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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극장 <대극장 짓기 X 이혜령>

극장의 안부를 전합니다

최권화
228호 2022.12.22

8년 만에 신촌에 갔어요. 태권도장 가방을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은 7살 어린이의 손을 잡구요. 저는 8년 전에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쓸개를 떼놓고 왔어요. 그 후로 신촌은 처음입니다. 왠지 거대한 노키즈존처럼 느껴졌거든요. 오랜만에 도착한 신촌은 젊은이들이 가득하여 과잠바들 사이에 아이의 손을 잡고 태권도장 가방을 든 나는 마치 엉뚱한 퍼즐조각처럼 느껴졌어요. 아이는 연신 들뜬 표정으로 “엄마, 여기는 약국 옆에 약국이 있고 약국 앞에 약국이 있고 아픈 사람들이 많나봐”라고 말했습니다.
신촌극장에 도착했습니다. 입장 시엔 어린이 관객들에게 작은 봉투를 나눠줬어요. 과자, 음료, 뽀로로 비타민이 들어있었어요. 이 공연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만든 것은 아니지만, 공연 안내글에는 어린이들이 함께 머물며 경험할 수 있는 공연이라 적혀있었습니다. 출입 또한 자유롭다고 합니다. 극장 내 좌석은 몇 개의 돗자리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어디에 앉든 선택은 자유였습니다. 제가 앉은 돗자리에는 ‘당신의 도착이 극장의 증거입니다’라고 적힌 종이가 붙어있었어요. 누워서 볼 수도 있고, 화장실을 다녀올 수도 있고, 핸드폰을 사용해도 괜찮다고 하시니 ‘천국이 있다면 바로 이 블랙박스구나’라고 생각했어요. 다양한 소음은 공연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고 하니 과자봉지를 뜯을 때 발생할 소음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저는 폐소공포증이 있어서 극장에 들어가는 일이 쉽지 않거든요. 출입문과 창문의 개폐를 직접 보여주셨을 땐, 작은 창을 통해 햇빛이 들어왔습니다. 대부분 극장에서 보기 어려운 상황이지요. 제가 앉은 방향을 기준으로 오른쪽 구석 작은 탁자 위엔 노트북이 있었고, 키보드를 두드리면 빔프로젝터를 통해 노트북 화면을 볼 수 있었어요.

대극장 짓기 공연사진이다. 극장 마룻바닥 곳곳에 돗자리가 깔려 있다. 한쪽에 좌식 테이블이 놓여 있으며, 극장 벽에는 약 1미터쯤 되는 높이에 가로로 긴 창문 두 개가 나 있다. 창이 열려 있어 어둠에 잠긴 극장으로 밝은 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12월 7일 공연 관객이 촬영한 사진

관객과 거리 좁히기

벽면에 문장이 나타납니다. ‘등장인물 - 관객1. 검은색 상의와 하의를 입고 있다’. 관객1은 이 공연의 연출이자 작가이며 배우이자 객석 안내원입니다. ‘관객1’이라고 칭하는 게 이 공연에 가장 부합한 호칭인 것 같습니다. 관객1은 노트북으로 모든 관객에 대한 인물 설명을 짤막하게 기록합니다. 저는 여기서 관객 3이었구요. ‘관객3. 초록색 셔츠를 입고 안경을 썼다. 목소리로 참여한다’라는 문장이 벽면에 적혔을 때, 저는 아까 그 햇빛을 따라 창문으로 탈출하고 싶었습니다. ‘웬만하면 눈에 띄지 말자’가 인생의 모토 중 하나였는데 목소리 참여라니. 다행히 관객1을 필두로 관객2, 관객3… 관객 15까지 어린이 관객 두 명을 제외하곤 모두 목소리로 참여를 했습니다.

관객의 조건

관객1은 ‘대극장 짓기’를 시작하겠다고 말을 한 뒤, 편지를 읽었어요. 한 객석 안내원이 하우스 매니저로 일을 했던 관객1에게 보낸 편지였어요.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객석 안내원으로 일을 하는 동안 극장에 복지할인을 받고 티켓을 구매한 아들과 어머니가 관객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공연 중간에 객석에선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고, 어떤 관객은 인터미션 때 하우스 매니저에게 “저런 사람에게 표를 팔면 어쩌냐”고 항의를 합니다. 객석 안내원은 ‘저런 사람’에 해당하는 복지할인 모자에게 자리를 옮길 것을 권유하였으나, 2막이 시작되고 그 모자는 극장에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혐오에 대하여

악성 댓글 필터링 시스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관객1은 악성 댓글 필터링 사이트에 들어가 극장에서 들었던 비난, 혐오에 관한 말들을 입력해요. 관객1이 기입하는 문장이 벽면을 통해 나타납니다. 노골적인 욕설들은 A.I.에 의해 혐오 표현으로 탐지가 되지만, ‘관크, 직고나리, 저런 사람한테 표를 팔면 어쩌냐’ 같은 말들은 혐오나 차별의 표현이 탐지되지 않는다고 뜹니다. 관객1은 편지를 계속 읽습니다. “A.I.는 편견도 없고 양심도 없다, 이 세계는 편견이 있고 양심은 없다”.
실제로 제가 집에 와서 공연에서 본 사이트에 접속하여 몇 개의 혐오 단어들을 검색해봤는데 ‘맘충’은 혐오나 차별의 표현으로 탐지되지 않았어요. 아마도 그 사이트를 만드신 분이 한국의 아이 엄마였다면 결론은 달랐을 것 같아요.

대극장 짓기의 공연사진이다. 여자아이와 성인 여성이 마주 보고 앉아 있다. 아이는 이불 위에 앉아 두 손을 얼굴 앞쪽에 모으고 있으며, 성인 여성은 카드 봉투를 열어 종이를 손에 들고 있다. 두 사람 뒤쪽으로 작은 탁자 위에 스탠드 불빛이 공간을 밝히고 있다.
12월 8일 공연 관객이 촬영한 사진

평균과 정상의 모호함

관객1은 대극장 짓기 설립 방향에 관해 이야기를 시작하며, 먼저 ‘평균’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1950년 미국 공군기지에선 전투기 조종석을 새로 만들기 위해 조종사들의 신체 사이즈를 측정하여 평균을 냈다고 해요. 오래된 조종석이 사고의 이유라 판단했기 때문이지요. 그렇지만 약 4,000명의 조종사 중, 조종사 평균 수치에 해당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고 합니다. 관객1은 국립극장 객석 교체 입찰에 참여했다가 탈락을 했어요. 그 객석의 형태는 ‘독창적이고 감각적인 디자인’을 목적으로 공고를 내걸었지만, 결국 새로 지어진 객석은 누구에게도 꼭 맞지 않는 평균적인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제가 폐소공포증+a의 이유로 병원을 찾은 적이 있었어요.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기부터 저기까지가 정상의 범위지만 그 범위를 조금 벗어나면 문제가 된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여기부터 저기까지의 범위, 정상에 대한 범위는 너무 모호합니다. 그러다 보니 혐오의 단어 또한 그 기준이 모호할 수밖에 없지요.

관객1은 더 이상 관객이 될 수 없는 발달장애 아이와 그의 엄마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엄마는 아이를 낳기 전에 극장의 충성 관객이었습니다. 첫 아이를 낳고 또 발달장애를 가진 둘째 아이를 낳은 후엔 더 이상 관객이 아니었습니다.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는 극장이 원하는 관객이 아니니깐요. 관객1은 말합니다. “제발 누구라도 와달라고 하소연했지만, 나와 내 아이에게 한 말은 아닙니다”. 저는 극장의 종말 대신에 관객1의 대극장 짓기가 꼭 성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대극장 짓기 공연사진이다. 한 관객이 엎드린 자세로 바닥에 놓인 태블릿PC의 화면과 손에 들고 있는 명함 크기의 카드를 바라보고 있다. 태블릿PC의 화면에는 갓난아기를 안고 있는 누군가의 모습이 보인다. 그 뒤쪽으로 앉아 있는 다른 관객들의 몸 일부가 보이고, 바닥에는 담요와 신발, 텀블러, 가방 등 관객들의 소지품으로 보이는 물건들과 공연에 쓰이는 카드 봉투 등이 늘어져 있다.
12월 9일 공연 관객이 촬영한 사진

관객의 극장 되기

극장에 입장할 때 받은 티켓에는 문장이 하나씩 적혀있습니다. 제가 받은 티켓에는 ‘당신의 도착이 극장의 증거입니다’라고 적혀있었어요. 한 관객이 다른 관객의 곁으로 가서 티켓에 적힌 문장을 읽습니다. 관객은 또 다른 관객에게, 서로가 서로에게, 우리가 우리에게 문장을 읽어줄 수 있었습니다.
관객1의 진행에 따라 관객들은 모두 바닥에 눕습니다. 눈을 감고 극장 바닥에 누워 관객1의 설명에 따라 나의 몸, 호흡, 소리, 공간의 모든 존재를 느껴봅니다. 마치 태곳적 엄마의 뱃속에 들어온 기분이 들었어요. 저를 포함하며 모든 관객들은 개개인의 이야기를 가진 극장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선 저는 이 공연을 보고 나서 내가 과연 이 공연에 관한 리뷰를 써도 괜찮을까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 같은 사람이 리뷰를 작성해야 대극장 짓기가 성공할 것 같았습니다.

대극장 짓기의 공연사진이다. 좌식 테이블 위에 노트북이 펼쳐져 있고 그 옆에 스탠드 조명이 밝혀져 있다. 뒤쪽으로는 하얀 바탕에 검은 글씨가 쓰인 화면이 극장 벽에 영사되고 있다. 텍스트 내용 일부로 추정컨대, 누군가의 외모를 설명하는 글임을 알 수 있다.
12월 1일 공연 관객이 촬영한 사진

<대극장 짓기>는 주중 낮 1시, 하루 1회 공연을 했습니다. 평균적이지 않은 공연 시간이었어요. 제가 신촌에 놀러 다니던 시절에는 친구들과 먹고 노는 것 외엔 관심이 없었어요. 그래서 신촌을 둘러보며 약국이 많고 아픈 사람이 많은 것 같다는 아이의 말에 놀랐습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신촌에 간 이유가 쓸개 떼기였단 것도 잊구요. 젊음도 환자도 이도 저도 아닌 저에게 안부를 물어봐 줘서 고맙습니다. <대극장 짓기>에 모두 동참해주세요.

* <대극장 짓기> 공연에는 다음과 같은 안내가 나갔습니다. “사전에 허가되지 않은 사진과 영상 촬영 모두 환영합니다. 이번 공연은 공연 중에 프로덕션 차원에서 영상이나 사진 기록을 하지 않습니다. 관객 분들이 내킬 때 찍은 사진과 영상이 이 공연의 유일한 기록이 됩니다”. 이 리뷰 원고에 쓰인 사진은 공연의 관객들이 SNS와 이메일을 통해 해당 공연팀에 제공한 것입니다.

신촌극장 <대극장 짓기 X 이혜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