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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탠덤]

아이다르, 도시 괴담 혹은 전설

이의자
263호 2026.10.28
누군가는 말을 잃었고, 누군가는 꿈을 잊었다. 도시에는 괴담인지 전설인지 모를 이야기들이 끊이지 않고 떠돌았다. 당장 고장 나도 이상하지 않은 고물 오토바이 엔진 소리만큼 위태로운 삶 한가운데, 둘은 누구도 붙잡을 수 없게 속도를 냈다. 빛나는 바다로 날아가 부서지는 파도 속에서 너를 안고 싶다고 말하면서, 그렇게 서로를 꽉 껴안은 채 밀물처럼 밀려드는 도시의 밤을 갈랐다.
    <탠덤> 공연 모습 ⓒ프로젝트 그룹 낙타

    열여덟 살 철주는 '키가 학교 담보다 크고 어깨는 편의점 냉장고보다 넓으며 주먹 한 방이면 열 명 정도는 금방 제치는데 오토바이를 얼마나 잘 타는지 한 번 달리면 저기 월미도에 도착하는' 구전으로 전해 들은 전설의 폭주족 배도철 같은 도시 전설이 장래희망이다. 하지만 현실은 폭주족 박무산에게 배달로 번 돈을 뜯기는 신세이다. 철주 역 김기주 배우가 연출이 이딴 것도 시킨다고 투덜대면서 휴대폰이 울리면 싸움을 잘하는 걸로 간주할 테니 각오하라고 객석에 으름장을 놓는다. 김남언 연출은 철주의 입을 빌려 어른들이 심각한 척하는 게 문제라며 웃기면 웃고 슬프면 울면 되지 않냐며 연극을 시작한다.

    최하위 피식자의 생존

    철주 ⓒ프로젝트 그룹 낙타 아이다르 ⓒ프로젝트 그룹 낙타 아이다르 발에 매달린 철주 ⓒ프로젝트 그룹 낙타

    가족 해체, 사회적 소외, 자아 불안, 결핍 등 또래가 겪을 법한 온갖 위기 상황을 시지프스(Sisyphus)처럼 한 몸에 떠안은 철주의 고된 인생에 연출과 배우가 들어오는 게 흔한 시선 끌기로만 보이지 않는다. 날것 그대로 드러낸 콘크리트 바닥의 무대는 배달 노동자 철주들이 달리는 극장 밖의 길거리와 다르지 않다. <탠덤>은 90분 내내 폭주하듯 빠르게 달린다. 암전은 코너에서 잠시 속도를 줄일 때처럼 순간이다. 배우들은 종종 바닥에 뒹굴거나 질질 끌려다닌다. 옷 속에 보호대를 하고 있다지만 배우들이 연습실 출근 브이로그에서 뼈를 갈아 넣는다고 한 말이 떠올랐다. 10월 초 서늘한 저녁 날씨에도 배우들의 열기와 땀으로 광복절 폭주를 한 달 앞둔 7월 중순의 폭염처럼 공간을 달구는 건 단순한 재현과 다른 영역이다. 바닥판을 깔지 않은 이유로 공진음을 잡지 못해 대사가 오토바이 풍절음처럼 울린다. 하지만 철주는 상관없다. 오토바이를 타지 않는 자신을 향해 세상이 하는 말 대부분은 구질구질하고 시시하다.

    그러나 과장과 허풍이 심한 철주의 말만 들어서는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실제인지 불분명하다.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는 누나 진주와 산재로 하반신 마비가 된 채 도박에 빠진 아버지 혁기는 철주를 돌보거나 가르치거나 바로잡아 줄 여유나 능력이 없다. 얼굴을 마주하면 서로 상처에 소금을 뿌리며 조롱하는 게 일상이다. 사회, 학교, 가족으로부터 결핍과 소외를 겪으며 미숙한 채로 몸만 어른이 되어가는 철주에게 세상은 의외로 단순하다. 웃기면 웃고 슬프면 울듯이 달리거나 멈추거나 둘 중 하나다. 카트를 타며 요구르트를 파는 누나도, 휠체어가 아니면 화장실도 못 가는 아버지도 살기 위해 달리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멈추는 걸 두려워하고 위험을 느끼는 건 먹이사슬 최하위 피식자의 생존 본능이다.

    요구르트를 파는 철주 누나 진주 ⓒ프로젝트 그룹 낙타 엎드린 철주 아버지 혁기 ⓒ프로젝트 그룹 낙타

    철주와 아이다르의 속도

    청춘의 우정과 사랑을 담은 웃픈 성장 드라마 <탠덤>의 두 주인공 철주와 아이다르가 '아이다르 모터사이클' 수리점에서 만난다. 키르기스스탄 출신 미등록 거주민 누흘란이 무허가로 연 가게에는 상처 난 동물들이 보듬듯 고장 난 오토바이들이 등을 맞대고 있다. 오토바이는 아이다르에게 어디서 왔는지, 몇 살인지, 주민등록번호가 있는지 묻지 않는다. 아이다르는 가게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딱 한 번 가본 초원. 말발굽이 밟는 곳마다 로즈메리 냄새가 올라오는' 중앙아시아 초원을 달리는 상상을 한다.

    중학교 동창인 둘은 서로를 양아치와 말 없는 외국인 왕따로 기억한다. 3년 내내 한 반이었으나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다. 철주가 아이다르를 아는 척 말을 건 것은 오토바이 수리비를 아끼려는 속셈이다. 아이다르가 철주의 반려 오토바이 시바(시티 바이크의 준말. 82년식 대림의 80cc급 소형 스쿠터. 자장면 배달의 아이콘, 시티(CITI) 시리즈로 불린다. 출처 대림자동차 공식 블로그)를 고치고 나란히(탠덤 Tandem) 올라타 달리며 의지하는 관계로 발전한다. 처음에는 한 명이 무인 숍을 털 때 한 명이 시동을 걸고 망을 보는 식이었지만 말이다. 말싸움이라면 지지 않는 철주와 말을 잃은 아이다르, 오토바이 운전이라면 선수급인 아이다르와 실은 속도를 내기 두려운 철주는 서로의 결핍을 채우며 조화를 이룬다. 아이들은 의지할 수 있는 누군가가 되기 위해 스스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철주 ⓒ프로젝트 그룹 낙타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철주와 아이다르 ⓒ프로젝트 그룹 낙타

    성장 드라마가 그렇듯 철주에게 역경이 닥친다. 누나 진주가 실은 열여덟 살에 폭주족 사이에서 자신을 낳은 엄마였다는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다. 철주는 오이디푸스처럼 코러스의 도움을 받으며 장광설로 운명을 저주하는 대신 오토바이 RPM을 높인다. 철주의 우상 배도철의 시그니처 사인 'BDC'가 새겨진 시바가 철주 가족이 사는 빌라에 오랫동안 처박혀 있었던 이유가 배도철과 진주의 러브스토리라면 납득이 간다. 당당하게 배도철 직계를 선언한 철주를 보고 폭주족 일진 무산은 'BDC'는 온 동네 오토바이마다 새겨진 연예인 스티커 같은 것이라고 비웃는다. 무산의 이간질에도 철주는 시민의식을 발휘해 폭주족을 소탕하며 정의를 실현하며 끝난다. 도시 전설이라고 해도 억지스러운데, 아이다르가 혼자 나와 시적 독백을 하면서 끝난다.

    무산과의 만남 ⓒ프로젝트 그룹 낙타 무산 퇴치 ⓒ프로젝트 그룹 낙타 아이다르의 독백 ⓒ프로젝트 그룹 낙타

    다시 공연을 보러 간 이유는 <탠덤>이 다시 봐도 재밌었기 때문이지 재관람 할인 때문만은 아니었다. 더불어 예상하지 못한 마무리에 맥락을 놓친 독백을 제대로 들으려는 심산이었다. '너는 나를 업고, 말이 없는 나를 업고. 내 등에 업혀 네 발이 땅에서 떨어지고 우리의 몸이 날아오르고.'로 시작하는 혼잣말은 '290킬로미터로 한강 다리를 날아올랐다가 떨어진 과정'이 미혼모로 살아온 진주의 지난한 삶을 떠올리게 한다. 아이다르가 철주의 아이를 가졌다면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 가난이 대물림(가난 대물림 81%에 달해 '지역 간 인구이동과 세대 간 경제력 대물림' 출처 2026 한국은행 보고서)되는 사회에서 위태로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진주와 달리 어디를 향해 얼마나 빠르게 달릴지 핸들을 잡은 건 아이다르다. 어머니는 고향에서 독재 정권에 대항하기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기사를 쓰다가 의문사했다. 아이다르 세 살 때, 아버지가 정치적 망명을 선택한 이유이다. 한때 동네에서 희미한 존재, 사회에서 투명한 존재였지만 이 역시 역경을 딛고 성장하기 위한 과정이다. 적어도 아이가 철주를 닮아 폭주족을 꿈꾼다 한들 아이다르야말로 배도철을 능가하는 전설이지 않은가. '오늘도 별은 없다'면서 독백이 끝나자 지하 극장에 칠흑 같은 어둠이 닥친다. 그러나 철주를 만나기 전, 초원의 밤하늘을 그리워하던 시절과는 다르다. 다시 외로워졌다는 한탄일 수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불안일 수 있다. 어쩌면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 한국에서 버티고 살 수 있을 만큼 어른이 되었다는 선언일지도.

    추신. "여기 이 동네에서, 찍찍이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프로젝트 그룹 낙타'라는 팀명에는 사막처럼 열악한 공연예술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버티겠다는 김남언 연출의 의지가 담겨 있다. 낙타의 침은 위에서 음식물과 위액을 함께 끌어올리기 때문에 상당히 지독한 냄새가 나고 사방으로 넓게 퍼진다. 침을 찍찍 뱉고 다녀서 사람들이 찍찍이라고 부르는 철주는 싸움은 못 해도 침은 가장 멀리 뱉는다.



    <탠덤> 포스터 ⓒ프로젝트 그룹 낙타

    <탠덤>

    • 일자 26. 10. 1 - 11
    • 장소 여행자극장
    • 작 강훈구 연출 김남언 조연출 이다은, 이은결 안무 전소담 음악 김주형 연주 정산들 무대 양병환 조명 홍문화, 신예정 음향 김태균 의상 김우성 분장 장재우 사진디자인 김다운 기획 김아영 PD 이경훈 주최 프로젝트 그룹 낙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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