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연습4. 관객 연습 <사람이 하는 일>
귀를 기울이는 것도, 사람이 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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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은 아무런 권한도 등장인물에게 위임하지 않는다. (중략) 다시 말해서 그는 실제 행동을 위해 자신을 훈련시키는 것이다. (중략) 중요한 것은 그것이 행동이라는 것이다.”1) 아우구스토 보알은 공연의 주체 자리를 관객에게 돌려주는 토론연극이 기존의 연극형식에 변화를 일으킨다고 보았다. 또, 작품 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공연에 참여하는 행위에서, 관객은 사회적·정치적 문제에 맞서 실천할 힘을 기르게 된다고 믿었다. 필립 테일러의 ‘시민연극(applied theatre)’ 또한 토론연극과 궤를 같이한다. “참여 대상이 연극을 통해 적극적으로 자신과 남의 행위를 이해하고 그 의미를 반추”2)하는 것에서 시민연극의 의의가 나타난다고 보았다. ‘연극연습4. 관객 연습 <사람이 하는 일>’(이하 <사람이 하는 일>)은 이러한 토론연극과 시민연극의 형식을 바탕으로 한다. 관객의 실천적 행동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작품의 주요 방향임을 짐작해볼 수 있다. 더 정확하게는 ‘시민’의 ‘공동체 의식’ 구축을 주목한다고 해야겠다. 공연은 장애인 주체들의 일상을 묘사하며, 관객을 ‘시민’으로 지칭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끝나야 시작되는 공연
작품은 크게 네 가지 서사로 구분되는데, 지하철 환승구간에서의 상황과 열차 내부 장애인석에서의 상황, 지하철 화장실까지 가는 상황과 재활원 옆 공원에서 벌어지는 상황으로 나뉜다. 각각의 상황에서는 부당하고 불합리한 경우들이 나타난다. 예컨대 길을 찾는 장애인을 일방적으로 다시 보호시설로 데려가려 하거나, 비장애인이 장애인석 자리를 차지하는 동시에 장애인의 휠체어를 사적으로 이용한다거나, 지하철 장애인 화장실은 기본적으로 잠겨 있고 보조자가 장애인 주체의 요구를 듣지 않아 생리현상을 해결하기 어려워지거나, 장애인의 연애는 지극히 사적인 영역임에도 보호라는 명목하에 사회복지사에게 통제당하는 등이 그러하다. 무엇이 문제인지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장애인을 향한 편견의 언어를 은연중에 내뱉거나, 자기중심적인 선의로써 오히려 타인을 불편하게 만드는 왜곡된 친절도 등장한다. 사실 작품에서는 너무나도 많은 문제가 잦게 등장하는데, 그 모든 부분을 쓸 수 없어 간략히 요약한 것만 해도 이 정도다.
관객-시민은 사회자의 진행에 따라 각 장면이 끝날 때마다 자신의 의견을 발언한다. 이 과정에서 관객-시민은 문제를 인식하고 타인을 이해하며 개선의 여지를 고민하게 된다. 그렇게 한 차례 마무리된 공연은 관객들이 참여하는 형식으로 같은 장면을 혹은 전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게 된다. 문제가 되는 장면에서 관객-시민은 ‘멈춰’를 외치고 직접 극 중 상황으로 뛰어드는데, 관객-시민은 극 중 인물이 되는 동시에 본인의 자아를 인식하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행동’을 한다. 이 지점이 토론연극·시민연극이 지향하는 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목도-현존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물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행동’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상황이 일어나는 그 속에 나-시민이 현존하는 것’을 인식하게 되는 것만으로도 유의미한 과정이 아닐까 믿는다. 그것은 실천적 행동의 근간을 마련하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지점은 공연이 진행된 장소의 특성과도 맥락이 닿는데, 헤이그라운드 성수시작점 스카이라운지는 위치부터가 주거 및 상업지역에 자리하고 있는 데다, 공유오피스 건물에 속해 있어, 마치 현실과 분리된 마술적 효과로서의 극장이기보다는 일상이 연장된 공간으로서 인식되기 쉬운 장소라는 특성이 있다. 덕분에 관객-시민은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지속해서 현실감각을 유지하게 되고, 공연에 등장하는 일련의 사건들을 두고 ‘나는 시민으로서 어떠한 사회 공동체로 현존할 것인가’하는 의문을 자연스럽게 제기하게 된다. 나아가 그것은 실천적 방법론에 대한 사유까지 촉발하게끔 한다.
현존하는 우리-사회적 존재들의 상호관계
공연에서는 몇 가지 중요한 지점들이 등장하는데, 그중에서 장애인-조력자의 존재가 먼저 눈에 띈다. 장애인이 타 장애인의 성장 및 독립을 ‘조력’하는 역할을 ‘전문적’으로 수행한다는 점에서, 수동적 객체로만 인식되던 장애인의 위치를 입체적으로 표현해낸다. 이 지점에서 장애인 주체는 사회의 수동적 약자 프레임에 결코 지배되지 않으며, 지배될 수 없음을 방증한다.
‘여성 장애인’은 ‘장애인’이라는 일원론적 정의로써 덮이고, ‘퀴어 여성 장애인’은 거기에 한 번 더 묻히는 격이다. 그러니 퀴어 여성 장애인의 등장은 타자를 대상으로 한 사회의 지배적 이데올로기에 틈을 내는 역할을 한다. 예컨대 때때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퀴어 장애인 주체 앞에서 사회가 허둥대는 까닭은 그간의 일률적인 지배적 언어로써 대상을 정의 내리지 못해, 퀴어 장애인 주체를 점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 대해 <사람이 하는 일>은 그동안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던 각각의 장애인 주체들이 고유한 수사로 지금 여기 함께 ‘현존하고 있음’을 재현해낸다. 퀴어 여성 장애인이 인권연애를 노래하고 키스를 하며 성적권리를 논하는 것이다. 극 중에서는 개인-장애인 주체가 휴대폰을 소유하는 지극히 사적인 영역에까지 사회의 허락이 요구되는데, ‘보호’, ‘안전’, ‘책임’이라는 무거운 의무가 개인의 ‘선택’, ‘성적권리’의 ‘자유’를 둘러싸는 형태다. 이 과정을 두고 <사람이 하는 일>은 말 그대로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선악의 논리로 접근할 수 없는 현실임을 보여준다. 장애인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기에 극히 보수적인 사회복지사의 입장을 묘사하며, 서로의 위치에서 달리 보이는 견해차의 문제로 접근한다. 다만, 최소한의 인권 존중에 대한 문제의식은 남겨둔다. 관객-시민은 이 복잡한 문제 현실을 목도하며 ‘그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사람이 하는 일>에서는 장애인을 억압하는 역할을 장애인 배우가 맡고 있다. 그것은 어쩌면 실제로 그가 겪은 억압의 수사를 직접 발화하는 것이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표현방식을 선택했던 것에는, 장애인 배우 전체를 오롯이 피해자의 형태로만 구성하지 않도록 하여, 장애인 주체를 대상화하지 않는 방식으로써 억압이 작동하는 현상을 확인하게끔 하는 데에 의도가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이러한 표현방식은 역설적으로 관객-시민에게 더 충격적으로 다가오는데, 마치 현실 속 폭력이 피해자에게 전이된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발화하는 배우에게도 청자인 배우에게도 상처가 될 여지가 있는 순간들이기에, 관객-시민은 불안함을 겪는다. 그 불안이 관객-시민으로 하여금 윤리의식을 촉발하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이 형식은 어쩌면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해야 하는 방식으로서 주어진 선택이 아니었을까 짐작된다.
인권이 존중받는 공동체를 위해, 귀를 기울이면?!
결국, 모든 문제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 태도’에서부터 시작된다. 길을 찾는 영화의 말을 듣지 않았기에 그녀를 엉뚱한 곳으로 데려가는 것이고, 휠체어의 중요성을 말하는 수진의 말을 듣지 않았기에 그녀에게 화풀이하는 것이며,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고유의 방식에 대해 말하는 수진의 말을 듣지 않았기에 상황이 난감해졌던 것인 데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대해 말하는 수진과 아무 문제가 없다는 영화의 말을 듣지 않았기에 영화의 독립 및 성장이 정체된 것이다. 어쩌면 문제는 뜻밖에도 간단할지 모른다. 귀를 기울이면 되는 것 아닐까. <사람이 하는 일>은 장애의 유무가 타인의 발언을 가벼이 여기도록 하는 근거가 되어선 안 된다는 의미를 전한다. 나아가 사회의 공동체 의식은 타인의 의사에 귀 기울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발견하게 한다.
나-시민-관객은 실제로 겁도 없이 무대 위로 뛰어들었고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며 수진을 돕는 역할을 했다. 이 고백을 하는 이유는 나-시민-관객의 무지와 어리석음을 박제하고, 두고두고 이 낯 뜨거움을 직면하기 위해서다. 나-시민-관객은 ‘도움’의 수사를 뱉었지만 그것은 결코 그 누구에게도 가닿지 못했다. 그 도움의 언어는 또 한 번 지배적이었다. 권위적으로 행동하는 인물을 제어하기 위해 장애인 주체의 의사를 적절하게 전달하기보다는 알량한 지식으로 상대를 제압하려는 것에 더 가까웠기 때문이다. 공동체로 존재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성찰의 결과는 조금도 나타나지 않았고, 애초에 고민하지도 않고서 무작정 상황을 무마하기에 바빴다. 이 부끄러움은 그나마 사유의 원동력이 되어 문제의식을 낳았다. 우리는 어떻게 각 주체들의 본질적이고 특수한 존재 그 자체를 인식하고, 상대를 전유하지 않는 방식으로 공동의 사회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그 고민 끝에 나온 것이 ‘귀를 기울이면’이다. 소통의 일차적 행위가 상대를 향한 열림일 것이기 때문이다.
극단 춤추는허리의 공연은 늘 관객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장애여성의 삶과 현실을 조명하는 작품들의 기저에는 항상 어딘가 활기차고 생동감 있는 에너지가 흐르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는 일>에서도 각자 실제 겪었을 법한 모습들을 너무나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2003년에 창단된 이래로 여러 차례 공연을 제작하며 훈련된 연기력 덕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관객을 마주하는 모습들이 하나같이 유쾌하다는 점이 인상 깊다. 관객의 반응이 좋거나 혹 대사를 잊어버릴 경우, 관객에게 농을 던지며 유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은 공연의 흥을 돋우기도 했다. 무엇보다 극단 춤추는허리의 작업이 소중한 까닭은 ‘함께’ 존재하는 방식에 대해 사유하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편견의 수사가 가득한 사회에 ‘먼저’ 손을 내미는 것 같은 형상이다. <사람이 하는 일> 또한 그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이 작품은 현존하는 우리 사회 ‘공동체’에 대한 문제의식을 촉구한다. 무대로 기꺼이 뛰어든 여러 관객-시민도, 그들을 주목하며 자신만의 방안을 고민하는 객석의 관객-시민도, 공연장 밖의 실재하는 시민도, 무대 위 존재하는 시민도, 안전하고 존중받을 수 있는 공동체 의식이란 무엇일까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그에 대한 답을 극 중 수진의 대사에서 발견해본다.
“할 수 있어요. 제가 알려드릴게요”.
[사진촬영: 원준혁 ⓒ연극연습 프로젝트]
- 일자
- 2021.12.15. ~ 12.19
- 장소
- 헤이그라운드 성수시작점 스카이라운지
- 구성·연출
- 이진희
- 출연
- 김미진, 김상미, 서지원, 이진희, 조화영, 진성선
- 제작·연출팀
- 정주희, 진성선, 한예선
- 공동제작
-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
- 제작협력
- 인컬처컨설팅
- 기획·제작
- 고주영
- 후원
-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 Augusto Boal, 『민중연극론』, 민혜숙 역, 창작과 비평사, 1985, p.148.
- Philip Taylor, 『시민연극-연극을 통한 공동체, 참여 그리고 변화』, 김병주 역, 청동거울, 2009, p.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