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SPAF 극단 돌파구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우주의 세계와 연극의 세계가 만나는 극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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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했던 글귀를 공유하며 시작하려 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은 세계와 세계가 만나는 일1)이란 말이었는데, 당시엔 서로의 세계가 너무 다르기에 그 차이를 받아들이라는 뜻쯤으로 이해했다. 흔히 그 사람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 사랑이라고들 말하는 것처럼. 자신의 익숙한 세계에서 전혀 다른 세계로 전이되는 것, 나 또한 그것을 사랑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이 공연을 보고 나니 저 글귀가 다르게 다가온다. 꼭 사람과 사람 사이가 아니더라도 내가 사랑하는 것들과 같은 세계 속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적의 확률이며 행운인지 말이다.
프로포즈용 소설을 무대로 옮긴다는 것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는 김보영 작가의 동명 소설을 무대로 옮겨놓는다. 작가의 팬인 예비 신부에게 청혼하기 위해 독자로부터 부탁받아 쓰인 이 소설은 21세기 어느 날, 성간(星間)여행이 가능하다는 설정 하에 그려지는 SF 소설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식을 꿈꾸는 주인공은 상대를 만나기 위해 성간 여행을 하지만 둘의 약속은 어떠한 이유로 계속해서 불발된다. 이들은 연인에게 하는 대화체의 구구절절한 독백이 담긴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 만나려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날로그 방식인 편지가 다소 어려워 보이는 SF적 상상력의 설정과 오묘하게 어울리며 전개된다. 그런데 두 사람의 시간은 각자 다른 속도로 흐르기에 같은 시공간에서 만나기 쉽지 않다. 다른 속도의 시간으로 가기 위해 배를 갈아타 보기도 하지만 어그러진 두 사람의 시차는 좁혀지지 않는다.
소설이 성간 여행이라는 소재를 도구로 사랑을 말한다는 인상을 받는다면, 그것을 무대에 구현한 연극은 사랑보다는 우주를 배경으로 한 ‘기다림’으로 받아들여진다. 소설의 장르는 SF지만 프로포즈를 염두에 둔 글인 만큼 특별한 목적을 갖고 있기에 내용의 측면은 논외로 두고 그것을 무대에 옮긴 연극의 구현을 위주로 말해보려 한다.
우주여행과 관극 사이의 체험
가장 먼저 연극과 우주를 같은 선상에서 보이게 하고 있다는 점에서 무대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직사각형 무대의 네 면 중 길이가 짧은 두 면은 영상을 투사하는 검은 벽으로, 다른 두 면은 거울로 되어있다. 관객이 서로를 마주 보고 앉아있고 그 이면의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도 함께 볼 수 있는 구조다. 거울을 통해 우주처럼 무한한 세계를 제시하면서 동시에 이것이 연극임을 느끼게 한다. 극에 몰입하다가 거울을 보게 될 때 관객으로서 자의식이 생기는 환기를 통해, 나 자신의 경험을 반추하게 된다. 또 객석은 바퀴 달린 1인용 이동 의자가 각기 다른 방향으로 놓여있어, 관객은 원하는 각도에서 배우를 바라볼 수 있다. 배우들이 객석 사이사이를 지나다니는 것으로 우주 유영을 표현한다. 배우의 동선 때문에 의자를 움직여가며 보기엔 무리가 있어 아쉽다. 전반적으로 어두운 무대의 효과를 살리기 위해 사전에 어두운 옷을 입고 와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무대에 입장할 때, 검은 마스크도 썼다. 그 덕분인지 하이글로시 소재의 무대 바닥을 통해 밝은 조명이 반사되면 각각의 객석은 하나의 행성처럼 보이기도 한다.
공연장이란 공간에서 우주여행을 하는 듯한 생생한 경험을 하게 해준 데에는 영상의 공이 크다. 빛이 없는 검은 벽에 영상으로 쏘아진 별빛 가득한 배경은 마치 무중력의 우주 속에 와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다가 이따금 암전된 상황에서 배우들이 라이브캠을 통해 영상편지를 보내는 장면이 등장한다. 별을 쏘았던 그 벽에 가득 들어찬 배우들의 클로즈업된 표정을 보며 ‘아, 연극 보고 있었지’라고 깨닫는다. 서울 하늘에서는 볼 수 없었던 수많은 별들을 보다가 살짝만 고개를 돌리면, 연극을 바라보고 있는 거울 속의 내가 문득문득 보인다. 이렇게 우주와 공연이 교차돼서 인지될 때마다, 이 이야기가 개인적 경험으로 회귀된다.
무엇보다 영상을 통해 공연의 라이브니스를 잠깐 느꼈던 장면이 있었다. 무대에 누워 바닥에 달라붙은 상태로 움직이고 있는 배우 유은숙을, 카메라가 천장에서 수평으로 내려다보는 버즈 아이 뷰 숏(bird’s eye view shot)으로 찍어 그것을 무대 벽에 실시간으로 투사한다. 배우가 움직이는 장면과 별이 수놓아진 배경이 겹쳐지면서 이는 곧 무중력상태로 우주를 유영하고 있는 생생한 장면이 된다. 무대 바닥에 누운 배우가 팔다리를 계속 비틀고 들어 올리는 조형적인 움직임을 볼 때는 이게 뭔가 싶었다. 그런데 그 움직임이 우주의 배경과 합쳐져 무중력 속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것이 될 때. 내 눈앞에 실재하는 3차원의 배우의 움직임이, 2차원의 영상 속에 다른 의미로 변환되어 나타났을 때. 게다가 그것이 관객인 내 시간 안에서 두 갈래로 동시에 드러나고 있을 때. 내가 그동안 갖고 있던 연극의 현장성에 대한 아쉬움이 외려 연극 고유의 미학으로 전도되는 듯했다. 끊임없이 유연하게 움직이면서, 흔들리지 않는 호흡과 화술을 소화하는 유은숙의 신체 연기 또한 놀라운 장면이다. 무대 위 배우의 실시간 움직임이 영상을 통해 다른 의미의 장면으로 재생산되는 것이 신선했다. 이러한 체험은 공연 실황을 찍은 영상에서도 맛볼 수 없었을 것이며, 우주를 누비고 있는 배우의 연기를 녹화해서 틀었더라면 더더욱 느끼지 못했을 감각이었다.
집합을 찾기 어려운 시도들
이러한 공간감적 심상들이 흥미를 불러일으킨 만큼 아쉬운 부분 또한 적지 않다. 반복되는 편지 형식의 이야기를 ―그것도 모든 장면이 독백으로 이루어진― 전달하는 과정에서 선택한 방식의 의도가 불분명했기 때문이다.
특히나 소설 속 화자인 한 남자의 에세이를 성별이 다른 세 배우가 나눠서 하게 된 의도와 효용을 느끼지 못했다. 처음에는 젊고 발랄한 성격의 남자를 젊은 나이의 배우(김민하)가 하다가, 시간의 흐름을 보이기 위해 중간에 나이가 다른 배우(안병식)로 교체했다. 그러다가 11번째 편지부터 마지막 15번째 편지까지는 여자배우(유은숙)가 바통을 이어받는다. 그런데 이 바통터치의 순간 오류가 생긴다. 미리 책을 읽거나, 사전 정보를 모르는 관객에게는, 그가 앞선 남자 배우의 편지 수신자인 상대 여자라고 착각할 만한 순간이다. 차라리 각 배우들의 성별이 부각되지 않을 별도의 장치가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게다가 여자배우가 등장하며, 앞선 두 배우가 제시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질감과 에너지로 연기가 변주된다. 그런데 이러한 변주가 효율적이었을까? 성별의 변환은 오인을 낳을 위험을 만들었고, 연기의 변화는 그 흐름을 잇지 못해 주인공의 감정에 이입하기 어려웠다. 이러한 각개전투식의 변화로 인해 각 장면들끼리 상충되는 느낌을 받았다. 마지막에 세 배우가 같이 연기하는 장면에서조차 이들이 같은 배역이었음이 쉽사리 꿰어지지 않았다.
배우들의 성별이나 연기의 전개 방식을 통해 유추해보건대 이런 선택은 전통적인 연극 문법을 따라가지 않으려 했던 시도로 해석된다. 배우가 교체되는 첫 번째 순간에는 그것이 유효하게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이어지는 두 번째 변화에서는, 변화의 규칙을 나름 모아보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A-B-C로 이어질 것이라는 예측을 깬 과감한 첫 번째 변화의 순간이 반가웠다면, A-1-ㄱ도 아닌 A-1-ㄹ 정도랄까? 집합을 알 수 없어 당혹스러웠던 두 번째 변화부터는 해답찾기를 포기했다.
초반부 등장한 젊은 남자는, 이 연극이 프로포즈용 소설을 원작으로 했으며, 영화 <인터스텔라>만큼 잘하진 못하지만 앞으로 우주 유영을 연기한다는 프롤로그를 시작으로, 점차 소설과 연극의 경계를 지워나간다. 그런데 얼마 안 가 네 번째 편지인 답장 장면에서 갑자기 등장하는 여자배우의 내레이션은 대사를 낭독하는 정도에 그친다. 소설의 대사를 오디오북처럼 연기하는데, 이때의 목소리가 후반부 유은숙 배우의 목소리였을까? 하는 혼선을 낳는다. 개인적으로 SF가 어렵기도 하지만 프로그램북이나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은 어느 순간 나처럼 이해하기를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두 연인의 대화로 유추해야 하는 어려움과 그것을 상쇄할 만한 설명이 없어 지루했다. 계속된 독백체의 편지들이 연계성을 갖지 못한 채 나열될 뿐이다. 궤도를 이탈해버린 우주선처럼 기다림의 목적과 방향을 상실한 것이 아쉬운 후반부였다.
이런 프로포즈라면 나도 기다릴 수 있어
우주 유영을 마치고 극장을 나오면서, 멋진 우주영화를 봤다기보다 마치 멋진 한 편의 세레나데를 들은 것 같은 잔상이 새겨졌다. 음악 외에 연극으로 이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었던가? 각자였던 두 사람이 서로의 세계를 공유하고, 예술작품을 통해 그 결합의 과정을 축하받을 수 있다는 면에서 소설만큼의 아름다운 의미를 받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소설과 달리, 연극에서 구현한 시청각을 통해 느꼈던 감정들은 다른 아름다움을 자아냈다.
지금도 내 귀에 공연 내내 들렸던 비틀즈의 음악 ‘Across the Universe’가 계속 맴돈다. Nothing’s gonna change my world. 해석하기 나름인 이 중의적인 가사처럼 이 공연을 바라보는 시각도 제각기 다를 것이다. 나에게는 ‘사랑의 소중함’이 남았다. 한 사람과 사람이 같은 세계와 시대에 같은 언어로 사랑을 하게 되는 일은 지구가 만들어진 시간 만큼의 노력과 우연이 필요한 일이겠노라. 그러한 사람을 찾은 행운이야말로 저 우주에서 내 별을 찾기만큼 힘든 일일지 모른다. ‘아무것도 내 세계를 바꿀 수 없다’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내 세계를 다 내어주고 우주를 건너 너의 세계로 침투할 그 아름다운 과정을 나는 기다릴 수 있을까?
[사진제공: (c)극단 돌파구제공(photo 이강물)]
- 이석원, 『언제 들어도 좋은 말』, 그책, 2017
- 일자
- 2021.10.29 ~ 2021.10.31
- 장소
-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 연출
- 전인철
- 출연
- 유은숙, 안병식, 김민하
- 안무
- 황수현
- 원작
- 김보영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