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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포먼스온/남x궁x권 프로젝트 <강은효>

안부를 묻고 싶었습니다. 배우 여러분, 괜찮으신가요?

림보
227호 2022.12.08

불사조 두억시니

무대에 불이 켜지면 여자가 전자담배를 피운다. 어딘가를 들어가려다 머뭇거리고,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마음을 먹은 듯 보이자 불이 꺼진다. 그 여자는 들어가기 싫어 망설이는 듯했다.
그가 주인공 강은효이며, 알콜중독자다. 이 공연이 펼쳐지는 공간은 알콜중독 치료 보호소라고 했다. 사실 알콜중독치료병원은 들어봤어도 ‘보호소’가 있는지 잘 몰랐다. 지인이 다니는 대학원에 그런 시설에서 일하는 이가 있더라는 얘기 정도만 들었을 뿐이다. ‘외국인보호소폐지를위한물결 InternationalWaters31’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일 테지만, 홀린 듯 강은효가 들락날락한다는 그 ‘보호소’라는 곳이 궁금하기도 했다.
장면이 바뀌고 사람들이 노래를 부른다. ‘재활재활재활’ 합창은 수준급이다. 장면마다 배우들이 지문까지 읽어주고 있다. 서사극? 브레히트? 관객에게 거리를 두라고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인터넷에 올라온 공연정보에 적힌 ‘연극주의적 작품’이라는 말이 또 신경 쓰였다.
브레히트는 연극이 비참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에 그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연극이 보여주는 현실에서 관객이 어떤 모순을 직접 발견하고 판단할 기회를 얻기를 바랐다. 그의 낯설게하기/소외효과/소격효과 등등의 방법이 반영된 서사극이라는 기법은, 현실의 모순을 드러내고 관객이 알아차릴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거리두기라고 이해하고 있다. 그러니까 반연극 기법을 선택하고 굳이 ‘연극주의적’이라고 말하는 건 왜인지 궁금했을뿐더러, 이 공연이 드러내고자 하는 모순이 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드라마에서도 등장하지 않는 성적 괴롭힘이 공연 전체를 잠식하고 있었다. 예컨대 주인공 강은효가 등장하자, 무대 뒤에 거만하게 앉아 있던 보호소 의사는 이런 대사를 한다. “남자들 눈빛이 허우적댑니다. 타오릅니다.” 강은효가 왜 들어가기 싫어했는지 너무 이해가 됐다. 이 의사는 가부장제 사회의 상징처럼 그려진다. 은효의 삶에 너무 많이 개입하고 있고, 심지어 사랑한다고 말하고, 그녀에게 성폭력까지 행사한다. 칼에 찔려도 다시 의사로 복귀하고, 진짜 죽어도 인형으로 알콜중독자 치료보호소에 수용되어 사는 사람들 옆에 늘 있다. 진짜 리얼 불사조 가부장 두억시니가 나타났다~!!

<강은효>의 공연 사진. 흰 벽에 미닫이문이 하나 나 있고, 반쯤 열린 두 문의 사이에 붉은색 원피스와 흰 스니커즈를 신은 강은효가 서 있다. 가슴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를 한 그녀는 객석을 향해 정자세로 서서 왼손에 종이 뭉치를 들고 오른손으로는 전자담배를 피우고 있다. 흰 벽 하단에는 ‘쿵쿵쿵’이라는 글자, 하트 그림 등의 낙서가 있고, 눈높이쯤 되는 곳과 문의 위쪽 모서리 옆 벽에는 사람의 신체를 그린 그림들과 글자가 빼곡하게 적힌 종이들이 붙어 있다.

말하고 있지만 들리지 않는 강은효의 말

강은효는 높낮이 없이 말한다. 콜센터 상담노동자들이 ‘솔’ 음높이로 말한다면 약간 플랫(b)된 솔 음을 내는 듯하다. 그런데 뭐랄까. 강은효는 여성이고 알콜중독자이고 주인공인데, 온전한 인간 대우를 못 받는 느낌이다. ‘사람’처럼 말하지 않는 사람, 주인공이지만, 어딘가 비어있는 존재로 만들고 싶은 연출이었을까? 설마?! (물론 이것은 너무도 비장애인중심적인 방식으로 연극을 사고할 때 나오는 자동 반사 같은 사고이기는 하다)
그런데도 강은효는 똑 부러지게 할 말을 다 한다. 그러나 똑 부러지게 말하는 강은효의 말은 사람들에게 가닿지 않는다. 말하는 것처럼 들리지 않아서일까? 듣기 싫어서일까? 공연이 펼쳐지는 무대 위에서 그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어주는 이가 거의 없다. (단 한 사람의 여성만이 그녀를 안아주고 응대한다) 자신은 이미 재활이 끝났고 일해야 하는데 의사의 확인서를 받아와야만 취직을 시켜준다고 해서 그 ‘확인서’를 받으러 왔다고, 그러니 다른 치료나 상담은 필요 없다는 강은효의 말이 끝나고 의사가 말한다. “아, 그런 일이 있었군요. 이해합니다. 일자리 없이 보호소를 나가니 갈 데도 없고 한 푼이 아쉬워서 지갑을 뒤지고, 이 남자, 저 남자, 만나고…(웃음)” 공연이 시작하고 10분도 되지 않았던 때다. 사실 이때부터 나는 메모도 그만두었다. (두 번째 공연 때도… 결국 메모는 끝까지 하지 못했다)
의사는 강은효의 가방을 함부로 뒤져 술병을 들고 다닌다고 비난하고, 나중에는 은효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성폭력을 저지른다. 강은효의 양부모도, 그가 만나는 남자도 모두 그를 폭력적으로 대한다. ‘‘여성’ 알콜중독자 강은효가 재활시설과 사회 속에서 겪어야 하는 고통스러운 삶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라며 ‘사회적 약자로서 여성이 처한 현실, 대상화된 존재로서의 여성의 세계를 비판적으로 담아내고 있다’라고 공연 팸플릿에 적혀 있지만, 오히려 비판적으로 사회를 바라보고 있는 여성을 왜곡된 시선으로 그리고 있는 인상이었다. 이 공연을 보다가 그냥 나간 분들이 있다면 정말 너무 훌륭한 관객이다.

<강은효>의 공연 사진. 베이지색 자켓과 바지를 입은 영도가 붉은색 원피스를 입은 은효를 뒤에서 감싸고 은효의 양부모와 설전을 벌이고 있다. 은효는 텅 빈 노란 바스켓을 두 손으로 안고 시선을 회피하고 있다. 강은효의 양부모는 둘 다 검은 코트를 입고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데, 양모는 너덜너덜해진 투명한 비닐 우산을 펼쳐 들고 있다.

연습부터, 아니 제작 초기부터 안전한 노동환경을 만들려면

공연을 보면서 온몸이 아팠다. 그리고 화가 났다. 무대 위 강은효는 계속 성적인 대상으로만 존재하고, 그가 아무리 자기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해도 말은 전해지지 않고, 너무 열심히 연기하는 배우들이 외치는 소리와 욕설의 의미를 이해하기 힘들어서 정말 너무나도 피로했다. 이 공연에 참여한 배우들은 너무 열심히 노래하고, 너무 열심히 몸을 움직이고, 개성 있고 아름답다. 내 몸이 아플 지경으로 피로하게 공연을 보고 난 후 진심으로 나는 배우들의 안녕을 묻고 싶었다. ‘괜찮으신가요?’ 이제 직장 내 성희롱도 산업재해 인정이 늘어나는 추세인데, 연극노동을 하는 수많은 배우 스태프들의 산업재해 인정을 어떻게 확보할지 고민해보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해보게 됐다.
물론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의견을 내는 것조차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몇몇 배우가 작품 전체의 무드를 흔드는 의견을 내고 그것을 관철하기는 너무 어려울 게 뻔하다. 연기할 기회를 놓칠 각오까지 해야 한다면 어려움은 더욱 커질 것이다.
배우와 스태프들이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안전하기를 바란다. 공연 제작 기간 전반에 걸쳐 안전한 노동조건을 갖추려면, 어디서부터 바꿔내야 할지, 이제 제대로 고민을 해야 하지 않을까. 공연제작비 지원사업의 선정방식에 대해서도 새로운 고민이 필요할 뿐 아니라, 일종의 작업중지권 같은 것 역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극단 Y의 내규 권리장전1)을 참고하면 상상력이 조금은 더 풍부해질 수도 있겠다.

<강은효>의 공연 사진. ‘알콜중독 치료 보호소’의 입소자들이 검은 악보집을 펼쳐 들고 있다. 이들은 합창대형으로 서 있지만, 노래를 멈추고 모두 옆쪽을 응시하고 있다.

[사진 제공: 퍼포먼스 온]



+ 이 글은 공연에 대한 감상이나 공연을 보며 떠오른 생각을 자유롭게 쓴다는 리뷰의 취지에 따라 작성된 것입니다. 이 글의 마지막 단락은 안전한 창작 환경을 만들어가기 위해 연극계 전반이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를 제안하는 것으로, 해당 공연팀에 대한 문제제기가 아님을 밝힙니다. - 웹진 연극in 드림
퍼포먼스온/남x궁x권 프로젝트 <강은효>
  • 일자 2022.11.17 ~ 11.27
  • 장소 미마지아트센터 눈빛극장
  • 작 이상례 연출 남상식 출연 최태용, 주수정, 정미소, 최종원, 노준영, 김지형, 정준호, 김태균, 유연철 음악 궁도환, 남상식, 정미소 동작 권영호 노래지도 최종원 조연출 김수진 무대 김대한, 김종훤 조명 박정현 제작 퍼포먼스온/남x궁x권 프로젝트
  • 관련정보 https://tickets.interpark.com/goods/22015106
  1. [극단Y] “작업에 앞서, 권리장전”, https://youtu.be/gR3VDdvaUQ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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