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서울괴담 <디아스포라 기행>
영원불사의 존재는 ‘국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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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예매를 하고 천장산우화극장을 여러 번 발음해보았다. ‘하늘이 숨겨놓은 터’라는 뜻을 담고 있는 천장산 숲길은 블로거들에게는 꽤 유명한 도심의 숲이었다. 지역커뮤니티 월장석친구들과 성북문화재단이 공동운영하는 성북정보도서관 지하에 위치한 마을극장. 극단 서울괴담과 성북문화재단이 공동으로 제작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후원한 이 연극은 서경식의 원작을 바탕으로 극단 서울괴담 멤버들이 오랫동안 공동의 리서치와 스터디 과정을 거쳐 공연으로 창작하기에 이르렀다.
6명의 배우들은 돌아가면서 안내자 ‘S’를 맡고, 2명의 수어통역사들도 배우들과 함께 무대를 활보한다. 배우들은 실시간으로 무대 뒤편에 영사되는 카메라를 조작하고, 오브제를 이용하고, 여러 겹의 장소를 직접 만들어내는 움직임을 선보일 뿐만 아니라, 인형과 슈트케이스를 통해서 이동을 형상화한다. 이 모든 것들이 이 극의 정서를 만든다. 때로 지연이 일어나고, 카메라가 비추는 프레임은 조작하는 사람에 따라 매번 달라진다. 매끄럽지 않은 진행, 장면과 장면이 연결되는 솔기들을 노출하면서 관객에게 ‘거리두기’를 요청하는 것으로 느꼈다.
연극은 모어(母語)와 모국어(母國語)의 차이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모어는 태어나면서 익힌 말, 모국어는 태어난 나라의 국어. 재일조선인에게 모어는 일본어, 모국어는 조선어가 된다. 일제에 의해서 모국어를 강제로 빼앗겼다는 주장을 통해서 재일조선인 2세에게 식민지배가 어떻게 몸에 새겨졌는지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문제는 남북이 분단된 조선이기에 모국어를 담지하는 모국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중적인 난관에 부딪힌다는 것이다. 조선적을 가지고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무국적 상태의 재일조선인이 처한 조건을 이것보다 더 신체화시켜 설명할 수 있을까. 한편으로는 많은 디아스포라들에게 모어와 모국어의 관계가 동일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또한 감지한다.
이동권의 제한과 보호의 철회
이렇게 태어난 이들은 이동의 어려움을 겪는다. ‘S’의 조부모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이주를 했다. 일본 국적의 소지자로서 이주했던 그는 일본의 패망 후 갑자기 외국인이 되어 조선으로 돌아갔다. 일본에 남은 ‘S’의 아버지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이후 돌아가지 못하고 타지의 땅에서 생을 마감한다. 삼 형제 중에 첫째와 둘째는 한국으로 유학을 갔지만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투옥된 상황에서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S’는 아버지의 선택에 따라 한국국적을 가지게 되었지만, 여전히 조선적을 가지고 있는 재일조선인들이 존재하고 이들은 국경을 넘을 때마다 ‘보호자’ 없음을 자각한다. 공권력은 국경을 넘을 때마다 혹은 그저 거리에 서 있을 때조차도 누군가의 신원과 정체를 밝힐 것을 요구할 수 있고 적법한 존재인지를 심문한다. 이럴 때 문제가 되는 존재들은 스스로 몸을 숨기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고 하고, 부당한 일을 감내하도록 걸음걸이, 말투, 눈빛을 조정한다. 물론 그 보호자는 ‘보호의 대상’에게도 그책임을 동등하게 발휘하지 않는다. 사상이 불순한 자, 노동력이 취약한 자, 성규범과 가족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자들은 형사범이 아니라고 해도 감금되거나 배제된다.
이렇게 태어난 이들은 어디에서 죽을 것인가도 문제가 된다. 강제된 삶의 장소는 죽음의 장소에도 영향을 미친다. 위패 없이 일본에서 치러진 어머니의 장례 이야기, ‘S’가 서울 숙소에 왔을 때 비 오는 날 창밖에 당도했던 아버지 유령의 재현을 통해서 평화 속에 잠드는 것이 디아스포라에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려준다. ‘S’는 유럽의 호텔에서 죽음에 대해서 생각한다. “‘누군가 뒷머리카락을 잡아당긴다’는 말이 있지만, 내 뒷머리를 이승으로 잡아끄는 힘은 너무 약하다. 이대로 죽는다고 해도 별로 달라질 것은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왜 계속 살아야만 하는가. […] 나를 이 세상에 잡아매두는 끈들은 그 어떤 것도 인공적이고 불투명한 것이다. 내가 죽음을 향해 몸을 내밀었을 때 그 끈들이 나를 꽉 잡아줄 것인가. 그럴 것 같지 않다. 내 쪽에서 손에 쥐고 있는 끈을 살짝 놓으면 그걸로 그만일 것이다. 외국에 와 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아니다. 외국에 있기에 평소 막연히 느끼고 있던 생각들이 한층 뚜렷이 다가오는 것뿐이다. 그런 감정의 모습을 나는 디아스포라적이라고 생각한다.” 서경식은 “뒷머리를 잡아채 이편으로 끌어당기는 힘 중 하나는, 의심할 바 없이 ‘국민’이라는 관념”1) 이라고 쓴다.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 질문하는 것은 예술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겠지만 국민이라는 관념이 얼마나 소속감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이 소속감 부재의 관념은 자살을 생각하고 실행하는 사람들이 가진 공통적인 특징이다. 나라와 가족이 자신을 버렸고, 자신이 끈을 놓으면 나를 잡아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감각.
극에 등장하는 또 다른 인물인 조미희.2) 그는 부산에서 고아로 발견되어 벨기에로 입양된 이후, 양부모에게 독립하고 캐나다 몬트리올로 건너가 예술가로 살아간다. 벨기에에서 처음으로 한국인 입양인 모임을 만들었고, 성인이 된 후 한국에서 13년간 살면서 아버지가 일본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 예술가로 살아가기 위해 애썼지만 퀴어-간성인으로 정체화한 이에게 한국은 매우 적대적이었다고 회고한다.3) 어디서 안전함을 느낄까. 연극에서는 홈, 가족, 국가의 개념이 아니라 내가 마련한 집이라고, 양부모 집을 나와서 처음으로 마련한 독립된 집에서 안전하다는 감정을 느꼈다고 했다. 누군가 한 사람을 강제로 디아스포라로 만드는 해외입양이라는 제도. 이 제도는 한 국가 내에서 ‘혼혈인’, ‘장애인’ 등 타자를 축출하고, 가족질서 유지를 위해 여성의 성을 통제하며, 그에 기반해 이윤을 얻어내는 과정이다. 키무라 별-나탈리 르무안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디아스포라를 생산하는 국가 내외부의 젠더와 가족 질서에 대한 조건을 함께 생각해볼 수 있다.
이후의 세계를 상상한다는 것
극단 서울괴담은 “경계의 안과 밖 어느 한쪽이 아닌 사이 공간(in-between space)의 문제를 실존적으로 고민할 수밖에 없는 ‘다른’ 존재들, 즉 디아스포라(diaspora)의 이야기를 통해 근대 국민국가 이후의 세계를 상상해보고자 한다”라고 밝힌다. 사실 이 연극을 관람한다고 해서 국민국가 이후의 세계를 상상해보는 일에 동참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 연극을 만들기 위해서 거쳐온 과정들을 연극이 상연되는 시공간에서 가늠해보면서, 연극이 내 몸을 통과한 이후 어떤 태도로 세계를 맞이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가지고 돌아갈 수 있다. 나의 불/안정한 삶은 과연 '국민'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서경식은 그의 책 『디아스포라 기행』에서 “근대의 계몽주의, 합리주의는 그 이전의 종교적 세계관을 퇴각시켰지만, 죽음과 불사를 둘러싼 인간의 욕망을 받아들여 해결할 능력은 없었다. […] 왜 검은 피부로 태어났는가? 왜 여자로 태어났는가? 왜 재일조선인으로 태어났는가? ‘생의 우연성’과 연관되는 이런 물음에 대한 답을 근대 이후의 합리주의적 사상은 갖고 있지 않다. […] 종교 사상도 이미 의지할 게 못 된다면, 인간은 무엇에 의지해 죽음이라는 궁극적인 숙명성을 견뎌내야 하는가. 거기서 영원불사의 존재로서의 ‘국민’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4)라고 말했다.
2022년 디아스포라 기행을 한다는 것에 대해 질문해보자. 코로나 19로 인해서 이동은 예외적이고 특권적인 것이 되었다. 전쟁과 내전, 재난과 기후위기로 인해서 발생하는 이재민과 난민을 어떻게 환영하고 함께 살 것인지 미룰 수 없는 시대가 왔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나는 왜 00으로 태어났는가’에 대한 질문을 국가에 던지고, 국가에게 내 존재의 정당성을 보증받아 보호를 요구하면서 타자를 차별하고 혐오해왔던 지금까지의 질서가 여전히 유효한가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다. 지금 살던 곳을 떠나는 사람들은, 국경을 넘는 사람들은, 질서를 넘는 사람들은 국가가 더 이상 우리의 안전과 정당성을 보증해주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문제는 그것이 너무나 큰 고통이고 생존의 위협이고 빈곤의 지속이라는 데 있다. 이제 우리가 구체적으로 상상해야 하는 것은 ‘사이 공간’에서 살아가고 오가는 사람들이 생존하고 좀 더 살만한 조건을 꾸릴 수 있는 방법이다. 국가가 실제로 보호했던 것은 국민이라는 관념이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 유지를 위한 국경 시스템이었다는 자각이 근대 이후의 세계를 상상하도록 이끄는 통로가 아닐까. 재일조선인이라는 이유로 같은 일을 해도 차별받고, 직업이 제한되며, 가장 가난한 일본인조차 혐오와 차별을 일삼았던 그 지배의 메커니즘은 지금도 여전히 변형을 거듭하며 불멸의 의지를 다진다. 지금 고통의 연대를 위한 공통 감각은 여기에서부터 다져나가야 하지 않을까.
[사진 제공: ⓒ윤헌태]
- 일자
- 2022.3.2 ~ 3.11
- 장소
- 천장산우화극장
- 원작
- 서경식
- 구성·연출
- 유영봉
- 구성·드라마트루기
- 이종찬
- 출연
- 공하성, 김성환, 오선아, 최지현, 이진화, 김향수리
- 미술
- 이민영
- 조명
- 김성구
- 사운드디자인
- 정혜수
- 음향감독
- 이현석
- 음악
- 이진화
- 영상
- 정길우
- 기록
- 허혜윤
- 조연출
- 유명훈
- 무대감독
- 임석현
- 영상스탭
- 박종우
- 영상오퍼레이터
- 손경빈
- 음향오퍼레이터
- 박민희
- 조명오퍼레이터
- 권서령
- 수어통역
- 김홍남,최황순
- 프로듀서
- 이정은
- 기획·홍보·진행
- 성북문화재단, 코르코르디움
- 제작
- 극단 서울괴담, 성북문화재단
-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서경식, 『디아스포라 기행』, 김혜신 옮김, 돌베개, 2006, 55쪽.
- 그는 현재 자신을 키무라 별-나탈리 르무안 kimura byol-nathalie lemoine이라고 부른다. 『디아스포라 기행』에는 ‘미희 타날리 르무안느’라고 소개되어있다. 위의 책, 224-225쪽.
- 자세한 내용은 최근의 인터뷰가 담긴 다음의 기사를 참고할 수 있다. Samuel Larochelle, 「KIMURA BYOL-NATHALIE LEMOINE: IN A WORLD WHERE EVERYTHING ‘INTERSEX’」, 『CANADA MEDIA FUND』, 2020.10.27.
https://cmf-fmc.ca/now-next/articles/kimura-byol-nathalie-lemoine-in-a-world-where-everything-intersex/ - 위의 책, 59-6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