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식하는 곰팡이x강 너머]
전쟁에 대한 구체와 관념, 그 간극의 나비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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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지구 다른 쪽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무력 충돌이 떠오른다. 중동지방의 전쟁 소식은 일상적으로 들려오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거기에 이란과 미국까지 전쟁을 벌이고 있으니, 조금 과장하면 전 세계가 전쟁 중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그런데 문제는 그 전쟁이 참 멀게만 느껴진다는 것이다. 온라인 게임 중계하듯 전하는 전쟁 소식은 더욱더 우리의 현실이 아님을 강조하는 듯하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는 종전국(終戰國)이 아닌 정전국(停戰國)이다. 전쟁을 잠시 쉬는 상태. 언제 다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불안 그 자체의 나라. 북한이 주적이냐 아니냐가 늘 논란이 되는 것도, 북한과 가까워져도 혹은 멀어져도 문제인 것도 전쟁을 잠시 멈추고 있어서다.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체감이 멀기만 한 것은 정전의 시간이 길기 때문이다. 1953년 정전협정을 맺었으니 70년이 훌쩍 넘었다. 두 세대가 교체되는 긴 시간 동안 전쟁의 현실을 체감하지 않았으니 우리에게 전쟁은 전혀 상관없는 단어로 여겨진다.
정전 이후 창작극에서는 전쟁과 분단, 경계에 대한 관심을 이어왔다. 다양한 방법과 실험으로 전쟁이라는 키워드를 연극으로 펼쳐냈는데, 시대에 따라 혹은 전쟁의 체험 여부에 따라 서로 다른 감각을 보여준다. 왜 우리의 소원이 통일인지를 묻는 요즘 청년들에게는 전쟁이 어떤 의미일까? 전쟁을 모티프로 삼은 창작극 두 편이 비슷한 시기에 관객을 만났다. <번식하는 곰팡이>와 <강 너머>는 공통적으로 전쟁과 그 시간을 견뎌낸 사람들을 다루고 있지만 형상화하는 방법과 태도는 사뭇 달랐다.
구체적인 전쟁을
옴니버스 구성으로
<번식하는 곰팡이>
김도영 작가의 <번식하는 곰팡이>는 '곰팡이'로 시작한다. 곰팡이를 약으로 개발해 만든 페니실린. 그 약을 북에 팔기 위해 38선을 넘은 부부. 하필 그때 전쟁이 터졌고('페니실린'), 혼자 남겨진 아이는 부모를 찾아 헤매다 동사무소를 찾아다니는 선생을 만난다('출생신고'). 아픈 아내를 위해 약이 필요했던 선생은 우연히 만난 피난민('페니실린'의 부인)에게 약을 강탈한다. 적으로 오인해 사살한 아이가 눈에 밟혀 혼란스러운 군인('깊은 숲속에서'), 그보다 더 혼란스러운 대통령 선거('대선 벽보'). 시간이 흘러 유명한 화가가 된 선생의 딸은 이 모든 것들을 그림으로 남겼다('한반도 폴리탄').
내용을 정리하니 하나의 이야기로 꿰어지는 것 같지만, 실상은 다섯 개의 옴니버스 구성을 취했다. 각 에피소드마다 다른 연출가가 연출했고, 출연한 배우도 다 다르다. 옴니버스 구성을 취한 것은 매우 영리한 선택이었다. 이 작품이 다루고 있는 것이 6·25라는 구체적인 전쟁이기 때문에 하나의 플롯으로 구성되었다면 뻔하거나 익숙한 전쟁 이야기에서 벗어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다섯 편의 에피소드는 짧으면서도 제각각 전쟁을 날카롭게 주목한 주제가 있었고, 마지막에 개별 에피소드의 연결을 추리하는 즐거움까지 안겨주었다.
실재했던 전쟁을 다루지만 슬픔과 비극미로 점철되지 않았고, 전쟁이라는 거대 단어 아래에 존재했던 다양한 인물들이 전면에 나섰다. 그저 아이를 배불리 먹이고 싶은 부부, 출산 후 병든 아내를 치료하고 싶은 선생, 부모를 찾기 위해 기댈 곳이 필요한 아이, 적을 죽여야 하는 전시 상황 속에 놓인 군인, 지지하는 후보가 달라 서로 원수처럼 대하는 죽마고우. 자칫 지워지고 잊힐 그들의 존재를 그림으로 남기며 기록했다는 점, 그래서 '한반도 폴리탄'이라는 제목으로 현재화했다는 점이 <번식하는 곰팡이>의 큰 장점이다. 6·25 전쟁을 이렇게 다룬 작품이 있었던가? 실재했던 구체적인 전쟁을 통해 지금 우리가 감각하는 전쟁의 정체와 의미를 잘 보여주었다.
우화로 전하고자 한
전쟁과 인간
<강 너머>
이진 작가의 <강 너머>는 가상의 전쟁을 설정했다. 강이 국경이 된 세상, 전쟁은 강 너머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주요 공간은 강을 건너기 위한 다리 위다. 다리를 만든 노인은 건너가는 사람들에게 통행세를 받는다. 이야기를 쓰는 작가는 자신이 유명하다며 노인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겠다고 이것저것을 물어본다. 여러 군복을 겹쳐 입은 용병은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 강 건너라며 다리를 건너야 하는 이유를 말한다. 노인이 기다렸을지도 모르는 사람이 돌아왔지만, 그는 전쟁을 빌미로 장사꾼이 됐고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 노인에게 별다른 미련 없이 훌쩍 다리를 건넌다. 그러는 사이 노인의 다리는 기념물이 되었고 노인은 자신의 터전인 다리를 떠난다.
<강 너머>는 전쟁이라는 거대한 단어를 강 너머에 설정했다. 구체적인 전쟁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누구나 생각하는, 그러나 저마다 다를 전쟁의 모습을 관객 각자의 상상에 맡겨놓고, 그 앞에 놓인 다리와 노인에게 많은 의미를 두었다. 다리 위에 올라온 인물들 역시 서로 다른 전쟁을 경험하고 있다. 생존 여부와 상관없이 그저 이야기 소재로 혹은 돈벌이로 치부하기도 하고, 자신의 목숨을 걸지만 그 의미를 찾지 못하기도 한다.
전쟁을 관념적으로 설정했기 때문에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인물과 상황이 만들어졌다. 노인에게든 혹은 다리 위 누군가에게든 관객은 자신의 해석에 맞춰 인물에 이입하면서 작품에 빠져들게 된다. 눈에 보이는 전쟁은 아니지만 그 전쟁으로 인해 인간이 어떻게 변하는지, 어떤 본능이 꿈틀대는지를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장점은 사실 단점도 함께 안고 간다. 관념적인 전쟁이다 보니 모든 것이 모호해졌다. 다리 하나로 국경을 연결한다는 것, 힘없는 노인이 국경 위의 다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 갑작스레 기념물이 된 것 등은 작품의 설정을 납득시키기 위해 몇 가지 이유가 더 필요한 부분이다. 노인과 다리, 전쟁은 매우 우화적인데, 우화성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현실적으로 공감되는 부분들을 더 비틀고 바꿔낼 필요가 있다. 거기에 우화의 장치를 써야만 하는 이유와 목적이 뚜렷하다면 더 좋을 것이다.
구체적 전쟁과
관념적 전쟁,
서로 다른 무대 질감
<번식하는 곰팡이>는 극장 안의 단단한 기둥과 똑같은 모양과 색으로 몇 개의 다른 기둥을 만들어 무대 위에 기울이거나 쓰러뜨려 배치했다. 배우들의 동선에 방해되지 않는 위치에 놓인 기둥들은 전쟁의 참상을 시각적으로 제시한다. 다섯 명의 연출가들은 자신의 에피소드에 가장 적합한 동선을 만들고 소품을 활용하면서 독자적 완성도를 높였고, 그와 동시에 다른 에피소드와의 균등한 질감을 만들어내는 데에 집중했다. 에피소드가 끝날 때마다 다음 에피소드를 기대하면서도 그것이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던 데에는 다섯 연출가는 물론 총연출의 노력 덕분이다.
이여원 연출은 <강 너머>에서 어떤 것을 강조해서 봐야 할 것인지를 선명하게 무대에 펼쳐냈다. 객석을 양쪽에 두고 무대 한가운데에 거대한 다리를 가로질러 놓았다. 무대 하수 쪽에는 악사들을 위치시켜서 다리와 음악이 이 작품의 포인트라는 것을 강조했다. 인물들의 주요 동선은 다리 위에서 이루어졌고, 그 움직임과 합을 맞춰 전통악기를 활용한 음악과 음향이 연주되고 만들어졌다. 창단공연의 무대 활용으로는 섬세하게 공들인 세련된 연출이었는데, 다만 아쉬운 것은 위압적으로 크고 단단한 다리였다. 그런 다리를 노인이 만들었다는 것에 쉽게 동의하기가 어려웠고, 그 다리를 노인 혼자 지킨다는 설정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조명 때문에 다리 높이를 올린 것으로 짐작되는데, 다리 밑 조명이 노출되어서 다리가 지닌 의미를 찾아내는 데에 시간이 필요했다.
다리 위아래를 거침없이 오르내리는 배우들의 열정은 대단히 뜨거웠으나, 배역과 상관없이 젊은 배우들이 인물들을 연기하느라 모든 역할이 에너지가 넘쳤다. 배우 연기에서도 이완과 긴장의 호흡으로 관객들에게도 숨 쉴 여지를 주면 더욱 좋을 것 같다. 거대한 다리와 에너지 넘치는 배우들은 <강 너머>가 설정한 전쟁이 관념적인 데서 비롯된 것이다. 전쟁이 막연하게 설정되었기 때문에 무대와 연기를 구체적으로 해야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쟁을 모티프 삼은 두 작품은 인간을 향해 있었다. 존재 자체가 지워진 사람들을 호명하고 기록하면서, 혹은 상실과 돌이킬 수 없음의 한가운데에 있는 사람을 보여주면서 전쟁이라는 거대담론을 각자의 방식으로 전유했다. 이념이 중요했고, 누구의 편인가가 중요했던 과거의 전쟁과는 달리, 극악한 폭력의 상황에서도 그것을 견뎌내고 나아지길 바라는 인간에 대한 애정과 희망의 전쟁. 그 맥락에서 두 작품은 폭탄이 날아다니진 않지만 지금 이곳의 보이지 않는 전쟁이 더 내밀하고 더 뿌리가 깊고 더 악하다는 인식의 연극적 발언이었다.
- 사진 제공
- 극단 배다, 이그래 / 하얀 까마귀
<강 너머>
- 일자 26. 9. 24 - 27
- 장소 CKL스테이지
- 작 이진 연출 이여원 기획 김동은 기획보 박차리 조연출 한이령 무대감독 정서원 무대 김려령 조명 김수려 의상 박세은 소품 박시영 영상/그래픽 이희경 음향 정소민 제작 하얀 까마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