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뱀꼬리 <컬러보이>
맞다, 아닌 건 끝까지 아닌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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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림없이 질 것 같은 싸움이라도, 끝까지 싸워야 한다고, 할머니는 이야기했었다.
― 마르탱 파주 글, 배형은 옮김, 『컬러보이』, 톡, 2010, 65쪽
제목이 참 예쁘다. ‘컬러보이’라니. 포스터 이미지는 더더욱 예쁘다. 크레파스의 울퉁불퉁함이 살아있는 알록달록한 색채의 그림이 몹시 인상적이다. 그 때문인지 ‘분명 이 작품은 귀엽고 예쁜, 매우 따뜻한 작품일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했다. 그런데 실제로 극장에서 마주한 <컬러보이>는 제목도, 포스터 이미지도 모두 반전이었다. 귀엽고 예쁘고 따뜻한 인물이 주인공이지만 그 주인공을 따라가는 동안 서늘하고 안타깝고 그래서 정신이 번쩍 나는 작품이었다.
<컬러보이>는 마르탱 파주의 동명 소설을 김태령 연출이 연출한 작품이다. 포스터에 ‘중장기창작지원사업’ 표기가 되어 있고 공연을 시작할 때 극장과 무대 및 의상에 대해 친절히 설명하고 있기에 배리어프리를 다각적으로 시도하고 있는 래빗홀씨어터의 작품이라고 여겼는데, 자세히 보니 도마뱀꼬리와 래빗홀씨어터의 공동제작이다. 래빗홀씨어터는 신생 단체의 역량을 펼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고 그 위에 도마뱀꼬리가 자신의 컬러를 한껏 빛낸 작품이었다.
다양한 반전을 과장하지 않기, 감정 과잉을 절제하기
<컬러보이>는 뻔하게 예상되는 관습적 상황을 번번이 빗나간다. 우선 실제로 ‘컬러보이’ 소년이 등장한다. 온몸에 다양한 색깔의 반점들이 알록달록해서 ‘무지개소년’으로도 불리는 소년이다. 사람들은 그 색채에 감탄했고 그래서 이 소년-시몽을 좋아하게 된다. 학교는 (다양한 색을 갖고 있는) 시몽 때문에 활기를 띠게 되고 교장은 시몽을 학교의 마스코트로 활용하고자 한다. 이런 시몽을 흥미롭게 바라본 클레망스는 왜 그가 몸에 여러 색깔을 갖고 있는지 호기심이 생겼고 그래서 시몽의 집을 찾아가 색깔의 실체를 알게 된다. 시몽 몸의 수많은 색깔 반점은 부모에게 맞아서 생긴 멍이었다. 사람들을 매혹시킨 반점이 폭력의 결과물이라는 이것이 첫 번째 놀라운 반전이다. 적어도 클레망스는 더 이상 시몽의 반점을 아름답다고 찬미할 수 없게 되었다.
클레망스는 시몽에게, 시몽 부모에게, 그리고 교장과 경찰에게 자신이 목격한 사실을 얘기하고 도움을 요청한다. 그러나 모두들 클레망스의 말을 믿지도, 믿으려 하지도 않았으며 시몽의 부모는 끝내 자신들의 행위를 부정했고 피해자인 시몽 또한 자신이 매 맞는 사실이 알려지길 거부했다. 여기까지는 진실을 묵과하는 현실의 모습이기에 익숙한 장면이지만, 그 사이 반전이 일어나는데 바로 시몽의 죽음이다. 문제 해결을 가장 적극적으로 수행할 것만 같았던 피해자 시몽이 소멸했다는 것이 두 번째 반전이다. 이제 이 문제를, 가정폭력을 누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가 큰 숙제로 남겨진다.
세 번째 반전은 피해 당사자인 시몽의 죽음 이후 해결될 것 같지 않았던 시몽 부모의 처벌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클레망스는 12살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무언가를 해결하기에는 힘에 부친다. 시몽 부모의 죄에 대해 적당한 벌이 내려져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그것을 현실화하기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 그런데 그들에 대한 단죄가 이뤄진다. 클레망스의 가정교사인 오스카(아주 오래된 유령이자 그린란드 대사)의 도움으로 그린란드 수상의 힘을 빌렸기 때문이다. 직접적이진 않아도, 구체적으로 어떤 형벌인지는 알 수 없어도, 적어도 감옥에 감금된 시몽의 부모는 죗값을 치르게 된 것이다.
<컬러보이>가 재미난 것은 이러한 중요한 반전들을 절대로 과장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시몽이 부모에게 매 맞는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또한 시몽이 어떻게 죽었는지가 자세하지 않다. 시몽 부모의 납치는 비교적 상세한 편이지만 그렇다고 통쾌한 해피엔딩이 된 것은 아니다. 거기에 인물들의 감정을 절대로 과잉으로 내몰지 않았다는 점도 주목된다. 시몽은 물론 클레망스와 오스카 등 주요 인물들은 견고한 폭력, 쉽게 바뀌지 않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었지만 결코 감정에 집중되지 않았다. 이처럼 과장하지 않고 과잉으로 흐르지 않게 절제한 것은 실상 원작의 특징이기도 하다. <컬러보이> 제작진은 각색과정에서 욕심을 부릴만한 여지가 많았음에도 원작을 철저히 따르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반전에는 힘을 빼고 감정은 과하지 않게 절제하면서 관객들에게 원작의 의미와 주제를 묵직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을 충실히 수행한 것이다.
‘텔러’의 설정과 효용에 대한 고민
관객들이 클레망스가 겪은 일들을 마치 관찰하듯이 따라가게 된 주요한 장치는 ‘텔러(teller)’로 명명된 존재들이다. 네 명의 배우 모두가 텔러의 역할을 맡았다. 물론 클레망스와 오스카처럼 고정된 역할인 경우는 텔러라는 명칭을 쓰진 않지만, 그들이 하는 대사들은 텔러의 대사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존의 해설자와는 다른 역할을 부여한다는 의도 때문에 텔러라는 명칭을 사용했는데, 이 텔러가 연극적 측면에서 그 효용성이 얼마나 큰가, 그리고 효과적으로 잘 활용했는가에 대해서는 좀 더 진지하게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예상을 빗나가는 반전에 과잉되지 않은 정서로 관객을 이끌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연은 전반적으로 밋밋했고 단조로웠다. 분명 배우들이 열심히 연기하고 무대 위의 여러 가지가 적절하게 기능했지만 마치 낭독극을 보는 듯, 혹은 오디오북을 듣는 듯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중요한 이유는 텔러들의 대사가 구어체나 일상어가 아닌 문장이었기 때문이다. 문장으로 이어진 대사들은 ‘전달’에 특화되어 있다. 관객들은 몰입하지 않고 계속 문장을 통해 보고받고 판단한다. 그런 점에서 문장을 대사로 쓰는 것은 특별한 의도가 있을 때 매우 유효하다. 그런데 이 작품은 많은 대사가 문장이기 때문에 ‘전달’과 ‘재현’의 경계가 모호해졌으며 텔러와 특정 인물이 구분되지 않았고 그로 인해 작품 전체가 리듬감이나 긴장, 이완 없이 밋밋하게 전개되었다.
소설을 각색했기 때문에, 원작의 의도에 충실하고자 했기 때문에 특별하게 설정한 텔러는 일단 기능적인 측면에서는 유효했다. 관객들은 적어도 이 작품이 어떤 것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정확하게 전달받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좀 더 영리하게 텔러를 운용했다면, 텔러의 기능을 명료하게 정리했다면 작품은 보다 더 입체적이었을 것이다. 클레망스나 오스카가 자신을 객관화시킨 대사, 가령 “클레망스는 같은 반 친구들의 놀이에 끼고 싶지 않았다”와 같은 대사들이 클레망스가 아닌 텔러의 대사였다면 클레망스와 오스카 같은 멋진 인물들에 대해 훨씬 적극적으로 마음을 붙였을 것이다. 인물에 몰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작품 전체를 건조하게 볼 수는 있었지만, 심신이 밝고 건강해서 사랑스러운 클레망스, 차가우면서도 따뜻한 유령 오스카의 매력을 발견하기 어려웠던 것은 큰 아쉬움이다. 텔러는 분명 좋은 설정이다. 혹시 다시 공연할 기회가 생긴다면 텔러의 장점을 살리고 강조하는 방법을 조금 더 면밀히 고민하기를 제안해본다.
좋은 작품을 선택하는 것도 능력이고 재능이다. 연극적으로 더 만들어낼 수 있는 부분들 때문에 조금 아쉽긴 하지만, <컬러보이>는 관객들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지는 좋은 작품이었고 이 작품을 선택한 도마뱀꼬리의 안목은 좋은 감각이다. 김태령 연출과 네 명의 배우는 매 맞는 아이와 그 진실을 직면한 아이를 통해 관객에게 차분하면서도 진지하게 말을 걸어왔다.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고통이 직접적으로 다가왔을 때 시몽처럼 다른 방식으로 내면화할 것인가요? 아니면 클레망스처럼 어떻게든 옳은 길을 고민하고 찾아낼 것인가요? 클레망스는 이웃 할머니가 한 말, “틀림없이 질 것 같은 싸움이라도, 끝까지 싸워야 한다”라는 말을 실천했다. 맞다, 아닌 건 끝까지 아닌 거다. 질 것 같아도 아니라고 말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 12세 소녀 클레망스는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대충 덮어두고 넘어가는 관성에 젖어있는 우리들에게 알록달록한 색깔의 레이저광선을 쐈다. 아름다운 색깔만큼 아프다. 도마뱀꼬리는 그렇게 아픈 꼬리를 무대 위에 남겼다.
[사진제공: 도마뱀꼬리 / ⓒ조상백]
- 일자
- 2022.1.21 ~ 1.30
- 장소
-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 원작
- 마르탱 파주
- 연출
- 김태령
- 출연
- 김혜수, 장우영, 정지아, 한새롬
- 목소리출연
- 고용선
- 무대
- 유다미
- 조명
- 김지유
- 의상
- 김미나
- 음악
- 박소연
- 음향
- 임서진
- 분장
- 장경숙
- 자문
- 윤혜석
- 오퍼레이팅
- 양재범, 이은채
- 진행
- 심지후, 전서아
- 그래픽
- 황가림
- 사진
- 조상백
- 영상
- 강수연
- 기획
- 나희경
- 제작
- 도마뱀꼬리, 래빗홀씨어터
- 협력
- 플레이포라이프 & 페미씨어터
- 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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