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회 서울 아시테지 겨울축제 광대생각 <줄 타는 아이와 아프리카도마뱀>
아~프~리카! 카!리!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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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 연극을 딱 두 번 봤습니다. 처음으로 본 연극은 1991년 <찌꺼기들>이란 작품으로 교도소에서 일어난 일들을 다룬 작품이었습니다. 공연 포스터에는 ‘들’의 ‘ㄷ’이 반대로 적혀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과체중 초등학생이라 다이어트를 목적으로 무용학원에 다녔어요. 마침 무용학원과 같은 층에 소극장이 있었고, 이 공연은 무용학원 친구들과 단체로 관람했습니다. 30년이 지나도 연극 속 노래는 아직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우리나라 최초 번안곡인 ‘사의 찬미’의 곡조에 가사를 붙인 노래였고, 그 가사는 ‘적막한 교도소 너무나 외로워. 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 싫다’로 시작했지요.
두 번째로 본 연극은 1999년 신파극 <며느리 설움>이었습니다. 마산 MBC문화방송에서 할머니와 함께 봤고, 저를 제외한 주변 관객들은 모두 울었습니다. 저는 울진 않았고 슬프지도 않았으며 티비에서만 보던 연예인들을 실제로 봐서 너무 신기했구요. 또 연예인들의 얼굴은 소풍 갔을 때 밀가루 접시에서 입으로 알사탕을 찾던 게임 후 모습처럼 조명 아래에서도 텁텁하게 하얗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본 두 편의 연극은 죽음과 슬픔에 관한 이야기란 것을 한참 자란 후에 깨달았습니다. 당시 저는 그저 무대 위 공연이 신기하고 재밌기만 했거든요.
저는 연극을 보러 가는 게 생경한 작은 도시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연극이란 단어가 제 인생판에서 한 조각 퍼즐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연극과의 줄을 억지로 찾는다면, 유난스러운 제 아버지가 유난스럽게 연기를 전공하려다 외모 불충분으로 전과를 한 경험이 있는 것 정도랄까요. 아픈 기억이지요. 그 아버지의 자식인 제가 또 자식을 낳았고, 이 아이는 배꼽줄이 떨어지고 모체에서 자신이 독립된 존재임을 인식한 후로 온종일 상황극만 해댑니다. 연극이란 것은 먹고, 자고, 배설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태고부터 인간의 DNA에 각인된 본능인 것 같습니다.
제 가족들은 연극과 가느다란 촉수 정도 맞닿아서 연극을 경험하고 보고 살았지만, 제 아이는 지난 주말 생애 처음으로 어린이 공연을 보러 극장에 갔습니다. 생후 62개월에겐 의미가 있는 경험이었지요. 창작연희극 <줄 타는 아이와 아프리카도마뱀>. 연희극인데 아프리카도마뱀이라니 과연 어떤 모양과 소리를 가진 공연일까 무척 기대되고 궁금했습니다. 공연은 생후 36개월 이상 관람 가능, 권장 연령은 10세 이상으로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아이와 줄 대신 손을 맞잡고 극장에 들어갔습니다. 줄이 전부인 무대는 연주자들의 음악으로 허전하지 않았습니다. 음악에 맞춰 배우들이 춤을 추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전화줄이 밥줄인 ‘여자씨’와 전선줄이 밥줄인 ‘남자씨’ 사이에서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남자씨는 여자씨와 인연의 줄을 놓고 사라집니다. 여자씨는 불러오는 배를 줄로 묶고, 전화줄로 삶의 줄을 잇다가 7개월 만에 태어난 아기의 탯줄을 자르고 자신의 목숨줄을 끊습니다. 출생에 관한 전사가 기구한 아이는 흔들리는 줄 위에서 내내 씩씩합니다. 아이는 우연히 만난 아프리카도마뱀의 꼬리를 떼어 내고, 엄마 아빠를 찾아주면 꼬리를 돌려주겠다고 합니다. 이 우연은 아이와 아프리카도마뱀 사이 인연의 줄입니다. 저는 이 어려운 내용을 한집에 사는 어린이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했습니다. 공연을 본 후, 어린이와 공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 권
- 극장에 들어갔을 때 줄이 많았잖아. 왜 줄이 많이 있었을까?
- 솔
- 들어오지 마라고 그런 거 아니야? 나도 엄마랑 뽀로로 놀이 하는데 아빠가 들어오면 아빠 오지 마라고 하잖아. 줄이 없으면 사람들이 어두워서 안 보여서 들어오니깐 그런 거겠지.
- 권
- 그런데 아기는 왜 옷을 안 입었을까?
- 솔
- 더워서 그런 거 아니야? 엄마가 아프리카도마뱀이니깐 아프리카에서 와서 그렇겠지.
- 권
- 엄마가 도마뱀인데 아기는 왜 사람일까?
- 솔
- 그냥 그렇게 태어났겠지.
- 권
- 그런데 아기는 왜 사람이 아니고 인형으로 나왔을까?
- 솔
- 아기들은 말을 못 하니깐 그렇지. 엄마 왜 몰라?
- 권
- 네 말이 맞네. 그런데 그 아기의 엄마랑 아빠는 엄청 바쁘게 일하다가 어디로 사라졌을까?
- 솔
- 아빠는 회사 가고 엄마는 도마뱀으로 변신한 거 아니야? 스파이더맨처럼. 스파이더맨도 학교에 가니깐. 또 어벤져스도 변신하고 티니핑도 변신해. 영웅인데 학교도 가. 변신하는 건 엄청 많아.
- 권
- 그럴 수 있겠네. 아기가 아프리카도마뱀 꼬리를 뗐을 때 도마뱀 기분이 어땠을 것 같아?
- 솔
- 또 자라니깐 괜찮겠지. 엄마도 나도 머리 잘랐는데 또 자랐잖아. 손톱발톱도 그렇고. 또 자라는 건 괜찮은 거야.
- 권
- 공연에서 남자가 엄마로 나왔잖아. 그건 어떻게 생각해?
- 솔
- 나도 4살 때까지 내가 남자인 줄 알았는데 지금은 여자잖아. 그런 거 아니야? 그리고 니모도 남자인데 여자가 될 수 있대.
- 권
- 그럼 작은 어른 인형들이 줄 위에서 바쁘게 움직였잖아. 그건 어떤 느낌 같아?
- 솔
- 너무 웃긴 느낌인데? 몸통이랑 다리랑 따로 움직이고 엄청 빨리 움직여서 너무 웃겼어.
- 권
- 그랬구나. 그런데 너무 바쁘게 일하면 힘들지 않을까? 아빠도 회사 갈 때는 우리집에서 제일 일찍 일어나고 늦게 집에 오잖아.
- 솔
- 토요일 일요일에 쉬니깐 괜찮아. 나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태권도장 가서 바쁜데.
- 권
- 공연에 나온 음악은 어땠어?
- 솔
- 너무 신이 나서 일어났는데 엄마가 앉으라고 해서 기분이 안 좋았어.
- 권
- 그럴 수도 있겠네. 그래도 앉아서 보는 공연이니깐. 다솔이는 엄마한테 궁금한 거 없어?
- 솔
- 엄마는 왜 별 3개에 투표했어? (관람 후 관객 투표)
- 권
- 재밌어서 별 3개에 투표했지. 다솔이는?
- 솔
- 나도 너무 재밌어서 별 3개에 투표했는데, 박수치는 건 너무 재미가 없어서 별 3개까진 아닌데 그래도 너무 재밌어서 별 3개에 투표했어. (커튼콜)
- 권
- 다음에도 보러 갈까?
- 솔
- 응. 다음에도 전철 타고 연극 보러 가자.
생후 62개월 어린이는 공연에서 가장 시시한 부분은 커튼콜이라고 말했어요. 커튼콜은 당연히 공연과는 별개로 배우들이 극에서 빠져나와 관객과 만나는 순간이라 생각했는데, 어린이에게는 극장 내 모든 사건이 공연에 포함되는 것 같습니다. 관객의 움직이는 소리까지두요.
극 중에서 엄마씨가 우는 장면이 있었는데, 어린이 관객들은 엄마씨가 과장되게 울수록 크게 웃었습니다. 이 작품의 플롯에서 가장 슬픈 장면이지요. 어린이들은 이야기의 흐름이 아니라 배우의 대사와 몸짓에 더욱 집중했습니다.
이것은 줄에 대한 어른과 어린이의 다른 시각이기도 합니다. 어린이들에게 줄이란 줄넘기 같은 놀이 그 자체지만, 어른들에게 줄이란 사회시스템에서 조금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한 생계의 도구 같은 역할을 하지요. 아이는 탯줄이 끊어졌을 때, “이제 자유!”라고 소리를 칩니다. 어른은 “사는 게 줄타기랑 비슷해”라고 말합니다.
시국이 밝지 않아도 아이들이 올라선 줄은 언제나 즐겁고 신이 나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의 말을 소중하게 여기는 어른으로 살겠다고 다짐하며 오늘도 아!프!리카~! 카!리!프아~! 정쿵!
[사진제공: 아시테지 코리아_Fotobee_양동민]
광대생각 <줄 타는 아이와 아프리카도마뱀>
- 일자
- 2022.1.13 ~ 2022.1.16
- 장소
-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 작가
- 조정일
- 연출
- 선영욱
- 출연
- 안대천, 민현기, 김용훈, 김정운, 김도혜, 이강산, 이강우
- 타악
- 박다열
- 가야금
- 박신혜
- 콘트라베이스
- 금필웅
- 해금
- 장소연
- 안무
- 정윤
- 음악감독
- 조은영
- 무대미술 및 조명디자인
- 김려원
- 의상디자인
- 채승희
- 인형디자인
- 음대진
- 무대감독
- 이뮥수
- 음향감독
- 정새롬
- 기획
- 김수연, 손다은, 장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