르고 있던 박스와 테이블이 모두 해체되어(무대상의 퍼포먼스에서 해체의 주체는 금배섭이지만) 주거지를 잃고 떠나게 되고, 그의 빈 자리를 그림 속 새가 말없이 내려다본다. 새의 모습은 가장 낮고 비참한 곳에 내려온 예수처럼 보이지만 어디에서도 구원을 찾을 수 없는 현실을 재차 확인시켜준다는 점에서 그 시선은 더욱 통렬한 절망을 안긴다.
제목의 물음표는 그가 마주한 현실의 막막함과 냉엄함을 상징한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곳에 온 그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려주는 사람은 없다. 이 환대받지 못한 존재가 어디로 갔는지 역시 아는 사람은 없다.
김현경은 『사람, 장소, 환대』에서 사회적 성원권의 문제를 다루며 우리가 환대를 통해 비로소 사람이 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사람의 개념 안에는 인정의 차원이 들어있으며, 이 같은 인정을 획득하지 못한 주체는 사람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태아, 노예, 군인, 사형수 등이 이에 해당한다. 또한 그는 외국인에 대한 환대와 사회적 성원권의 관계를 조건부라고 칭했는데, 외국인에 대한 환대는 그가 돌아가지 않고 사회에 눌러앉아 우리의 자리(일자리 혹은 결혼 상대)를 빼앗는 순간 지체 없이 철회될 수 있다.
금배섭이 <오> 무대에서 보여준 다섯 편의 연작은 김현경이 말한 ‘환대’의 개념과 연관지어 바라볼 수 있다. 이주민 여성의 고립과 추방에 관한 이야기인 <?>는 물론이거니와, 김석주가 연기한, 군중에게 낙인찍혀 평범한 사람이 범죄자의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그린 <니가 사람이냐?>, 부당함에 대항해 자신의 존엄과 권리를 찾으러 나선 1인 시위자의 투쟁을 다룬 <미친놈 널뛰기>, 한국 사회에 녹아들지 못하고 자신만의 섬에 갇힌 탈북민의 모습이 담긴 <섬>, 세월호 참사로 소중한 사람을 잃은 구조대원이 과거를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포옹>에 이르기까지, 주인공들은 모두 사회의 ‘환대’와 거리가 있는 인물들이다.
금배섭은 2014년 서울역 광장에서 목격한 1인 시위자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미친놈 널뛰기>를 발표한 뒤 주변에서 홀로 버티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해 이 연작 작업을 하게 되었다고 안무의 변을 밝힌 바 있다. 그가 무대로 옮긴 인물들은 모두 사회의 환대로부터 배제된, 성원권이 박탈되었거나 아예 처음부터 주어지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그들의 ‘홀로 버티는’ 안간힘은 결국 사람으로 인정해달라는 투쟁으로 수렴되지만 그 투쟁은 그리 성공적이지 않다. <?>의 이주민 여성이 자기 자리를 잃고 떠난 것처럼 다른 작품들에서도 이러한 상실은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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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사람이냐?>

주인공에게 주어진 ‘자리’의 의미는 연작들에서 매우 중요한데, <니가 사람이냐?>는 무대를 극단적으로 좁게 사용하는 작품이다. 쇠 갈고리들이 잔뜩 걸쳐진 플라스틱 통을 밀며 무대에 등장한 김석주는 무대 한쪽의 천장에 매달린 모빌 아래 이르러 걸음을 멈춘다. 그가 한 시간 동안 퍼포먼스를 펼치는 무대는 모빌 아래, 성인 남성 한 명이 어깨너비 정도로 다리를 벌리고 설 수 있는 공간이 전부다. 그가 보여주는 움직임 또한 좁은 공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제한적인 것이지만 이때 공간 범위의 제약은 물론 움직임의 제약이 함께 일어난다.
그는 왼손에 낀 장갑과 치아 사이에 낚싯줄 같은 투명한 줄을 꿴 채로 움직이는데, 갈고리가 걸려 있는 모빌의 연장선처럼 보이는 이 줄은 그를 옭아매는 적대적 시선을 은유하는 듯하다. 군중의 낙인으로 자유로운 신체 움직임을 억압당한 채 신체를 얽어맨 줄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만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주요 소품 중 하나인 라텍스 장갑 역시 원래의 용도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의 신체를 기이하게 변형시키는 데 일조한다. 그는 플라스틱 통에서 장갑을 끊임없이 꺼내 손과 발에 꼈다 벗었다 입에 넣었다 뱉었다 하며 숫자를 늘려가는데, 안무가가 굳이 장갑이라는 소품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손가락질의 의미를 담아 주인공을 향한 낙인을 시각화하는 것 같기도 하다. 주인공은 갈고리와 장갑, 낚싯줄 등 무엇 하나 몸에서 떨쳐내지 못하고 이들과 연결되어 있는 모습 그대로 어디론가 사라진다.
<미친놈 널뛰기>는 <니가 사람이냐?>보다 앞서 만들어진 작품이지만 공연 순서상으로는 <니가 사람이냐?> 다음에 배치되어 있다. <니가 사람이냐?>에서는 쇠 갈고리와 장갑, 낚싯줄이, <미친놈 널뛰기>에서는 흰 천과 통나무, 널빤지가 주요 소품으로 사용되며 이 소품들에 의해 움직임의 제약을 받는 주인공을 보여주다 보니 두 작품이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음에도 <미친놈 널뛰기>가 <니가 사람이냐?>의 확장판 같은 인상마저 준다.
주인공은 다리에 흰 천을 묶은 채 등장하는데, 이 흰 천은 천 자체로도 그의 움직임을 부자유스럽게 만들 뿐 아니라 뒤에 가서는 절단된 통나무를 천으로 감싸고 날라야 해서 주인공에게 부담을 지운다. 주인공은 천에 의해, 통나무에 의해 움직임의 제약을 받으며 뒤뚱거리거나 잰걸음으로 무대를 걸어 다니고, 이윽고 부적 같은 글귀가 쓰여 있는 기다란 널빤지를 짊어지고 무대 앞쪽으로 이동한다(이때 널빤지를 등에 진 금배섭의 모습은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예수처럼 보인다). 주인공이 통나무에 널빤지를 괴고 그 위에 올라가면, 천장에서 무거운 가마니가 떨어지며 그 추진력으로 주인공을 허공으로 튕기어 올린다. 마침내 주인공은 무대 천장에 매달려 있는 흰 천 안으로 들어가 모습을 감추고 스스로를 세상으로부터 격리시키는 것으로 공연의 막이 내리는데, ‘환대받지 못한 채 홀로 버티다 사라지는 사람들’에게 누구도 손 내미는 이 없이 구원의 가능성을 닫고 있다는 점에서 공연이 이어질수록 절망은 더욱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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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놈 널뛰기>

인터미션 후 공연된 <섬>과 <포옹>은 공간을 탐색하는 지난한 노동이 반복된다는 공통점이 발견되는 작품들이다. <섬>에서는 각목을 쉼 없이 쌓아 올리고 이동시키는 행위가, <포옹>에서는 무대 바닥을 뒤덮은 거대한 에어캡 위에서 무거운 롤러를 미는 행위가 반복된다. <섬>의 주인공은 애써 만든 섬에 정착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장소로 이동시켜 불안한 표류를 이어가고, <포옹>의 주인공은 끈질기게 에어캡을 밟고 누르고 롤러로 밀며 에어캡의 막을 다 터트리려 하지만 그의 시도는 미완으로 그친다. 보답 없는 행위를 묵묵히 반복하는 다른 작품의 주인공들과 달리 <포옹>의 주인공은 롤러를 미는 행위 사이사이에 이마의 땀을 닦으며 한숨을 내쉰다. 그의 고단하고 힘겨운 노동을 관객들은 연민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공감하지만 이 역시 주인공에게 가닿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주인공은 어둠 속에서 사라진다.
환대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계속해서 사라지는 <오> 무대에 차곡차곡 쌓이는 것은 지난 공연의 레이어들이다. 이주민 여성이 떠난 자리에는 그가 그린 그림이, 범죄자가 떠난 자리에는 그를 옥죄고 있던 갈고리 모빌이 남아 있는 식이다. 그들이 이렇듯 머무르다 사라지는 공간은 앞서 누군가가 머물렀다 사라진 공간이며, 그렇기에 그들은 다른 시공간에 존재하듯 결코 만나지 못한다. 다섯 작품을 한 자리에 모아 하루에 공연한다는 무모한 기획은 어쩌면 이 만나지 못한 채 흩어져버린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려는 뜻이었는지도 모른다. 환대받지 못한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금배섭이 만든 지난한 노동에 가까운 무대는 그들이 여기 있다고 말하며 ‘사람’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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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7
<포옹>

[사진제공: 춤판야무 ⓒ박태준]

춤판야무 연작솔로 <오>
일자
2021.10.8, 2021.10.10

장소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안무
금배섭
출연
김석주, 금배섭
기획
신재윤
드라마투르기
김풍년, 이명우
음악감독
장영규, 옴브레
미술감독
정유석
무대디자인
오진경, 정승준, 정용현
조명디자인
신동선, 정유석
의상디자인
김지연, 이수원
분장·소품
장경숙, 남혜연
영상감독
박태준
무대감독
박효진
홍보물제작
주용빈
공연진행
조은데, 김용희, 박은경
관련정보
https://theater.arko.or.kr/Pages/Perf/Detail/Detail.aspx?IdPerf=257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