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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모즈팩토리 <노동가Ⅱ -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법>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진술하기

심지후
211호 2021.12.09
<노동가Ⅱ -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법>은 일곱 개의 자전적 에피소드로 구성된 사화집 형식의 공연이다.

나온씨어터 안에 컨베이어 벨트가 놓였다.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을 때 보았던 그 컨베이어 벨트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앞뒤로 놓인 컨베이어 벨트와 양옆을 막은 바형 테이블로 구성된 ‘ㅁ’자형 세트다. 배우가 버튼을 누르면 작동하고, 다시 누르면 멈추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상자들이 옮겨지고, 7명의 배우들이 상자를 바쁘게 옮긴다. 그들은 서로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그저 상자를 옮기기만 한다. ‘ㅁ’자형 세트 안에서 한참 말없이 상자만 옮기던 그때, 상자 하나가 열린 채로 벨트를 타고 온다. 컨베이어 벨트가 그제야 속도를 늦추더니 서서히 멈춘다. 한 배우 앞에 상자가 멈춰 선다. 배우는 상자 안을 가만히 들여다보더니, 물건 하나를 꺼낸다. 자기의 이야기가 담긴 물건이다. 그렇게 7명의 배우가 말하는 7개의 이야기가 병렬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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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가Ⅱ -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법>은 일곱 개의 자전적 에피소드로 구성된 사화집 형식의 공연이다. 배우들은 아르바이트를 했던 이야기, 하이킹 트레일을 떠난 책을 읽고 자기의 버킷리스트를 채워가는 이야기, 배달노동을 하는 이야기, 콜센터에서 일한 이야기, 외국인 친구와 함께 백신 신청을 하러 갔다가 민주노총 집회 현장을 마주한 이야기. 일 때문에 홍콩에 갔다가 시위에 참여하게 된 이야기, 오랜 친구이자 동료를 떠나보낸 이야기를 서술하듯 풀어놓는다. 모든 게 멈춰버린 이 시기를 살아가는 기록들이다.

‘노동’, 알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멀리서 말하는

에피소드는 광범위한 공감대를 형성할 만한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제목처럼, 노동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뜻이다. 반말 아닌 반말을 하는 진상 손님, 배달을 하러 가다 사고가 났는데 자기보다 음식이 괜찮은지 먼저 확인하는 배달노동자, 좋아하는 책을 따라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는 인물, 고객 콜센터에서 얼토당토않은 요구를 하는 고객들 등 어디서 한 번쯤 들어봤거나 언젠가 경험해 본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보편’ 경험이란 관객의 경계심을 늦춰주기도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작품의 예리함을 가릴 때도 있기 때문에 그 균형을 잘 잡아주는 것이 중요한데, <노동가Ⅱ-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법>은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작품을 풀어낸다. 익숙함에 기대어 속도감 있게 사건을 전개하다가, 어느 순간 인물이 그 사건에서 빠져나와 서술자가 되어 객관성을 확보하는 식이다. 배우들은 이야기의 내레이터로 존재하기도 하고, 과거의 사건을 재연하기도 하고, 이야기에서 빠져나와 지금 무대 위에 서 있는 배우로 존재하기도 하고, 다른 배우의 이야기 속에서는 코러스로 존재하기도 한다. 게다가 배우들은 자신의 이야기 속에서 시간과 공간을 제멋대로 넘나든다. 방금 전까지 책을 읽고 있었는데 바로 다음 순간에 책 안에서 묘사한 트레킹 장소가 펼쳐지는 식이다. 또, 연극적 약속을 적극 활용하는 연출 덕분에 추상적인 시공간과 인물까지 끼어들어 온다. 이를테면, 진상 손님이 떠나고 한숨을 돌리려 담배를 꺼냈는데 갑자기 담배의 요정(?)이 불쑥 얼굴을 들이밀고 말하기 시작하는 장면이 그러하다. 이처럼 장면은 예측 불가능한 리듬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는데, 어쨌든 알고 있는 이야기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 덕분에 안심하고 그다음 장면을 기대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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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배우들은 작품 내내 이야기를 경험한 자신과 거리를 두려 한다. 상황에 완전히 몰입하기보다는 한 발짝 물러나 ‘내가 그때 그랬다’라며 이야기를 털어놓는 데 집중하려고 하는 것이다. 배달을 가다 사고가 났던 상황을 재연하면서도, 홍콩 민주화 시위현장을 SNS에는 올리지만 함께 싸우진 못하는 자기를 발견하고 그저 ‘그때 내가 그러했다’라고 덤덤히 말할 뿐이다. 먼저 떠나보낸 동료를 떠올리거나, 실업자가 되고 나서 총파업 현장을 다시 목격했을 때에는 가끔 흔들리기도 하지만, 에피소드 사이사이에 인물들이 모두 코러스가 되어 컨베이어 벨트 위 상자들을 옮김으로써 다음 이야기에 앞 장면의 정서가 불필요하게 개입하지 않도록 하였다. 이렇게 확보된 거리감 덕분에 인물들의 말은 오히려 효과적으로 전달된다. 나아가 증언대 위의 진술처럼, 이 시기를 살아내는 사람들의 기록으로서 무게를 갖게 되기도 한다. 어쩌면 이것이 ‘노동가’인 이유는 이 불황의 시기를 살아가는 개인들의 기록을 구전가처럼 남기겠다는 것이 아닐까.

컨베이어 벨트가 멈추는 순간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돌고 도는 상자를 옮기는 공연의 첫 장면은 7개의 에피소드 사이마다 반복된다. 자본가에게 노동자는 이른바 ‘공장’을 돌리는 부품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진부하지만 정확한 표현처럼 7명의 배우들이 컨베이어 벨트 위 상자를 옮길 때에는 사람보다 상자가 먼저 보인다. ‘ㅁ’자 무대에서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는 소리와 상자들이 옮겨지는 소리, 사람들이 이동하는 발자국 소리만 가득 들린다. 멈추지 않을 것처럼 이어지던 컨베이어 벨트가 속도를 늦추는 순간은 배우들이 열려 있는 상자를 발견하고 그 안에서 꺼낸 물건을 보면서 자기 이야기를 시작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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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도 이 무대와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컨베이어 벨트에서 상자를 옮기는 배우들을 봐야 그다음 배우가 말하는 에피소드가 나오는 것처럼, 일해서 돈을 벌지 않으면 일상을 이어갈 수도 없다. 생산수단을 갖고 있지 않은 이상, 노동력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를 우울하게 만들고, 무력하게 만들기도 하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열린 상자를 발견하고 그 안에 담긴 자기의 목소리를 얘기하기 시작할 때 컨베이어 벨트가 멈춘 것처럼, 어쩌면 우리가 우리의 이야기를 발견하고, 그것을 직면하고, 솔직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한다면 실제로 이 사회를 돌아가게 하는 컨베이어 벨트가 멈출지도 모르겠다.

[사진제공: 보통현상]

토모즈팩토리 <노동가Ⅱ -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
일자
2021.11.19 ~ 2021.11.28

장소
나온씨어터

출연
강민규, 강현우, 박시호, 서제광, 양예석, 전정훈, 정보람
연출
토모 쯔카구치
프로듀서
손상희
조명
라성연
무대
Shine-Od
홍보·티켓
(주)스탭서울컴퍼니
그래픽디자인
보통현상
제작
토모즈팩토리
관련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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