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아카이브 <노벰버 랩: 여성괴물 인큐베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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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부위 골격계를 뜻하는 ‘가슴우리’에서 나온 ‘여성괴물’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연출가 김진아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지금아카이브가 2021년 하반기에 추진한 실험실 [노벰버 랩 November Lab]에서는, 다섯 명의 창작자들이 워크숍을 통해 자신 안에서 여성괴물을 탐색하는 {가슴우리의 (m)}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워크숍을 통해 스스로의 여성괴물에 대한 레퍼런스를 조사하고 공유하며, 실험가이드에 따른 과정을 공유해온 결과물이 지난 2월 말 노벰버 랩 홈페이지1)에 공개되었다.
작가, 연출가, 배우, 편집자, 기획자 등으로 활동하는 이들 각자가 만들어낸 괴물 (m)은 “팔 다리를 통해 행해지지 않고, 머리로 이해되지 않고, 입을 거쳐 말로 나아가지 않고, 창자를 거쳐 소화되지도 않고 몸통에 남아있는”2) 가슴우리의 무언가로부터 파생된 존재들이다. 이 실험의 흥미로운 점은 각자가 수행해온 작업 방식과 언어에 따라서도 (m)의 구조와 형태, 그리고 활동성이 구분된다는 것이다. 다섯 명의 창작자가 실험실에서 만들어낸 괴물들의 모습을 조심스럽게 들여다보자.
LAB #101 길혜연
어떤 존재의 몸으로 들어갈 때 그 몸은 세계가 된다. (공간화)
그 몸주의 기억과 상상, 경험으로 다져진 하나의 나라, 세계, 행성 같은 것. (m)은 그 세계 안에 자신의 조각을 남긴다3)
작가 길혜연의 (m)은 타인의 몸에 침투하려는 신체의 일부인 (m)1 ‘제야’와 자신의 이름 외에 어느 것도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여기는 (m)2 ‘우나’이다. 끊임없이 대상화되는 여성의 몸 개념을 인식하고 이를 탈피하려고 시도하는 (m)은 죽음과 재탄생의 과정을 통해 몸의 경계를 해체하고자 하는 욕망을 드러낸다. 여성의 신체를 조각조각 훼손하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퍼포먼스를 비롯하여, 여성이 자신의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변주함으로써 신체적 경계 짓기를 탈피하려는 시도 등을 레퍼런스로 삼아 길혜연은 창작자들과 함께 자신의 괴물 제야와 우나를 “배양했다”라고 표현한다. 앞으로 (m)이 자신의 몸주를 찾게 된다면, 이 괴물이 경계를 허물고 살아 숨 쉬게 될 세계에서는 어떤 장면들이 펼쳐질지 궁금해진다.
LAB #102 김진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우울하다. […] 그들 중 정말 잘 살아내고 있는 것 같던 사람이 떠나기도 한다. 서로를 치유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틀어지기도 한다. […] 나의 괴물, “정원”은 그런 경험들로부터 돋아나고 있다. 서로를 돌보고 치유하고 치유에 실패하고 오히려 더 아파지기도 하는 경험을 거쳐 살아남은 네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들이 살아있는 결말이면 된다고 생각한다.4)
노벰버 랩을 기획한 연출가 김진아의 괴물(들)은 서로의 결함을 바탕으로 곁을 떠나지 못하는 관계로 이루어진 ‘공의존 공동체’인 “정원”이다. 네 명의 괴물이 서로의 존재를 숭배하고 혐오하고 배회하면서 관계를 맺는다. 김진아는 조만간 자신의 (m) 정원을 무대로 불러내어, 여성들이 느끼는 두려움과 혐오, 말해지기 어려운 여성우울증의 모호하고 다층적인 면을 연극 작업으로 풀어낼 계획이다.
김진아는 실험을 시작하는 과정에서 가수 구하라의 죽음과 그로부터 파생된 생각들이 떠올랐는데, 스스로 “나는 왜 타인에 대한 관심에서만 동력을 얻는가?”라는 질문이 생겼다고 한다. 김진아는 여성이 상대적으로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존재의 공포를 은연중에 느끼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에 주목하며 여성우울증의 특징과 연관 짓기를 시도한다. 이러한 배경에서 탄생한 (m)이 의존적 관계망 속에서 스스로의 존재를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을지, 김진아가 만들어나갈 정원의 풍경을 상상해본다.
LAB #103 배선희
선언 / 이 괴물은 지금부터 나의 새로운 정체성이다. […] 여러 종들이 모여 유전적 변이를 일으켜 만들어진 / ‘나’는 덩굴식물인간이라 불릴 것이며 / 영원히 충족되지 않을 충동만이 / ‘우리’의 외부와 내부를 빠르고 소란스럽게 드나들 것이다.5)
지금아카이브의 배우 배선희가 탄생시킨 (m)은 혼종변이체이자 ‘덩굴식물인간’이라는 이름을 가진 “반려괴물”이다. 배선희는 (m)을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으로 선언한다. 덩굴식물인간의 기생종들은 고양이, 지렁이, 죽은 금붕어, 여러 할머니(들), 수치심과 모멸감을 느끼게 했던 손과 페니스, 각종 곰팡이(들), 내장 속 미생물과 박테리아 등등으로 나열된다. 이들은 (m)의 몸에 깃들어 불협화음으로 노래한다.
배선희는 스스로가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안정적으로 뿌리내려 살기가 불가능하다고 느끼면서, 이러한 감정으로 인해 역설적으로 생에 대한 집착과 애착이 강화되었다고 해석한다. ‘나’는 (m)을 위한 생태계로서 존재하며, 끝내 자신의 죽음 이후에도 (m)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남을 것임을 예견한다. 이후에 배선희의 괴물 군집은 합창을 통해 군중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올해에도 업데이트될 다양한 기생종들이 함께 모여 힘껏 노래할 불협화음을 언젠가는 직접 들을 수 있기를.
LAB #104 사랑해
늘 사람들이 나를 걱정하길 바랐다. 나는 연민 받을 때 나는 가장 안전했으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내가 가장 살아있길 바라는 존재가, 내가 가장 사랑받길 바라는 존재가 내 안에 있었다.
사랑스럽고 맹목적인, 사랑하는 나의 (m).6)
기획자 사랑해의 괴물은 ‘사랑하는 (m)’이다. 사랑하는 (m)은 숙주를 통하지 않고서는 스스로 감각하지 못하고 고통과 쾌감을 구분하지 못하는 존재이다. 사랑해는 사랑이라는 말이 갖는 정당성과 공포를 들여다본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가해와 폭력,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에 주목한다. 결코 숙주와 분리해서 존재할 수 없는 (m)에게 숙주는 모든 것이다.
사랑해의 가슴우리에서 만들어진 이 괴물은, 마치 자신의 숙주인 신체가 하는 행동과 맺는 관계들을 관찰하는 감각 너머의 존재처럼 느껴졌다. 실험실의 (m)은 사랑이라는 말로 행해지는 폭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창작 과정을 통해 사랑이 아닌 것들을 하나하나 제거하고 마침내 실재하는 사랑을 발견하게 될 때, 그때가 되면 사랑하는(m)의 맹목적인 기다림은 빛을 발할 것이다.
LAB #105 송한별
어떤 사람이 뒷달길에 접근할 수 있고 없고는 절대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어제는 접근할 수 없던 사람이 내일은 접근할 수 있을 수 있고, 그 반대도 가능합니다. 어떤 차별을 중심으로 뒷달길의 접근 권한이 주어지는지 설정하는 것은 창작자 나름의 고민거리가 될 것이고, 또한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7)
편집자 송한별의 (m)은 생명체로서의 괴물이 아닌, ‘뒷달길’이라는 이름의 “공간”이다. 뒷달길은 배제주의자들을 배제하고자 하는 배제 공간으로 명명된다. 송한별은 차별주의자와 배제주의자는 언제나 대상을 필요로 하므로 기생 집단이라고 본다. 뒷달길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인식하지 않는 달의 뒷면에서 따온 이름으로, 여성, 장애인, 어린이, 외국인과 같이 배제당해온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공간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 모두는 어떤 면에서는 차별주의자가 될 수 있으므로, 뒷달길에 대한 접근 권한은 매 순간 변화할 수 있다.
송한별은 뒷달길이 공유물이 되어 다양한 창작물로 만들어지기를 꿈꾼다. 아마도 뒷달길은 쓰임에 따라 지리적 공간이 될 수도, 심리적 경계선이 될 수도, 집단 간의 방어선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송한별의 (m)이 많은 이들에게로 뻗어나가, 어디서든 존재 가능한 차별과 배제를 인식하게 만드는 상징적 공간이 될 수 있기를 기다려본다.
m&M
검은 바탕의 홈페이지에서 다양한 (m)의 이미지를 제시하면서 노벰버 랩은 창작자 각자의 실험실로 입장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마치 전시관을 둘러보는 듯 구성된 감각적이고 직관적인 이 홈페이지의 큐레이션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소문자 (m)과 대문자 (M)의 혼용이다. 노벰버 랩 초대장에서 안내된 여성괴물의 존재는 소문자 (m)으로 드러나며, 이는 ‘대문자가 아닌’ 소문자로 자신을 표현하고 역사를 기록함으로써 개개인의 권위를 강조해온 기존 질서에 반대하는 페미니즘 정신으로 읽혔다. 그러나 홈페이지 내에서는 폰트에 따라 (m)과 (M)이 혼용되면서 읽는 내내 “가슴우리의 (m)”이라는 괴물이 갖는 의미가 다소 납작하게 다가왔다.
그러나 디테일에서 약간의 아쉬움을 제외하면, 노벰버 랩의 실험 결과는 참여자들에게 뿐만 아니라 실험 내용을 공유한 독자들과 다른 창작자들에게도 신선한 자극제가 되어줄 다양한 아이디어와 소스들로 가득했다. 실험실의 (m)들은 창작 과정을 통해 어떤 모습의 생명력을 부여 받게 될까? 노벰버 랩의 다음 프로젝트를 관찰하고 싶어진다.
[사진출처: 노벰버 랩 홈페이지]
- 참여자
- 길혜연, 김진아, 배선희, 사랑해, 송한별
- 관련정보
- https://nowarchive.kr/novlab
- https://nowarchive.kr/novlab
- 김진아, <노벰버 랩: 여성괴물 인큐베이터> 초대장.
https://nowarchive.kr/novlab#lg=w20211228d43b15647a18c&slide=2 - 길혜연, 작업노트. https://nowarchive.kr/NovLAB_Kilia
- 김진아, 작업노트. https://nowarchive.kr/NovLAB_J
- 배선희. 혼종변이체, “덩굴식물인간”. https://nowarchive.kr/NovLAB_sunhee
- 사랑해. “(m)”. https://nowarchive.kr/novlab_s4ranghae
- 송한별. 작업노트. https://nowarchive.kr/NovLAB_404miss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