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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회 월드2인극페스티벌 기획초청, 극단 종이로 만든 배 <차파티chapatti>

고독을 돌보는 방식

권혜린
210호 2021.11.25
2000년에 시작하여 21회째 개최된 월드 2인극 페스티벌은 가장 최소의 관계인 두 명의 인물이 극을 이끈다는 점에서 자칫 단순해질 수 있는 어려움을 정면 돌파하여, 배우들의 연기와 극의 완성도를 모두 높여야 하는 과제를 수행하고 있는 축제이다. 이는 개인이라는 부분과 세계라는 전체의 매력을 동시에 드러내야 한다는 점에서 난제일 텐데, 여기에 ‘월드’라는 수식어가 보태져 물리적으로도 세계가 확장되었다. 올해 ‘관조와 실천’이라는 주제로 기획 초청된 <차파티 chapatti>는 아일랜드 극작가 크리스찬 오레일리의 작품으로서 노년의 삶에서 나타나는 고독을 각자의 방식으로 돌보고자 하는 두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2000년에 시작하여 21회째 개최된 월드 2인극 페스티벌은 가장 최소의 관계인 두 명의 인물이 극을 이끈다는 점에서 자칫 단순해질 수 있는 어려움을 정면 돌파하여, 배우들의 연기와 극의 완성도를 모두 높여야 하는 과제를 수행하고 있는 축제이다. 이는 개인이라는 부분과 세계라는 전체의 매력을 동시에 드러내야 한다는 점에서 난제일 텐데, 여기에 ‘월드’라는 수식어가 보태져 물리적으로도 세계가 확장되었다. 올해 ‘관조와 실천’이라는 주제로 기획 초청된 <차파티 chapatti>는 아일랜드 극작가 크리스찬 오레일리의 작품으로서 노년의 삶에서 나타나는 고독을 각자의 방식으로 돌보고자 하는 두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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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는 2인극을 가시화하듯 액자 틀 같은 직사각형의 프레임 두 개로 분할되어 있다. 그 안에는 의자가 각각 한 개씩 놓여 있으며 왼쪽은 가을을 상징하는 단풍으로 장식되어 있고, 오른쪽은 봄을 상징하는 푸른 잎과 꽃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는 극에 나오는 인물들의 성격을 담아낸다. 가을의 남자인 댄은 연인 마르타가 죽은 뒤, 삶의 의욕을 잃고 내일이 아닌 마지막을 위해 차파티라는 이름의 노견과 겨우 살아가는 인물이다. 봄의 여자인 베티는 메마른 관계였던 남편을 떠나보내고, 열아홉 마리의 길고양이와 페기라는 노인을 돌보면서 힘껏 살아가는 인물이다. 댄이 마르타와 함께 웃었던 기억에만 사로잡혀 현재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 것과 달리 웃음이 많은 베티는 소박한 일상에 집중하는 낙천적인 인물이다. 이렇게 너무나도 다른 두 사람의 만남이, 과거의 사랑을 위해 살고 개를 돌보는 남자와 미래에 다가올 사랑을 위해 살고 고양이를 돌보는 여자의 만남이, 촘촘하게 그려진다.

고독한 돌봄, 고독의 돌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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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은 자신이 떠난 뒤 혼자 남겨질 차파티를 염려하여 새 주인을 찾아주려고 한다. 차파티는 인도에서 동명의 빵을 나누어 주다가 식구로 들인 유기견으로, 댄이 유일하게 신경을 쓰는 존재이다. 그러나 차파티를 돌보는 것에도, 자신을 돌보는 것에도 서툰 댄이 열정을 보일 때는 마르타를 회상할 때뿐이다. 자신은 과거에 얽매여 있기에 새로운 날이 밝아도 새로움을 찾지 못하지만, 단 하나 남은 가족인 차파티에게는 새로운 삶을 주고 싶어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반려동물을 버리지 않으려는 책임감과 끝까지 돌보지 못하는 무책임함이 혼재되어 있기에, 댄의 행동에 대해 무조건적인 긍정 또는 부정을 할 수 없게 한다.
이러한 댄이 베티를 만나는 장소가 동물 병원이라는 점에서 동물은 두 사람을 잇는 중요한 존재가 된다. 댄과 부딪친 새끼 고양이들이 배회하는 난장판을 보고 베티는 폭발적인 웃음을 터뜨리고, 댄은 그 모습이 마르타와 닮았다고 느낀다. 이후에도 두 사람이 웃는 장면에서는 동물이 매개되는데, ‘동물-웃음’의 결합은 고독했던 이들이 만났을 때 느끼는 즐거움의 순간들을 은유한다. 또한 댄과의 만남은 베티가 유일하게 돌봄에서 해방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베티는 댄과 있으면서 돌보는 일에서 벗어나 좋다고 이야기한다. 자신의 고양이들뿐만 아니라 치매와 우울증을 앓고 있는 페기와 페기의 고양이까지 돌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티는 이를 홀로 감당하지 않고 자신의 돌봄 능력을 페기에게도 나눈다. 침대에만 누워 있고자 하는 페기에게 고양이를 돌보아야 할 의무를 상기하는 것이다. 이렇게 베티는 페기를, 페기는 고양이를 돌보는 상호 의존적인 관계는 “우린 좋은 팀”이라고 말할 수 있는 공동체를 형성한다. 일방적인 돌봄은 고독하지만, 고독한 돌봄을 수행하는 이들이 여러 명일 때 공동의 것이 된다.
그러나 돌봄 능력자인 베티가 댄을 돌봄으로써 구원하지 않는다는 결말은 다른 의미에서 베티와 댄을 동등하게 만든다. 두 사람은 각자의 고독을 돌보는 ‘고독 돌봄자’의 공통점을 지닌 채 만나기 때문이다. 베티는 고양이를 기르는 것으로, 댄은 추억을 곱씹는 것으로 고독을 돌보고 있으므로 서로를 돌볼 의무가 없다. 따라서 이들 사이에는 다른 마음이 생기게 된다. 베티는 댄에게서 부재했던 사랑의 모습을 찾게 되고, 댄은 베티에게서 상실했던 삶의 의욕을 찾게 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줄 상호적인 교류의 가능성이 생긴다.

함께하는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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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교류는 노년의 성숙함이나 차분함이라는 선입견을 깨듯 천진난만한 모험이라는 활기찬 색채로 나타난다. 죽은 고양이의 주인을 찾으러 다니던 댄이 베티에게 이를 알리면서 페기의 고양이가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대신할 닮은 고양이를 찾아 나서는 ‘모험’을 함께하는 것이다. 페기가 겪을 충격을 ‘함께’ 염려한 두 사람은 ‘죽은 고양이 작전’으로서 닮은 고양이를 찾아낸다. 그러나 고양이 주인은 외양이 닮았다고 해도 성격과 습관이 다르기에 고양이를 줄 수 없다고 거절한다. 댄은 그 집의 아이들과 잘 노는 차파티를 충동적으로 그 집에 두고 오고, 차파티에게 작별 인사도 하지 않는 그를 본 베티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한다.
이후 댄의 마지막을 막으려는 베티의 모험이 새로 시작된다. 차파티는 결국 댄에게 다시 돌아가지만, 죽음이 삶으로 변화하기에는 댄의 닫힌 마음이 쉽게 열리지 않는다. 그래도 두 사람 사이에는 웃음이라는 틈새가 있다. 묻어 준 고양이를 파내서 따뜻한 물로 샤워해 주어야겠다는 말에 두 사람은 다시 웃기 시작한다. 울면서 웃고, 웃으면서 우는 평온하고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이들은 대체 불가능한 고양이의 죽음을 인정하고자 한다. 페기도 마지막 남은 가족의 죽음을 거부하지 않고, 베티와 함께 진심 어린 애도를 한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페기는 새끼 고양이를, 차파티를 포용함으로써 새로운 식구를 들이며 새 출발을 하고자 한다. 이렇게 모험이 순조롭게 마무리되는 듯하지만, 아직 댄이라는 숙제가 남아 있다.

마주 보는 고독

댄은 올가미의 매듭을 확실하게 묶는 방법을 배우지 않을 만큼 단호함보다는 망설임과 여지를 보인다. 이것을 눈치챈 베티는 계속해서 댄의 마음을 돌리고 싶어 한다. 결혼한 여자를 30년 동안 사랑했던 댄은 마르타가 죽은 뒤 갑자기 단절된 사랑을 죽어서라도 이루고 싶어 하고, 베티는 마르타와 남편의 관계에 자신과 남편의 관계를 투영하면서 가진 적 없었던 사랑을 갈구하게 된다. 이에 댄에게 자신을 당신의 삶에 받아들여 달라고,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낫다고 하면서 적극적으로 다가간다. 그럼에도 댄의 결심이 변하지 않자 베티는 저녁 식사 자리에 댄을 초대한다. 모험에 비해 차분하지만 모험보다 더 큰 기대를 지니게 되는 시간이다. 베티는 아껴 두었던 붉은 드레스를 입고, 댄도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처럼 쓰레기봉투에 있던 양복과 구두를 꺼낸다. 댄이 자신을 위해 셔츠를 다렸다는 것을 안 베티는 감격한다. 댄 역시 아름다운 베티를 보고 자신이 죽은 뒤 자신을 아무도 기다리지 않을까 봐 처음으로 두려워한다. 명랑한 생기를 목도한 뒤 나타난 희망이 죽음 뒤의 절망을 상기하게 하는 것이다. 베티는 호주에 같이 가자고, 댄이 사실은 살고 싶은 거라고 이야기한다. 마르타는 사랑 자체이며, 살아 있어야 사랑을 다시 찾을 수 있고 그것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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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최선을 다했는데도 댄이 미동도 없자 베티는 체념한다. 그러면서도 한 가닥의 희망으로 댄이 자신의 집 초인종을 눌러 주기를 바란다. 다행히 불길한 소식은 오지 않고, 마지막에 두 사람은 마주 보게 된다. 고독한 이들이, 고독 자체가 마주 보면서 드디어 서로를 대면하는 것이다. 정면을 바라보면서 독백했던 두 사람이 부대끼는 과정을 통해 대화하게 되고, 엇갈리는 시선에서 벗어나 비로소 서로를 직시하는 장면은 상실감이 저절로 치유되지 않으며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가능함을 보여 준다. 이처럼 <차파티>는 노년에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묵직한 고독을 방치할 경우 댄처럼 표면적으로 드러나든, 베티처럼 내재되어 있든 언젠가는 터지거나 흘러넘치므로 고독을 돌보는 것이 나이 듦의 몫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했다. 나아가 이왕이면 그 몫을 사랑으로 함께 겪는 게 낫다는 것을 산뜻하게 그린 작품이었다.

[사진제공: 종이로 만든 배]

종이로 만든 배 <차파티>
일자
2021.11.09 ~ 2021.11.11

장소
아름다운 극장

작
크리스찬 오레일리
번역
이현구
각색/연출
하일호
출연
김보경, 김장동
피디
김은미
음악(작/편곡)
이상우
포스터 그림
한경애
그래픽 디자인
이건희
노래
안윤재
무대
방선혜, 손인수
조명
김장동, 하일호
진행
한승우, 김수현, 이건희, 석지연
주최
2인극 페스티벌 조직위원회
주관
2인극 페스티벌 조직위원회, 종이로 만든 배
제작
종이로 만든 배
후원
극단 대학로 극장, 극단 소금창고, 극단 비행술, 두줄 프로젝트, 몹쓸밴드
관련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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