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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영역공작단 <기억들의 무덤>

보이지 않을 때 더 많은 것이 보이는 마법

배선애
227호 2022.12.08

‘배리어프리’는 2020년 이후 공연예술계 가장 중심 화두가 아닐까 싶다. ‘어떤 관객이든’, ‘어떤 장애도 없이’ 관극할 수 있는 작품과 환경을 만드는 것이 배리어프리의 핵심일 터, 그동안 다양한 방법과 시도가 진행되었고, 나름대로의 노하우가 축적된 성과물이 공연되기도 했다. ‘어떤 관객이든’은 특히 장애인 관객에 주목한 부분이며, ‘어떤 장애도 없이’는 ‘어떤 장애를 가지고 있어도 그것과 상관없이’로 풀이되는 말이다. 이에 따라 이동이 불편한 장애인을 위해 극장 접근성 안내와 극장 내 장애인석 배치 등이 보편화되고 있으며, 시각장애인이나 청각장애인을 위해 음성해설과 수어통역, 문자통역 등이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장애는 매우 다양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관극에 필요한 감각은 시각과 청각으로 수렴된다. 극장에서 느끼는 현장감은 곧 눈으로 목격하는 장면과 소리의 파동으로 종합되기 때문이다. 이에 청각과 관련된 부분은 수어와 자막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비장애인이 귀를 막고 들어도 충분히 많은 것들이 전달될 만큼 상세한 자막과 수어는 공연의 일부처럼 자연스럽게 합류했다. 문제는 시각이었다. 배우가 자신의 목소리로 생김새를 설명하고 극장 계단이 몇 개인지를 설명해도 그 시간이 지나면 무대 위 구체적인 움직임과 변화를 이해하기 어렵다. 실제로 배리어프리 공연을 표명한 작품을 눈 감고 보면 초반에만 형상이 그려질 뿐 이후에는 배우들의 대사만 들릴 뿐이었다. 시각을 어떻게 보완해서 눈을 감고도 공연을 볼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계속 고민되던 질문이었는데, 이번에 공연된 <기억들의 무덤>은 나름대로의 효과적인 해법을 제시하고 있어서 아주 흥미로웠다.

<기억들의 무덤>의 공연 사진. 사면이 검은색으로 둘러싸인 공간의 가운데에 회색 카펫으로 무대 공간이 길게 마련되어 있다. 관객을 위한 흰색 간이 등받이 의자가 무대 옆에 일렬로 줄지어 놓여있다. 카펫 위에 주황색 모자와 파란색 점프수트를 입은 P가 왼팔을 머리 위로 올리고 두 발을 무릎 높이까지 들어 올리며 높이 뛰어오르고 있다. P가 입은 점프수트의 가슴팍에는 다양한 색의 스티치(왼쪽)와 푸른색 리본(오른쪽)이 달려있고, 모자에는 동그란 털뭉치가 세 개 달려있다.

예술청 5층은 주로 세미나나 심포지엄 등의 행사장으로 활용되는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 공연을 한다고? 몇 번을 확인하고 찾아간 5층은 프로젝트룸 입구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수많은 안경들이 줄줄이 나열되어 있는 매표 테이블이 인상적이었는데, 입장하는 관객들에게 그 안경을 하나씩 나눠주었다. 안경에는 불투명한 렌즈가 끼워져 있었다. 3D 영화를 볼 때 쓰는 안경처럼 특별한 역할을 하는 안경이었다. 공연이 시작되고 안내자가 자연스럽게 관객들에게 안경을 쓰도록 유도했다. 불투명한 안경으로 시각을 닫아놓으려는 의도. <기억들의 무덤>은 그렇게 불투명한 안경을 쓰고, 혹은 눈을 감고 보는 공연이었다.
서로 마주 보게 배치된 객석 의자는 마치 무대 일부인 듯 가운데 통로 양쪽으로, 벽에서 일정한 간격을 두고 나열되어 있었다. 모든 공간이 배우들이 움직이는 공간이었고, 관객들과 가벼운 신체 접촉을 하는 설정이었다. 시각을 최소화했으니 다른 감각을 위한 장치들이 많았다. 청각을 위해서 배우들이 쉴 새 없이 대사를 하고 공간을 표현하는 다양한 음향들이 들려왔다. 후각을 자극하는 상쾌한 공기 냄새가 뿌려졌고, 배우들의 접촉과 무릎 위를 지나가는 커튼은 촉각을 일깨웠다.
다양한 감각들을 인지하게 된 건 주인공 P를 중심으로 한 작품의 내용이 청소년극에 맞게 흥미진진하게, 거기에 철학적 질문까지 담으며 역동적으로 펼쳐졌기 때문이다. 어느 날 잠에서 깬 P는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황에 놓였다. 가지고 있던 기억들을 모두 잃어버린 것이다. 이때 조력자 Q가 등장해 P의 기억을 찾는 여정이 시작된다. 물속인 듯 우주 속인 듯 환상적인 공간 속에 들어가 수많은 무덤들을 맞이하는데, 그 무덤들이 모두 P의 기억들이었다. 각 무덤마다 가져갈 기억 하나씩을 챙기면서 현실로 돌아올 때, 가져오지 않은 수많은 기억들은 그대로 소멸된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힘들고도 중요한 선택을 하면서 여정을 마친다.
흥미로운 설정들이 P의 여정을 풍성하게 만들었는데, 우선 P 자체를 딱히 성별을 부여하지 않았고 공간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변한다고 설정했다. 배우 목소리가 달라져서 바뀌었나보다 짐작할 때 P가 스스로 발견하면서 놀라기도 하고 Q가 다시 바뀐 상황을 설명하기도 한다. 주인공이 고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더 많은 상상을 할 수 있었고, 그 상상이 더 많은 감각을 자극했다. Q는 존재 자체가 인상적인 설정이었다. 달팽이처럼 끈적끈적한 액체를 연상하는 음향(그 소리를 내는 도구는 놀랍게도 고무장갑이었다)을 계속 내면서 P와 함께 하는 Q는 상상의 덩어리, 상상의 실체였다. 고된 여정에 맞게 구르고 뛰고 비집고 들어가는 배우들의 움직임들이 고스란히 감각으로 전달되었다. 눈으로 보지 않아도 수많은 감각들이 충분히 상상할 수 있게 했고, 충분히 실체로 볼 수 있게 했다.

<기억들의 무덤>의 공연 사진. P와 Q가 머리를 가까이 대고 한 곳을 응시하고 있다. Q는 머리를 더듬이 같은 모양의 세 갈래로 묶고 있고, P는 목덜미를 살짝 덮는 숏컷 스타일 머리를 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푸른색 점프수트를 입고 있다. P의 점프수트가 파랑, 초록색의 스티치로 꾸며져 있는데 반해 Q의 점프수트 깃은 빨간색 스티치들로 꾸며져 있다. 오른쪽 가슴팍의 리본들도 붉은 계열의 색이다.

안경을 착용하고도 눈을 감고 관극하다 보니 특히 청각이 무한히 확장되었다. 주인공인 P가 어디로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소리로 확인할 수 있었고, 수많은 기억의 무덤들을 머릿속에 상상하며 P를 따라갔다. 그러다 보니 어딘가 익숙한 기억이 떠올랐다. 바로 라디오드라마다. 요즘엔 영상이 대세라서 거의 제작되지 않지만, 라디오드라마는 라디오 개국과 동시에 창작되어서 꽤 오랫동안 사랑받았던 장르다. 소리로만 전달하는 드라마인데도 캐릭터마다 다른 성우들의 목소리, 다양한 음향의 활용으로 모든 소리를 만들었기 때문에 현실감이 상당했다. <기억들의 무덤>은 라디오드라마 같았다. 극장에 앉아있다는 것이 다를 뿐 P의 여정을 실감나게 들려주는 라디오드라마.
여기서부터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여긴 분명히 극장인데 라디오드라마와 다르기 위해서는 무엇이 더 필요할까? 공연예술의 현장감은 시청각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4D 영화에서 보듯이 촉각과 후각으로도 충분한 현장감을 만들어낸다. 작품 말미, P의 공간이 바뀌었을 때 뿌려졌던 상쾌한 공기 냄새는 관객들의 후각을 자극했다. 그런 후각들이 더 많이 배치되고 계산되어 뿌려졌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괴이한 생명체인 Q의 고유한 향을 설정하는 것도 재미있을 듯하다. Q가 움직일 때마다 물컹물컹한 소리 이외에 냄새로도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이동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촉각도 더 강화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관객들의 무릎 위로 지나가는 얇은 천 조각들, 그리고 배우의 가벼운 접촉 정도가 촉각에 해당하는데, 발을 이용해 다른 공간의 질감을 체감한다든가 비누방울이나 물방울 등 신체에 닿을 수 있는 것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 공연 시작 전에 관객들에게 충분히 양해와 동의를 구했기에 촉각을 자극하는 다양한 장치들의 활용은 큰 문제가 없어 보이기 때문에 이런 제안들을 해본다.

<기억들의 무덤>의 공연 사진. P 역을 맡은 다른 배우가 왼손을 들고 하늘을 바라보고 서 있다. 머리는 어깨에 살짝 닿는 단발이며, 마찬가지로 푸른색 점프수트를 입었다. 주황색과 붉은색 계열의 스티치들이 옷깃과 왼쪽 가슴에 달려있고, 오른쪽 가슴에는 노란 리본들이 묶여있다.

비장애인의 입장에서 그동안 관극했던 배리어프리 작품을 보면서 아쉬움이 더 많이 들었던 것은 여러 장애를 몇 가지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의도 때문이었다. 눈을 감고 보기도 하고 귀를 막고 보기도 하면서 실제로 장애인이 이 작품을 어떻게 볼까를 간접적으로 체험해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선명해진 것은 장애가 다 다르듯이 작품들의 배리어프리 지향도 그 결이 섬세하게 나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 <기억들의 무덤>은 참 반가운 작품이었다. 장애 중에서도 하나의 장애에 집중했다는 것도 유의미하고, 특히 시각장애에 집중했다는 점에서 제작진의 의도와 노고를 높이 산다. ‘공연을 본다’는 것의 가장 기본이 시각이기 때문에 이것이 없다면 어떠할까, 시각을 대체할 감각들은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고 자극해야 할 것인가의 고민이 어마어마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데도 명암과 색채를 표현해낸 조명디자이너와 소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수많은 아이디어를 낸 음향디자이너 등 기존 작업과는 다르게 많은 것을 고민하고 창조해낸 스태프들, 효과적으로 움직이며 변화무쌍한 목소리로 다양한 감각을 자극해 풍성하게 상상하도록 연기한 배우들, 그것을 아우르며 보이지 않을 때 더 많은 것이 보이는 마법을 만들어낸 이지민 연출의 의지가 빛나는 작품이었다. 다음 작품에서는 이 방법들이, 이 감각들이 어떻게 다양해지고 구체화될지, 더 많은 시도들이 어떻게 펼쳐질지 즐거운 호기심과 기대가 생긴다. 다만, 청소년극이라는 지향은 제작진의 남은 숙제이다. 청소년 관객 개발의 다양한 방법을 어떻게 모색할지 깊게 고민해야 할 단계가 된 것 같다.

<기억들의 무덤>의 공연사진. 검은 벽에 두 개의 핀 조명이 떨어지고, 각 조명 아래 박스에 P를 맡은 두 명의 배우가 앉아있다. 왼쪽에 앉은 단발머리의 배우는 두 손을 허벅지에 올리고 웃는 얼굴이며, 오른쪽에 앉은 쇼트커트를 한 배우는 두 팔을 좌우로 한껏 벌리고 하늘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

[사진 제공: 비영역공작단]

비영역공작단 <기억들의 무덤>
  • 일자 2022.11.24 ~ 11.26
  • 장소 예술청 5층 프로젝트룸
  • 작·연출 이지민 드라마가이드 문정연 배우 이미라, 강하늘, 정성진 프로듀서 김윤미 음악감독·소리표현 김솔지, 박소연 미술디렉터 강정화 조명디자인 호랑이삼촌 음향디자인 임서진 퍼실리테이터 김다영 조연출 이선화 무대감독 모티컴퍼니(성예진, 이지은) 영상제작 리인규 홍보물디자인 영호공작실 이미지제공 우리들의 눈 주최·주관 이지민 제작 비영역공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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