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그레잇 커미션 <신곡: La Divana Commedia>
지금 내가 서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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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어야 구원받습니다.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갑니다. 지옥에!”
am과 pm의 시간에서 누군가 말한다 그 순간 om의 시간이 그믐처럼 스미며
당신……여기가……어디라고 생각해?
김선우, 「나들의 시, om 11:00」, 『녹턴』
오랫동안 믿어온 것 또는 간절히 믿고 싶은 것의 이면을 마주하는 순간은 바로 지금 여기 내가 서 있는 곳에 드리운 깊은 심연을 들여다보게 한다. 믿고자 하는 존재의 부재는 믿음 자체에 대한 사유를 더 낮은 곳으로 흐르게 하고 때로는 영영 빠져나올 수 없는 불신의 굴레에 자신을 가두어 버리기도 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며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는 히브리서의 구절처럼 결국 무언가를 향한 믿음을 새로이 얻고 오래도록 유지하는 일은 어쩌면 스스로 자신의 눈을 가리는 베일을 무한히 쓰고 벗기를 반복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전시, 공연, 출판, 영상, 음악을 기반으로 동시대의 다양한 예술형식을 실험하는 창작기관 더 그레잇 커미션의 신작 <신곡: La Divana Commedia>은 3명의 연출가와 배우가 단테의 『신곡』 3부작 지옥, 연옥, 천국을 재해석하여 옴니버스식으로 구성한 퍼포먼스 극이다. 이 작품은 작가의 작업실에서 소개되는 공연을 의미하는 스튜디오-시어터 프로젝트의 첫 번째 작품으로 주슬아 작가의 작품 <손가락을 포탈에 넣기>에서 출발하여 독립성과 연결성을 동시에 지닌 세 개의 퍼포먼스 극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각 퍼포먼스의 주연자인 세 배우는 단테가 지워진 단테의 순례길 위에 자신의 몸으로 시간의 무늬를 그려 넣는다. 그리고 차원에서 차원, 그중에서도 가상 세계로 이동하는 찰나의 순간 감각되는 변화를 그려낸 평면, 입체, 영상설치 작품들은 퍼포먼스가 진행되는 동안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만남의 순간을 기다리는 포탈로써 존재한다. 가령 전시장 벽면에 걸린 평면 작품들은 배우와 나란히 서서 관객을 바라보는 차원의 문이 되고 포탈이 주는 전이의 이미지는 끝없는 혼란 속에서 끊어지고 이어지기를 반복하는 단테의 순례길과 구조적으로 비슷한 결을 공유하는 듯 보인다. 이와 더불어 작품이 걸린 벽면을 관객에게 전면으로 제시하는 무대 구성은, 관객들로 하여금 미술 작품을 작품으로 감상하는 동시에 평면의 차원 너머에 존재하는 세계관과 눈앞에서 벌어지는 퍼포먼스 사이의 연결지점을 원하는 때에 자유롭게 발견할 수 있도록 여백을 남겨두는 시도로 해석된다.
한없이 가까워졌다 멀어지고 이내 모습을 감춰 버리는 세 배우의 물리적 현존처럼 전시된 작품들과의 상호작용 여부도 온전히 선택의 영역에 머무른다. 다만 그 상호작용으로 향하는 포탈이 시시각각 열리고 닫히기를 반복했던 탓일까, 완전한 적막이 흐르는 순간에는 극으로의 온전한 몰입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약속된 몇 개의 지점을 향해 함께 숨을 나누며 나아가는 과정으로서의 공연 형식과 달리, 전시장이라는 공간의 특성을 빌려 개별자로서 주어지는 사유의 시간을 확장시켰다는 점이 이 작품의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뇌-까리다> (연출 성화숙, 배우 김선호)
첫 번째 작품 <뇌-까리다>의 퍼포머는 식물인간이 된 딸을 둔 아버지의 뇌로서 무대 위에 존재한다. 멈춰버린 동시에 흘러가는 딸의 시간과 나란히 놓인 아버지의 시간은 물리적 한계를 초월한 차원 속에서 겹쳐지고 어긋나기를 반복하다 끝내 고통을 수반한 움직임으로 뒤틀리기에 이른다. 마치 베르길리우스를 만나 지옥을 향한 순례길에 오르기 전 어두운 숲을 헤매던 단테를 가득 적셨을 두려움처럼, 작품 전반에는 새벽녘의 숲길 같은 축축함이 낮게 깔려있다. 차가운 전시장 바닥을 물결 삼아 유영하는 배우의 움직임은 전시장 한쪽에서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뇌파 사운드와 만나 끊어질 듯 희미하게 남아있는 생명의 에너지를 연상시킨다. 나직한 내레이션을 통해 파편처럼 던져지는 낱말들. 그리고 그와 불화하는 육체의 움직임은 수면마비 또는 입면기 환각에서 경험하는 근육의 감각을 옮겨온 듯했고 삶과 죽음, 육체와 정신의 경계에 서서 과연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귀속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처럼 다가왔다. 그러나 지워지지 않는 악몽의 잔상에 발목을 붙잡힌 듯 끊임없이 뒤를 돌아보며 올라야 했던 그의 고통 가득한 순례길 위에 그가 간절히 원했던 만남이 있었는지 관객들은 끝내 알 수 없었다. 의식의 저편으로 건너가는 듯한 무겁고 더딘 발걸음은 뒤이어 같은 길을 걷게 될 이의 무지와 무력감이 충분히 스며들기 위한 여백으로 남겨졌다.
<술래자의 길> (연출 수정, 배우 조은)
앞선 이가 짙은 잔상을 남기며 느리게 오른 순례길을 따라 또 다른 순례자, 아니 ‘술래자’가 내려온다. 어두운 밤, 마을 안팎을 순찰하는 행위인 ‘순라(巡邏)’에 언어적 기원을 둔 술래는 짙고 긴 어둠 속을 통과하는 존재인 동시에 그 어둠을 밝혀 다른 이들을 빛으로 인도하는 존재이다. 배우가 연기하는 분열된 인물상은 그가 감시자인 동시에 피감시자, 즉 쫓는 자인 동시에 쫓기는 자임을 거듭 확인시켜준다. 술래가 내면에서 들려오는 두 개의 목소리, 다시 말해 두 개의 분열된 정신에 몸을 맡기고 낮은 포복으로 어둠 속을 지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아마도 그가 지옥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형벌을 받는 죄인이 아닌 목격자, 즉 술래자로서 길을 걷기 때문일 것이다. 단차가 없는 전시장 바닥에 앉아 극을 관람했던 탓인지, 배우의 낮은 포복을 관찰하는 내내 배우와 관객이 함께 둥글게 둘러앉아 서로의 홀로됨을 나란한 눈높이에서 느껴보았으면 어땠을까, 라는 공간적 상상이 들기도 했다. 지옥의 긴 어둠을 거쳐 연옥에 다다른 순간에도 그가 고통을 목격한 지옥에서의 기억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먼지처럼 켜켜이 쌓여만 간다. 기억은 신의 선물이고 망각은 신의 축복이라는 오래된 문장처럼 우리의 삶은 잊을 수 없는 것을 잊기 위한 부단한 노력으로 일구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The Story of Maya> (연출 전민경, 배우 박재현)
술래가 떠난 자리, 아무도 찾지 않는 이름 하나가 무대 위에 덩그러니 던져진다. 홀로 남겨진 그녀의 이름은 마야. 산스크리트어로 환상을 뜻하는 단어다. 그녀의 이름은 왠지 모르게 그녀를 더욱 고립시키는 듯하다. 그녀가 자신의 홀로됨을 깨닫는 순간이 바로 그녀 곁에 그녀를 돕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순간, 즉 천국을 닮은 찰나이기 때문인 것일까. 환대가 곧 소속의 증명처럼 인식되는 세상에서 친절의 선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과 달리 ‘우리’와 ‘그들‘을 나누는 선이 된다. 혹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상대를 도와줘야 하는 대상으로 인식하여 베푸는 시혜는 진정한 사랑이라 불릴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곁을 내주고 때로는 자신도 그의 곁에 기대어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원초적인 생존 본능인 것만은 결코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끝으로 자신을 이끄는 소리를 따라 밖으로 나가기 위해 마야가 전시장 좌측의 문을 여는 순간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은 관객이 현실의 공간으로 돌아갈 때가 왔음을 알린다. 빌딩 사이로 비치는 미약한 햇빛과 그 위에 겹쳐지는 백색의 인공조명 속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마야의 뒷모습을 끝까지 지켜보게 되는 이유는 결코 도래하지 않을 영원을 염원하는 이유와 같을 것이다.
언젠가 친구와 나눈 기도와 명상에 관한 대화가 생각난다. 개인의 고통이 어떠한 이유에서 승화라는 초월의 영역에 기댈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일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여전히 내뱉음보다는 삼킴으로써 지친 마음을 돌보는 데 익숙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누군가의 슬픔을 훔쳐다 보냈던 지난 시간들이 떠오른다. 온전히 자신의 것이라 믿었던 길고 긴 겨울의 생채기가 아물기도 전에 우리는 봄을 맞이하고, 자연스레 그 상처가 온전히 내 것이 아니었음을 인식하게 된다. 결코 홀로일 수 없는 당신의 아픔은 반드시 누군가에게 목격된다.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지는 이유는 우리 모두 누군가의 슬픔을 못 본 척 지나칠 수밖에 없는 이유를 하나씩 품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매일같이 마주하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자기 자신을 견뎌내기 위해 모두가 베일을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그 모든 베일을 걷어내고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을 온전히 감각할 수 있도록, 극장을 벗어난 일상의 다양한 공간에서 공명하는 사유의 경험이 지속적으로 시도되기를 기원한다.
[사진 제공: 더 그레잇 커미션, 촬영_김재우]
- 일자
- 2022.03.26.~2022.03.27.
- 장소
- 더 그레잇 컬렉션
- 원작
- 단테 알리기에리
- 공동연출
- 수정, 성화숙, 전민경
- 퍼포머
- 김선호, 박재현, 조은
- 드라마트루기
- 정수진
- 컨셉 및 디자인
- 주슬아
- 기획 및 제작
- 더 그레잇 커미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