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2020) X 『아픈 몸, 무대에 서다』(오월의봄, 2022)
목소리를 마주한다는 것
Ctrl + V, 붙여넣기해서 사용하세요
2020년, 시민연극 한 편이 있었다. 질병 체험을 공유하고 이를 낭독극으로 만들 이들이 참여하여 워크숍을 진행, 7월에 이틀간 대학로 이음아트홀에서 공연된 후 두 달여 기간 동안 온라인으로 공개되었고, 2만여 명의 관객과 만난 것으로 기록되었다. 2020년 레드어워드 ‘주목할만한 시선’을 수상했고 2021년 4월 백상예술대상 연극 부문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2020)의 이야기이다. 이 연극은 시민연극이 빠질 수도 있는 ‘참여’와 ‘문화 민주주의’에 대한 모호한 정의에서 비껴가고 당사자의 삶에 기반한 이야기의 정수를 충실히 담아내면서도 개인의 것으로 환원되지 않는, 새로운 삶에 대한 해방적 상상에 불을 지핀 작품으로 기억된다.
연극의 기획과 제작 과정, 배우로 참여한 이들의 수기와 대본을 담은 책 『아픈 몸, 무대에 서다』가 올해 초 출간되었다. 연극이 던졌던 뾰족하면서도 부드러웠던 힘만큼이나 책은 견고하면서도 따뜻한 힘으로 워크숍과 공연, 제작 전반을 쌓아 올려 우리에게 왔다. 낭독극이 연극 형식으로 전환된 이유, 플레이백·즉흥극 등을 시도한 워크숍 과정의 세부 사항들, 아픈 몸을 고려한 제작과 공연 과정에 대한 기록들을 통해 우리는 이 공연에서 의제, 미학적 형식, 제작 과정, 참여자 전반의 조응을 통해 만들어졌던 어떤 특유한 힘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기록을 따라가 보면 비대면 온라인 공연에도 많은 이들이 자발적 참여를 통해 일종의 연극 공동체를 만들어갔던 이유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책은 배우로 참여한 나드, 다리아, 박목우, 안희제, 쟤, 홍수영의 수기와 기획과 제작을 맡은 조한진희의 연극 제작기, 그리고 대본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본문에는 여섯 명의 질병 당사자이자 배우들이 이 연극에 참여하게 된 동기와 워크숍 과정 중의 체험담을 담은 ‘1막’, 양 일간 공연에 임할 때의 내면 풍경과 에피소드를 담은 ‘2막’, 공연 이후의 삶과 성찰을 담은 ‘3막’ 안에 질병 당사자이자 배우로서 참여자들의 회고가 담겨 있다.
각 단계에 참여자 각각이 남긴 글이 수기와 공연 제작기의 ‘사이’에 위치해 있음은 『아픈 몸, 무대에 서다』에 특별히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최근 젠더, 이주, 노동, 세대 등의 차원에서 공적 영역 혹은 지배 서사에서 배제된 목소리들에 대한 증언의 수집과 기록, 자기 서사 쓰기가 의미 있는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 실제 ‘수기’는 역사적으로도 한국의 글쓰기-문학 문화에서 몫 없는 자들의 목소리 내기에 주요한 형식이기도 했다. 근육병, 크론병, 조현병, 유방암, 난소낭종, 수술과 재활의 반복, 염증이라는 각각의 질병의 개별성만큼이나 각각의 질병으로 환원되지 않는 관계와 제도 속에서의 부대낌들이 존재한다. 1, 2, 3막에 이르는 글의 곳곳에는 질병으로 인한 실제적 고통 및 그와 더불어 겪었던 비정체화의 순간들이 생생하게 담겼다. 그리고 아픈 몸의 저항적 서사는 다른 의제들에 비해 뒤처지는 것이 아닌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의제”1)(이하 인용은 괄호 안에 쪽수만 표시)임을 확인하게 한다.
그런데 이 책에서 더욱 주목해야 하는 지점은 각자의 삶과 아픈 몸의 기억들이 연극이라는 총체적인 경험과 맞추어지면서 만들어낸 무늬들을 저마다의 호흡과 목소리, 문체로 다시 담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배우들은 하나같이 이 연극의 경험이 질병과 관련한 잘못된 자기 정체화를 객관화하고 긴밀한 연대를 확인하며 연극 이전과는 다른 삶을 걸어가게 되는 계기가 되었음을 밝힌다. 이와 같은 새로운 계몽 서사의 중심에 집단적인 심리 치료와 의식화된 학습이 아닌 ‘연극’이 있었던 것은 대체 무슨 일일까.
연극에 참여하기 전의 질병 경험은 단순히 공연의 내용을 만들어내기 위한 원천으로 다루어지는 것이 아니었고, 익숙한 환우 체험기의 언어를 통해 정리된 형태로 제시되지 않았다. 기획자는 낭독극이 아닌 연극으로의 전환이, 질병 서사의 가지런한 재현이 아니라 몸으로 울리는 체험적 진실의 전달을 위한 것이었음을 제시했다. 참여자들에게 연극 훈련과 공연은 질병을 가진 몸을 새로운 방식으로 자각하고, 연인, 친구, 가족, 의사―환자 등 다양한 관계 속에서 경험했던 몰이해의 순간들과 감정의 사회적 조건들 또한 자각하고 공유할 수 있는 주요한 매개가 되었다.
“고립된 사적인 이야기가 공적인 이야기로 확장될 수 있는 기회”(61쪽)로서 낭독극의 문을 두드린 것, 첫 만남에서 수행해야 했던 “책상에서 일어나 나 자신이 되어 무언가를 표현해보는”(80쪽) 당혹스러운 미션과 워크숍 과정에서 느꼈던 “나보다 더 아픈 사람들 앞에서 내 아픔을 이야기해도 될까”(66쪽)하는 의구심들, 어떻게 보일까 하는 걱정에서 벗어나 “점점 더 다양한 모습으로 움직이는”(86쪽) 사람들을 마주하게 된 순간과 “창조적으로 기능하며, 서로의 몸짓들을 뒷받침하고 엮어나”(40쪽)가며 느꼈던 환희와 “어둠을 가지고 노는 사람들”(102쪽)과의 연대감, “15년 만에 대화다운 대화를 나눈”(45쪽) 경험과 “고여 있던 슬픔이 터져 나오던 순간”(214쪽)에 흐른 묵직한 기다림들을 지나 이들은 공연장에 이르렀다. 공연 당시 느꼈던 “무대에서 실수하지 말아야 한다는 스스로에 대한 압박”(67쪽)에서부터 “관객의 그 모든 감정이 무대의 조명이 되어 내게 전해지는 듯”(153쪽)한 충만감에 이르기까지의 감정들이 참여자의 목소리로 언어화되어 오롯이 이 한 권의 책에 담겨 있다.
어쩌면 이때의 연극 워크숍 과정과 공연, 연극은 제대로 된 연대와 삶의 자기 정체화에 대한 은유일지도 모르겠다. 연극 이후 병원, 일터, 가정 등 삶의 곳곳에서 마주한 것들에 대한 의미를 반추하고 새로운 자기 정체화를 꿈꾸며 연극 이전과 이후의 달라진 삶의 결을 차분하게 추적하는 3막의 내용은 연극과 삶의 강력한 연결성을 환기한다.
아울러 이들의 글은 오히려 연극의 바깥에서 연극하기와 연극보기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즉 연극을 만들어가고 보는 사람들이 누려온 것들, 즉 훈련 과정에서 배우가 마주하는 자기 해방의 기쁨, 공연을 경유하며 얻게 되는 자기 수련, 내가 아닌 타인의 몸짓 속에 깊이 감응되고 이후의 삶의 감각을 조정해온 경험들 말이다.
이처럼 공연에 참여한 이들의 수기와 공연 제작기, 대본이 충실히 담긴 『아픈 몸, 무대에 서다』는 아픈 몸을 둘러싼 사회적으로 조건화된 감정들과 편견들, 권력 관계들을 성찰하게 하면서도 이들의 연극하기와 연극에서 빠져나오기의 과정에 몰입하게 하면서 살아있는 삶의 의미를 풍부하게 재조명하게 한다. 공연을 통해 이루어졌던 아픈 몸과 무대의 만남을 다채로운 언어의 결 속에 다시 만나야 하는 이유이다.
[사진 제공: 다른몸들]
- 나드, 다리아, 박목우, 안희제, 쟤, 홍수영, 『아픈 몸, 무대에 서다』, 오월의봄, 2022, 3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