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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극 낭독공연 <나는 거위>

거위가 된 팔, 혹은 수용되지 못한 감정들에 대하여

장영
213호 2022.01.27
수용되지 못한 감정들은 어디로 가는가. 왠지 ‘어른스러운’ 이 아이, 원하지 않는 생일 선물을 받고도 부모를 위해 기쁜 척 ‘서비스’를 할 수 있다는 이 아이가, 너무 아파 억압해버린 고통의 감정들은 어디로 가는가.

나의 팔이 거위가 되었다

수용되지 못한 감정들은 어디로 가는가. 왠지 ‘어른스러운’ 이 아이, 원하지 않는 생일 선물을 받고도 부모를 위해 기쁜 척 ‘서비스’를 할 수 있다는 이 아이가, 너무 아파 억압해버린 고통의 감정들은 어디로 가는가. 이 극은 엄마라는 애착 대상을 사고처럼 상실해버린 이후, 엄마와 연관된 고통의 감정들을 자신의 한쪽 팔에 저장해버린 한 아이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나’의 생일, 엄마는 불행하다고 말한다. ‘나’는 엄마가 행복해지고 싶다는 말에, 당연히 찬성한다. 엄마는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라고, 자신은 이제 행복하고 싶다고 말하며 떠난다. 어른이 되면 다 이해할 거라고. 아빠는 우리 셋이 행복해질 수 있는 계획이 있다고 뒤늦게 외치지만, 이미 너무 오래 불행했던 엄마는 그 계획이 더는 궁금하지 않다. 작품 초반, 엄마 아빠의 대사와 반복적인 움직임을 통해 함축적으로 드러나는 두 사람의 관계성은, 사실 이 둘을 지켜보는 아이의 감정을 중심으로 표현된 것처럼 느껴진다.
꿈과 계획이 있다는 아빠는 무심하고 바쁘고, 엄마는 갇힌 채 불행하다. 아빠는 거위는 날 수 없다고 말하고, ‘엄마’라는 이름에 갇힌 엄마는 이제 날고 싶다. 엄마의 슬픔을 읽는 아이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엄마의 구두에 거위의 발을 신겨 놓는다. 앞뒤로 반복되는 움직임만 하는 부모들 사이에, 외로운 섬처럼 고립된 채, 부모의 일방적인 움직임을 지켜보고만 있는 아이가 있다. 아이의 체념적 감정이 이 장면에서 매우 명확하게 드러난다. 나름의 판단 능력을 지닌 존재, 부모의 감정을 읽을 줄 알고 또한 자신의 감정도 느낄 수 있는 한 명의 인격체는, 존재감이 지워져 버린 유령처럼, 자신이 인격체가 아닌 것처럼 느끼고 있다. 아이는 말한다.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다. 난 조금 화가 난다’. ‘아무도 내 말을 듣지 않는다. 나는 화가 난다’. 해당 장면의 놀라운 움직임 운용은, 아이의 혼란과 슬픔의 순간을 정확히 그려낸다. 이 장면은 아이의 고통스러운 감정 전체를 대변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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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감정을 앞에 두겠다는, 청소년극의 의지

극 전반에서 엄마 아빠가 ‘이런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음’을 중점적으로 변호하지 않는다는 점, 부모의 서사로 인해 아이의 서사가 지워져 버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연극은 청소년극으로서 누구의 목소리를 들려줄지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선택하는 것처럼 보인다. 부모의 이야기들을 적극적으로 펼쳐내, 이들이 결코 ‘나쁜 부모’가 아님을 대변하거나 힘든 어른들의 감정을 읽고 이해하라는 메시지를 앞세우지 않는다는 점이 청소년극으로서 이 연극이 갖는 미덕처럼 느껴졌다.
엄마가 사랑에 빠지는 건 나쁜 게 아니지만, 그런데 나는 너무 화가 난다는 아이의 말. 아빠를 싫어하지만, 아빠가 아프길 원하지는 않는다는 말. (엄마 역할의 배우가 연기하고 있는) ‘거위’가 자신을 고통스럽게 할지라도, 설사 시한부로 만들어 죽이더라도, 거위를 놓아줄 수는 없다며 거위와 자신의 몸을 붕대로 묶는 아이의 절박한 행위들 모두 일관되게 아이의 솔직한 감정을 중심으로 드러난다. 뒤로 밀려나 있는 아이의 감정을 맨 앞에 두겠다는 작가적인 의도, 또한 연출적 의지가 일관되게 극을 관통하고 있다. 어른들의 사정이 어떻든, 부모 두 사람이 아이를 고립시킨 채 어떤 합의도 이뤄내지 못하는 동안, 때때로 서로를 공격하고 무서워하는 동안, 이 아이는 집안의 분위기를 온몸으로 흡수하며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 아이의 마음을 묻는, 특히 부모의 소통 불능 상황이나 헤어짐에 대해 아이의 의견을 묻는 어른은 없었다. 보호자인 부모의 관계가 한순간 와해되고, 사랑하는 엄마가 자신의 생일날 자신을 떠나고, 친하지 않았던 아빠와 단둘이 남게 된다는 사건은, 이별을 준비하지 못한 아이에게는 버려짐의 사건이다. 삶의 재난과도 같은 사건 이후, 한순간 거위가 되어버린 아이의 팔, 이는 누적되어 온 아이의 불안과 고통의 감정들이 만들어 낸 것이다. 동시에 아직 떠나보내지 못한 엄마라는 대상이, 아이의 몸에 합체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아이의 팔에서 돋아난 거위는, 엄마 역할을 맡았던 배우가 연기한다. 아이는 거위가 된 자신의 팔을 마치 꿈인 듯 바라보는 첫 아침에, 하늘의 기러기 떼를 바라본다. 이 순간, 아이는 거위가 아이의 몸에 붙어있기 때문에 기러기 떼를 따라 날 수 없다는 사실을 이미 인지하고 있다. 이미 너무 오래 엄마의 고통을 지켜봐 온 아이는, 아직 놓아줄 수 없는 엄마를 이토록 아프게 이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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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으로서의 거위, 혹은 아이의 부정적 감정들

하지만 다음 장면에서, 이 모든 것이 꿈이 아님을 인지한 아이는 곧장 자신의 팔에서 태어난 거위의 존재를 무서워한다. 거위는 아이 스스로에게도 매우 당혹스럽고 두려운 존재인 것이다. 또한 거위는 아빠에게 발견된 즉시, 치료해야 할 ‘병’으로 취급된다. 아빠는 곧장 앰뷸런스를 부르고, 아이는 자기를 괴롭히는 간호사와 의사에게 ‘치료’를 받는다. 이때 치료자들의 역할은 ‘아빠’를 연기한 배우가 맡는다. ‘병’에 걸린 아이는 봄까지밖에 살 수 없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슬퍼진 아빠는 아이를 ‘공주님’이라 부르며 아이에게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하지만, 물건을 쓰고 나서 잘 치우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 엄마랑 똑같다’라는 말을 뱉는다. 이 순간 아이는 우엑-하며 ‘구토놀이’를 하고, 아빠는 또다시 아이를 무서워한다. 아이의 부정적인 감정이나 ‘거위’의 존재는 아빠에게 괴물처럼 두렵게만 여겨진다. 그러나 왜 부정적인 감정들과 상실된 엄마라는 대상이 결합되어 아이의 몸에서 ‘거위’라는 존재로 다시 태어났는지, 왜 거위를 친구로 대하며, 자신의 몸에 묶어두고 끝없이 대화하는지에 대한 아이의 의도를 절박하게 살필 필요가 있다. 아이의 ‘거위’는 떠난 엄마를 자신의 몸에 남겨두는 역할을 함과 동시에, 아이의 부정적 감정을 아이 스스로 마주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한다. 이 감정들은 육체를 가진 거위가 됨으로써, 아빠에게도 최초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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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대를 풀기로 선택하다

낭독극이지만 보면대를 두고 앉아서 희곡을 읽는 형태가 아닌, 움직임으로 가득한 공연이었다. 섬세한 지문들은 배우들의 움직임과 부드럽게 결합하였다. ‘낭독’이 아주 재미있는 연극적 형식으로 선택된 것처럼 느껴졌다. 낭독극으로서 지문을 읽는 형식을 활용하며, ‘나는’으로 시작되는 아이의 말을 아빠 역할의 배우가 발화했던 지점도 흥미로웠다. 이 지점에서 어쩌면 이 무대 위의 인물들과 세계가, 팔이 거위가 되어 버린 아이가 해석하고 창조해내는 세계라는 것을 암시하는 듯도 했다. 무대 위의 연주자가 아이의 서사를 따라가며 연주하고, 거위는 아이가 솔직한 감정을 꺼내도록 유도하는 친구가 되어준다. 날것의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는 거위에게,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분별하지 않는 법을 배운다. 극의 마지막, 아이는 결국 거위이자, 상실한 대상인 엄마와 무대 위에서 대화하면서 마침내 거위와 자신의 몸을 묶은 붕대를 풀기로 선택한다. 아이는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애착과 화를 표현하기도 한 이후에 마침내 거위를 떠나보내기로 한다. 엄마가 고유한 욕망을 지닌 ‘완전한 타자’임을, 오랜 슬픔의 시간 끝에 수용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로써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억압되어 거위가 되어버린 자신의 부정적 감정들에서도 분리된다. 슬픈 아이는, 회복하기 위해 어른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던 애도의 의식을 스스로 해내고 있는 것 같았다. 작품의 끝에서, 거위를 날려 보내는 아이는 조금 홀가분한 마음으로 ‘나의 팔’을 되찾으며 회복한다.
누구나 인생에 한 번쯤은, 팔이 거위로 변하는 순간이 찾아올지 모른다. 거위와 친구가 될 수밖에 없는 시간을 용인하고, 모든 감정을 있는 그대로 안아준다면. 혹 우리가 누군가의 거위를 목격한다 해도, 판단하고 혐오하지 않는다면. 거위는 제 역할을 마친 뒤 떠나갈 것이다. 말하지 못한 슬픔에는 언제나 친구가 필요하다. 회복하는 마음에게도 언제나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가 거위를 끌어안을 때, 거위는 나의 감정이다. 그렇다면 거위는 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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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어느날 예술하기]

청소년극 낭독공연 <나는 거위>
일자
2022.1.20 ~ 1.22

장소
신촌문화발전소

작
문정연
연출
최여림
배우
김승언, 김현재, 이미라
조연출
김현빈
음악감독
심은용
움직임감독
권영호
조명디자인
김용호
의상 및 소품디자인
강정화
예술감독
이소선, 청소년자문단
홍보물디자인
영호공작실
PD
김윤미
관련정보
https://playticket.co.kr/nav/detail.html?idx=16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